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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던 뽀끄루 대마왕과 백토의 대치는, 사령관에게 반한 것을 부정할 필요 없다는 리제의 조언으로 백토가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한 차례 전환기를 맞았어.


- 큭. 뽀끄루 대마왕 녀석. 이번에도 도망친 것인가….


……그 방식이 '뽀끄루를 완전히 퇴치(물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법소녀로서의 사명에 얽매였던 자신과 결별하겠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지.

뽀끄루 왈, '예전에도 살의는 담겨 있었지만! 박력이 완전히 달라요! 분위기 잡으면서 도망치는 것도 슬슬 한계라고요! 살려주세요 사장님!'이라나 뭐라나.


마음 같아서는 그냥 못본 척 응원이나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 일이 여기까지 커진 것에는 사령관의 영향도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었어.

구체적으로는 모모의 승급이었지.


초기부터 전투원으로 활약해온 모모였으니만큼 승급 대상으로 선택된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

아니었지만.

'마력이 증가한' 모모를 목격한 백토가 사랑 때문에 마법소녀의 사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받아들여서 뽀끄루의 처단이라도 완수하려 들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이미 이 컨셉으로 밀고 나간지도 거의 1년이 된 시점에서 방향성을 틀기도 어려웠으니, 고심 끝에 사령관이 내놓은 대응책은 "백토가 섣부르게 무력시위를 하지 못할 만큼 뽀끄루의 전력을 강화한다"였지.

군단장이라는 설정의 AGS - 골타리온 - 의 복원은 그쪽대로 진행하겠지만 즉전력도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일단 이름이 같던 이그니스가 섭외되었고, 오드리가 복원한 '멸절의 뇌전룡'의상도 어디에 쓸까 하던 차에 마침 딱 맞는 사디어스가 복원되었다는 이야기였어.

구구절절한 사정을 전해 듣고 사디어스가 내린 결론은 정말 간단했지.


- 바보 아냐?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지컬 프린세스부터 시작해서 이쪽 일은 정말 끝날 생각을 안 한다고 한탄하는 리제와 달리 사령관은 당당했지.


-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 괜찮아? 하. 내가 뭐가 아쉬워서 삼류 연극의 배우 행세를 해야 하는데?

- 철충 이외에도 전력을 사용하고 싶다면서.

-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아쉽진 않아.

 그러면, 이야기는 끝났지? 출동할 일이 생기면 불러 줘.


으응. 이 쌀쌀맞은 태도.

역시 초면부터 역할 주문은 좀 허들이 높았던 거려나.

당분간은 이그니스 혼자 힘내줘야겠네.

하고 리제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사령관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어.


- 일단 한 번 봐 두는 게 어때?

- 끈질기네, 정말. 그건 명령이야?

- 아니, 권유.

- ….


리제보다 조금 더 붉은 기가 강하게 도는 눈동자는 사령관을 꿰뚫기라도 할 것처럼 날카롭게 쏘아보다가, 곧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방향을 돌렸지.


- 좋아. 보는 정도라면. 얼마나 웃긴 꼴을 시키려고 했는지 봐 둬야 확실하게 화낼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봐도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 괜찮을까.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리제에게, 사령관은 빙긋 웃어보이고 그대로 사디어스를 데려갔어.


*   *   *


그리고 다음 날.


- 아하하하하핫! 멸절의 섬광이여, 울부짖어라!

- 크윽…! 뽀끄루 대마왕, 결국 뇌전룡까지 소환하게 만들었나! 


뭐야 이거.

정말로 뭐야 이거.


120%의 몰입도를 보이며 번개를 쏘아내는 사디어스의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리제에게, 사령관은 태평하게 대답했어.


- 오드리의 솜씨는 대단하지?


……진짜로?

진짜 옷이 마음에 들어서 하루 사이에 저렇게 태세전환을 했다고?

스킨 설명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기억할 리 없는 리제로서는 얼떨떨할 뿐이었지만, 실제로 뇌전룡 스킨에는 사디어스가 강력히 희망해서 입게 되었다는 설정이 있었거든.

어느샌가 좌우좌를 비롯한 아이들까지 모여들어서 환호는 게릴라 공연이 되어 버린 현장을 흐뭇하게 지켜본 후, 사령관과 리제는 나란히 함교로 돌아갔지.


- 그렇지만 곤란하네. 켈베로스가 애타게 찾던 수사관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이건 또 무슨 농담이람.


- 다 알면서 한 거 아니었어요?


복원 전에 대상의 프로필을 숙지하지 않은 적이 없으면서.

조금은 맞춰 달라고 별 의미 없는 불평을 하고, 사령관은 가볍게 사디어스를 복원 대상으로 결정했던 이유를 설명했어.


- 치안을 담당하려면 권위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니까.

 사디어스 같은 타입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하긴. 최상위 바이오로이드의 존재 여부만으로도 부대의 무게감이 확 달라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긴 했지.

이제는 정말로 정치적인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실감하면서 리제는 확인차 첨언했음.


- 그래도 수사관은 보충해야 하는 거 알죠?

- 응. 마침 주변 해역 시티가드 지부가 있다고 하니 찾아봐야지.


자비로운 리앤. 그리고 흐린 기억 속의 나라.

길지는 않았지만 인상 깊었던 이벤트였지만, 리제의 관심은 그보다는 다른 쪽으로 가 있었어.

과연 자신은 이번에는 VR과 마주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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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턴 흐린 기억 시작이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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