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너머, 푸른 바다의 끄트머리에 구름 하나가 경계를 알리듯이 걸쳐있었다.


 크고, 뭉글뭉글한. 푹신해 보이는 커다란 구름 무리.


 멀리서 갈매기 떼가 날아다녔다. 끼룩거리는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몰아쳤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묵직했다. 후덥지근했다. 소금기가 어려 피부가 따가웠다.


 그런 날, 사령관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이돌 하자.”


 둘은, 호박처럼 영롱이는 눈과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사령관을 바라봤다.


 “제가요?”


 사령관도 두 사람을 바라봤다.


 푸른색의 긴 머리카락, 큰 키, 영롱한 눈동자, 새하얀 인상의 스노우 페더.


 갈색의 짧은 머리카락, 살짝 작은 키, 반짝이는 눈동자, 사막 같은 인상의 탈론페더.


 보색처럼, 서로 반대되는 인상을 지닌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말을 꺼냈다. 사령관은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 충분히 예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희 둘, 스노우 페더랑 탈론페더.”


 “갑자기 그러시면…….”


 “진심은 아니시죠?”


 첫 번째 말은 스노우 페더의, 두 번째 말은 탈론페더의 말이었다. 사령관은 탈론페더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진심이야. 너희 둘이 아이돌을 했으면 좋겠어.”


 사령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둘은 모두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탈론페더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의 의중을 모르겠어요. 아이돌에 어울리는 다른 분들은 많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저를…….”


 탈론페더가 말을 흐리긴 했으나, 그녀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건지 스노우 페더도 거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보단 리리스 언니한테 말씀하시면 더 좋아하시고, 잘 어울리시기도 할 거예요.”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었다. 두 사람은 모두 조금씩이나마 움츠러져 있었다. 사령관은 잠시 고민하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갑작스럽게 말하는 거라 강요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너희 둘이 아이돌을 했으면 좋겠어. 정말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주인님.”


 “저도요. 이유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이 물어봤다. 사령관은 살포시 웃었다가 입가를 쓱쓱 문질렀다.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내가 궁금해. 너희는 왜 아이돌을 하기 싫어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신들…….”


 스노우 페더는 탈론페더를 힐끗힐끗 훔쳐봤다. 탈론페더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곤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왜냐면 저는 촬영 담당이니까요.”


 “촬영 담당?”


 “네, 자만이라 해도 할 말 없긴 하지만, 제 촬영기술은 오르카 호 내부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제가 촬영 담당에서 빠진다면 제가 아이돌을 해도 매력을 살리진 못할 거라고 봐요!”


 “꼭 화면을 찍어야 공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영상 틀어서 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무대에 올라가는 거니까…….”


 탈론페더는 바로 손을 휘저었다.


 “스카이 나이츠 분들을 프로듀스 하셨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영상은 또 하나의 표현이라고요. 표현이 불완전하면 보는 사람들도 몰입할 수 없어요.”


 정론이었다. 사령관은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턱만 매만지다 스노우 페더에게 물었다.


 “스노우 페더는? 다른 이유가 있어?”


 “저는…… 탈론페더님처럼 확고한 이유는 없어요. 그래도, 저보다는 더 나은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구나. 너희들의 의견은 잘 알았어.”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은 사령관이 자기주장을 꺾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령관의 품에서 종이 두 장이 나오자, 두 사람은 모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바꾸진 않을 거야. 너희들이 반대할 게 뻔해서 이렇게 미리 서명을 받아왔거든.”


 “서명이요?”


 사령관은 두 사람에게 각각 종이를 하나씩 나눠줬다. 두 사람은 얌전히 종이를 받아들었다. 종이는 서류였다. 앵거 오브 호드와 컴패니언의 이름이 적힌 결재 서류.


 “이건……?”


 “사령관님? 이건 또 언제 받으신 거예요?”


 스노우 페더가 받은 서류에는 리리스의 결재가, 탈론페더가 받은 서류에는 칸의 결재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서류에 들어간 말은 동일했다.


 각각 부대원의 아이돌 활동을 허가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령관은 대답 대신 팔짱을 끼고 씩 웃어 보였다. 그와 반대로, 두 사람은 당황스러움에 울고 싶어졌다.

 





 스카이 나이츠의 도움을 받아,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은 아이돌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다.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 안무와 가창 연습.


 빠진 것도, 부족한 것도, 모자란 것도 없었다.


 없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당사자들의 의욕이었다.


 “뭔가 미묘해.”


 “괜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슬레이프니르와 드라큐리나의 말이었다. 시간을 쪼개 안무와 가창 연습을 도와주던 그녀들은 모두 일주일 만에 사령관에게 그렇게 보고했다.


 스노우 페더와 탈론페더는 가르쳐주는 것을 곧잘 따라왔다. 곧잘 따라왔으나, 그게 전부였다.


 두 사람이 하는 연습은 구름 같았다. 바람이 불어와 떠밀려 다니는 구름.


 잇따른 연습에 두 사람은 점점 모양을 갖춰나갔다. 안무의 합은 딱딱 맞았고, 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구름은 아무리 깎아낸다 한들 구름이었다.


 땅이 될 수도, 나무도, 돌도, 금속도, 심지도 될 수 없었다.


 그저 덧없이 쏟아져 내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위태로운 무언가가 될.


 준비된 모든 것들이 뭉치지 못해 겉돌고, 표류하는 그때.


 사령관은 두 사람을 만났다.


 “연습은 잘 되어가?”


 “네. 가르쳐 주시는 분들 덕에요.”


 스노우 페더가 그렇게 말했다. 탈론페더는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한 번 보여줄 수 있어?”


 “지금요?”


 “아, 아뇨. 그건 아직…….”


 탈론페더가 화들짝 놀라 안된다 말했다. 사령관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독려했다.


 “괜찮아. 아직 연습 중인 거 아니까. 모자란 게 있으면 채우면 되는 거야.”


 상냥한 독려에 둘은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움직였다. 자리를 잡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찰랑거리는 푸른빛 머리카락과 갈색 머리카락.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빛나다가 산산이 조각나는 조명 불빛.


 두 사람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혔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령관은 가볍게 손뼉 쳤다.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많이 발전했네.”


 “그런가요?”


 스노우 페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올빼미처럼 무언가를 주시하는 듯한, 동그란 눈동자에 사령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럼. 단지…….”


 “진심이 없다는 거죠?”


 풀 죽은 탈론페더의 말. 막 하려던 말을 빼앗기자 사령관은 주춤거렸다.


 “알고 있었어?”


 “저는 촬영 담당이니까요.”


 탈론페더는 쓰게 웃었다. 그녀는 연습실 한쪽 구석에 있는 카메라에 다가갔다. 반짝이는 렌즈를 쓰다듬던 그녀는 사령관을 돌아봤다.


 “아주 많은 걸 찍었어요. 많은 것, 많은 것들.”


 “그리고 내 밤일도.”


 사령관은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탈론페더는 쓰게 웃었다. 평소라면 헤벌레 웃으면서 카메라를 끌어안을 그녀는, 카메라를 사령관에게 건넸다.


 “비록 밤일이라고 해도 좋아요. 변태 같은 행동이라는 자각도 있어요. 그렇기에 사령관님, 저는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찍어왔던 그 모든 것들엔 항상 진심이 있었다는 걸요.”


 사령관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탈론페더의 눈을 바라봤다. 푸르고, 투명한. 자부심 가득한 그녀의 눈동자를.


 “칸 대장님, 워울프, 퀵 카멜, 샐러맨더, 하이에나. 우리 부대원분들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부대원분들도 마찬가지죠. 동물도, 식물도. 심지어 돌이나 바다, 구름까지도. 모든 것엔 항상 진심이 있었어요.”


 사령관은 탈론페더에게서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탈론페더는 양손을 뒤로 넘겨 가볍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먹구름이 짙게 껴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하지만 지금 연습하고 있는 저한테는 그런 게 없어요.”


 탈론페더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리곤 사령관을 지나쳐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사령관은 건네받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시선을 돌려 스노우 페더를 바라봤다. 내심 같은 기분이었는지, 그녀도 고개를 숙인 채였다.


 “스노우 페더. 비슷한 생각이야?”


 “……네. 주인님.”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전에 말했던 것과 같아요. 저보다는 더 나은 분이 계실 거예요. 써니라든가 리더 같은 분이요.”


 “그것뿐이야?”


 스노우 페더는 머뭇거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잘못한 것을 말하기 전에 망설이는 모습 같았다.


 “아이돌이라는 게 뭔지 알아봤어요.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한다는 건 스카이 나이츠 분들이 공연하신 덕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령관은 재촉하지 않았다. 스노우 페더는 손가락을 매만지면서, 말과 단어를 더듬어 나갔다.


 “금방 이해했어요. 아이돌은 우상이라는 걸, 팬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라는 걸요.”


 스노우 페더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사령관에게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어째서?”


 “제가 원하는 건 우상이 아니라 주인님의 애정이었으니까요. 상냥하시고, 머리도 잘 쓰다듬어주시고, 꼭 안아주시기도 하는……. 그런 주인님을 만나는 게 제 꿈이었어요. 그 꿈을 이뤘어요.”


 스노우 페더는 사령관을 바라봤다.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에 사령관의 얼굴만이 비쳤다.


 “저는 그걸로 만족하면 안 될까요? 그거에 만족하는 제가, 남들의 우상이 될 수 있을까요? 꿈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러지 못해요. 그럴 자신이 없어요.”


 사령관은 스노우 페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노우 페더의 눈썹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사령관의 손길에 집중했다.


 “스노우 페더.”


 “네, 주인님.”


 “스노우 페더.”


 두 번의 호명. 스노우 페더는 감았던 눈을 뜨고 사령관을 바라봤다.


 “네, 주인님.”


 “눈송이같이 새하얀, 스노우 페더.”


 사령관이 스노우 페더를 꽉 끌어안았다. 그는 스노우 페더의 귓가에 속삭였다.


 “부담스러웠겠지. 그래도 괜찮아. 모두 다 부담스러워하니까. 누구 앞에 나선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


 사령관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누군가에게 꿈을 준다는 건 힘들고,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이야. 그래서 나는 너희가 아이돌을 하기 바랐어.”


 스노우 페더는 사령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령관은 스노우 페더를 놓아줬다.


 “부탁할게. 탈론페더를 찾아줄래? 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네. 주인님.”


 스노우 페더가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사령관은 텅 빈 연습실을 둘러봤다. 소리가 웅웅 울렸다. 외로움이 다가왔다. 저들끼리 교감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 한가운데에서, 사령관은 문득 그렇게 느꼈다.

 





 새벽 바다는 고요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울리는 갈매기 소리도, 부대원들이 들락거리면서 퍼지는 소리는 없었다. 들리는 건 파도와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하늘을 수놓은 별빛이, 둥그런 달이 보였다. 구름이 몰려와 달과 별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달빛이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왔어?”


 사령관은 탈론페더에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탈론페더는 머쓱해 하다가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낮에는 죄송해요.”


 “죄송해할 게 뭐가 있었다고.”


 사령관은 피식 웃었다. 탈론페더도 마음을 놓은 건지 편안하게 웃었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사령관은 몸을 돌려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어두컴컴해서 보이는 건 많이 없었다. 달빛과 별빛, 수면에 반사되는 아스라한 빛무리.


 두 사람은 사령관이 보는 방향을 같이 바라봤다. 고요함은, 잔잔함은 뭉글거리면서도 빈틈없이 세상을 꽉 채웠다. 칼로 베면 반으로 갈라질 정도로.


 “조용하지?”


 사령관의 목소리는 세상을 찌르듯이 튀어나왔다. 스노우 페더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로요. 주인님은 새벽을 좋아하시나요?”


 “응. 조용해서.”


 사령관은 갑판에 주저앉았다. 그는 난간에 머리를 기대,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주변이 항상 어수선하니까. 사령관님, 주인님. 여기에 일이 일어났어요. 바쁘신가요. 같이 어디 가요. 그런 식으로. 모두 내게 다가와.”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물론 그게 싫다는 건 아니야. 조금……. 머리가 어지러울 때가 있다는 거지. 아무튼, 조용한 곳에서 생각하다 보니 문득 어떤 생각이 나더라고.”


 “무슨 생각이요?”


 탈론페더가 물었다. 사령관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과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


 “주인님은……!”


 스노우 페더가 화들짝 놀라 왁 소리쳤다. 고요함이 흐트러졌다.


 “주인님은 언제나……!”


 사령관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내가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이때 그렇게 했으면?”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물살 부서지는 소리. 포말 일어나는 소리.


 “모두 내게 기대를 걸고 있어.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지.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 철충의 공격에 버티고, 레모네이드의 공격에 대비하고, 나아가고, 바꿀 수 있으니까.”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까마득히 먼,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검은 세상에 보이는 달빛과 흩뿌려진 별빛을 보면서.


 “하지만 세상이라는 건 나 혼자서 바꿀 수 없어. 혼자서는 할 수 없지. 모두가 변해야 해. 계속, 계속 움직여서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야 해.”


 두 사람은 사령관을 바라봤다. 그는 난간에 양손을 짚어 몸을 기대고 있었다. 위태로운, 그러나 단단히 몸을 고정한 모습. 사령관은 뒤를 돌아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령관님을 옆에서 도울게요. 도울 수 있어요. 하지만 사령관님.”


 탈론페더는 사령관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며 물었다.


 “아이돌을 한다는 게 사령관님의 그 생각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사령관님도 기대에 부응하는 게 어려우니 우리도 힘을 내야 한다는 건가요?”


 “그런 얄팍한 설득은 아니야.”


 사령관은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난 모두가 바뀌었으면 해. 모두가 변화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이돌은 역시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스노우 페더가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탈론페더, 스노우 페더. 페더와 사령관 사이, 한 발자국의 거리가 양극단처럼 멀리 느껴지는 순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주었으면 해.”


 “왜요? 그런 거라면 저희가 아니더라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라도 되잖아요! 왜 우리인가요? 어째서요?”


 페더는 답답한 마음에 빽 소리쳤다.


 사령관은 대답했다.


 “페더. 너희가 깃털이기 때문이야.”


 페더는 입을 벙긋거렸다. 크게 뜬 눈으로 사령관을 바라봤다.


 “대장을 동경하고, 다른 부대원과는 다른. 깃털인 너희들이기에 나는 아이돌을 하자고 얘기했던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페더는 고개를 휘저었다. 달이 지평선에 걸쳐있었다.


 “나는 너희가 아이돌을 해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주길 바랐어. 스스로 한계짓는 너희들이 바뀐다면,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얻고 바뀔 수 있을 테니까.”


 “바이오로이드는 생산할 때부터 이미 목적에 맞게 태어나요! 그건 바꿀 수 없는 한계에요!”


 “그래. 멸망 전 인간들이 그렇게 만들었지.”


 사령관의 말에 페더는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현실이, 당연한 현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순 없어.”


 사령관의 얼굴에 빛이 조금씩 들어왔다. 해가 뜨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지평선 너머에서, 달이 걸쳐진 지평선 반대 방향에서.


 “새장에 갇혀 태어났다고 해서 하늘을 날 수 없는 건 아니야. 난 너희들이 새장 밖으로, 하늘을 날아다녔으면 좋겠어. 모든 아이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나아갔으면 좋겠어.”


 햇살이 두 깃털을 비췄다.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나, 찬란한 햇빛이 드리워진 그 모습은 감명 깊고,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


 “페더. 깃털. 난 너희들이 아이돌을 했으면 좋겠어. 부대원을 우러러보는, 새에게서 떨어진 깃털이 아니라 깃털을 떨어트리는 새가 되었으면 좋겠어.”


 페더의 두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점차 밝아지는 하늘에, 굳게 다짐한 사령관의 얼굴에, 그의 진심에 페더는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깃털이 하늘을 날았다. 양극단처럼 멀었던 한 발자국을 넘어갔다.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 모였다.


 함성으로 시끌벅적했다.


 바닷바람은 묵직했고, 소금기가 어렸다.


 사람들의 열기가 태양처럼 뜨거웠다.


 “연습한 거 기억하고 있지?”


 사령관이 물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지켜봐 주세요.”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다. 무대 위로 올라갔다.


 한 발자국을 남겨두고, 둘은 동시에 사령관을 돌아봤다.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프로듀서!”


 지평선 너머로 새가 날아갔다.


 바람이 불었다.


--------------------------------------------------------------------


'꽃밭을 가꾸는 하치코'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5467346?p=1

'고요한 파도'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7129844

'알바트로스가 스토리에서 연설했으면 좋겠다'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31395871


예전에 이런 글 쓴 놈이에요.


이름도 비슷하고 부대에서도 역할군이 혼자 동떨어져 있길래 아이디어 떠올라서 써봤습니다.


재미 없었으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