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느와르 아르망


ㅡㅡㅡ


숄더 로빙한 코트가 격하게 움직였다. 급박하게 따각거리는 구두소리도 제 페이스를 잃어가며 복도를 가득 메웠다. 언제나 머리에 쓰고 다니던 검은색 페도라도 비틀거리며 움찔거렸다. 


그 답지 않은, 거의 보여주지 않은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사령관은 자신을 최대한으로 억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어찌되엇든 그는 자기 혐오와 분노를 섞어 만든 독약을 마신 듯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감내해야만했다. 그래야만 이제 곧 수복실에서 만날 그녀들을 볼 낯이 생기므로.


이 사건의 발단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은 순수한 이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은 날이 좋았다. 날은 청명했으며 바람은 시원했다. 사령관은 이런 날 만큼이라도 그녀들이 답답한 잠수함 생활을 벗어나기를 바랬기에, 세띠와 마리아를 불러 LRL와 아쿠아 그리고 안드바리를 대동하고 소풍을 가는 것을 권유 했다. 물론 그녀들 또한 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체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녀들이기도 했거니와 격무로 지친 자신들을 배려하는 것이 보였기에.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격정과 감내의 발걸음이 수복실의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사령관은 분노로 일그러진 눈과 호흡을 억지로 찍어 눌렀다. 자신을 생각하기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씨를 가진, 자신과 오르카호에는 어울리지 않는 가녀린 아이들이었다. 그런 작은 생명들이 지금 이곳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채찍질했다. 부족함이 있기에, 더 강하지 못했기에 이 아이들까지 상처입히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적어도 미욱한 이들만큼은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기를 빌었는데. 오르카호의 가족들을 저울질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스스로 자격이 없는 이라고 자조적인 비극을 내뱉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어찌되었든 그는 지금 오르카호의 모두를 짊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물어 뜯길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동안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저울질된 모든 이들의 희생도 무의미한 행위로 변질될 것이었다.


사령관은 간신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그녀들을 본 순간,  그는 자신이 행한 모든 억누름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 했다. 간신히 죽여놓은 감정이 다시금 꿈틀대었다.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수복실을 흝었다. 고개를 숙이고 울먹거리는 세띠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아쿠아를 안고 있는, 제 몸 하나 성한곳 없이 온 몸에 붕대를 감은 마리아.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곤히 자고 있는 안드바리. 오직 LRL만이 그를 보고 머뭇거렸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며 한 숨을 내 뱉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억지로 뭉개놓은 분노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기에.


“LRL.”


“인간...”


순간적으로, 그는 마리아와 세띠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깨달았다. 어찌되었든 그녀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물며 온 몸을 감은 검붉은 붕대는, 작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노력이었다. 그것을 탓하는 것은 그답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아프지 마라.”


그는 그렇게 말했다. 오르카호의 수장으로써 그리고 보스로써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지 못한 LRL 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수습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가족들을 건드린 댓가를 치뤄야하는 법이었다. 그것이 ‘보스’로써의 방식이었고 오르카호의 방식이었다.


사령관의 손이 LRL의 머리를 향해 뻗어졌고, 그녀는 그것을 올곧이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 사랑과 걱정이 담긴 손길. 그는 속으로 간신히 참아가며 미안하다는 말을 수백번을 되뇌었다. 작은 너희들이 상처받고 웃게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런 말을을 내 뱉을 수 없었다. 가족끼리의 사과는 필요 없다고 말하곤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그녀들에게 있어서 죄인이었으므로.


“그래서, 어쩌다가 다쳤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건의 경과 또한 이미 보고 받은 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LRL를 안심시키기 위해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소녀는 참으로 순박하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의 고통은 아주 사소한 것인 것처럼 그를 안심시키는 거짓말을 내 뱉었다.


“그... 내가 절벽에서 꽃을 따다가...”


아이러니였다. 상처를 받은 이가 고통을 제공한 이를 감싸고 있었다. 소녀는 더 이상 사령관이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았으면 했다. 어쩌면, 자신만 참는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일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과장된 밝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거... 걱정하지 마라 인간! 이 고귀한 진조의 공주가 고작 이런 상처에...”


“그래. 걱정하지 않도록 하지. 공주님.”


거짓말이었다. 살짝 새어나온 소녀의 눈물이 그 증거였다. 물론 이 문답이 거짓임을 사령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어째서 그 무뢰한들을 감싸는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LRL에게 기특함과 느낌과 동시에 극도로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세띠. 마리아. 감사를 표하마.”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이 마지막으로 문질렀을 때, LRL는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것을 본 사령관은 그녀를 향해 희미한 미소로 답했다. 그러고는 다른 이들을 흝어 보았다. 다시금 몰려오는 자기혐오와 분노에도 그는 냉정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쉬어라.”


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따뜻한 말과 상반된 소리 없는 분노가 방안 가득 메웠다.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은 순수한 감정. 그녀들은 곧 사령관이 행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건드린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만큼 그들의 보스는 자애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필시 피바람이 불 것이었다.


사령관은 흐트러진 페도라를 고쳐쓰고 문을 열었다. 그 앞에 서 있는 레모네이드 알파는 여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손짓 하나에 그녀는 우아한 손짓으로 담배를 꺼내 그의 입에 물렸다. 불이 일고, 냉정한 분노가 으르렁거렸다. 


“알파.”


“네. 주인님. 하명하세요.”


“지금 당장 그녀들을 불러줘. 해야할 일이 있다.”


ㅡㅡㅡ


그는 시가를 선호하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필터 담배를 선호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격하게 냉정해 져야 할 때. 분노가 이성으로 바뀌어야 그 순간에 시가 커터를 손에 들었다. 독한 향이 몸에 퍼지지 않으면 억누를 수가 없을 것이었기에. 찰칵거리며 잘리는 시가의 끝은 마치 그들의 목이 떨어지는 듯 무감각하게  재털이 안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금으로 세련되게 장식된 듀퐁 라이터가 그의 품안에서 꺼내져 불을 붙혔다.


느리고 느긋하게 불타오르는 시가의 우아하고 깊은 향이 기둥 안에서 머금어 질 때 즈음, 사령관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그 향을 받아들였다. 입 안에 퍼지는 묵직한 맛. 마치 독하고 아름다운 위스키를 한 껏 머금은 듯한 바디감. 일 하기 전의 한 잔.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향이 퍼지고, 그가 쓸모 없어진 그을린 재를 재털이에 털어낼 때 문이 열렸다. 연보라빛과 백색의 머리카락. 팬텀과 레이스. 옆으로 돌아선 사령관은 그녀들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다시 시가를 입에 물었다. 정확히 10분. 그는 알파의 일처리에 납득하며 그녀들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팬텀. 레이스.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도록 하지.”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이미 레모네이드 알파에게 해야할 일과 사령관의 상태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기에, 불필요한 말은 지양하기로 했다. 오히려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겉으로 보이기엔 지나치게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바로 내 뱉어진 분노 섞인 목소리가 그녀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납득하게 했다.


“보고 받은 것 처럼, 그 쓰레기들이 우리의 ‘가족’을 건드렸다.”


으르렁거림이 바닥에 짖게 깔렸다. 그 위압감은 그녀들이 숨을 한 번 삼켜야할 정도로 위엄있는 감정이었다. 그는 다시금 시가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 내 뱉었다. 번뇌가 섞인 향이 방 안 가득 울러퍼졌다.


“그래. 구역의 침범. 좋은 명분이야. 제 주제를 모르는 이들이 짖어 댈 수 있는 근거. 성장기의 개들은 제 덩치에 취하곤 하지.”


사령관에 손에 쥐어진 시가가 강렬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반으로 꺾인 시체가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닌다.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팬텀과 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 공허한 눈빛 뒤에는 감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과했어. 마치 이 시가처럼. 향이 너무 강해서 본연의 맛을 해쳐버려. 블렌딩부터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마음이 약해져서 버리지 못했고.”


“사령관의 잘못이 아니다.”


“아니. 레이스. 내 실수다. 보스로써의 판단은 다른 이들의 결정보다 무거운 법이니까.”


“그러면, 그대로 진행할까요?”


“물론. 총구는 총을 든 사람에게 겨눠야 해. 경고를 하려 했다면, 죄 없는 이들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나지막한 감정에 팬텀은 자신의 망토를 조금 매만졌다. 이제 다가올 ‘외근’은 겁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친 것에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그녀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다치거나 사라질 때에도 이렇게 해줄까. 라는 본질적인 의문. 그는 그녀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어느정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관계에 의심을 가지는 그녀, 팬텀에게 있어 이 상황을 익숙치 않을 것이므로.


“팬텀.”


“예...”


“손가락들 중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곳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구심을 가지지 마라. 가족끼리의 의심은 불화의 틈을 만드는 법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스도 그 옆에서 납득한 듯한 표정이었다. 사령관은 그런 그녀들을 보고 여전히 무표정하게,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팬텀. 레이스. 오늘 밤 안으로 정리하도록. 그곳에 생존자는 없다. 반드시. 만약, 한 명이라도 살아서 바닥을 기어다닌다면... 너희들에 대한 내 판단을 수정해야겠지.”


ㅡㅡㅡ


예상보다 좋은 반응에 고맙다. 역시  느와르를 싫어 하는 라붕이는 없따


소재 받은 것도 꽤 있고 느긋하게 쓰면 다음 주 안으로는 다 쓰지 않을까 싶네


제목은 짓기 힘들어서 그냥 이번엔 팬텀 다음은 레이스로 간다


최대한 꾸준히 써볼테니 '읽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