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3316232

이전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1809015


--------------------------------------------------------------------


- VR 게임, 인가….


기묘한 방식이네, 라는 사령관의 촌평에 모인 대원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지.


- 닥터, 플레이 타임은 어느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해?

- 으응. 내용이 어떤지는 나도 알 수 없으니 뭐라고 하기 어렵지만, 가상현실 속에서의 시간이랑 현실에서의 시간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 적어도 수 일 단위로는 걸린 가능성이 높단 뜻이군.

- 아마도?


그 시점에서 사령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 망설임이었지.


- 내가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까?

확실히 자비로운 리앤을 복원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VR에는 그렇게 좋은 기억도 없고.


……뭐?

정작 주변에서는 사령관의 뜻대로 하면 된다는 느낌이라 오히려 리제 쪽이 다급해졌지.

아니, 그 갓 이벤을 스킵하겠다고요?

말리고는 싶은데 어떻게 원작 지식을 안 흘리면서 설득할 방법이 생각이 안 나네.


어떻게 해야 이 워커홀릭 남편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 짜내던 리제를 구원한 건 의외의 방향에서였어.


- 주군. 후보지 및 물자의 확보가 완료되었소.


바로 무적의 용으로부터 온 연락이었지.

아직 모든 작업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남은 건 단순 작업일 뿐이니, 용은 곧 참모로서 합류하고자 한다고 했고 오르카 호는 그걸 기다리기로 했거든.

원래의 계획은 인프라 구축까지 완료한 후에 합류였던 걸 생각하면 사심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뭐, 괜찮겠지.

용이 사심 좀 담는다고 공적인 일을 소홀히 할 성격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되어서 사령관은 남는 시간 동안 리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현실에 접속하기로 했어.


- 라비아타, 오르카 호를 잘 부탁해.

- 걱정 마세요, 주인님.


그 와중에도 꼼꼼하게 자리를 비운 동안의 권한 조정까지 마무리 짓고 가는 건 솔직히 좀 징하다 싶네.

그래도 이왕 다 정리한 거, 잘 즐기고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 리제도 외로워서 울지 말고.

- 안 그래요!


남들 다 보는 데서 이런 농담을 던지는 이유가 자기가 삐죽이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라는 걸 알면서도 리제는 넘어갈 수 밖에 없었지.


*   *   *


사령관이 접속하고 얼마 후.


- 으응. 멸망 전의 일본… 키리시마 스캔들이 터질 즈음이구나.

 확실히 리앤이 무언가를 남길만한 배경이네.


바이오로이드 중 일부는 닥터가 함교 한 구석에 설치한 관제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

화면에는 사령관이 들어간 가상현실이 뚜렸하게 띄워져 있고.

……뭐라고 할까.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띄워져 있는 걸 보니까 참으로 사생활이고 뭐고 없구나 싶네.


- 이 쪽에서 간섭은 가능할 것 같나?

- 응, 신경 감각화 동기화 장치는 그렘린 언니들이 잔뜩 만들고 있고, 통신 코드 정도라면 당장이라도 가능해.


리제가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동안, 닥터는 마리의 질문에 씩 웃으면서 패널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렸지.


- 좋아. 됐다! 이제 연락이 갈 거야.


통신 패널이 당연하다는 듯 리제 앞에 띄워져 있는 건…… 뭐, 그야 그러려나.

화면 너머의 사령관이 어리둥절해하면서 휴대폰을 들어올리는 것을 확인하고 리제는 통화를 시작했지.


- 여보세요?

- 네, 여보 맞는데요.


……그리고 첫마디부터 손에 잡히지도 않는 패널을 집어 던질 뻔했고.

제발요. 아무리 주변에서의 미지근한 시선에도 익숙해진 편이라지만 사령관이랑 같이 받는 거랑 혼자 받는 건 체감 난이도가 천지 차이라고요.

키득거리는 사령관에 대한 분노로 간신히 수치심을 억누르고, 리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전달했어.

이쪽에서 모니터링 중이란 거랑 곧 대원 일부가 접속할 거라는 것 등등.


- 알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할게.


셜록이 시계를 들여다보는 걸 보니 슬슬 시간이려나.

닥터의 눈짓에 통화를 종료할 준비를 하다가, 리제는 문득 생각나서 덧붙였어.


- 멸망 전의 세계는, 어때요?

- 글쎄. 지금은 영 정신이 없어서.

- 재미있게 즐기고 와요.

- 응. 그렇게 할게.


간접적으로나마 멸망 전의 세계 속에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건, '좋은 이벤트'라는, 메타적인 관점을 넘기더라도 사령관에게 의미있는 경험이 될 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리제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어.


- 왓슨!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한 거야? 혹시 여자친구?

- 아니, 와이프.

- 어어어?!


……대체 왜 잊을 만 하면 집중하기 어려운 발언을 터뜨리는 걸까, 정말로!


-------------------------------------------------------------------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2126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