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치만......”

 

“아오 진짜 답답해서!”

 

오르카 호의 어느 한적한 복도. 한쪽에서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머뭇거리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그것이 답답하다는 듯 이제는 제 가슴을 퍽퍽 두들기며 한탄하는, 그런 성인 실루엣 둘이 있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 섞인 웃음을 짓는다든지, 아니면 보고 있자니 같이 답답해져서 머리를 짚는다든지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그만큼 순진하고 풋풋한 느낌이 흐뭇해서 좋다는 소수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소수에 불과했다.

 

“이쯤되면... 아무리 저보다 상급자라지만 몸이 성인이신데도 저 정도로 절망적인 수준이라면, 성교육이 필요한 거 아님까?”

 

해석의 결을 달리 잡으면 자칫하면 하극상이나 상관 기만 등으로 얼마든지 책잡힐 수 있는 말이지만, 이때만큼은 누구도 틀리다고 반박할 수 없는 브라우니 2056의 말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몸은 성인이면서도 실전으로 하기엔 너무 아득하고, 이론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브라우니의 말을 받아, 이제는 ‘관련 업무’을 사실상 할 필요가 없는 시종장, 콘스탄챠 S2 역시 브라우니의 견해에 동의했다. 저 정도로 절망적인 성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인류 재건 활동까지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오르카 내에 자체적으로 만든 유치원에 억지로라도 끌고 가서 등록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 만큼이었다. 그나마 상급자라는 체면이 있어서 그러고 싶은 충동이 불현 듯 솟구쳐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지만 요 근래에 들어서는 스스로조차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다는 것이 명확히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 외에도, 오늘은 기필코 거사 모습을 잡고야 말겠다고 별렀지만 결국 언제나처럼 같은 해프닝이 되어 사실상 허탕쳤다며 실망하는 탈론페더라거나, 언젠가는 개화(開花)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매달리게 될지 누가 알겠냐며 너털웃음을 짓는 불굴의 마리,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자기들이 외려 질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역시 긍정하는 로열 아스널에 이르기까지. 저 두 실루엣을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똑바로 말해봐. 내가 싫은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아 진짜 그놈의...!”

 

더더욱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종내는 주눅든 모습으로 겨우 있는 힘껏 쥐어짜내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와 씨 깜짝이야.”

 

어디에선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형체에, 혹여 저 두 실루엣에게 자기들이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들켰을까봐 깜짝 놀랐지만 그 그림자가 나이트 앤젤의 것임을 확인한 일단의 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개중에 나이트 앤젤과 친하다 싶은 개체는 ‘깜박이 좀 켜고 들어와라’며 농반진반으로 책하기도 했다.

 

“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르카 호네요. 저는 제 생활관으로 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지만 그 자리를 물러나오는 나이트 앤젤 역시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있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그 무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저 지독하리만치 절망적인 성지식...! 다른 능력은 다 괜찮은데 왜 하필 저 부분에서! 왜 저 부분에서 자기 상관은 더 이상 진도를 못 나가는 걸까! 처음 몇 번은 졸도할 정도였지만 이젠 ‘체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절히 체감하는 요즈음이었다.

 

“그치만,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주는 거잖아......”

 

몰래 지켜보던 일행은 절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쪽 역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뚜껑이 열린 모양이었다.

 

“사령관!!!”

 

“...!”

 

“아 진짜 빡쳐서...... 마. 씨바 진짜... 섹스! 떡! 아기는 섹스로 생기는 거라고! 니 (검열)을 내 (검열)에 푹푹 빼고박고 하는 걸로다가! 사령관 너하고! 나하고! 떡치는 걸로다가! 으아아악!!!”

 

“메, 메이...”

 

사령관의 절망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성지식에 이젠 제풀에 비명을 지르며 화를 내는 지경에까지 간 멸망의 메이. 그렇지만 이를 몰래 지켜보는 이들 역시 내심 메이의 심정에 공감하기에, 평소의 군무(軍務)라거나 공적인 상황이었다면 하극상으로 간주해서 며칠 간 영창에 넣었을 행위였겠지만 지금은 눈감아주기로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했기에 메이는 오늘도 무사무탈하게, 그렇지만 여느 때처럼 애꿎은 제 가슴만 퍽퍽 치며 답답해할 뿐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메이는 열렬한 대시를 넘어 과도할 수준으로 섹스어필을 함에도 거사를 성사하지 못하고 터덜거리며 둠 브링어 숙소로 돌아가는 와중에, 이 모든 일을 몰래 지켜보다가 이젠 해산해서 역시 개인 시간을 가지러 가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머릿속은 매우 빠른 속도로 연산이 프로세싱되고 있었다. 지금의 사령관은 사실상 새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 마치 새하얗게 소복하니 쌓인 눈밭에 누구보다도 먼저 첫발을 내디디고 싶은 그런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령관이 어느 정도의 성지식을 쌓게 된다면......! 각자의 머릿속에서 그런 상상을 하며, 모두는 안광을 빛내며 결의를 다졌다. 사령관의 처음은 반드시 자기가 가져가겠다는, 이른바 ‘사령관 함락 대작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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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그러면서 꼼지락대는 게 멸망의 메이가 아니라 사령관이라면 어떨까 싶은 생각에, 망상 한 장면을 텍스트로 풀어내 봄 ㅇㅇ


이 문학 속의 사령관은, 다재다능하고 미려한 외모를 갖춰서 어느 모로 봐도 바이오로이드들의 호감을 살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바이오로이드들의 호감도, 애정도는 상당한 고수위이지만, 성적인 면에서는 사실상 백지와 같은 상태인 것이 사실상 결점이라는 설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