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옴니버스식이라 본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https://arca.live/b/lastorigin/31025532



본 편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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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그대를 위한 춤



새하얀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나는 내일 모레면 25살이 됩니다. 어머니가 나의 병원 진단서를 받으신지는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어머니는 저에게, 저는 항상 5살이라고 합니다. 활기차고, 즐거운! 5살이라구요. 나는 그 별명이 너무 좋아요. 어머니도 나를 보며 활짝 웃으셨죠. 아버지가 안보이신지 10년 전까지는요.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행복한 표정을 하신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엄마가 활짝 웃는 것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오늘도, 새하얀 눈이 내리는 오늘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러 갑니다.


지하철 역 앞에서 친구들이 있습니다. 입에는 길쭉한 뭔가를 물고, 신기하게 연기를 뿜어내는데요, 나도 꼭 저런걸 배울거에요! 


나는 내 친구들이 참 좋습니다. 나를 보면 다들 실실 웃으며 나를 반겨주거든요.


"야, 야! 저기, 머리병신 온다."


"킥킥! 다들릴라!"


"들으면 들으라지, 쟤는 저런거 좋아해. 봐봐? 야! 머리병신!"


그이는 손을 휙휙 흔들면서 제 별명을 부르네요. 나는 달려가야죠!


"헤헤! 다들 안녕!"


"그래그래, 안녕? ...봤지?"


"진짜네? 킥킥!"


오늘도 재밌는 일이 있는지 또 킥킥거리며 웃는 친구들, 나는 그들의 즐거운 일들을 너무나도 궁금해했습니다.


"무, 무슨 일이야?"


"야, 닥치고, 춤이나 춰. 그래야 돈 벌거 아냐."


"헤헤.... 그래그래! 돈! 돈벌어야지!"


나는 지하철 역 계단 앞으로, 천천히 올라가, 몸을 우뚝 펴올렸습니다. 아아! 그때 들어오는 서늘하면서도 시원하고, 기분좋은 공기는 잊을 수 없어요! 나는, 오늘도 전광판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서, 몸을 움직입니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다리, 팔, 허리, 몸전체, 얼굴까지, 나는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이상, 나의 아이돌, 나의 우상, 나의 꿈, 뮤즈를 바라보며, 춤을 췄어요. 그녀가 부르는 음색은 나를 감동시켰고, 그녀의 목소리는 천상을 울리는 비너스라 할까요! 문득 아름다운 그녀의 피아노 소리와 목에서 나오는 청아한 노랫소리에,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깜빡한다니까요.


"야... 야! 이 병신새끼야!"


갑자기 내 친구 한명이 내 다리를 찼습니다. 음악에 집중하지 말고, 춤에 집중하라는 그이의 주의겠지요. 그의 말이 맞습니다. 춤 연습을 열심히 하면, 나도 언젠가는 뮤즈의 앞에서 춤을 출 수 있겠죠? 정말 상상만 해도 신 나네요!


"헤헤... 헤헤헤..."


"병신새끼, 쳐 웃기는. 다리 올려, 팔 더 크게 휘두르고! 그래서야 사람들이 너 불쌍하다고 푼돈이나 주겠어?"


돈! 돈은 중요해요! 아빠는 돈이 많은 사람이였어요. 엄마는 그런 아빠 옆에서 항상 행복해했죠. 하지만... 아빠가 어디로 여행을 간다 하시곤, 엄마의 웃음은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나는 다시 엄마의 웃음을 되찾고 싶어요. 그럴려면, 춤을 더 열심히 춰야죠! 사람들이 내게 주는 천원, 이천원이 모여,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양식의 근본이 된다구요! 자자! 열심히열심히!


"그래, 그렇게 춰라! 정열적으로! 몸을 태워버릴 기세로!"


새하얀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나는 정열적으로 몸을 흔들며, 땀으로 후끈후끈해집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는, 혀를 차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내 앞에 놓인 자그마한 그릇에 동전과 푸른 지폐를 내려다 놓습니다. 어떨때는 주황색, 운이 좋으면 초록색도 가끔씩 보여요! 아주 가끔씩이지만... 그럴때면 저와 제 친구들은 그이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 '감사합니다'라고 해야되요. 그래야 나중에도 제 춤을 보고 붉은 장미는 아니더라도, 돈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친구들은 무얼 하냐구요? 그냥... 자리에 넙죽 엎드려 '한푼 줍쇼, 한푼 주십쇼.'


하면서 저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가끔씩은 저의 춤에 대해 지적을 하며, 불완전한 부분은 후려쳐서라도 새로이 가르쳐 준답니다! 얼마나 고마운 줄 몰라요! 친구들이 구걸비라면서, 90%는 가져가겠다고 하는데, 전 뭔말인지 모르겠어요. 수학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헤헤...


춤을 열정적으로 추다 보면 배꼽시계가 불러들어옵니다. 저녁이 되었다는 거에요. 온 몸에 춤이라는 것에 집중을 하다보니, 날이 저문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친구들이 제 등을 발로차서 저를 일깨워줬어요.


"야, 야! 병신아!"


"우... 우웅?"


"씨발 말길을 못알아들어 장애년이... 이리와. 밥먹게. 너가 밥을 먹어야 춤을 출거 아냐."


밥, 밥이에요! 배고팠는데 잘됬다!


"따라와. 줄때 쳐먹어."


"웅!"


그이들을 따라 어느 골목에 들어가면, 으슥한 구석에, 아름다운 주방이 차려져 있어요! 낡은 인덕션, 버려진 양은냄비, 녹슨 국자와 수저, 저희집에 있는 것들보다는 새거니까, 건강한 거겠죠?


친구들은 저와 함께 번 돈으로 김치와 참치, 두부와 물을 샀어요. 약간의 조미료까지, 이걸로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네요!


보글보글... 찌개가 끓으면서 맛있는 냄새를 풍겨요. 각자의 그릇에 적당량을 담아두고, 남은 찌꺼기는 저의 것이에요. 그래도 좋아요! 친구들도 저와 함께 돈을 벌었으니까요. 친구들이 저한테 춤을 가르쳐 줬으니까요!


"빨랑빨랑 쳐먹고 집에가. 또 일찍 안가면 니애미가 존나 지랄하니께."


"야... 야! 이거봐봐..."


친구들이 길거리에서 뭘 주워서는 히히덕거리면서 보고 있어요. 투명한 풍선인데... 공기가 빠진듯 쭈글쭈글하고, 안에는 뭔가 진득한게 남아있어요...


"무... 무야?"


"이거? 이건-"


"잠깐잠깐... 이건... 콘돔이라는 거야."


"콩둥?"


"콘돔! 장애인새끼야!"


"우...웅..."


"야... 너 이거 찌개에 넣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단다?"


...! 콘돔이 그렇게 맛있는 거라니! 몰랐어요!


"...나! 나 줘! 나 먹을래!"


"싫어! 내가 먹을거야."


"나아아~!! 나 먹을래!"


"...진짜?"


"응! 응!"


"..."


친구는 할 수 없다는듯 콘돔이라는 것을 제 그릇에 담아넣어줬어요. 진득한 소스같은게 찌개에 가득 퍼졌어요!


"다 먹어야된다? 귀한거야."


"으...응! 잘 먹을게!"


진득한 풍선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어요, 씁쓸하면서도, 진득한게... 제 입에는 안맞았지만... 귀한건데 남길 수가 있겠어요?


"음... 움..."


"맛없다고 하면 죽여버린다."


"마, 맛있어!"


"그래. 그래야지. 귀한건데."


"음... 음..."


"다 먹지마 병신아. 씹다가 뱉어. 그건 먹는거 아냐."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있다가 그것을 뱉어냈어요. 친구들도 부러웠는지 쑥덕거리면서 저를 바라봤어요. 역시, 맛있는건 나중에 나눠먹어야겠어요!


"마, 맛있다... 헤헤..."


"국물 다 먹고, 이젠 꺼져."


"응!"


국물을 한입에 들이켜붓고, 친구들에게 손짓을 하며, 그들과 이별했어요. 어느새 새벽이 되서, 집에 들어와보니, 엄마는 이미 자고 계셨어요. 요새 주무시면서 기침이 조금 심해지셨어요... 맛있는걸 드리면 괜찮아지겠죠? 아! 오늘 먹은 콘돔이라는게 좋을거 같아요!


일찍 자고,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어머니께 해드릴 밥을 하러 사러 가야될 거 같아요!


새하얀 눈이 계속해서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트로 향했어요. 침대 밑에 모아놓은 종이돈들을 꼬깃꼬깃 펼쳐보니, 6달동안 삼만원이나 벌었어요!


삼만원으로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배양육? 이란 걸 구매했어요. 좋은 식자재들로 찌개를 해드릴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한 콘돔! 나는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어요.


"저... 저저저저.... 저기..."


"...?"


아이 참...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숙스럽게 말이 잘 안나온다니깐요...


"그그그.... 코코코코 코온... 콘... 콘도... 콘돔.... 콘돔... 어디... 어딨... 어... 어디..."


"...콘돔 말씀하시는 거에요?"


"ㅇ... 예... 헤헤..."


"...계산대 앞에 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헤헤..."


"별꼴이야... 장애인이 여기 오고..."


...? 저분이 뭐라 했나요? 저는 듣질 못했는데... 그래도 콘돔이 어딨는지 알았으니까, 얼른 계산대 앞으로 갔어요! 콘돔을 가능한 전부 샀더니, 정확히 삼만원이 나왔어요! 식자재들과 함께 콘돔 10박스를 사들고, 곧장 집으로 뛰어왔어요.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디갔다..."


어머니는 제 손에 가득 든 귀한 콘돔을 보시더니 감동하신듯 말을 잇질 못했어요! 정말로 제가 기특한가봐요! 헤헤...


"너... 그게 뭐니."


"이... 이거 친구들이... 귀한거래... 엄마... 이거 먹으면... 좋아..."


"...이게 뭐냐고!"


엄마는 수많은 콘돔 박스들을 보시더니, 하나를 집어드셨어요! 정말 어머니도 드시고 싶어하셨던 걸까요?


"이... 이거... 귀한거... 코... 콘돔... 엄마... 이거... 먹으면 좋데..."


"야 이 새끼야! 내가 말했지! 그딴 새끼들이랑 놀지 말라고!"


그딴 새끼...? 그게 뭔 단어지? 혹시 친구들을 이야기 하는 건가?


"치, 친구들 좋아... 난 친구들이 좋아... 나, 나 춤도! 춤도 가르쳐줬어!"


"하이고... 그 악마새끼들은... 왜 이런 애까지 건드리는 거야... 하이고..."


엄마는 자리에 주저앉아 우셨어요! 정말로 행복하신가봐요! 정말 행복하면 눈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죠? 그런 건가봐요!


"어... 엄마... 울지마..."


"시끄러! 너같으면 안울겠어?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왜... 엄마는 왜 나가라고 하는 거죠? 나는 엄마의 울음에 당황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어요.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 거지? 귀한 음식을 사왔는데, 왜 행복해하지 않으시는 거지?


...결국은 돈 때문인가봐요. 엄마는 돈있는 아빠 앞에서만 웃었어요. 난 돈이 없어요. 그러니까, 돈을 벌러 가야되요. 수북히 내리는 눈은 사람들을 기분좋게 해요. 오늘은 돈을 더 받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곧장 지하철 역으로 갔어요! 아니, 많은 사람들이 제가 춤추는 모습을 봐야해요! 그래야, 그래야 돈을 더 벌어요!


광장으로 갔어요.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다행히도 전광판이 잘 보였어요! 이번에도 뮤즈씨와 눈을 마주치고, 몸을 흔들었어요! 몸을 격렬히 흔들었어요! 크리스마스 캐롤이 여기저기 들리고, 흥은 더더욱이 올라왔어요! 몸이 후끈 달아올랐고, 너무 더운 나머지 나는 옷을 벗어던졌어요! 너무 즐거웠어요! 뮤즈씨의 몸에 맞춰,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추고 싶은 춤, 그 자체를 난 출수 있었어요!


정말 즐거운 춤이 끊이질 않았어요! 숨이 가빠올라도, 몸이 다시 확 추워져도... 정신이 어지러워져도... 왜 뮤즈씨의 음악은 선명히 들리는 거죠?


몸에 힘이 빠져요... 그래도 춤은 추고 싶어요... 몸을 가눌 수 없어요... 그래도 춤은 추고 싶어요...


정신을 차린 나는, 문득, 뺨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어요.


나는 바닥에 누웠어요.


차가웠어요.


하지만,


음악소리는 어느때보다도 선명히 들렸어요.


뮤즈씨의 아름다운 음조... 선명했어요.


마치... 나에게 불러주는듯...


나는... 계속 눈을 감고... 누운 상태로 다리를 계속 움직였어요.


그리고... 중얼거렸죠.


뮤즈씨, 음악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피아노를 계속 쳐달라고...


몸이 가벼워졌어요. 그래도 다리를 흔드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뮤즈씨가 마치 나를 바라보는듯, 전광판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봤어요...


그녀와 가까워졌어요... 마치... 영혼이 맞잡은듯, 우리는 너무 가까워졌어요...


금새 새하얀 하늘이 어둑어둑,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분침이... 점점 흐르더니... 결국에는 12시를 가르켰네요... 상관없어요... 나는... 나는... 뮤즈씨와 환상의 콜라보를 했으니까요.


흰 눈이 제 몸을 덮기 시작했어요. 하얀 눈이... 소복하게...












마치... 크리스마스가 날 감싸듯이... 춤을 멈추지 말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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