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멸망전 배경

*맵다



"저 아이로 하겠소."


"저 녀석은 크게 고장난걸 대충 고쳐둔거라 경호원으로 쓰기에는 조금 부족할 겁니다. 

저쪽에 더 고급 모델이 있으니..."


"괜찮소. 이 아이로 하겠소. 계산이나 합시다."


그 말을 끝으로 중년의 남성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 이분이 내 새로운 주인님이 되실 인간님. 

용도 폐기되어 'C구역' 이라는 곳으로 팔려갈 운명이었던 나를 그가 구원해 주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앞으론 내가 네 가족이란다."


그의 두툼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게 새로운 주인님이 생겼다. 아니, 가족이 생겼다.




"나비야~ 아빠 왔다."


딸랑이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주인님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그리고 아빠라니요, 전 주인님의 딸이 아닙니다."


"허허! 오늘따라 우리 나비가 많이 까칠한걸? 아무튼 늦어서 미안하구나, 일이 바빠져서 말이야.

그리고 여기. 네가 좋아하는 치킨 사왔다. 같이 먹자꾸나."


주인님의 몸에서 은은히 베어나오는 술냄새. 주인님은 회식이 있을 때 마다 늘 이렇게 치킨을 사 오셨다.

주인님에겐 따님이 있으셨다고 했다. 어릴때 돌아가신, 주인님의 친 딸.


"하아.. 겉옷에 냄새가 베입니다. 겉옷은 제게 주세요."


주인님은 그 후 사모님과 계속 둘이서 의지하며 살아오시다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충동적으로 날 구매했다고 하셨다.

모든것을 잃고 움츠러든 나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다 알고 있습니다. 또 술드셨지요?"


"히끅!"


내 말에 주인님이 크게 움츠르며 딸꾹질을 하셨다. 나는 그런 주인님을 보며 눈매가 더욱

좁히며 주인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가 모를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주인님."


"그, 그게... 하하하! 아, 치킨 식겠다! 어서 먹자."


"우으... 하아~ 딱 이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꼬르르륵-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배에서 배곪는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주인님이 늦어지는 바람에

마침 나또한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명백한 실책...


"푸하하하하!"


"으으...! 우, 웃지마세요! 제, 제가 누구 때문에 굶었는데..!"


"하하하하! 그래, 그래. 내가 미안하구나. 자 먹자. 잘먹겠습니다~"


"자,잘먹겠습니다."


그와 단 둘이 앉아서 하는 식사. 사실 치킨을 먹든, 냉장고에 잔뜩 굴러다니는 참치캔을 까 먹든

난 그저 주인님과 함께 식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지금의 주인님을 만나기 전 나는 삼안 본사 건물을 지키던 경호요원 이었다. 하지만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나는 다른 임직원을 지키던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어 용도폐기가 결정되었다.


사실 거기에서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삶. 그대로 C구역에 가기전 대기하던 곳에서 주인님을

우연히 만났다. 주인님은 본래 목적으로 왔던 업무상 이유를 제외하고 그 자리에서 구태여 나를

구매하셨다. 


'제 눈빛이 생전의 따님과 너무 닮았다고 하셨지요.'


어느새 식사가 끝나고 주인님께서 비틀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조심하세요. 샤워는... 무리겠네요. 바로 주무시죠. 어차피 내일은 주말입니다."


"아, 미안하구나. 안그래도 요즘 너무 잠이 많아져서 말이야.. 하~~음~~"


늘어지게 하품을 하시며 침실로 향하는 주인님. 나는 주인님을 침대에 눕히고 잠시

주인님의 방 구석에 마련된 쿠션에 쭈구려 앉았다. 내 방이 있지만 나는 이 장소를 더 좋아한다.


'주인님의 온기가 느껴져.'


주인님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는다. 따뜻하게 내 몸을 품어주는 이 느낌.

이 온기를 느끼고 싶어 늘 이곳에서 잠을 청한다.


주인님 또한 침대에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고시며 단잠에 빠지셨다.

다른 이들에겐 그저 소음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소리.

그 소리와 주인님의 온기를 느껴며 내 의식도 서서히 잠겨갔다.




콰앙-! 쾅!


"....핫!"


"으음..."


이른 새벽, 갑자기 울려퍼지는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나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래

반사적으로 주인님께 다가가 그의 몸을 내 몸으로 덮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나비야."


"숙이세요!"


슈욱-! 콰아아앙!


"크윽!!"


"으아아아!"


집의 한쪽 벽면이 무너져 내리며 밖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유성우들.

그 유성우들이 쏟아질 때 마다 도심 이곳 저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철컥- 촤라락!


"주인님! 위험..! 캬학! 크으윽!"


주인님과 내가 밖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광경에 넋을 잃은동안 어느새 정체모를 괴물이 우리에게 다가와 

주인님께 촉수같이 생긴 것을 날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주인님에게 몸을 날려 그 촉수를 받아내었다. 

일격에 오른쪽 어깨에 구멍이 뚫렸다.


"나, 나비야!"


"주인님! 숨으세요! 아니, 도망쳐요! 어서요!!"


나는 내 어깨를 관통한 촉수를 손으로 붙잡고 그 괴물과 혈투를 시작했다. 주인님을 지켜야 한다.

최소한 주인님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 괴물은 내가 촉수를 붙잡고 늘어지자 타겟을 주인님에서 나로 바꾼 듯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또한 손에 집히는 모든 것들을 이용해 그 기계와 혈투를 시작했다.




"하아.... 하윽.... 쿨럭! 쿨럭! 퉷...!"


하지만 오래 버티는 것은 역시나 힘들었다. 입에서 피가 쉬지않고 쏟아진다. 침을 뱉으니 덩어리 진

피가래가 뱉어졌다. 이미 일어설 기력따위는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벽에 등을지고 주저앉아 있을 뿐.


"이제... 죽는건가..."


그 괴물은 내가 제압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너져내린 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주인님의 온기가 그리워..."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거실로 기어갔다. 그곳에 주인님이 늘 입고 다녔던

코트가 있으니 최후는 그 코트를 품에 안은채 맞이하고 싶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기어서 입구에 도달하자 주인님께서 벽에 기대어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주....인님...?"


불러도 대답없는 주인님.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 아아...."


너무나도 큰 상실감과 충격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필사적으로 주인님께

기어가 그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주인님.... 아니, 아빠... 눈 떠봐요... 눈을... 떠주세요.. 흐윽..! 흑!"


그의 두툼한 손은 바닥에 늘어져 더이상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

그의 넉살좋은 웃음소리가 더이상 내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어라~ 페로! 이것좀 봐용!"


"뭔데요. 하치코. 중요한게 아니면 화낼겁니다?"


'역시, 하치코와 탐색작전을 자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녀를 따라 어느 폐건물에 진입했때 하치코가 나를 불렀다.


주인님의 명령을 받고 자원 탐색에 나선 사이에 하치코는 시종일관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쾌활하다면 쾌활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부산스러워 정신이 없었다.


"응? 이건..."


"이거 페로모델 아닌가?"


"맞네요. 저랑 같은 기종의 자매님이네."


하치코가 쪼그려 앉아 어느 인간님의 백골과 나와 동일한 기종의 페로모델의 강화골격을

가르키고 있었다. 마치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양을 보아하니 서로간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관계였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단순한 주인과 그 밑의 피지배인이 아닌, 정말 소중하고 목숨보다 더 값진 지켜야 할 사람.

가족과 같은 사이였을 것이다.


"저 인간님이 주인님 이셨나봐용."


"그러네요."


"저 주인님을 지키다 죽은걸까?"


"아니오, 저 자매님은 주인님을 지킨게 아니에요."


"엥? 그럼 왜 저렇게 안고있어용?"


하치코의 질문. 난 그 질문에 나와 같은 페로 모델의 강화골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인이 아니라, 가족을 지켰던 것 같아요. 그녀의 가족을."


나는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그녀에게 슬며시 묵념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 그녀의 지키고자 했던 그것을 나는 충분히 공감하니까.


'그곳에선 당신의 소중한 분과 편히 쉬세요. 이름모를 자매님.'



하얀 고양이는 주인의 품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