나는 생의 기로에 서있다.


미래지향적인 인간들이 으레 고민하는,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그런 선택들 사이에 서있다는 뜻이 아니다. 말그대로, 나는 단 한 발자국을 내딛느냐 마느냐에 따라 정말로 죽을지 살지가 결정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둔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원하지 않게 이런 상황에 놓여버리고 말았다는 것 처럼 들릴지도 모르니까. 이 상황은 내가 조성한 것이며 내가 선택한 것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한 발자국을 내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의 생명체라면 어느 종이든, 누구든 가지고 있는 그 깊은 곳에 자리잡은 원초적인 본능이 강하게 말리고 있는 탓에 좀 처럼 끝을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이 30. 경력은 남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있고 그만한 경제력도 있다. 취업이든 공부든 뭐든 운이 좋았던 편이었지만 그 운에 어울리는 노력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시기를 샀고 누군가는 우러러 보았지만 그런 것엔 일절 관심을 주지 않는 절제와 냉정도 겸비한, 그러면서도 예의와 상식 또한 적절하게 갖춘… 그러니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요즘에 보기 힘든' 그런 청년이었다.


그런 놈이 왜 이런 고층 빌딩의 옥상 난간에서 벗어놓은 신발을 옆에 가지런히 두고 맨 발로 서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왜 지상의 모든 것이 개미새끼 같이 작아보이는 이런 고층에서나 마주할 강풍 속에서 위태롭게 몸을 가누고 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예 이해하려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뭐, 이해를 바란 적은 없으니 그것 만큼은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그래도 이러고 있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말해보자면,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는 별 것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아무는 일도 없다. 반대로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닌 일이 나에게는 아무는 일 없는 그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 지금의 내게는 그런 상처가 있다. 누군가가 보기에 나는 정말 사소하고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자살을 하는 것이겠지만 오늘 날의 대부분이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커녕 시도조차 않는 삭막한 시대이다. 샬레 위의 세균만한 크기의 이해도 따스함도 없는 현대에서는 나 하나 자살한다고 크게 다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달리 보면 자살하기 참 좋은 시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의미 따위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몸을 던졌다. 자살을 마음 먹었어도 죽을 용기가 없어 몇 시간 째 발을 내밀었다 다시 되돌리는 나 따위 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 몇 십 몇 백이나 있다.


적어도 자살할 용기는 있는 놈이었다. 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일 초라도 빨리 발을 내딛고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 스러지는 그 몇 십 몇 백에 빨리 합류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강풍에 다리가 휘청거리고 뜻하지 않게 발이 살짝 꼬여버렸다.


그 탓인지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때 까지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한 노력에 투자한 탓에 또래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고 나부터가 그런 시간을 불필요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자연스럽게 또래들과 멀어진 것이겠지만 내가 그들을 불필요하다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초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당시든 지금이든 어른들이 보는 것 보다 아이들은 의외로 눈치도 빠르고 교활한데다 영악해서 '나 따위'가 본인들을 불필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채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미성년의 세계는 순수함을 머금고 있다. 당연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그런 유광의 백색일색의 순수함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다니던 학교의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고학년에 이르기까지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야생에 가까웠다. 사바나를 예로 들어보자면 가젤이 있고 물소도 있는가 하면 원숭이도 있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작은 곤충들이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사자들이다. 그들은 무리를 이룬다. 강한 무리가 있고 약한 무리가 있으며 소수의 무리가 있고 다수의 무리가 있다. 물론 코끼리가 있긴 하지만 미성년으로만 이뤄진 야생에서 그런 규격 외의 존재는 정말로 찾아보기가 힘드니 넘어가자.


그런 세계에서 나는 가젤도 물소도 원숭이도 곤충도 사자도 되지 못했고 되지도 않았다. 그런 세계 자체를 거부한 나는 육체도 사고방식도 미숙한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은 커녕 이질적인 무언가로 비쳐졌기에 존재 자체가 불쾌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시각적으로는 인간이 아니라 불쾌함으로 이뤄진 어떤 덩어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런 놈이었어서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세계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배짱 만큼의 공격성도 내게는 있었기에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주먹질에는 주먹질, 욕설에는 욕설, 도가 넘는 장난에는 그보다 더 한 장난으로 응수했다. 그렇더라도 다수 앞에 장사없다. 영화고 만화고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그런 다대일의 멋드러진 상황은 다 연출일 뿐이다. 그 저항들은 실질, 대부분 나의 패배라는 상황으로 마무리되었고 간혹 비참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꼴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절대 이놈들과 같이 되지는 않겠다.' 라며 끝끝내 고집스럽게, 그 야생의 주민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하루는 오수가 가득 고인 하수구에 빠진 쥐새끼같은 꼴을 한 적이 있었다. 몸에는 푹 젖은 먼지냄새가 가득했고 입에서는 떼묻은 세제의 맛과 향이 감돌았다. 나를 위해 청소시간에 쓰인 물을 버리지도 않고 그대로 양동이에 담는 수고를 하다니. 그런 물로 샤워를 당하고 큰 컵으로 세 잔 정도되는 양을 마시게 됐어도 녀석들이 들인 수고를 생각하면 이것은 잠자코 당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구토와 함께 떠내려보내고 있던 오후의 무렵이었다.


"으… 냄새."


코 앞에 들어올린 손을 휘휘저으며 그녀는 짐짓 불쾌하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다.


"여기 남자 화장실이야."


세면대의 거울에 수근대며 지나가는 남자들이 비쳐졌다.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 화장실에 있다는 쪽보다는 내 꼴을 보고 그러는 듯 했다.


"싸우지 말라니까."


"싸우다니? 이것 좀 봐." 손에 맺혀있는 물기를 털고 뒷목 언저리를 들이대보였다. "자국 보여? 억지로 잡혀서 당한거라고."


"에휴…"


크게 한숨을 쉬는 이유가 나 때문인지, 아니면 비겁하게 여러 명이서 몰려 온 쪽 때문인지는 몰랐다.    


"약속했잖아. 안싸우기로."


"누구는 싸우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싸우기 싫지. 관련되기도 싫고."


그녀가 빤히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지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구정물을 빼낸 셔츠를 털어 챙겨온 비닐봉투에 담았다.


"왜 모두가 너를 괴롭힐까?"


실제로도 남의 일이지만, 그녀는 남의 일인 것 처럼 말하며 내가 아무 말이라도 하길 바란다는 듯한 시선으로 곁눈질했다.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지나친다. 그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고 쌀쌀맞은 관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이기에,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더는 이런 꼴을 보이기가 괴로웠을 뿐이다. 그렇다면 야생같은 학교의 기류에 진즉에 합류하면 된 것이지 않느냐고 물어볼 법도 하지만 그런 세계를 거부한다는 것은 자존심보다는 일종의 신념같은 것이라, 나는 그녀와 내 신념 사이에서 영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애매하고, 어중간하기 때문이야."


화장실 문을 반쯤 열자 내가 정말로 나갈 것 같았는지 그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말에 나는 끝내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잠깐 지나갔는데, 추슬렀더라도 그녀에게 보이기에는 영 좋지 못한 모습이었다. 오수에 푹 젖어 허우적대는 쥐새끼에서, 목욕하고 털을 덜 말린 고양이 같은 모습 정도로 밖에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것도 견딜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 앞이라는 상황에 놓여서인지 내 안에서 무언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아주 강하지도, 아주 약하지도 않아. 저항 정도는 가능한데 온전히 몸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완전히 굴복해서 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다니지는 않지만 지속되는 상황을 타개할 생각 자체를 안 해. 그리고 무엇보다, 반응이 확실해. 꼭 구석에 몰려 움츠러들어있는 고양이 같단 말이지."


또래에게선 좀 처럼 보기힘든 그 몸짓과 말투를 나는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 날 만큼은 다른 이들 처럼 오글거린다고 여겼다.


"뭔 말이 하고 싶은건데?"


"그러니까, 엄청 재밌어서 그러는 거란 뜻이야." 그녀의 검은자위가 내 등 뒤에 있는 화장실 출입문을 의식했다. "너무 강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은 그런 상대면 게임이든 만화든 영화든 스포츠든, 어디에서든 보통 제일 재밌게 그려지지 않니?"


집단 괴롭힘도 그런거야. 라며 그녀가 검지를 세워 나를 가리키고 키득키득 웃었다.


"지도 왕따당하는 주제에."


"그렇긴한데, 그래도 난 너랑 다르잖아."


"왕따에도 같고 다른게 있어?"


"있지. 난 압도적으로 강하거든."


그렇게 말하고 보란듯 양 손바닥을 턱에 받치더니 자신의 얼굴이 꽃과 같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또 한 번 키득댔다. 


분하지만 예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가 따돌림 당하는 원인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또 한 번 인정했다. 그 말대로, 그녀와 나는 다르다. 나도 그녀도 주위의 이목을 끄는 존재이긴 했지만 그 이유가 완전히 다르다. 이유가 다르니까 겪게 되는 괴로움도 종류가 다르다. 내가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그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질 때문이며 괴로움은 직접적인 형태로 다가오고, 그녀가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너무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소유했기 때문이며 괴로움은 간접적인 형태로 다가갔다. 동성에 한해서는 누구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 참. 혀를 찼다. 그래도 이성은 접근한다는 점에서는 따돌림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싶었으니까. 괴로움의 종류는 다를지언정 결국엔 본질도 크기도 같다고 생각했는데.


애매하게 발달하고 애매한 크기의 도시인지 시골인지 모를 외진 곳의 중학교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수학여행, 운동회, 소풍이나 각종 교외활동을 하게 되면 늘 찍게 되는 단체사진에서 그녀는 동성들에게 소외당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주위는 이성으로 가득했지만, 그녀에게 접근하는 몇몇 이성들이 품은 연심은 일방적인 것이었고 일방적이었다보니 당하게되는 실연도 일방적이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꽤나 아프게 다가왔는지 몇몇 이성은 그런 연심을 떳떳하지 못한 무언가로 변질시켜 버리기도 했다. 때때로는 그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도 있어 그것이 내가 주먹질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던 적도 있지만, 그러나 그녀가 내게 감사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나 또한 감사나 받겠다고 한 짓이 아니었고. 바라지도 않았고.


그럴 셈은 아니었지만, 하루는 그녀와 단 한 마디도 섞지 않는 동성들이 그녀를 멋대로 규정하고 헐뜯는 것을 엿들은 적이 있다. 워낙에 작은 목소리로 소곤댔기에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가장 자주 들렸던 문장이라고 한다면,


'지가 존나 예쁜 줄 알아.' '재수 없어.' '난 안 될 거야.'


이렇게 세 가지였는데, 이 중에 나는 '난 안 될 거야.' 가 그 동성들의 본심임을 직감했다. 난 안 될 것이라며 본인들끼리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의 동성들은 눈이 비어있고 표정에는 영 맥이 없어보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이 무언가를 포기할 때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나를 제외한 누구와도 교류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존재 자체가 주위의 동성에게 무언가를 포기하게 만드는 힘이 당시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특히나 그녀와 같은 동성에게 있어서 외모란 무기에도 비유된다. 얼마나 발버둥치든, 얼마나 노력하든, 얼마나 돈을 쏟아붓든, 따라잡을 수도 뒤집을 수도 없는 태생부터 정해진 절대적인 차이가 있음을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몸짓도 보이지 않았어도 동성들에게 몸소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서서히 알아가야 하는 그 불합리한 차이를, 그녀는 받아들이기엔 이른 초등학생, 중학생 무렵부터 주위의 아이들에게 전파했다.


그녀의 말대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였던 그녀가 나 같은 것과 붙어다니는 것을 주위에서는 신기하게도 쳐다보거나 고깝게도, 못마땅하게도 보는 듯 했다. 그들에게 그럴 생각은 없어도 변명을 해보자면 먼저 접근한 것은 그녀였고, 나름대로 내게 접근한 이유를 파악해보자면, 그녀는 주위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나와는 다르게 다소의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같은 왕따라는데에서 오는 동질감에 이끌려 접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동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계기가 된다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묘사 될 법한 관계의 구축을 현실에 적용시켜보면 꽤나 낯뜨겁다. 그러니 제발 그런 것만은 아니길 바랐다. 게다가 우리가 처했던 상황이 상황이라, 비참함도 가미 될 것이었다. 먼저 접근한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왕따끼리 모여다닌다는 그림은 상상이상으로 감상하기 어려웠으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붙어다닌 우리는 알고보니 집도 가까워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라면 거의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했다. 누군가의 집에서 놀 때면 보통은 그녀의 집에서 노는 것으로 정했다. 필요 최소한의 양육의무는 지고 있지만, 내 부모는 어찌 할 도리없을 정도로 자식에게 관심이 없던 인간들이었고 그런 기색을 거침없이 주위에 흩뿌리고 다녔기에 내 집에 감도는 기류는 어린아이들이었던 우리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불길하기 그지 없었다. 내 집이지만 그런 곳에 그녀를 들이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집에 갈 때면 나는 '원해서 온 것이 아니다.'라는 얼굴을 했지만 그녀의 집안도 영 좋은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곳이었는지 내가 그러더라도 그녀는 꽤 자주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것도 중학생까지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중학생이 되고나서부터는 빈 집에 단 둘이 있는다는 상황이 꽤나 묘하게도 느껴졌던지라 나는 완곡하게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것을 거절했다. 하지만 현저하게 그녀의 집에 방문하는 수가 줄었더라도 함께 한다는 것만은 변함없었어서 그녀는 딱히 아쉬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집에 단둘이 있다는 상황에서 오는 묘한 감정이 일상에도 번지기 시작하자 나는 꽤 민감해져버렸다. 중학생이 되고나서 짓궂게도 느껴지는 장난을 자주치기 시작한 그녀에게 꽤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많았고,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그만두기는 커녕 더욱 짓궂게 굴었다. 손에 손을 깍지끼거나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신체를 접촉해오기도 했고 뺨에 입술이라도 닿는 날에는 까무러쳤다. '이러니까 왕따를 당하는거야.' 뺨에 닿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겠다고 손 대신 입을 댄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너무 재밌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슬쩍 내 어깨를 검지로 찔러보더니 팔짱을 꼈다. 이 쯤 되면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괴롭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확인하지만 않았지 착실히 서로를 좋아해왔던 모양이라,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완전히 연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런 모습에 다다르기까지 그녀는 항상 솔직했다. 나는 보다시피 영 솔직하지 못했었지만 슬슬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이나마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러는 것이 정답이었는지 그 사실에서 오는 감정은 끔찍한 야생을 견뎌내는데 필요한 동력이 되어주었다. 이것은 아마 그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중3이 되어서는 괴롭힘을 당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했고, 그 때 까지 쌓여왔던 것들은 확실하게 나나 그녀 안에 있던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좀 먹어왔기에 우리는 슬슬 진저리를 내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학교를 빠져 이곳 저곳을 쏘다니다가 너무 빠지는 것은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에만 간간히 학교를 들렀다. 실은 우리 둘 다 학교 따위보다는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갈구해 이제껏 충분히 이겨내온 상황들을 변명삼았는지도 모르지만 우리 둘 다 그런 일탈에서 오는 시원한 쾌감을 마음에 들어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


시간은 지나 중3의 기말고사를 끝내고 겨울방학을 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경전철 플랫폼 한 켠에 마련된 작은 난방실이었고 해는 이미 기울어 없었다.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 단 둘 뿐인 장소에서 우리는 작은 난로를 앞에 두고 펭귄처럼 다닥 붙어 서로의 체온에도 의지해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다소 귀여운 일탈을 벌이긴 했지만 야생같은 세계에 굴하지 않고 학생의 본분을 지켰다는 하찮은 숭고함이 가미된 성실함을 서로에게 칭찬해주고 나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복수 할 거야."  


낮게 깔린 목소리로 서슬퍼런 말을 내뱉은 것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귀여운 몸짓으로 양 손을 호호불었다.


"누구한테?"


내 물음에 그녀는 당연한 걸 묻냐는 시선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를 조금도 가만히 두지 않았던 이 세상이지."


"의왼데. 원한이 깊었구나. 맨날 아무렇지 않은 척 나한테 싫은 소리나 해댄 주제에."


"그건 그냥 화풀이지."


한동안 키득댄 그녀가 검지를 세워 조심스럽게 내 볼을 찔렀다.


"그러니까,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런 말도 있잖아? 성공이 최고의 복수다."


"맞지."


"응. 너도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중에 만났을 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어서 나타났다가는, 상대 안 해 줄거야."


"……나중에?"


"…응."


난로와 그녀의 체온으로 몸은 충분히 따뜻하게 녹아있었지만, 그런데도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앞으로는 함께 하지 못한다는 뉘앙스로 들렸기에.


"이사… 가거든. 좀 먼 곳으로."


"그렇구나."


떨림이 심해졌지만 그렇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답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이뤄진 소용돌이가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서 휘몰아쳤다.


"약속할게."


그렇게 말하자 역내 방송과 함께 먼 곳에서 선로를 진동시키며 다가오는 열차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난방실을 나서 그녀와 함께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열차에는 그녀만이 오른다. 오늘 하루 다녀올 곳이 있다고 배웅해달라고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이별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달리 무언가 준비라도 했을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말해주었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되어 떨림은 조금 약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를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아마도 내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배려한 탓이다. 떠나기 직전에서야 알려서 슬픔과 당황을 얼떨떨함으로 무마시킬 수 있게 해준다는 배려. 물론 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냥 슬퍼할 일도 아니다. 내게 떠난다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워 할 정도로, 그녀 또한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니까.


따라서, 보기에는 배려아닌 배려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배려를 정말 순수한 배려 그 자체로 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녀가 말했다. 우리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자고. 그런 다음에 세상에 복수하자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똑같이 새끼손가락으로 걸어달라고 무언으로 요청한다. 그 요청에 응해 새끼손가락을 얽고 엄지까지 맞춘 다음 그녀가 소심하게 뺨에 입술을 맞췄다. 새끼손가락은 차가웠는데 입술은 따뜻했다. 그 상반된 온도가 언제까지고 내 몸을 훑으며 돌아다닐 것만 같았다.


"좋아해. 그리고, 나는 너와 결혼 할 거야."


주문을 읊듯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할 법한 말을 하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이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막 들어온 열차를 한 번 곁눈질하고 그녀가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 타이밍이, 우리 나이대에는 아직 이른 그녀의 청혼과 고백에 응해줘야 할 타이밍임을 나는 알았다.


"…갈게."


"건강 해."


"응."


완만하게 출입문이 닫히고 특유의 구동음을 내며 작은 열차는 떠나간다.


나는 이 날을 언제고 후회한다. 고백과 청혼에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건강하라는 지극히 의례적인 작별인사나 해댄 내 병신같음에, 숫기가 없다는 변명으로도 덮지 못할 추태에 나는 언제고 언제고 후회하고 괴로움에 몸서리치고 만다.






* * *





그렇게 우리는 하루 아침에 헤어졌지만 연락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시 난방실에 돌아갔더니 그녀가 그 날 하루 동안 들고 다녔던 작은 종이 쇼핑백이 있었고 짐을 놓고갔다고 난감해하며 내용물을 뒤져보니 내게 쓰여진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잊은 물건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내게 전해질 물건이었던 것이다. 연청색 체크 머플러를 편지봉투로 삼아 들어있던 편지의 내용은, 당연히 알고 있는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새 주거지가 될 곳의 주소, 그리고 문장 한 줄이었다.


'앞으로 연락은 편지로.'


스마트폰의 각종 메신저 앱이나 이메일이라는 손쉬운 수단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왜 굳이 연락을 편지로 하자고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받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대답은 아주 간결했다.


'그러는 편이 낭만이 있잖아. 게다가,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될 테니까. 그 때를 위한 기대치도 높여야지.'


요컨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과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는 뜻이리라. 아무래도 세상을 향해 복수하겠다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었나보다. 겸사겸사 낭만도 챙기겠다는 것이고. 뭐, 좋다. 그런 뜻이라면 이 시대착오적인 행위와 발상에 얼마든지 어울려주기로 했다. 애초에 내게 그녀 이외에는 교류하는 이도 없었기에 최소한의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편지를 주고받기를 계속 이어가고 고등학교 첫 학기가 반 정도 지나고나서야 나는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자는 그녀의 결정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메신저로는 느낄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무언가가 편지에는 있었다. 편지라는 것 자체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주고받는 상대가 그녀였기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편지를 써감에 따라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의 메신저는 지극히 기계적이고 차갑게 느껴졌고 반대로 편지는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녀가 직접 적어놓은 문장에서 그녀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한동안 편지지에 손을 대고 있던 적도 있었다.


스마트폰 메신저에는 편지와는 또 다른 따뜻함이 있고 마냥 기계적이지만은 않다. 그 예로 이모티콘이 있다. 라고 말할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아기자기한 필체와, 편지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향수의 향에 비할 수 있을까. 문장 한 줄 한 줄에서 어떻게 내용을 써내려가야 할지 고심한 흔적과, 편지지에 어떤 향을 부여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그 사랑스러움을, 스마트폰으로 느낄 수 있을까.


편지는 한 달에 두 세번 정도 오갔다. 그외에는 서로 침묵하는 공백인 것이 아니냐며 또 딴지를 걸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공백은 다음 편지에 어떤 내용을 적을까 하는 행복한 선택과 고민의 시간이었으며 편지를 부치고 도착하는 날까지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은 감질나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편지로 연락해 본 적이 없는 이는 결코 이해 할 수 없을 그런 시간들이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녀는 이사 이후부터 따돌림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 된 듯 했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에도 원활히 집중하고, 취미도 제대로 즐기는 그런 행복한 방향의 전개에 본격적으로 탑승했다. 그 빼어난 외모 덕에 때때로 몇 번 고백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내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짓궂음도 가미되어 있었다. 나는 질투하기는 커녕 그 생생한 문장들을 한 폭의 그림으로 치환해 머릿 속에서 수십 수백 번을 돌려서 감상했다. 나 또한 더 이상 괴롭힘이나 따돌림 당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친구가 없는 것은 예나 고등학생때나 똑같았다.


편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나서부터 끊겼다. 처음 몇 달은 두세번, 많으면 네다섯번 교환하던 편지는 단 한 통만 오기 시작했다. 내용은 지극히 평범했고 문장은 심플했으며 문체는 늘상 같은 귀여운 문체였지만 더 이상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향수의 향은 변질되었는지 다소 불쾌하게도 느껴졌다.


그 다음에는 아예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와의 연락은 끊겼다.


정말이다. 이게 끝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싶어 하루에도 수 번 편지를 보냈다. 그래도 연락이 없다가, 왜 멍청하게도 나는 스마트폰으로 직접 연락한다는 방법을 취하지 않았는가 싶었다. 아무래도 스마트폰보다는 편지에 익숙해지고 편지가 가진 매력에 생각 이상으로 푹 빠져버렸던 모양이다. 또한 그 이전에, 편지로 연락하면서 스마트폰으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언젠가부터 우리 사이에 자리잡았던 것 같았다. 스마트폰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찾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고 알려오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톤의 높낮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없는 번호라고 확인 된 그 다음 날에 나는 학교를 빠졌다. 본격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따로 구매한 케이스에 보관해둔, 그 첫 편지에 적힌 주소지를 나침반 삼아 그녀에게 향했다. 


편도 세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져있는 내 고향과 달리 번듯하고 으리으리한 전형적인 도시였다. 그랬던 탓에 주소에 해당하는 장소까지 찾아가는데에 애를 먹었지만 도착하고나서는 도시가 아니었어서 빨리 도착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는 걸 깨닫자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보였다.


그녀가 적어놓은 주소, 그 주소에 위치한 집, 그 집은 도시 속에 있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폐가였다. 그녀가 보내온 편지 위에 그려진 행복한 그림과 이 폐가 사이의 괴리 때문에 이 집이 폐가라고 판단하기까지 몇 십 분이나 걸렸다. 


이미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는 그 쯤해서 포기한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아랑곳 않고 발길을 돌렸다. 그 다음으로 찾아볼 곳은 학교였다. 조사해 볼 학교는 그녀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한정했다. 등교한다면 가까운 곳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고 이 곳은 도시이기에 이 도시 안의 모든 학교를 조사하기란 불가능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슬슬 나를 찾기 위해 이놈이고 저놈이고 핸드폰을 진동하게 만들었어서 더는 이 도시에 오래있기 어려웠기도 했다. 이거야 원. 핸드폰 액정에 찍힌 부재중 5통이란 메시지와 그 번호를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필요 최소한의 관심만 주던 부모란 자들이 이럴 때는 또 찾는다는 말인가? 관심은 주었으나 표현이 서툴렀던 것 뿐이라는 변명도 안통하는 인간들이 말이다.


어쨌거나 결과만 말하자면, 그녀를 찾는데에는 실패했다. 정말로, 믿기지가 않았다. 그 폐허며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한 뒤의 첫 몇 달 동안 온 편지며 모두 거짓말 처럼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떠났다가 또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니. 마치 안개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실제하지 않는 내 망상이 만들어낸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주변 주민들을 통해 조사했을 때 하나 같이 모른다고 대답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귀가하는 발걸음은 의외로 가벼웠다. 머리와 가슴 한 구석에 온갖 상념으로 이루어진 응어리가 자리잡긴 했지만 실제로 망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련에 의해 계속 찾아본다는 행위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볼까. 빼어난 구석이 있던 그녀와 영 볼품 없던 나. 그녀는 본격적으로 행복의 궤도에 합류했으나 여전히 고독했던 나. 내가 그녀였더라도 나라는 남자에게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행위에서 오는 낭만은 처음 몇 달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고 이미 진즉에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진 남자를 만나 행복의 궤도를 계속 그려나가 지구 다섯 바퀴 쯤은 될 크기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가 상냥함을 발휘한 경우라면 몇 년 전에 있었던 나와의 시간은 어렸을 적의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두자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좋아해. 그리고, 나는 너와 결혼 할 거야.'


하지만, 그 말 만큼은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의 경전철 플랫폼에서의 기억을 일 분 일 초도 틀리지 않고 모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는 그녀가 나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맞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진심이 아직도 그 플랫폼 속에서 머물고 있다고 믿은 채 세상에 복수하자는 약속을 반추해가며 시간을 보냈다. 단 일 분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 그녀의 이른 청혼에 정면으로 답해줄 만한 훌륭한 남자가 되기 위해 나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올리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다. 질 낮고 불쾌한 세계는 철저히 거부하는 극도의 절제를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그렇게 오늘 날에 이른다.


그녀를 찾은 것은 자살을 마음 먹기 반년 전이었다.


안개처럼 사라졌다가 안개처럼 나타난 그녀는 한 아이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 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그녀의 이야기는 맨정신으로 듣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대충 그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그녀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그녀는 이른 나이에 출산하여 그 탓에 결혼했었고 반 년도 되지 않아 이혼했다. 타이밍 좋게 가세도 기울어 집도 사라져 자신이 의지할 곳은 미혼모 보호소였다. 우습게도 한 번 결혼한 적이 있었으나 보호소에서는 받아주더라. 그러나 그 곳에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와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먹지 않아도 될 눈칫밥을 먹게 되어 금방 보호소를 나왔다. 이후엔 닥치는대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


내게 연락을 할까 했지만, 염치도 면목도 없어서 하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그녀와 함께 나타난 그 남자아이는 그녀의 친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고 아이는 그녀와 똑닮아 이렇게 다시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지만, 그녀의 사정이야 어쨌든, 나는 지금 나타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게 있어 불쾌하기 그지 없는 이유라도 좋으니 뭐든 이런 식의 재회를 억지로나마 납득 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찾아온 이유야 아이를 데려온 것에서 미루어 볼 수 있는 것 그대로였다. 그것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녀가 밉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실은 그녀가 그 미숙한 야생의 세계에 걸맞는 야성을 가지고 있었어서 어린 나이에 임신해버렸다는 일면은 단순한 배신감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욕하기보다 나를 욕했다. 좀 더 빨리 훌륭한 사람이 되었더라면, 지금보다도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더라면 진즉에 그녀를 구원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미워하기보다 먼저 그녀와 아이를 품고 나와 그녀 사이에 있는 공백에 대해 더 자세히 묻지도 않은 채 미래를 그렸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신과 다르게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며 플랫폼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지만 그 추억을 떠올리는 몇 분의 시간조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에 투자했다.


그렇게 반 년 뒤에 내가 서있는 이 고층 빌딩의 옥상, 즉, 내 회사의 옥상에 서있는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에 그녀는 자살했다. 음침하기 짝이없고 비탄으로 가득한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살이 팽배한 오늘 날은 하루 평균 35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그녀는 그 평균 숫자에 포함되었을 뿐이다. 자살 또한 세계를 구성하는 톱니바퀴가 된 듯한 오늘 날에서 그 사실은 딱히 대단할 것도 없다. 아이는 시설에 맡겼다. 어머니와 같이 시설에 맡겨진다니. 부디 어머니와는 다르게 따돌림만은 당하지 않길 바랐다.


'좋아해. 그리고, 나는 너와 결혼 할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플랫폼에서 한 그녀의 청혼은 일종의 저주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이 일생은 모두 그녀를 바라봐 오고 있었으니까. 오직 그녀의 이른 청혼에 답해주기에 걸맞은 남자가 되기 위한 시간들이었으니까. 매순간에 그녀가 있었다. 모든 곳에 그녀가 있었고 그 모든 것에서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라는 이름의 렌즈를 눈에 끼웠던 것 처럼, 눈이 맺는 모든 상에는 그녀가 어려있었다.


물론 실제하는 그녀는 없었다. 내게 있어 실제하는 그녀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 까지의 무렵이며 엄밀히 말해 나는 그녀에게 배신당한 입장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직 그녀만을 바라왔다. 그녀와 살아왔다. 삶의 목표였고 지표였으며 이정표였다.


그랬던 대상이 그렇게 가버렸으니 내가 더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 뜻하지 않게 장황히 떠들게 됐지만 이것이 내가 자살하는 이유다.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가? 흔해빠졌지 않은가? 연모하던 이를 떠나보내고 삶의 의욕을 잃어 자살한다니. 정말 대단할 것 없는 이유다. 


스마트폰을 켠다. 미확인 문자가 몇개 와있다. 무단결근을 따지는 상사의 노기어린 문장들로 이루어진 문자는 가볍게 넘기고 그 다음 문자를 확인한다. 업체에서 온 문자였다. 돈만 주면 온라인상에 있는 개인 정보와 이런 저런 사이트에 가입된 계정들의 탈퇴를 대리로 수행해주는 곳이 있다는 걸 안 것은 몇 일 전이다. 의미야 있겠냐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와 관련 된 것은 모두 정리하고 싶었기에 한 번 맡겨보기로 했었다. 제대로 내 정보에 대한 건 다 정리 됐는지 자세히 확인해 볼 생각이었는데 수 시간 차고 강한 바람을 맡고 있으니 머리도 몸도 식어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뭐, 제시한 가격의 세 배를 쥐여줬으니 알아서 잘 정리해줬을 것이다.


문자보관함을 싹 비우고, 메신저 앱을 지운 다음에 업무와 관련 된 앱을 싸그리 지웠다. 남은 건 자기관리에 도움을 줬던 생활 관련 앱이다. 몇 개의 게임과.


모두 지우고 단 하나만의 앱이 남았다. 라스트 오리진이라는 이름의 앱인데 뜻하지 않게 마지막까지 남겨둔 앱이라는 이유만으로 삭제 전에 실행해 보기로 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취향이 있다. 내 자살 이유와 같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취향부터해서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취향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수 만큼의 취향이 존재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게임은… 그 취향들 중에서도 꽤 마이너한 요소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취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절제로 가득했던 내 생에서 다소의 환기가 필요했기에, 쾌적한 진행과 육성을 위해서는 터무니 없을 정도의 고가를 투자해야하는 모바일 게임 중 그나마 저렴하게 먹힌다기에 시작해 본 게임이었다. 게임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게임이지만, 뭐, 나름대로 즐길만한 것은 있었다.


특히. 부관으로 설정한 이 녀석.


'제 역할은 지원입니다. 각하께서 안 계시면 지원이 불가능해요.'


앞으로는 쭉 안 계시게 될 거란다. 다른 녀석을 각하로 모시렴. 들을 리가 없는데 혼잣말로 그렇게 말했다. 죽기 직전이고 보는 이도 없으니 아무래도 좋을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스마트폰 액정 너머의 캐릭터에게 말을 건다니 여간 우습지 않은게 아니다. 


마지막 앱을 삭제하기 전에 사담을 해보자면, 이 라스트 오리진 (이하 라오)라는 게임에는 링크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한 캐릭터에게 동일하거나 그에 준하는 캐릭터를 링크, 쉽게 말해 겹쳐주면 강력해진다. 한 캐릭터당 다섯 번의 링크를 해줄 수 있고 다섯 번의 링크를 해주는 것을 풀링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부관으로 설정한 이 레프리콘이란 캐릭터를 풀링했다. 열 명을 풀링했으니 총 육십 명을 그러모아 관리했던 것이 된다. 성능으로는 그저 그런 캐릭터고 급도 낮고 인기도 고만고만하지만 나는… 그녀를 2D로 데포르메 한다면 왜인지 이 레프리콘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진 않을까 싶어서, 레프리콘이 그녀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다른 캐릭터에게는 전혀 주지 않은 애정을 레프리콘에게 만큼은 주었다. 풀링 열 명에게 모두 서약도 해주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넘어간다. 라오를 아는 사람에게 레프리콘을 열 명 풀링 해줬다고 하면 변태소리 듣기 좋은데 모두 서약해줬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론 유저 중에서는 특정 소속 캐릭터만 집요하게 모아 나와 같은 육성을 하는 이는 얼마든지 있는 모양이라, 내 변태력은 의외로 낮게 평가 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라오를 종료하고 앱을 삭제했다. 필수 앱 이외에 모두 사라진 것을 보니 내 속마음도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이제 때가 됐다. 가로등이 명멸하다가 완연한 주홍빛을 유지하고 있게된지 꽤 됐고 차도변을 오가던 차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적기인 것이다. 여기서 용기있게 한 발 내딛어 공중에 몸을 내맡긴다면 그 다음은 모두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마무리 된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제법 민폐를 끼치게 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자살이 일상인 시대인 것이다. 나 하나 죽는다고 신경 쓸 이는 없을 것이고 만에 하나 아무 연도 없는 이가 내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더라도 내가 그것을 알게 될 일은 없다.


마지막으로 얼마 없는 추억, 그것도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진 추억들을 마지막으로 몇 번 씩 반추하고 발을 내딛었다. 강풍이 몸을 휩쓸고 눈꺼풀이 뒤집히고 멋대로 떠지기를 반복하다가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듯 공중에서 마구 굴렀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바랐다. 지면에 떨어져 터져나온 피가 부디 한 송이의 꽃 모양을 그려주기를.


목숨바쳐 그려낸 붉은 꽃이 그녀에게 바쳐지기를.





* * *


다음 화 https://arca.live/b/lastorigin/31098520



프롤로그가 많이 길지? 매운 맛을 쓰다보니까 손이 가는데로 마구 써져서 이상하게 길어졌어.


아무래도 난 매운 맛이 취향인가 봐 ㅜㅜ 잔잔하거나 일상적이거나 애호는 영 쓰기가 어려운데 매운 맛은 왜 이렇게 술술 적히는 걸까


뭐 어째든, 프롤로그가 긴 이유는 나름 있으니 재밌게 봐 줘 퇴고는 천천히 함


금방 또 써올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