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전에 먼저 나는 디얍식으로 해석한 캐릭터는 별로 취향에 안 맞는 타입이다.

난 초창기 존나슈퍼하드얀데레로 진화할 가능성이 남아있던 리제랑 낙원 끝나고 갑자기 밝혀진 방어력 0짜리 리제 설정은 좋아하는데 디얍 리제는 솔직히 별로 안 좋아한다. 이걸 알고 봐야 글이 이해갈 것 같아서 미리 써두니까 참조하셈. 아, 그리고 님들의 취향은 다 존중함. 뭘 좋아할지는 사람마다 다 다른거니까 내가 디얍이나 디얍 리제를 까려고 글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아줬으면 좋겠음.


나는 게임 오픈할 때부터 다프네 빨면서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리제도 같이 빨았다. 하드얀데레 언니와 그걸 말리려고 애쓰는 청순가련형 동생이라니 개쩌는 조합이 아닌가. 처음에는 철충이랑 싸우는 스토리 진도 뽑기도 힘들어했지만 언젠가 캐릭터들에게 비중이 돌아가는 날이 오면 둘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잔뜩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지고는 일단 스킵하고, 리오보로스가 열렸다. 수영복 투표에서 아이샤가 삽질한 덕분에 다프네는 수영복과 함께 이벤트 스토리에 정식으로 참여할 권리를 얻었고 리제는 동생 덕분에 얼떨결에 딸려나온 느낌이었다. 솔직히 리오보로스에서 리제는 조금 아쉽기는 했다. 얀데레의 집착은 잘 보여줬는데 무력에서는 리리스에게 밀리고 지력에서는 소완에게 농락당하면서 나머지 둘을 띄워주는 잡몹으로 취급받은 느낌이 조금 있었거든.


하지만 이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약하고 주인에 대한 영향력이 약함에도 그 딴 건 1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데 모든 걸 집중한다. 이걸 보여줬으면 얀데레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은 충분히 보여줬다. 아니, 오히려 리오보로스에서 완전 개털렸기에 그 다음에 리오보로스 건을 이유로 화려하게 폭발시킬 수 있는 서사의 밑바닥이 다져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려한 얀데레의 부활을 기대하던 나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후로 디얍의 만화극장이 나와버렸다.


디얍 리제가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것은 인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그 증거이며 원판에 비해서 여러 상황에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나 접근의 허들이 낮다는 점은 확실히 우수하다. 다만 내 기준에서는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디얍 리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원판의 이미지를 잡아먹으며 캐릭터 본체보다도 더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게 나를 아쉽게 만든 첫 번째 단추이자 가장 크리티컬한 쐐기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하드 얀데레를 빠는 팬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데 얀데레도 애초에 호불호 갈리는 타입의 모에속성이라 귀여운 거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숫자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디얍 캐릭터가 2차 창작으로 퍼져나가기에 좀 좋은 조건인가? 디얍 리제를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들과 밈들이 다발한 덕분에 리오보로스에서 찬밥 취급을 받았던 리제는 도약을 위한 무릎꿇기가 아니라 그냥 버려진 것으로 인식되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스마조에서 리제의 세일즈 포인트를 기존보다 귀여운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변경했다고 표현하는 쪽이 맞을 것 같다. 디얍 리제 이미지 = 인게임 리제 이미지라는 뜻이 아니라, 얀데레보다는 귀여운 게 인기가 있지! 라고 판단했다는 느낌으로 봐주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 리제가 등장한 건 초코 2부였다. 이 때는 결과만 놓고 보면 썩 나쁘지 않았다. 얀데레의 기조는 유지하면서 리리스라는 좋은 콤비를 얻어서 리쌍조합이 완성되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그것도 내가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페어리 내에서도 리제를 무력으로 압도할 수 있는 레아의 등장과 다른 바이오로이드에 비해 리제에 호의적인 다프네의 조합은 리제를 메인으로 한 스토리를 격발시킬 수 있는 충분한 연료를 제공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리제가 오직 하드 얀데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이미 리오보로스 때 한 번 억눌리면서 본인의 고뇌와 갈등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시드는 확보한 상태였으니 스토리의 주인공이자 악역이 되어서 화끈하게 사고를 친 뒤에 자매들의 적절한 설득과 보조, 그리고 사령관의 사랑을 받아서 정신적으로 치유되면서 기존보다는 순한 맛이 되는 전개를 바랬다. 난 얀데레의 매력 중 하나가 고조된 감정에 의한 클라이막스의 폭발과 주인공의 사랑을 받으며 치유되어서 치유 후에는 기존과 달라진 갭을 보여주는 점이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초코여왕과 함께 이 기폭제의 존재는 사실상 점점 유명무실해져갔다. 낙원에 재등장했을 때도 그냥 남을 배제하고 싶어하는 특성만을 살렸을 뿐, 존나 사령관에 대한 집착이 쩔어서 환각을 봐도 환각이랑 실제가 다른 걸 눈치챈다든가 뭐 그런 식의 얀데레 매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토리 중에서도 패션 얀데레 행색만 보였을 뿐 로열 아스널과 말 몇 마디 나누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얀끼 폭발은 아예 날아가버렸구나 싶었다.


그 후로는 다들 잘 알거다. 이마나 손등에 키스 받고 방어력 0 설정이 붙으면서 리제는 사실상 사령관이 끼는 순간 귀요미가 된다. 맘에 안 드는 건 아닌데 이제는 뭐...얀데레 설정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여하튼 지금껏 스토리의 전개를 다시 한 번 늘어놔밨으니 이제 왜 디얍 리제 이야기를 꺼냈는지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다들 알다시피 스마조는 유져 반응에 민감하다. 단순히 불타는 거 말고도 밈적으로 어떤 게 인기 있고 어떤게 인기 없는지 파악하는 것을 포함해서. 오죽하면 초코여왕과 낙원 이벤트는 인기있는 밈의 대거 채용 때문에 욕을 먹기도 했으니 이 부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이건 뇌피셜이지만 최초에 캐릭터를 기획할 때 리제는 확실히 남들과 차별화되는 하드 얀데레 원탑이었을 것이다. 기본 스킨대사만 보면 나름 얀데레 라인업에 속하는 블랙 리리스와 비교해도 느낌이 완전히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리오보로스 시점까지 이 기조는 그대로 유지된 것 같다. 싸움 잘 하는거량 얀데레 포스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순수하게 하드 얀데레 빠는 애들은 리오보로스 리제가 아쉽기는 해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약하고 바보같은 면이 생겼지만 여전히 진짜 얀데레거든. 근데 캐릭터의 속성으로만 놓고 보면 리제의 이미지는 싸움은 리리스보다 못하고 머리는 소완보다 딸리는 이용당하기 쉬운 바보에 힘까지 약한 애매한 얀데레 캐릭터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이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판단하지만, 사실 외전을 자주 쓰거나 하지 않는 스마조에게는 비중을 할애해서 리제의 이미지를 다시 회복시키는 시도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디얍 만화극장과 함께 디얍 리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스마조는 아마도 이 인기를 메인 캐릭터에 흡수시켜서 계속 가져가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을 했으리라고 본다. 그 때문에 초코여왕에서도 레아에게 교육당했다는 핑계로 별다른 서사 없이도 기존에 비교해서 확실히 물러지고 순해진 모습으로 나오고, 그 후로는 쭉 순한맛의 계보를 밟고 있다는 것이 내 뇌피셜이다.


결과적으로 리제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을지는 모르겠다. 얀데레 빠는 사람보다는 디얍 리제 빠는 사람이 더 많을테니 얀끼 폭발 이벤트가 있었다면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은 인지한다. 하지만 페어리 전체를 놓고 보면 상당히 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역시 뇌피셜이지만 기존에 구상하던 스토리 후보 중 적어도 하나는 페어리 내부에서 자매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그걸 해결해나가면서 서사가 완성되는 개념이 잡혀있으리라고 본다. 리제가 사고의 핵심 역할을 해줄 구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후에 굳이 티타니아를 내서 페어리 내의 또 다른 불안요소를 추가했다는 점이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예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의 리제가 싫다는 건 아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어마어마하게 응축된 얀력이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하드 얀데레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는 완전히 날아간 셈이고, 리제가 페어리 전체와 어우러지며 친한 자매가 될 수 있는 설득력 높은 서사 이야기도 하나 날아간게 사실이다. 게다가 티타니아나 장화처럼 기존에는 하드 얀데레만 수행할 수 있던 서사를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캐릭터가 나온 시점에서 이제 스마조 관점에서는 리제는 얀데레 대장주 역할을 못 하는 걸로 판단하는게 아닌가 싶다.


인생이 어찌 흘러갈지 모르듯이 디얍이 리제를 안 그렸다면 그냥 인기없는 잡캐로 남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내가 기대하던 뇌피셜을 토대로 볼 때는 디얍 리제는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장면이 안 나오게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 선호도를 따지면 하드 얀데레 리제 > 방어력 0 리제 >>> 디얍 리제 순인데 제일 좋아하던 리제의 모습이 극대화되는 장면 하나 없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갑자기 얀데레 폭발 히히힛! 이러면 개연성 개판인 난장판 스토리 될테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