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3316232

이전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2327828


--------------------------------------------------------------------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제의 의문은 꽤나 허무하게 해결되었음.


- …,

- 왜 그래, 부관.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어?

- …아뇨. 조금 허무하다 싶어서.

- 으응?


교복 스킨이라고 해도 멤버 각각 디자인이 다르지 않나 했더니 가상 현실 속에서는 다들 같은 교복으로 통일되어 있었거든.

구체적으로는 리제가 알고 있는 '시라유리'의 디폴트 복장에 가까운 것으로.

아니, 그야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스킨처럼 한 번에 몰아서 낸 게 아니라 그냥 따로 따로 나왔던 교복 계열 스킨이 있는 캐릭터들을 묶어서 내보냈을 뿐이니 실제로 가상 현실 속에서는 다르겠지요.

그래도 가상현실 특유의 허술한 설정이 일한다거나 하진 않을까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야.

뭐, 자신의 모습이 어딜 어떻게 봐도 현실과 같다는 점은 그나마 안심이었지만.


- 네~! 그래서 지금부터 뭘 하면 되는 건가요~?

- 이 학교가 게임의 주요 '스테이지'로 배정되어 있는 한, 사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폐하께서 수사를 진행하시는 동안 우리도 그 부분을 수색하면 됩니다.

 물론, 학생으로서 부족함 없는 태도를 병행하면서요.


린티의 질문에 대답하는 아르망이 평소보다 확실히 들뜬 것을 보고 그러고 보니 선도부장 생활을 즐겼다는 설정이던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자니, 등 뒤에서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어.


- 좋소. 그렇다면 교사로서 접근할 수 있을만한 정보는 소관이 담당하지.

- 용 씨?

- 음. 가상현실이라고는 하나 보게 되니 좋군. 급편으로 접속기를 양도받아 찾아왔소… 리제 공?


……어음.

트레이닝복을 입고 죽도를 짚은 체육교사 용이라니, 너무 잘 어울려서 곤란할 정도네.

그에 비하면….


- ……마리 씨.

- …음.

- 신체 나이를 고려하면 저희도 교사 포지션인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 …그 이상 말하지 말아주시오. 서로 상처입을 뿐이니.


*   *   *


그렇게 아무에게도 이득이 없는 이야기로 괴로워한 것도 한때의 일.

사령관은 하토모리 의원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중요 참고인 겸 용의자로서 경찰서에 며칠 째 붙들려 있었으니, 그동안 리제를 비롯한 바이오로이드들도 꼼짝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어야 했지.

그래서 리제는 뭘 하고 지냈냐면.


-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멸망 전 세계의 라이트노벨이나 뒤적이는, 잉여롭기 그지없는 시간을 절찬리에 보내고 있었음.

물론 오르카 호에서도 과거의 창작물 같은 기록이야 얼마든지 남아 있으니 보지 못할 건 없지만, '학생'이라는 포지션을 갖게 되는 순간 숨겨둔 나태함이 대폭발했다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예의 게임 속 삼각관계의 한 축을 이루던 '시호'라는 여학생 - 겉으로는 우등생이지만 사실 오타쿠 취미를 숨기고 있었던 - 과 가까워진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 세토우치 군이 계속 신경쓰여. 어떻게 해야 할까?


원작에서 쇼타 취미로 의기투합했던 마리 대신 내가 상담하는 건가.

손등에 턱을 괴면서 리제는 적당히 대답해주기로 했어.


- 한 가지 확실한 건, 고백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막연히 좋아하니까, 사귀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확정짓는 느낌이 좋겠네요.

- 그, 그래?

- 네. 멋모르고 질렀다간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요.


구체적으로는 첫날 밤부터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끝에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된다던가.

그나마 저쪽은 좋아한다는 남학생을 금발 태닝 양아치 여자에게 빼앗길 테니 상관 없으려나.

어쩐지 먼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리제에게 시호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물었음.


- 리제 양은 경험이 풍부해 보이네.

- 어느 정도는 있는 편이죠.


대충 둘러대려던 생각을 바꾼 건 사령관이 첫날에 터뜨린 폭탄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음.


- 그야 결혼도 했고.

- 뭐어어어어?!


혹시 학교로 찾아온 사령관이랑 마주치게 되면, 당당하게 부부라고 커밍아웃해야지.

여고생이랑 결혼한 도둑놈 취급이나 받아 버려라.


-----------------------------------------------------------------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271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