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31438225  이것은 보잘것 없는 1편의 링크


***



 일주일 전.


 “오버홀?”

 “네. 전면 보수라는 뜻이에요.”

 “나도 오버홀이 뭔지는 알아…….”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달까, 아자즈는 불쑥 찾아와선 꽤 심각한 얘길 아무렇지도 않게 툭 꺼냈다. 그녀는 천연적인 기질이 있긴 해도 자신의 주 업무에 한해서만큼은 헛말 따윈 안 했다. 아자즈가 오버홀이 필요하다면 빠른 시일 내로 해야 하긴 한다는 뜻이었다.


 하긴 해야 하는데…….


 “…….”


 늘 갑작스럽게 얘길 꺼내니까 문제라는 거지. 지시를 내려야 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번에 합류했을 때도 한번 다 둘러봤잖아? 그때는 상태가 나쁘지 않다면서?”

 “험하게 굴린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뜻이었어요.”

 “…….”


 화가 나는 건 아닌데 뭔가 욱 치고 올라오는 건 있다. 참자. 절대 악의가 있는 건 아니야, 응. 그렇지…….


 “그럼 객관적으로 봐선 어떤데?”

 “저랑 합류하기 전에 큰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별의 애기?”

 “별의 아이야.”

 “네, 그거요.” 조금 퉁명스러운 내 태도에도 아자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기록도 보고, 이것저것 뜯어봤는데 이번에 오버홀 한번 하지 않으면 여러 곳 망가질 거예요.”

 “알았어. 가까운 시일 내로 계획 잡아볼게.”

 “너무 늦어요.”

 “며칠 내로가 너무 늦다고?”


 우리 지금 같은 대화 하고 있는 거 맞니? 라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아자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우리 같은 대화 하고 있었구나…….


 “네. 내일부터 당장 시작해야 해요.”

 “내일?! 그 정도로 심각해?”

 “네. 아마 오늘 내로 뭐 하나 망가질 걸요?”


 위이이잉


 말이 씨가 된다던가, 뭔지 모를 불길한 기계음과 함께 불이 한번 픽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사령실 문이 확 열렸다. 오늘 부관 겸 전속 메이드를 맡은 금란이었다.


 “주인님! 다치신 곳은 없으시옵니까!”

 “응? 아니 그냥 불이 나갔다 들어온 것뿐인데?”


 잠깐 불 나갔다 들어온 정도니 크게 이상할 건 없겠지. 그렇지만 뭐 만에 하나라는 일이 있긴 하니까 금란이 이러는 것도 약간은 이해가 갔다. 응, 약간은. 이전부터 늘 걱정이던 건데 금란은 부관만 되면 긴장을 하는지 평소보다도 몇 배나 더 예민해졌다.


 그나마 지금은 나아진 거다. 그것도 아주 많이. 예전엔 내게 따라주는 차 온도가 1도 정도 내려갔다고 울먹이기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봐봐, 자기가 무례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해서 또 울먹인다. 아이고, 금란아. 누가 보면 내가 너 괴롭히는 줄 알겠다.


 “소, 송구하옵니다. 소첩은 기온이 달라져서 혹여나 주인님의 신변에 무언가 이상이 생기신 게 아닐까 하고……. 무,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고작 불 한번 꺼진 걸 가지고 뭘. 그나저나……. 응? 기온?”

 “그렇사옵니다. 현재 내부 온도가 2도 정도 올랐사옵니다.”

 “어머나, 정말 재주도 좋으시네요.”

 “…….”


 고맙다, 아자즈. 내가 해줄 말을 대신 해줘서. 하지만 금란에겐 별로 안 좋게 들렸던 것인지 금세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저러다 무슨 사고 칠 게 아닌가 내가 다 조마조마하네…….


 “소, 소첩이 시원한 마실 것을 가지고 오겠나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시옵소서.”

 “천천히 다녀와.”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가 급히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 얼음물! 그냥 물 한 잔이면 되니까 그거만 가져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금란은 문워크라도 하는 것마냥 소리도 없이 뒷걸음질 쳐서 사령관실을 나갔다. 그 모습에 아자즈는 이래저래 감탄한 모습이었다.


 “배틀 메이드 분들은 개성이 아주 뚜렷하시네요.”

 “…….”


 너만 하겠니?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소리를 목젖에서 꾹 밀어 넣었다.


 “근데 왜 하필 물이에요? 굳이 물이라고 콕 집어 말한 이유가 있어요?”

 “저번에 한번 그랬다가 음료수만 수십 종류를 가져와서 음료수로 배 채운 적도 있었거든.” 내 목소리가 음울해지는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잘 안 되나 봐.”

 “당연하죠. 사령관은 최후의 인간님이라고요. 여기서 사령관의 가치를 제일 하찮게 여기는 건 사령관 자신뿐일 걸요?”

 “…그 얘기 남들 앞에선 하지 마. 특히 지휘관들이나 컴패니언 애들 앞에선 더. 명령이야, 알겠지?”


 그랬다간 지금도 촘촘한 경호 스케줄을 두 배로 늘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농담이 아니고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참 서글픈 일이다.


 “명령이면 들어야겠죠? 굳이 제가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요.”

 “적어도 불씨에 기름 붓는 꼴은 면하겠지…….”

 “흐응, 사령관은 정말 특이한 성격이라니까요.”


 너만 하겠니…….


 “내 성격 얘긴 이쯤하고 무슨 문제나 생겼는지 보자. 별일 아니면 좋을 텐데…….”

 일단은 함교로 연락을 넣어 봤다. 패널에 용의 얼굴이 떴다. 그런데 용의 얼굴이 영 떨떠름했다. 


 “용, 무슨 일 있어?”

 [지금 막 연락을 넣으려던 참이었소, 사령관.]

 “뭔데, 무슨 일이길래 그래?”

 [방금 전의 정전 이후로 오르카 내부의 모든 냉방 시설이 멈춰버렸소. 포츈이 아자즈를 찾던데…….]

 “아자즈라면 여기 있어.” 나는 용의 미간이 조금 일그러지는 걸 보고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오르카 오버홀 제안을 하러 왔거든. 방금.”

 “맞아요. 설마 이상한 오해 하는 거 아니죠? 저, 할 일 있는데 내팽개치는 스타일 아니에요.”

 […그쪽이야말로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군, 아자즈. 빨리 포츈에게 연락해보시오. 연락이 안 된다고 지금 폴른과 드론들을 풀어 찾아본다고 벼르고 있소.]


 어째 둘이서 변명하는 모양새가 돼버렸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해? 이런 때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못하는 내 성격이 참 원망스럽다.


 “연락요? 아, 통신기를 음소거 기능 테스트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어쩐지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

 “…….”


 아자즈가 허리춤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자마자 통신기에서 포츈의 목소리가 거의 비명 지르듯 터져 나왔다. 포츈의 두통이 나한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애써 포츈에게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아자즈를 무시하고선 용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용, 오버홀이 가능한 항구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야?”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으론 괌이오. 그곳도 거리가 꽤 되긴 하지만.]


 괌이라. 이전에 세레스티아와 스노우페더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지. 오메가와 간접적으로 맞닥뜨린 곳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솟아오르는 기억을 뒤로 하고 난 용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그곳으로 가 줘. 아자즈 말을 들어보니 지금 즉시 오버홀이 필요하대. 지금 가면 내일까진 도착하겠지?”

 [그럴 것이오. 허나 사령관, 냉방 시설이 꺼진 것은 약간 문제가 있소. 아직까진 괜찮지만  곧 걷잡을 수 없이 온도가 올라갈 거요.]

 “아 맞다. 냉방 시설 꺼졌다고 했지.”

 […방금 보고드렸지 않소.]


 용이 한심하다는 듯 낮게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그녀가 업무 시간에 자기 감정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건 별로 좋지 않다는 신호였다. 역시 기분 나빠하는 게 틀림없었다. 속으로 피눈물이 흘렀지만 지금 할 얘기는 일 얘기밖에 없었다. 여기서 달래려고 하면 더 역효과였다.


 “그럼 일단 부상해서 열어젖힐 수 있는 곳들은 다 열어젖히자. 얼음 만들 수 있는 인원들에게도 최대한 지원 좀 받고……. 아자즈, 일단 도착하면 오버홀 끝날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한 2주 정도요.”

 “너 뜯어보고 싶은 거 뜯어보는 시간 빼고.”

 “그럼 1주면 충분해요.”

 “…….”


 내가 ‘더 줄일 수 없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다 아자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이에요. 그 이하로는 안 돼요. 생각해봐요. 거대 괴물 문어에게 잡혀서 잠수함째로 심해까지 끌려갈 뻔했잖아요. 오르카라서 그나마 버틴 거지, 어지간한 잠수함이었으면 잡힌 시점에서 타이런트 발에 깔린 푸딩처럼 으깨졌을 거예요.”

 “…….”


 비유 한번 참……. 의외로 현실적이어서 참 할말 없게 만든다.


 “그럼 가서 오버홀 준비 좀 부탁해. 필요한 물자는 안드바리랑 실키에게 말해 줘. 저번처럼 막 빼가지 말고. 알았지?”

 “막 빼간 거 아니에요. 가져가겠다고 쪽지까지 써놨었는데요?”

 “그 내용이 누군지도 안 밝히고 ‘이거랑 이거 가져갈게요’니까 문제였지! 그거 때문에 애먼 알비스에 LRL에 브라우니까지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

 “알겠어요. 이번엔 그런 일 없도록 할게요.”

 “…….”


 진짜 알았을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령관실을 나가는 아자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불안감만 스멀스멀 밀려왔다. 에이, 알아서 하겠지. 괜히 먼저 걱정하지 말자. 나는 의자에 등을 푹 기대고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별의 아이라…….”

 [별의 아이와의 전투가 걱정이시오?]

 “그야 언젠간 마주칠 텐데 대비를 해야지히힉?! 아직 통신 안 껐었어?”

 [소관 따윈 잊으신 채 대화를 하시길래 지켜보고 있었소. 눈앞에서 무시당한다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구려.]


 용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니 등골에 소름이 쫘륵 돋았다. 으아, 차라리 화를 내줘. 웃는 쪽이 열 배는 더 무섭단 말이야!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용은 다시 입을 열었다.


 [농이었소. 그러니 그렇게 겁먹지 마시오.]

 “농담 두 번만 더 하면 내 심장이 안 남아날 것 같아…….”


 여러 의미로 말이지. 이런 와중에도 용의 미소가 예쁘게 보이니 나도 참 콩깍지가 단단히 씐 것 같다.


 [아무튼 방금 대화를 듣고 소관이 생각한 게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소? 마침 오버홀도 들어가고, 이미 한번 점거했던 지역에 다시 가는 거니 경계 등에 들어가는 병력도 크지 않을 거요. 그 말은 훈련하기엔 아주 좋은 환경이라는 거지.]

 “어, 난 좀 휴가라도 줄 생각이었는데?”

 […사령관이 우릴 생각하는 마음씨는 고맙소만 본디 우리의 역할은 저항군이란 걸 잊지 말아주시오. 나도 휴식의 필요성은 인정하오만, 싸울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본디 준비란 시간이 날 때 조금씩 해놔야 후환이 없는 법이란 걸 명심해주시오.]

 “으, 응.”


 생각 없는 소리 한번 했다가 용에게 제대로 설교 한 방 먹었다. 이럴 때 용은 아주 용서가 없다. 방금 전까진 질투하는 연인 같아서 귀여웠는데 이젠 엄한 지도교사 같아서 참 이래저래 보면 볼수록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음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소관을 가지고 성적인 상상을 하는 거라 생각하진 않겠소, 사령관.]

 “…….”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용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좋은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 건지 모를 미묘한 표정으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모습이 솔직히 말해 너무 귀엽다. 용은 애꿎은 주변을 살짝살짝 돌아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전에 시티가드의 리앤이 합류할 때를 기억하시오?]

 “그거야 당연하지. 그때 가상현실에서 네가 처음 합류했을 때…….”

 [왜! 그런 것만 떠올리는 것이오?! 그때 소관이 좋아서 그런 줄 아시오!]


 아이구 이놈의 입방정. 나는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는걸, 용. 세상에 알몸에 모피코트라니 펜리르 다음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어…….


 […그때의 가상현실을 떠올려보란 말이오. 펙스의 아자즈도 그렇고, 이번에 마키나와 메리 양의 합류로 비스마르크의 기술까지 오르카에 들어왔으니 전투 데이터를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소.]

 “그, 별의 아이와의 전투 데이터를 가상 현실에 구현해보라는 얘기야?”

 [바로 그렇소.]

 생각지도 못한 묘안이었다. 용의 알몸 모피코트 생각이 싹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목에 걸린 가시가 쑥 빠지는 듯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지휘관들 불러줘. 마키나랑 메리도! 닥터도 불러야겠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야! 고마워, 용! 역시 최고야!”

 [소관의 생각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회의 준비가 되면 다시 연락 드리겠소.]

 “정말 고마워.” 그리고 나는 기쁜 맘을 억누르지 못하고 살짝 속삭였다. “그리고 정말 사랑해, 용.”

 […응당 소관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럼 이만.]


 흠, 아무래도 함교에 있어서 그런지 용은 살짝 눈웃음만 지었을 뿐 별다른 말 없이 통신을 종료했다. 괜찮아, 오늘 밤 잔뜩 말하게 해야지.


 띠링


 그때 용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


 “메시지? 통신 다시 연결하면 될 걸 왜…아하.”


 내용을 보고 난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용 입장에선 통신으로 말하기 뭐한 내용이었다.


 [저도 정말 사랑합니다, 서방님.]

 “아 진짜 눈 딱 감고 용이랑 비밀의 방에 가고 싶다.”


 아무도 없으니까 본심이 막 튀어나오네. 진짜 용이 서약 사실을 밝히지 말자고 하지만 안았어도 지금 당장 함교로 뛰어가는 건데! 그렇게 나는 행복과 기쁨에 겨운 비명을 소리죽여 지르며 사령실 안을 빙빙 돌았다.


 참고로 얼음물을 가지고 온 금란이 내 정신나간 행동에 당황해서 물컵을 떨어뜨리는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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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용아 사랑해! 용은 늘 새로워 짜릿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