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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가 '이번 항해가 마무리되면'이라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일까.

사령관은 평소의 성실함조차 빛이 바랠 만큼 의욕적으로 항해에 임했지.

그 방향은 알래스카였지.


별로 보급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어.

오르카 호가 원작처럼 대대적인 개수를 거쳐야 했던 것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괌에 남긴 대원 수도 많은 편이었고.

그렇다고 레모네이드 알파로부터 오메가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벌써 왔느냐면 그것도 아니었지.

그런데 왜 뜬금없이 알래스카로 향하고 있느냐 하면.


- 레모네이드의 세력권을 정찰하기 위한 교두보가 필요해.


라는 사령관의 방침 때문이었음.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이미 사령관은 레모네이드 세력과의 충돌을 준비하고 있었어.

아마 요정 마을에서 리제가 잠깐이나마 위험했던 건으로 악감정이 단단히 생긴 거겠지.

그렇다고 사령관이 무모한 돌격 명령을 내리거나 오메가를 잡자마자 헤드샷을 날릴 사람은 아니니 리제도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음.

오메가를 생포했을 때 조금 깐죽거릴 수 있으면 만족할 거라고 생각한 정도?


물론 그건 리제의 생각이고,


- 사령관님. 레모네이드 알파가 제게 접촉해 왔습니다.

- 알파가?

- 네. 직접 통신이 가능한 채널도 함께 첨부해서요.


알파의 생각은 또 달랐던 것 같네.


*   *   * 


- 레모네이드 알파, 최후의 인간님에게 인사드려요.

- 반가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사령관의 대답에 알파는 곱게 웃었음.


- 인간님께서 굳이 관심을 두실 만큼 대단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부끄럽네요.

- 장래성을 평가했을 뿐이야.


요컨대, 지금까지는 몰라도 앞으로 대단한 일을 저지를 것임을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지.


- 저를 신뢰하시나요?

- 아직은. 하지만 우리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지.

- 적의 적은 친구이니까?

- 글쎄, 서로의 적이 살짝 다른 편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고.


해석. 나는 오메가를 조질 테니 너는 회장을 썰거라.


- 인간님은 제 생각보다도 훨씬 멋지면서 무서우신 분이셨군요.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알파는 굉장히 즐거워 보였음.


당연하지만, 사령관이 혼자서 저걸 다 알아낸 것은 아니었어.

오메가와 확고하게 적대하기로 결정하면서 리앤과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그 리앤이 이그니스를 필두로 펙스에서 건너온 바이오로이드들을 상대로 열심히 증언을 모으고 추리를 거듭한 결과였지.

그 과정에서 이따금 리제를 떠보며 수사의 방향성을 잡아나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있지만, 뭐.

이야기가 빠르니 좋다고 칠까.


- 후의에만 기댈 수는 없으니 저도 조금은 제 가치를 증명해야겠죠.

인간님께서 지금 향하시는 곳에, 레모네이드 오메가도 있어요.


이어진 말에 함교 전체의 분위기가 팽팽하게 바뀌었지.


-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그곳까지 향한 이유는?

- '철의 왕자'의 유적을 찾기 위해서.

- 철의 왕자?

- 다행이네요. 그것까지 알고 계셨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인간님 앞에 엎드리고 싶어졌을 테니까요.


저런 농담을 던지는 시점에서 알파가 사령관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다는 건 확실했지.

알파로부터 철의 왕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사령관은 이쪽에서도 조사를 해보겠다며 접선 장소의 좌표를 받고 통신을 종료했어.


- 어떻게 생각해?

- 알파의 표정과 말투를 분석해 본다면 함정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 응.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았지.


아르망과 리앤의 통찰 다음으로 발언을 이은 건 용과 라비아타였어.


- 알래스카는 현 시점에서 그렇게 중요한 땅이 아니오.

 베링 해협의 절대방위지역 근처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전송받은 좌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니.

 그런 곳에 오메가의 세력이 나타난다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일 테고.


- 다른 누구도 아닌 오메가이니, 펙스의 회장을 부활시키려는 시도와 관련이 있겠죠.

 당장 주인님과 리제 양을 노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정찰로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과, 그 후의 후속 행동까지. 어느 쪽이든 지체할 수 없어요.

- 좋아. 그러면 우선 극지에 특화한 인원으로 정찰대를 꾸리자.


엠프리스가 적임일 거라는 사령관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원들을 바라보다가, 사령관은 느릿하게 리제에게 시선을 돌렸어.


- 리제,

- 네.

- 나는, 이 세계에 멸망 전을 기억하는 인간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그 생각에 깃든 신념만큼이나, 그 말에 깃든 그리움도 확실했기에.


- …그렇네요.


리제는 그저 사령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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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지 시작이빈다

멸망 전의 사회를 환멸하지만 그걸 흑역사 취급하자니 셜록을 기억하는 '인간'은 자기뿐이 되는 것이 슬픈 사령관이었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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