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건. 넌 아내가 있었다고 했지."

"그렇소. 그런데 무슨 연유로."

별하늘이 찬란히 빛나는 밤. 곡차에 얼근히 취한 티나한의 물음에 케이건은 바라기 손질을 멈추었다. 평소에도 무뚝뚝한 케이건의 얼굴이 조금 더 굳었지만, 취기에 이를 눈치채지 못한 티나한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신부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사랑하라고 했었나? 아무튼. 사실 말이야, 난 조금 걱정돼."

"레콘이 걱정하는 건 숙원과 물 밖에 없을 줄 알고 있소만."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아무튼! 난 솔직히 걱정 돼. 내가 과연 자랑스러운 신랑이자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밀아야."


여름의 전환점을 알리는 듯 선선한 바람이 찾아왔다. 특이한 레콘은 그 불청객의 미약한 싸다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난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 이 여행도 분명 전설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노래로 남겠지.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숙원도 이루고 해서, 이 모든 게 끝나면.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혹시 병신같은 짓을 저지르고 조롱거리로 떨어지진 않을까?"


레콘답지 않았다. 레콘은 머리벼슬을 왕관 삼아, 별철의 무구를 지팡이 삼아 자부심을 갖고 걸어가는 거인. 티나한은 레콘다운 레콘이었었다. 그러나 그 어구에 맞지 않게, 지금 그 푸념을 늘어놓는 등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상관 없지 않소?"

케이건이 손에서 바람을 일으켜 불씨를 조금 키웠다. 예상치 못한 답에 티나한의 궁금증도 조금 커졌다.


"그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 순 없소. 긴 삶을 살아온 나는 더더욱 그랬고. 잘못 내뱉은 단어 한 마디에 쫓겨난 얼간이도 있었고, 단어 한 마디에 동족의 영원한 적을 남긴 어리석은 사절도 있었지."

그의 눈에 생기가 조금 옅어졌다. 대신 목소리에는 힘이 조금 들어간 게 느껴졌다.


"다만 잊지 마시오. 그 어떤 먹물과 비석으로도 머리에 비길 순 없소."

단순하고도 세련된 어록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 어떤 기록과도 무관하게, 마지막에 그 모든 걸 기억하는 건 자신이라. 그러니 그걸 명심하고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라.

그는 케이건의 말을 잊지 않고자 몇 번이고-


"...잠깐."

자신에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내가 케이건의 말을 그 숨은 의도까지 파악할 정도로 지혜가 높은 놈이었나?

아니다. 네 형제 새 이야기도 이해하는 데 몇 년을 가뿐히 넘겼는데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젠장, 전부 꿈이었어!"

결국 티나한이 벌떡 일어났다. 철창이 땅바닥을 내리치는 소리에 모닥불이 꺼졌다. 이렇게 똑똑한 자신도 이상했지만, 케이건이라면 뭔가 이것보다 더 나은 어구를 썼을 것이란 생각이 그의 생각을 일깨웠다.


"륜은 어디 있지? 비형은 또? 네가 오래 살아왔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었지. 게다가, 너가 어디에도 없는 신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시기는 그 마지막이었어! 이렇게 여행 중에서 깨우친 게 아니었다고!"

정신을 완전히 차린 그는 거의 울먹였다. 여전히 무표정인 케이건 주변으로 바람이 약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래, 난 긴 여정에서 누구도 잊지 않을 업적을 남겼고 하늘치에서 여관을 차리겠다는 숙원도 이뤘어.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야!"

소용돌이는 점점 거세져 둘의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그 물리력에 티나한은 눈을 뜨기도 어려웠지만, 기어코 벗의 눈앞까지 팔을 뻗는 데 성공했다.


"그래, 이대로 끝내지 않겠어. 며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반드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낼 거다. 멍청이처럼 뭔가에 얽매이고 감상에 젖는 건 레콘이 할 짓이 아니야."

보이는 건 이제 그의 텅 빈 눈동자 뿐이었다. 폭풍 속으로 가라앉기 전, 티나한은 목이 쉬어라 열기를 토했다.


"거기서 기다려! 이 요술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방법을 찾아낼 테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든, 그 폭풍을 뚫을 방법을 찾든! 다시 만날 거다. 하다못해 어르신이 된 비형이라도 찾아내겠어!"


역시 꿈. 정신이 또렷해진 티나한은 합금 창을 짚고 일어서 해안가로 향했다. 다른 병사들은 쫓아오지도 못할 속도로 묵묵히 걸었다. 새벽녘 햇살에 반짝인 창은 갈매기들을 위한 등대처럼 그 거센 바람을 맞이했다.


파도가 치니 범고래가 온다. 해답을 가져올 범고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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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왔다. 8월 말에 군대가니 그 전에 완결내길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