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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간과의 전투를 치른 이들이 모두 수복실로 실려가고, 사태를 일으킨 두번째 인간은 네오딤에 의해 끌려가 독방에 감금당한다.



그의 가공할만한 전투력을 눈여겨본 사령관은 기존의 전투원 대신 네오딤과 에키드나를 경계로 세워둔 뒤, 포츈과 아자즈, 닥터와 같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누나가 정말 면목이 없거든... 상태가 엉망이길레 당연히 안전할거라 생각했거든..."




"저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팔다리를 미리 해체했어야 했는데..."




면목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포츈과 아자즈. 사령관은 그런 둘을 격려해주었다.




"너무 신경쓰지마. 이번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단지 그 녀석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위험했던 것 뿐이니까. 그런데, 닥터. 그 녀석 상탸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했는데, 다시 설명해줄레?"




사령관의 부탁에 닥터가 화면을 띄우며 말문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두번째 인간님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해. 몸을 이루는 기체는 이미 복구 불가능한 수준이고, 신경계를 이루는 전자회로는 철충 감염때문에 손상을 입은 상태야. 게다가 철충을 억지로 때어내면서 일부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버렸고."




"그래. 거기까지는 들었어. 그런데 다른 문제도 있다하지 않았어?"




"그래, 문제는 뇌야. 뇌의 상태가 좋지 못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령관의 물음에 닥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두번째 인간의 뇌를 홀로그렘으로 보여주었다.




"뇌에 나노머신과 오리진더스트를 무리하게 주입해버렸어. 즉, 두번째 인간님은 지금... 온전한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야."




"그게 무슨...!?"




"오빠는 전신을 오리진더스트로 강화시킨 탓에 노화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어. 당연히 뇌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두번째 인간님은 달라. 상태를 보아 오리진더스트 시술을 받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러니 당연히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겠지."




"그러니까... 노화로 죽어가는걸 억제하기 위해 오리진더스트와 나노머신을 뇌에 쑤셔넣었단 소리야?"




"응. 아무리 나노머신과 오리진더스트가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해도, 제대로 된 시술없이 몸에 쑤셔넣으면 굉장히 위험해. 두번째 인간님은 지금 살아있는게 기적이야."




"정확히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데?"




사령관의 물음에 닥터는 한번 뜸응 들이고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나노머신이 제어가 안되면 무차별적으로 신체조직을 붕괴시킬 수 있고,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세포가 폭주할 수도 있어. 어느 한쪽이라도 굉장히 위험한데, 두번째 인간님은 그 두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오늘내일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흐음...."




깊이 생각에 잠기는 사령관.

그는 문득 떠올렸다. 그는 분명 블랙 리리스를 공격하며 소리쳤다. 리리스가 자신의 형을 살해했다고.



"그러고보니 그 녀석, 리리스를 유독 증오하던데..."




"아마 PTSD증상일거야. 멸망 전에 리리스 언니에게 뭔가 한이 맺힌게 있었겠지."




사령관은 다시 생각에 잠긴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레 그 정도로 심각한 증세를 보인단 말인가.

이내 사령관은 무언가 결심하고는 자리를 떠난다. 이에 닥터가 그를 불러세웠다.




"오빠, 어디가려고?"




"...그 녀석한테 가볼려고. 같은 인간으로서, 그 녀석이 왜 그런 꼴이 되었는지 알아봐야 겠어.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있는데 무시할 수는 없잖아."




이에 화들짝 놀란 닥터와 포츈, 아자즈. 셋은 빠르게 달려와 그를 가로막아섰다. 그도 그럴것이, 두번째 인간은 혼자서 최정예 전투원 여럿을 압도할 정도로 굉장히 위험한 존재다. 만약 그가 사령관에게 해를 끼친다면 중상으로 끝날리가 없다.




"이건 누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거든! 사령관, 그 놈이 공격하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거든!"




"포츈 양의 말이 맞아요. 제가 평소에 제멋대로 굴고, 남의 일에 무신경하다지만, 이번 일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D - 077 기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기종이에요."




셋이 강하게 뜯어말리자, 사령관은 AGS를 데리고 가겠다며 겨우 설득시켰고, 결국 셋은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길을 내주게 된다. 그러면서도 많이 걱정되었는지 같이 동행하여 두번째 인간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다다른 독방. 그 앞에는 네오딤과 에키드나가 지키고 있었다.




"네오딤, 에키드나. 고생했어. 잠깐 안으로 들어갈게."




렘파트와 펍헤드들을 데리고 입장하려는 사령관.

당연히도 네오딤과 에키드나는 강하게 반발하며 그를 막아세웠다.




"사령관, 그건 안돼. 들어가면 죽을거야."




"괜찮아. AGS들도 데리고 왔잖아."




"당신, 제정신이야? 네오딤한테 들었어. 당신, 그 이상한 녀석한테 맞아죽을 뻔했다며! 절대 들여보낼 수 없어!"




에키드나가 위협적으로 사령관을 돌려보내려 했으나, 사령관은 둘을 어르고 달래며 설득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네오딤과 에키드나 역시 방으로 들어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을 데리고 입장하는 사령관. 그를 반기고 있던 것은 팔다리가 포박된 채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두번째 인간이었다.



녹슨 몸뚱이로 무리한 탓인지 여기저기서 스파크가 튀기고 있었고, 녹이 후두둑 떨어지며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전투를 치룬 탓인지 인조피부조차 거의 다 떨어져 완전히 무기질적인 용모가 된 두번째 인간. 사령관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이지?"




방금 전 날뛸 때와는 달리 적의를 보이지 않는 두번째 인간. 그렇다한들, 바이오로이드들의 경계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네오딤과 에키드나는 금방이라도 그를 죽일 듯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고,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닥터와 포츈, 아자즈도 사령관의 곁에 서서 긴장의 끈을 놓치 않았다.



"너와 대화를 할려고 왔어."



"...넌 누구지?"




"난 이 오르카호에 있는 저항군 세력의 총사령관이야. 모두 편하게 사령관이라 부르지."




"...존이라고 불러라."




"그래, 존. 잠시 대화해도 괜찮을까?"




"웃기는군. 옆에 네 장난감들이 날 죽이려고 하는데... 협박이라도 하는거냐?"




그 말에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물러나게 하고, AGS들도 밖에서 대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바이오로이드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사령관의 부탁에 따라 밖으로 나갔으며, 뒤이어 AGS들도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방에는 둘만 남겨지고, 사령관은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미안해. 널 위협하려던건 아니야. 저 아이들이 내가 걱정된다면서 따라들어왔거든."




"그렇게 말하지만, 결국 깡통들은 네놈이 데리고 온거잖아."




그 말에 말문이 막힌 사령관. 두번째 인간, 존은 아랑곳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해해. 내가 너희들한테 그런 짓을 했으니 경계할만하지."




"...그래서, 우릴 갑자기 공격한 이유가 뭐야?"



"무슨 변명을 하든 이해하진 못할거다."




"네가 외친 말을 들었어. 과거에 바이오로이드들과 엮인 적이 있던거야?"




"...많은걸 알려고 하지마라. 왜 내게 관심을 주는거지? 그냥 나같은건 밖에 내던지고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저 고기인형들을 옆에 끼고 주지육림이나 즐기라고."




그 말에 사령관은 다소 화가 난듯 언성이 올라갔다.




"말 함부로 하지마! 네가 뭔데 저 아이들을 고기인형 취급하는거야. 저 아이들도 엄연히 마음이 있는 생명체라고!"




그러자,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존. 기계로 이루어진 안면에는 어떠한 미동도 없었지만, 목소리로 그의 감정이 선명히 전해져왔다. 그 웃음은 단순히 실소일 뿐일까? 아니면 정말 우스워서 웃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던 중, 사령관은 그 웃음소리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름돋을만치 텅빈 공허함을...




"하하하하하하! 그래? 저것들이 마음이 있어? 그래, 그렇겠지. 저것들도 웃고울고 화낼 수 있겠지. 그런데..."




존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린 인간으로 테어났는데 왜... 쓰레기 취급을 받은거지? 공장에서 태어나는 저것들도 마음이 있다며 존중해주는 놈들이 있는 마당에... 왜 우리는 모두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하냐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사랑과 관심을 베풀지 않았다고...."




영문 모를 소리에 의아해하는 사령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거야?"




"...너도 그 새끼들이랑 같은 부류냐? 바이오로이드들도 인격체라고 소리치면서, 정작 시궁창에서 굴러다니는 것들은 사람 취급도 안하는 놈들..."




"...존, 미안하지만 난 멸망 전의 기억이 없어. 너와는 다르게 정신차려보니 이 아이들에게 발견된 것 뿐이야."



"...그렇구만. 그래,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니만... 그렇다면 내 말들은 전부 잊어. 네가 몰라도 되는 일들이야."




"그러지말고, 우리 좀 더 대화를 나누자. 난 널 해칠 생각없어. 그냥 널 이해하고 싶어. 네가 왜 갑자기 우릴 공격했는지, 왜 리리스를..."




그 때, 리리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존은 다시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하고, 수갑을 부수려고 시도했다.

이에 크게 당황한 사령관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소동을 들은 네오딤과 에키드나가 곧바로 들어와 초능력으로 존을 억눌렀다.

뒤이어 들어온 AGS들이 사령관을 에워싸며 그를 보호했고, 닥터와 포츈, 아자즈도 황급히 들어와 사령관이 부상을 입지는 않았나 상태를 진찰했다.





"리리스... 리리스...! 그 년 어딨어! 그 년을! 그 년을 죽여야한다고!!!"




"존, 진정해! 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있는 리리스는 네가 알던 그 리리스가 아니야!"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며 진정시키려는 사령관. 하지만 존은 광기어린 목소리로 증오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거세게 저항할수록 초능력의 강도를 높이는 네오딤과 에키드나. 그러자 존의 기체가 점차 찌그러지기 시작하고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튀기기 시작했다.



이에 사령관은 다급히 둘을 제지했고, 둘이 초능력을 거두자 찌그러지던 존은 속박에서 풀려나 실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널부러진다.

꽤나 손상을 입은 듯 연기를 내뿜는 기체. 사령관은 그에게로 달려가 흔들어 깨워보았다.




"이봐, 존! 대답해봐, 존!"




"리리스... 리리스를... 죽여야... 해...!"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연신 외치는 그녀의 이름. 그 광기어린 집착에 사령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뒤이어 내뱉는 한 마디.




"형... 미안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을 잃은 존.

사령관은 곧장 존을 데리고 방을 옮겼다.





***




그렇게 존은 다시 침상에 눕혀지고, 닥터는 그의 상태를 진찰했다.

뒤늦게 존이 날뛰엇다는 소식을 접한 지휘관 개체들과 라비아타, 컴페니언.



이미 공격을 당했던 지휘관들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로 헐레벌떡 뛰어와 사령관의 상태를 걱정했고, 그런 모습을 본 사령관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너희들, 왜 온거야!? 아직 다 낫지도 않았잖아!"




"각하께서 다치신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달려왔습니다. 다행히 다치시진 않으신 모양이군요."




"사령관, 우리 몸은 걱정할 필요없다. 우리에게 이 정도 부상은 흔히 있는 일이니."




"달링, 이미 한번 당했으면서 또 접촉한거야? 달링이 다치면 우리 모두가 슬퍼할거란 생각은 안하는거야?"




각자 한 마디씩 내뱉는 지휘관들. 그들의 눈에는 걱정이 한가득했다.



"주인님, 제발 무모한 짓은 그만두세요. 그러다 크게 다치시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라비아타가 걱정어린 말을 하다말고 말끝을 흐린다. 이미 다친 적이 있는 사령관이기에 혹여나 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많이 걱정했던 모양이다.




"모두 호들갑 떨지않아도 돼. 큰일은 아니였어. 저 녀석의 대인전투력은 정말 엄청난 수준이지만, 몸뚱이가 쇳덩이인 이상, 네오딤과 에키드나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침상에 눕혀진 존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사령관. 그의 머리 속에서는 아직도 존의 말이 떠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닥터... 혹시 이런 부탁해도 될까?"




"무슨 부탁?"




"기억을 내다보는 것도 가능할까?"




사령관의 말에 모두가 의도를 모르겟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닥터는 얼굴이 굳어버린다.




"오빠, 그게 굉장히 비윤리적인 행동인건 알고있지?"




"...미안. 나도 이러고 싶진않아. 그런데..."




사령관은 존을 보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의 과거를 알아야겠어. 같은 인간으로서, 저 녀석을 이해하고 싶어."




사령관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닥터. 이후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모든 기억을 전부 보여주진 않을거야.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 몇 개만 추출해서 영상으로 띄울거야. 그 이상은 안돼."




"고마워, 닥터."




닥터에게 감사를 표한 사령관은 강화유리벽 너머로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거야?'





***




다음편부터 매콤해질듯

참고로 본문의 내용은 공식설정과는 전혀 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