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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기제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그 스트레스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정신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방어장치를 말한다. 그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많은 방어기제를 이야기하기에는 소설의 취지와는 맞지 않을 것이었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정신의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기에 다른 글을 복사 붙여넣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를 시작하는데에 있어서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넘어가는것이 옳을 것같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예시를 하나 드는 것이 좋겠지. 마침 프린스타운에는 방어기제에 대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한 노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조차도 너무 오랫동안 이름으로 불린적이 없어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잊은지가 오래였다. 하지만 그를 존 도라고 부르는 것은 수많은 존과 존 윈체스터와 도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었지.

 대신 그를 가이라 부르자. 가이가 뭐가 이름이냐고? 영어로 Guy는 남성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 어원을 타고 올라가보자. 가이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가이 포크스. 그 유명한 가이 포크스말이다. 영국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한 그는 너무나 유명인이 되었고 오용되었고 그는 가면만을 남기게 되었다.

 그의 이름 가이는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익명의 남성을 가리치는 명사가 되었고 먼 훗날 한 해킹집단의 상징이 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그의 이름을 가이라 붙인다 한들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었다.

 가이란 남자가 머물고 있는 곳은 프린스타운 외곽의 한 판자집이었다. 그의 집 옆에서는 닭을 키우고 있었고 그가 집이라 부르는 판자더미에서는 매일같이 닭똥냄새가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에게서도 닭똥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그가 어째서 노숙자가 되어 프린스타운에 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의 방어기제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의 임원진이었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고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를 살 재력도 있었다.

 그런 그의 인생이 망가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에게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 블랙리버는 한 바이오로이드를 보냈다. 바로 에이미 레이저였다. 블랙리버가 만든 첩보용 바이오로이드였다. 에이미 레이저가 장기를 발휘하는 것은 바로 유혹이었다.

 아름다운 에이미 레이저의 유혹을 이길 남자가 얼마나 될 것이란 말인가. 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무도회장에서 치마를 슬쩍 들춰 가이를 유혹한 에이미 레이저가 가이와 정사를 나누기까지는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가이의 운명을 바꾸었다. 다음날, 가이의 집에 한 익스프레스 76이 방문했다. 그것이 가이의 부인에게 전해준 것은 한 메모리칩이었다. 그 메모리칩에 어떤 영상이 들어있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 영상을 본 가이의 부인은 이혼소송을 준비했다. 고작 바이오로이드와 정사를 나눈 정도로 이혼이 가능했냐고? 누가 에이미 레이저의 존재를 알았단 말인가. 가이의 부인도, 심지어 가이 본인 역시 그것이 바이오로이드였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다.

 심지어 에이미 레이저는 자신이 바이오로이드임을 숨긴채 가이를 이혼소송에서 도와주기까지 했다. 가이는 이혼과정에서 에이미 레이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과 결혼 직전까지 가기까지 했다.

 가이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이혼 소송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엄청난 돈을 이혼소송에 썼고 그가 가진 많은 재산이 반으로 갈라졌고 막대한 돈을 양육비로 지출했지만 그는 그래도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의 임원이었다. 그에게 돈이란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 보고서가 올라왔다. 지속적으로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의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비스마르크 방첩부는 조사를 시작했고 간단한 방법으로 범인을 찾아냈다. 일부러 수많은 가짜 정보를 뿌려 어떤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정보가 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 구멍이 바로 가이였다. 방첩부는 그와 같이 사는 에이미 레이저가 블랙리버가 보낸 첩보용 바이오로이드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가이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를 살려준 것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자비였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도 직장도 지위도. 그는 복수할 기회도 없었다.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앗아간 에이미 레이저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충격은 그에게 방어기제를 만들어냈다. 그는 모든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폭력을 참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바이오로이드와의 정사는 더러운 것이었다.

 가이의 내면 어디선가는 여전히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내면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의 자사 바이오로이드 홍보관에서 난동을 부리며 수기의 바이오로이드에게 상해를 가하려 하기도 했다.

 만일 경비원들이 그를 제지 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그것으로 감옥에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홍보관에서 쫓녀난 가이는 한 남자와 바이오로이드를 발견했다. 길거리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둘에게 그는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는 바이오로이드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그의 방어기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남에게 강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강요의 수단은 언제나 그렇듯 폭력으로 나타났다.

 가이는 그날부로 길거리에서 남성을 살해하고 바이오로이드를 작동 불능으로 만든 것으로 인해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었다. 그는 도시에서 쫓겨나 먼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정착한 곳이 바로 프린스타운이었다.

 누가 그에게 과거 영광이 있었던 사내라 생각하겠는가. 그는 그저 프린스타운에 있는 수많은 거지중 하나였다. 자신이 먹고살 것이 없어 다른 거지에게 구걸해서 먹을 것을 얻는 수많은 거지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방어기제를 설명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방어기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기대하였는가. 이터니티가 프린스타운에 와서 인간의 따듯함을 느끼는 이야기? 부자들에게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인간미? 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다?

 유감이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쓸 재능이 없었다. 악한 사람은 그에게 부가 있든 없든 여전히 악인이었다. 심지어 돈 한푼 없는 노숙자라 할 지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거지들만이 아니라 프린스타운을 쥐고 있는 집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시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낭만을 가지고 정처없이 떠도는 보헤미안들? 마차를 타고 다니고 점술을 치는 신비로운 집단? 왜 현대사회에서 집시들을 꺼려하는 것일까. 그들은 먼저 국가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지배? 그보다는 더 순화된 단어가 어울리겠지. 국가의 관리하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조차 아니었다. 공립교육을 받지 않았고 심지어는 출생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만일 국가에서 당신의 존재를 몰라 당신의 얼굴이 CCTV에 찍혀도 정부는 알 수 없고 지문을 남겨도, 머리카락으로도 추적을 할 수 없다면? 그럼에도 천막치고 수정구를 가져다놓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예언을 한답시고 커플을 유혹할 것인가?

 그럴 바에는 칼을 하나 쥐고 거리로 나갈 것이었다. 소매치기든, 강도든, 빈집털이든 돈이 된다면 뭐든 좋았다. 경찰에게 현장에서 잡히지만 않는다면 그 죄를 물을 일이 없었으니까. 어째서 일을 하지 않는 집단이 계속해서 유지가 될 수 있는가. 그 답은 오랜세월 범죄였다.

 어느 마을에서나 집시는 반기는 존재가 아니었다. 집시를 배척하는 것을 차별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칼과 총과 같은 폭력에 노출되면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집시 차별을 외치는 사람도 집시에게 노상강도를 당해본다면 그 생각이 바뀌게 되겠지.

 프린스타운은 그런 곳이었다. 빈자들의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닥에서는 사람들이 노래하며 춤추고 2층의 창문에서 코러스 부분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노래하는 그런 모습은 세상 그 어떤 빈민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정체된 곳이었다. 누구도 활기가 없었고 그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만 할 뿐이었다. 생존조차 삶의 목표가 되지 않았다. 죽으면 죽는 것이었고 살아있으면 살아있을 뿐인 나날이 계속되는 곳이었다.

 어떻게 그런 곳이 유지가 될 수 있는가. 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집시들이었다. 그들은 유일하게 외부와 소통구가 될 수 있었다. 노숙자를 이용해 돈을 벌고 그 대가로 그들을 먹일 뿐이었다. 노숙자들은 집시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집시들은 노숙자들을 무시했고 그들을 자신의 수하처럼 부렸다. 그러나 그 불만을 어찌 말하겠는가. 불만을 표한 노숙자는 프린스타운에서 쫓겨나기만 하면 다행일 것이었다. 그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다음날 수프에 고기가 들어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터니티를 본 노숙자들의 표정이 어떠했는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프란스타운에 여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성들은 노숙자보다 위에있는 집시거나 이미 집시가 데려가 매춘업소에 넣은지 오래였다.

 수많은 남자들은 오랫동안 여자의 맛을 보기는 커녕 여성의 모습조차 잊은지가 오래였다. 그런 그들의 앞에 한 여성형 바이오로이드가 나타난 것이었다. 자신의 유방을 반쯤 들어낸 이터니티를 본 노숙자들을 그것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이터니티에게 무언가를 하는 노숙자는 없었다. 그들은 알고있었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를. 자신들이 모두 동시에 덤벼도 저 바이오로이드는 자신들을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들을 짓누른 무기력은 그들로 하여금 그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좆을 문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터니티는 거리에 피어오르는 악취와 밤꽃 냄새에 코를 막고 싶었다. 론 브래드버리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터니티가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이곳이라면 먹을 것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터니티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떠올렸다. 얼마 안되는 돈이었다. 다 합쳐봐야 몇파운드 되지 않을 돈이었다. 그것은 돈을 벌지 않았다. 그것에 손에 돈을 쥐여주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런 그것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운에 불과했다.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기도 했고 우연히 그것이 입은 옷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던 경우도 있었다.

 그것이 돈을 모은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대비한 것일까. 아니면 바이오로이드 역시 재물욕이 있었던 것일까. 만일 후자라면 수많은 연구진이 그것을 조사했을 테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터니티의 눈에 마을의 한 급식소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 다가간 이터니티는 참지 못하고 코를 막았다. 도저히 먹을 것이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악취가 난 것이었다. 대체 무엇으로 수프를 만든 것일까. 저것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의심할 정도의 냄새였다.

 그러나 이터니티는 먹어야 했다. 그래야 그것의 유방은 젖을 만들어낼 것이었고 그 젖통만이 론 브래드버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터니티는 그것 자신을 그저 걸어다니는 우유 정수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의 입에 무엇이 들어가든 그것의 유방은 론 브래드버리를 위한 모유를 만들어냈다.

 그러기위해서 이터니티는 살아야 했고 먹어야 했다. 이터니티는 코에서 손을 뗐다. 그것 자신의 감정이나 감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먹는다는 것 그 자체였다. 급식소 앞에 멈추어선 이터니티는 수프가 만들어지고 있는 대형냄비를 바라보았다.

 무어라 형용해야 할 것인가. 이터니티는 그런 것을 본적이 있었다. 저택의 음식물 쓰레기통. 오히려 그쪽이 더 먹음직스러웠을 것이었다. 최고한 그것은 먹을 것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급식소의 수프는 음식이라 할 수 없었다. 그 무엇도 형체가 남지 않아 색을 형용할 수 없는,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토가 나올 것 같은 그것은 음식물 쓰레기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었다. 하수도. 그것에 더 가까웠다.

 이터니티는 말했다.

 “며칠을 못먹었어요. 조금만이라도 주실 수 있나요?”

 급식소에 있는 사람은 이터니티를 깔아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 밥은 사람을 위한 거야. 너같은 핏덩이를 위한 게 아니라고. 이 마을에서 꺼져.”

 그의 얼굴에서는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이 마을의 집시였다. 다른 마을이었다면 마을에서 쫓겨났을 터였지만 프린스타운은 집시가 지배하는 마을이었다. 오히려 집시인 그가 거들먹거리며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돈은 드릴게요.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이터니티가 동전 몇개를 꺼내는 것을 보자 그 집시는 이터니티에게 걸어와 그것을 세게 밀쳤다.

 “아얏!”

 그것이 자빠지자 그것이 안고 있던 론 브래드버리가 사람들에게 드러났다. 이터니티는 재빨리 그것의 주인을 숨겼지만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핏덩이가 애도 낳아? 웃기고 자빠졌네. 왜? 그 핏덩이도 인간이라 말하고 싶은 거야? 어차피 몇년 안에 뒈질 애야. 대충 버리고 아무한테나 다리 벌려보라고. 누가 알아? 어떤 미친 놈이 너한테 박으려고 지 먹을 거 나눠줄지.”

 그는 이터니티의 얼굴에 가래를 뱉었다. 이터니티는 손으로 그 끈적한 액체를 닦았다. 그것은 울분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온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그것은 모욕만 당할 뿐이었다. 그것 자신에게의 모욕은 참을 수 있었어도 그것의 주인에게의 모독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이터니티는 눈앞에서 자신을 욕한 남자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가 론 브래드버리에게 해를 가하려 달려들지 않는 이상 말이었다.

 이터니티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어이,”

 어디선가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너무 해서 목소리가 쉰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말을 하지 않아 목이 말을 하는 법을 잊어버려 난 목소리였다.

 이터니티가 목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배고프지? 먹을 걸 줄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 가이의 손에는 음식이 담긴 그릇이 들려 있었다. 이터니티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곳에도 친절한 남자가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 것이었다.

 궁금할 것이었다. 방어기제는 결국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가. 이 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일 때문이었다. 이터니티는 음식의 유혹에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 가이에게 다가갔다.

 이미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알 것이었다. 앞서 말한 가이라는 남자는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는 이번 이야기의 악역이었다. 어쩌면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할 것이었다. 혹은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터니티가 가이의 판잣집에 들어서자 가이는 이터니티를 붙잡고 그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터니티는 당황하며 론 브래드버리를 감싸 자신의 주인을 보호하고자 했다. 그것의 행동을 본 가이는 말했다.

 “벗어. 그러면 밥을 주지. 걱정마. 나는 널 해칠 생각이 아니야. 다만 너같이 남을 유혹하는 더러운 바이오로이드에게 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너같은 바이오로이드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차라리 나한테 걸린 걸 다행으로 생각해. 바이오로이드를 보기만 해도 발작하는 놈들이 이곳에는 널려있어.”

 가이의 손에는 그릇이 있었다. 그 안에는 먹을 것이 있었다. 먹을 수 있는지 의심이 되는 것이었지만 분명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터니티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에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사람은 없었다. 그저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살기 위해서는 이용당해야 했다. 그것을 깨달은 이터니티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합리화를 시작했다. 그것은 이터니티의 방어기제였다. 그것은 희생이라 생각하며 뒤에 후회와 회한을 남길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옷을 벗었다. 허름한 천에 누운 그것은 자신의 흰 하반신을 드러냈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은 그것의 속살이었다. 오랜 객지 생활에도 그것의 살은 티 한점 없었고 그것의 다리 사이 갈라진 틈 바로 위에 흰색의 털이 조금 자랐을 뿐이었다.

 가이 역시 바지를 벗었다. 그의 보잘것없는, 털로 뒤덮힌 하반신이 드러났다. 오랜 노숙생활로 그의 피부는 병들어있었고 그의 다리는 구부정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솟은 작은 기둥은 보기만 해도 더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이어질 일이 이 오랫동안 방어기제에 대한 설명을 방어기제로 사용한 이유였다.

 필요한 이야기인가. 그를 위해서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카타르시스. 정화라는 뜻의 그리스어였다. 어째서 주인공을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카타르시스였다. 그 결말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주인공에게는 역경이 필요하다.

 역경 없는 쾌감만 느끼겠다고? 흔히 인간의 감정을 롤러코스터에 비교하곤 한다. 롤러코스터의 쾌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낙하에 있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길고 지루한 빌드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알 것이다. 높이 올라갈 수록 롤러코스터는 빨라지고 그 쾌감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었다. 마지막의 감정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감정의 하강이 필요하다. 감정선이 낮아지면 낮아질 수록 감정의 상승폭이 커지는 것이었다.

 이것을 부정할지도 몰랐다. 그저 쾌감만을 얻고 싶다고. 매편마다 시원시원하게 전개되고 역경은 없는 사이다물을 원한다고. 세상이 힘든데 취미로 읽는 소설마저 힘든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롤러코스터 중에서는 시작부터 고속으로 달려가는 것도 있다고 말이다.

 유감이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 없었다. 고전적인, 하강을 통한 상승의 극대화라는 고전적인 서사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음 장면으로 가이와 이터니티의 강간에 가까운 정사를 묘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터니티는 자신의 처음은 오로지 주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주인의 처음이 자신이 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의 처음은 자신같은 보잘것 없는 더 좋은 누군가와 함께하길 바라고 있었다.

 만일 그것의 주인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평생을 처녀로 보낼 각오도 되어있었다. 오히려 그편이 더 그것의 행복에 가까웠을 것이었다. 주인에게 일평생 헌신하고 무덤까지 함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터니티의 삶의 목표였으니까. 그 무엇이 주인의 처음이건 그것의 주인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은 오로지 이터니티였다. 이터니티는 영원히 그것의 주인과 함께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심은 한 남자, 가이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이터니티는 고작 먹을 것을 위해 자신의 처녀를 그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누군지도 모를,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에게 이터니티는 자신의 정조를 내어주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을 보았다. 그는 성이란 무엇인가. 정사란 무엇인가도 모른채 곤히 자고 있었다. 이터니티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것의 몸에는 쾌감이 흘렀지만 그것은 전혀 쾌락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통일 뿐이었다.

 이터니티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평생 성행위라는 것을 해오지 않았다. 자위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을 주인을 위해 아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의 생존을 위해 하나씩 포기해야 했다. 이번에는 그것이 이터니티의 성이었을 뿐이었다.

 “읏.”

 그것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이에게 자신의 신음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소리로 그것의 주인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의 추태를 주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판잣집에서는 기분나쁜 살갗이 미끌어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철퍽철퍽 하는 소리는 진창을 걷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왜 입을 막아? 기쁘잖아?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가이는 음흉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너같은 핏덩이들은 항상 마찬가지야. 남자를 유혹하고 그들이 파멸되는 것을 즐기지. 가족도 일도 다 잃은 남자를 보며 쾌감을 얻는 족속이야. 그러니까 나는 너희를 파멸시킬 거야. 내 자지에 너희들이 굴복하는 것을 볼 거야. 내일 아침, 너는 말할 거야. 자지를 빨테니 먹을 걸 달라고. 안그래?”

 이터니티는 부정하고 싶었다. 그럴 순 없다고. 처음은 몰라도 두번째까지 넘겨줄 수 없다고. 그러나 그것은 부정할 수 있었을까. 그것의 머릿속에서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것의 생존본능은 음식을 먹기 위해 그것의 마음을 속이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바쳐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이터니티는 충격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미칠 자격조차 없는 존재였다. 그것의 모든 것은 그저 자신의 주인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져있었다. 그것을 위해 이터니티는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었다.

 이 전개가 불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터니티에게 비극이 그만 찾아오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이터니티가 받을 고통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심한 하강은 회복을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면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자. 10년 정도 뒤면 적당할 것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가고 대부분의 갈등이 해결된 뒤의 일이었다. 이터니티가 소년이 된 론 브래브러리와 마주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주인님,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더 좋은 여성분을 만날 자격이 있으신 분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주인님을 위해 주인님의 여성이 될 자격을 잃었습니다. 저같은 것은 바라보지 마시고 부디 좋은 여성분을 만나주시길 바랍니다.”

 이터니티는 눈앞의 론 브래드버리에게 말했다. 자세한 것을 말하면 스포니 주변 환경이나 론 브래드버리의 모습, 그의 대사는 전부 적당히 넘어가는 것으로 하자.

 아니, 내겐 오직 이터니티 뿐이야. 그런 뉘앙스의 말을 론 브래드버리가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터니티는 울음을 터트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이터니티는 론 브래드버리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론 브래드버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했다. 자신의 감정조차도.

 그러나 10년뒤의 그 순간, 이터니티는 깨달았다. 자신의 후회로 가득찬 희생은 그저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는 것을.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작은 소년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터니티는 론 브래드버리를 껴안았다. 론 브래드버리 역시 이터니티를 껴안았다. 둘은 입을 맞추었다. 둘의 관계는 단순히 주인과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둘은 함께하고 있었고 둘의 대한 감정은 오랜세월 천천히 쌓아져 올라갔다.

 그 둘이 침대로 가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키가 큰 편인 이터니티에 비하면 론 브래드버리는 아직 그것의 가슴께 정도 닿는 키였지만 그것은 바이오로이드의 피를 물려받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터니티를 번쩍 들어올린 론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와 격렬한 밤을 보냈다. 그의 키와 비슷하게 아직 그의 성기는 작아 이터니티의 모든 구멍의 끝을 만족시켜주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이터니티는 몇번이고 쾌락의 끝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성기가 성장과 함께 비대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터니티는 수많은 관계속에서 미래를 상상했다. 그 미래는 모두 밝은 장밋빛 미래였다.

 그런 미래가 올 것인가. 현재의 이터니티는 그런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그저 밥을 먹는 것, 론 브래드버리를 먹이는 것. 두가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질내에 사정하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거야...”

 열심히 피스톤질을 하던 가이는 멈추어서며 부르르 떨었다. 그는 예고도 없이 자신의 정자를 이터니티의 질에 사정한 것이었다. 무심하게 이터니티에게서 자신의 성기를 빼낸 그는 더러운 자신의 성기를 이터니티에게 내밀었다.

 “뭐해? 다 끝났으면 깨끗하게 해줘야지. 자, 단백질이야. 밥이라고 생각해.”

 이터니티는 가이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터니티는 눈을 질끈 감고 가이의 더러운 성기를 빨아주었다. 정액의 쓴맛, 피와 애액이 뒤범벅이 된 다른 종류의 쓴 맛, 오랜 세월 쌓인 때가 만들어낸 더욱 불쾌한 쓴 맛이 이터니티의 혀에서 느껴졌다. 어째서 그것은 맛을 느끼게 만들어진 것인지 회의가 들 정도의 불쾌감이 이터니티의 입속에서 맴돌았다.

 “제대로 닦을 순 없는 거야?”

 가이는 이터니티의 분홍색 머리를 쥐어잡고 그것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이 살아있는 바이오로이드의 머리인 것은 아랑곳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이터니티의 머리를 휘둘렀다. 그러는 사이 죽어있었던 가이의 좆은 다시 살아났고 그 끝은 이터니티의 목을 찔렀다. 그것은 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가이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은 자신의 본능을 모두 죽여야 했다. 그것의 감정을 죽여야 했다.

 가이가 멈춘 것은 다시 한번 이터니티의 체내에 자신의 정액을 들이부은 다음의 일이었다. 그가 이터니티의 머리를 밀쳐내자 그것의 작고 아름다웠던 입술에서 가이의 성기가 미끄러져 나오며 둘 사이에는 침과 정액이 섞인 끈이 이어졌다. 그 성기를 이터니티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의 눈물에서는 메마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도 몰랐다. 그저 그것의 떨리는 숨만이 그것의 감정을 나타낼 뿐이었다. 그런 이터니티의 뺨을 가이는 툭툭 치며 말했다.

 “아직 이건 시작이야. 네가 받아야 할 벌은 산더미야. 그동안은 밥이나 먹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어.”

 그렇게 말한 가이는 자신의 판잣집을 나섰다. 이터니티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고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고간의 사이에는 흰액체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피의 붉은색이 섞인 그것은 자신의 몸속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었다.

 그것은 손을 자신의 질 내에 넣어 정액을 긁어내었다. 자신은 임신할 수 없었다. 자신은 아기를 낳을 자격이 없었다. 그것은 론 브래드버리만을 섬겨야 했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그 부질없는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것의 정신은 버틸 수 없겠지.

 그렇게 한참을 질을 긁어내던 그것은 질에서 다시 피가 나자 멈추었다. 그것이 너무 긁은 나머지 상처가 난 것이었다. 이터니티는 정액과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그것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양 팔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어째서 이런 말로로 치닫게 되었는가. 모든 것을 후회했지만 후회란 이미 늦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후회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것은 천천히 걸어가 가이가 두고간 그릇을 집어들 뿐이었다. 그릇에는 음식물 쓰레기나 다름없는 수프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그릇째로 수프를 들이키혀 했다.

 “우웁!”

 아무리 그것의 혀에 정액과 피가 감돌고 있었지만 수프의 맛을 감출 수 없었다. 수프의 맛을 느낀 이터니티는 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이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위해 자신의 처녀를 버렸단 말인가. 그 생각을 하자 다시 이터니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이 쓰레기와 같은 수프라도 먹어야 했다. 그래야 그것은 살 수 있었다. 론 브래드버리를 먹여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결심했다. 론 브래드버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이터니티는 수프를 먹었다. 먹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억지로 우겨넣었다. 맛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냄새를 맡지 않으려 했다. 설령 맛과 냄새를 느끼더라도 이터니티는 그것을 무시했다. 느끼지 않은 척을 했다.

 그렇게 이터니티는 수프를 전부 먹게 되었다. 회한이 몰아쳤다. 이터니티는 그릇을 내려놓고 천에 손을 대충 닦은 뒤 론 브래드버리에게서 조금 물러난 뒤 그에게 엎드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이런 것을 바란 게 아니었어요. 주인님께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지 말았어야 했어요. 주인님께는 좋은 것만 보여드려야 했는데.... 죄송해요...”

 그리고는 론 브래드버리를 안아들어 그의 입을 자신의 유두에 물렸다. 잠에서 깨어난 론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의 가슴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이터니티의 유두에서는 다행히 아직 모유가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얌전하게 모유를 마시는 론 브래드버리를 보며 이터니티는 웃었다. 론 브래드버리를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터니티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 그 희생이 어떤 후회를 남기던 상관없었다. 그저 이 얼굴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자신의 처녀만이 아닌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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