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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릇한 긴장감이 어린 침묵 속.

사내의 팔에 안겨 안겨서 침대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리제는 눈을 꼭 감은 채 걱정과 두근거림, 안타까움이 섞인 복잡미묘한 감정을 곱씹고 있었다.

신체적인 우려 - 기분이 좋을지 어떨지, 아픈 건 아닐지 - 같은 것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작의 설정 같은 언급을 꺼낼 것도 없이, 그간 넘치도록 겪어 온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봐도 상대가 사령관인 시점에서 좋지 않을 리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긴장은, 굳이 따지자면 심리적인 문제에 가까웠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눈 와중 자기가 생각하는 일종의 상한선에 도달했다는.

사령관이 관심을 보이는 건 알고 있었고, 마침 처음 맞는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니 이 이상 그럴듯한 서비스가 떠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바꿔 말하면 자신은 정말로 여기까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년, 그리고 또 그보다 먼- 바이오로이드의 수명이 보장하는 기나긴 미래가 오더라도 지금처럼 극적인 무언가를 내어줄 수는 없겠지.

그런 문제로 사령관과의 사랑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 생각할 시기는 진즉 지났지만,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이다.


물론 완전히 헛된 걱정이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사령관에겐 손에 잡힐 듯 선했다는 것을 눈치채는 편이 더 생산적이었으리라.

여전히 감긴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로 손발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언급한 '준비' 과정에서 리제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기만 해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 사내에게 있어, 리제의 고민은 정말로 쓸데없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싹 지워 없애고 싶을 만큼.


그리고 사령관은 어떻게 하면 바라는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리제.

- 응……!


옆머리를 넘겨 드러난 귀에 불어넣듯 이름을 속삭이고, 움찔하는 사이 얼굴을 옮겨 입을 맞춘다.

아랫입술을 가볍게 핥는 것을 신호 삼아 열린 작은 입에 혀를 넣고 그대로 빨아들일 듯 입안을 애무한다.

꼭 감겨 있던 눈이 크게 뜨이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이 풀리고, 엉켜 있던 생각이 흩어질 때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 하… 으….


평소와 비교해도 짧지는 않았겠지만, 사소하기 그지없는 문제였다.

리제가 허락해주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에 정신 못 차리고 바로 달려들기엔, 그는 이미 충분히 리제와의 관계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이상으로,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 사랑해.

- 저.


처녀 같은 수줍음에서 오는 신선함도 싫지는 않지만, 역시 자신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아룸다운 것이다.

능숙하게 옷을 끌러내리고, 작은 몸을 들어 품에 안자 약속처럼 팔이 감겨온다.

그대로 등뼈를 따라 손가락을 가볍게 훑어내리가, 예고 없이 머리카락을 넘기고 드러난 뒷목을 가볍게 깨문다.


- 하앗, 읏…!


특히 예민한 부분에 갑작스럽게 가해진 자극에 팔딱이는 몸을 가볍게 억누르고, 사내는 집요할 만큼 꼼꼼하게 애무를 이어나갔다.

아내가 준비한 '선물'을 완전히 열어볼 때까지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조금 느긋하게 하면 어떻단 말인가.

아무리 시간이 지난들 놓아줄 생각이 없다면 결국 똑같은 것인데.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의 두 명은 본격적인 행위까지는 하지 않았다.

희롱이라면 질릴 만큼 당했고, 순조롭기 그지없게 절정에도 이르렀으니 무의미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생각한 것과 달라 침대에 늘어진 채 석연찮은 표정을 지어보인 리제에게, 사령관은 가볍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 충분히 공을 들이고 싶어서.


리제가 아쉬워할 정도로? 하고 덧붙인 말은 명백히 농담조였지만, 사령관이라면 진짜로 해낼지도 모른다.

오싹한 위기감에 이불을 덮고 오늘 뿐이고 다음은 없을 거라고 다짐하듯 외친 리제였지만.


아마, 그 말을 가장 믿지 못하는 것은 사령관이 아니라 말을 꺼낸 본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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