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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새 취미를 찾아보려고 한 보람도 없이, 결국 늘 하던 대로 방학(있다면) 분위기에 신난 아이들을 볼보거나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거나 하며 보낸 시간도 금방 지나가고, 사령관과의 결혼기념일 휴가를 보낼 날이 다가왔지.

목적지인 별장의 준비도 완료되어서, 리제와 사령관이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새것처럼 반짝이고 있었어.

고르고 고른 장소였으니 기본적인 시설 자체도 좋았고.


- 우와아….


정작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풍경은 주변을 둘러싼 살벌한 장벽에 막혀서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복잡한 심경을 담아 내뱉은 감탄사에 사령관은 눈썹을 늘어뜨렸음.


- 미안. 좀 너무 했지?

- 아뇨, 보안은 중요하니까요… 네.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면 자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는 훈련이고.

그래. 이런 상황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만 해도 충분히 호사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리제는 사령관의 팔짱을 끼면서 은근히 웃어 보였음.


- 어차피 경치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게 해 줄 거잖아요?


그 말에 사령관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웃으며 이마에 입술을 맞춰줬고.


- 아, 그런데…….

- 응?

- …침입자 측이 이긴다고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않는 거죠?

- 응. 그 부분은 철저하게 해 뒀으니 걱정 마.


애초에 리제가 그런 쪽에 질색하는 걸 고려해서 이중 삼중으로 막아 두기도 했고.


- 그런, 가요….


그렇게 뿌듯한 기분으로 장담한 사령관에게는 참으로 의외이게도, 어째선지 리제는 전혀 긴장을 풀지 않았어.

어느 의미로는 오히려 더 힘이 들어갔다고 해야 할 모습이이라, 문을 열어주면서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거렸지.


*   *   *


사령관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틀림없이 바깥에서는 모의전이 한창일 텐데도 별장 안은 정말 쥐죽은 듯 조용했어.

여름을 보내며 익숙해진 자연의 배경음조차 거의 없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었지.

소완이 특히 기합을 넣어서 만들어 준 요리를 즐기고, 큼지막한 소파에 나란히 누워서 정원 - 현 상황에서는 그나마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 - 를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어쩐지 서로의 시선이 조금 더 길게 섞이게 되었을 때에,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리제를 품 깊숙이 끌어당겼는데.


- 저, 저기!


어째 리제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네.

수많은 시도롤 통해 리제가 어떨 때 어떤 식으로 당황하는지 꿰고 있는 사령관으로서도 어딘가 위화감이 들 정도로.

아니, 어쩐지 기억에 있는 것도 같고….


- 그…… 결혼하고 일 년, 이잖아요?

- 응.

- 그래서, 그…


뻗어 가려던 생각은 리제가 우물거리던 입을 열먼서 일단 멈췄어.

일단 궁금증을 억누르고, 긴장을 풀어줄 겸 스치듯 등을 쓸어주고 얼마나 지났을까.


준비를, 조금… 해보긴… 했는데……….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시선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손을 꼭 마주잡은 채 간신히 말을 끝낸 모습을 보고서야, 사령관은 자기가 어느 때의 리제와 기시감을 느낀 건지 깨달았어.

첫날 밤, 서로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아 있던 그 때였지.

그리고 이제와 리제가 그런 반응을 보일만한 이유는 당연히 짐작이 가고 있었고.


- …….


호흡조차 멈춘 침묵은 폭발 직전의 짧은 유예였지.

익숙한 일이었기에, 리제는 그 틈을 놓칠새라 눈을 꽉 감고 속삭였어.


- 상냥하게, 해 주세요….

- …노력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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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을 하면 철탑을 돌 시간이 모자라고 철탑을 돌면 창작을 할 시간이 모자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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