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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호의 잠들지 못하는 긴 밤이 지나가고.


아침해가 뜨기 무섭게 긴급소집된 지휘관급 회의엔 단 한 명의 결원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있었다.


"..."


"......"


"..."


너무나도 무거운 공기에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데, 무적의 용이 앞장서 포문을 열었다.


"정오쯤 일어나는 사령관의 생활패턴에 따르면 우리가 이 회의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세시간 남짓이오."


"... 그러니까 소집 걸었으면 빨리 할 말 하고 해치우자는 말이야?"


그 말을 받은 레오나는 평소와 같이 냉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듯 했지만


목소리는 끝이 갈라지고 손은 떨리며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는걸로 봐서 


전혀 아니었다.



"그, 그깟 글 하나 가지고 다들 너무 호들갑인거 아냐? 우리 둠브링어는. 우리는. 우, 웃,... 으흑. 나애애애애앵."


나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 마는 메이를 끌어안아 달랬다.


"죄송합니다. 대장이 유아퇴행 증상을 보이길래 오기 전에 수복실에 들렸는데 거기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더군요."



그러나 아무도 그런 메이의 추태를 탓하지 않았다. 모두들 제정신이 아닌건 비슷했기 때문이다.


수복실의 참사를 수습하고 온 레아가 나섰다.


"다프네는 그렇다 쳐도 정말 다행인건 리제가 평소에 후회물을 죽어라 싫어해서 서버 터지기 전까지 안 읽었다는 거야."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한 두사람 피 보는걸로 끝나지 않았겠지.



"그 증오스러운 글의 백업본이나 스캔이 있다면 바로 파기하는걸 추천할게."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이 다들 잠든 시각에 벌어진 일이라 차라리 다행이군."


"새벽같이 식사준비에 들어가느라 소완 급양관은 그 글을 못 봤다고 하더군.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더니 불쾌해하는 반응 정도로 끝났으니 아주 대형사고까진 안 갈 듯 해. "


이런저런 오르카호의 현재 상태에 대한 말들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한 그 때.


호드의 리더는 그 특기처럼 본론으로 돌격해냈다.


"다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령관이 일어나기 전에 서버를 복구하고 증거를 모두 찾은 뒤. 


이 일을 전부 지우는 것이다. 티끌 하나도 남겨선 안 돼. 사령관은 이번 일 자체를 알아선 안 돼."


모인 지휘관들과 그 부관들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가지 끔찍한 가정.



'만일 사령관이 그 글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적극적으로 인간 여자를 수색하기라도 한다면?'



마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지막 브라우니 단 한명까지 전원 이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게 만들어주지!"


"괜히 성대하게 얼차려시키다가 오히려 사령관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걸 명심해."


"스틸라인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시오발의 그렘린은 아직도 글쓴이 색출을 못 했나?"


"아예 서버가 터졌는데 그걸 어떻게 찾아? 아직도 서버가 내려가 있어서 접속 자체가 안 된단 말이야!"


"자자, 진정하세요. 지금 두 분이 서로 신경질 내며 다투실 때가 아니에요."


핏대를 올리며 싸울 뻔 한 마리와 레오나를 레모네이드 알파가 중재했다.


"그런데 리리스 경호대장은 어떻지? 불참한 걸 보니 그쪽도 상태가 많이 안 좋은거 같은데."


무용의 말에 라비아타가 고개를 저었다.


"새벽에 컴패니언을 전원 소집해서 사령관실 앞에 진을 쳤어. 우리 배틀메이드도 전부 밀어내서 내부 상황을 알 수가 없네."


라비아타는 오히려 배틀메이드를 소집해서 먼저 선수를 쳤을수도 있었지만 

전 총사령관으로서, 또 가장 연장자로서의 관록을 보여주듯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리리스를 자극하지 않고 물러나 양보한 것이었다.


"그... 그런데. 우리 사령관이 그 글 내용처럼 진짜로 우리를 버릴 리가 없잖아? 안 그래?"


"음! 우리를 도구가 아닌 여자로서 정열적으로 안아주는 그가 그럴 리가 없긴 하지!"


슬레이프니르가 꺼낸 말을 아스널이 받자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지며 다들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치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정 반대인 타입이 나타나면 더 반응이 극적일 수 있다는거 아니야?"


거기에 찬물을 부어버린 메이에 레오나가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치면! 사령관에게 제일 튕기는건 명령 거부권도 있는 멸망의 메이 당신 아냐? 지금 자기가 제일 안전하다 뭐 그런 얘기야?!"


"튕기는걸로 따지면 우리 대장님 말고도 스카이나이츠의 그리폰이 먼저 아닌가요? 그리고 레오나 지휘관님도 사령관을 뭐 자기한테 알맞는 남자가 되라는 둥 엄청 튕기지 않았어요? 괜히 우리 대장님께 총구를 돌리지 마시죠?"


"나앤 너는 빠져! 지금 네가 그럴 급이야?"


"지금 심신미약상태인 메이 대장을 대신해 제가 둠브링어를 대표하고 있으니 격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다시금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회의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야!"


"큰일. 큰일 났어요...!!"


문을 열고 뛰어들어 온 것은 콘스탄챠였다.



"어제, 어젯밤에 사령관님이랑 비밀에 방에서 잠든 게 유미였는데 서버 터졌단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는 몰라도 벌써 일어나버렸어요!"


"? 그러면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서버 복구를 위해 브라우니들을 시켜서 수색요청을 해 뒀었는데."


완전히 안색이 새파래진 콘스탄챠는 마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유미가 일어나면서 사령관님도 지금 벌써 일어나셨단 말이에요!"


"뭐, 라고...!?"


"아니 리리스 경호대장은 대체 뭘 한 거야?!"


"리리스님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사령관님은 어제 비밀의 방에서 주무셨는데 지금 컴패니언이 통제하는건 사령관실이란 말이에요!"


"그럼 사령관님은 지금...?"




벌컥!


"아니 웬일로 다들 나만 빼고 모였어? 어젯밤에 별의 아이나 철충이 또 말썽이라도 부린거야?"


"사, 사령관...!"













'일어나보니 서버가 터져있어서 댓글이랑 글 반응을 못 봤는데 얘들이 다 이 정도로 당황하는거 보면 나 글빨 좀 친 거 아냐? ㅋㅋ 유미가 댓글 백업떠오면 정독해야지 ㅋㅋㅋ'


당황스러운 상황과는 다르게 사령관이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것은


과연 아르망의 눈으로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