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장식과 선물들로 가득한 수복실에 누운 채, 나는 눈앞의 부관을 응시했다.

그녀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어 오르카의 예언가로 통했다.


"...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여지껏 그녀 덕분에 나와 모두가 몇 번이나 목숨을 건져왔고, 이제와서 그녀의 능력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 예언은 조금 믿기가 힘들었다.

느닷없이 강간이라니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해드릴까요? 10분 뒤 폐하께서는-"


굳이 다시 들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나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알아듣긴 했는데... 내가 너한테 강제로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고, 애초에 그럴 상황도 아닌걸."


"아니요. 폐하는 오늘밤 무조건 저를 임신시키게 됩니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너무나도 확신에 찬 어조라 나조차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아니, 정말로 장난이 아닌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내가 왜 그녀를 강간하게 되는 것이지?

물론 그녀에게 음심을 품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바이오로이드들과 억지로 할 인간도 아닐 뿐더러

오르카 호에서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굳이 강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 갑자기 피임도 없이... 지금? 바로?


한창 혼란에 빠진 와중에 아르망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요."


문득 그녀는 내게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요."


"뭐?"


어쩐지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 그러니까 그 말은... 하지만 지금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안 되는데?"


"물론. 그것도 예지했습니다. 준비는 전부 마쳤으니 문제는 없어요"


아르망은 더더욱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침대로 올라와 허리를 숙였다. 어느새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황금빛 머리칼이 머리 위로 늘어지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하반신의 물건이 거세게 솟아올랐다.



"어? 뭐... 뭐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머리가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난 닷새 전 아스널에게 한 성급했던 약속으로 비밀의 방에 들어갔고, 

3일째부터의 기억이 전혀 없는 채로 수복실에서 눈을 떴다. 적어도 2주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요양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내 손조차 들어올리기 힘든 상태에서 물건이 반응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지금까지 아르망이 가져다 준 환자식이...


"폐하."

내 생각을 깨뜨리고 아르망이 입을 열었다. 아르망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가 예지를 해 봤는데... 이대로라면 제 동침 날짜는 한없이 계속 지연될 거에요. 제가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그년들에게 뺏길 수는 없죠. 어떻게 감히. 정 그렇게 될 거라면... 차라리 제가 마지막으로..."



순간 온몸을 달리는 소름에 몸을 뒤로 빼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어느새 팔다리에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아, 안돼 아르망! 진짜 죽을지도 몰라! 명령이야! 당장 이거 풀어!"



"이런, 폐하. 예로부터 이름 높은 영웅도, 세상을 다스렸던 신들도, 인간님들도, 저도... 그 누구도 예언을 거스를 수는 없었답니다."

아르망은 세상 누구보다 순수한 눈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예지를 더 해 봤는데... 아아, 정말 폐하도 참... 제가 제발 그만해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저를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은 채 짐승처럼 허리를... 그렇게 몇 번씩이나 흘러넘치도록 쏟아부으면 저 무조건 임신해버려... 웃... 하아... 저도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그럼..."



"안돼 아르망! 제발! 죽고싶지 않아!"


그녀가 얼굴을 붉힌 채 다가오며 내 환자복을 풀어헤쳤다. 그녀의 걷어올린 망토 아래에는 실오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여긴 일주일간 폐하와 저 둘밖에 없을 거고... 제 모든 것은 전부 폐하의 소유물인걸요? 

폐하께서 제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전부 폐하의 권리이니, 제가 모두 다 이해해 드릴게요."


"리리스! 알바트로스! 팬텀! 살럿! 아무도 없어?! 제발 도와줘!"


"앞으로도... 저와 영원히 함께..."









그리고 인류는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