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관련 없음

먼저 떠나간 이를 그리우며 무적의 용

한 겨울, 사랑했던 그를 그리우며 레오나

말하지 못한 사랑을 품고 당신을 그리우며 그리폰

넓은 초원에서 그를 그리우며 

언제나 곁에 있었던 그를 그리우며 리리스


"폐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깔끔한 대리석이 깔려있는 거대한 기념비의 앞에 아르망이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도착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양주, 그리고 두 개의 잔.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폐하. 일이 많이 밀렸거든요."


아르망이 가볍게 웃으며 잔을 기념비의 앞에 내려놓고 들고 온 술을 따른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따라지는

짙은 갈색의 양주. 아르망이 잔을 채우고 난 뒤 자신의 잔에도 조심스레 양주를 채워 넣었다.


"예상했던 일 이랍니다. 폐하께서는 언제나 저를 먼저 걱정하셨지요."


마치 사령관이 괜찮다고 대답한 듯 중얼거리는 아르망. 하지만 그녀에게 사령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모두를 구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스스로를 희생했다.


다행히 사령관이 미리 남겨 놓은 유전 샘플을 이용해 인류의 복원은 진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머나먼 여행길을 떠난 것이다.


"사실... 그때 이미 알았답니다."


지금까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아르망의 표정이 그 말과 함께 어두워졌다.


"폐하께서... 그렇게 될 걸... 전 알았답니다."


아르망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처음으로 눈물 짓는 아르망. 작은 눈물 한 방울은

이내 줄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그녀의 작은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아무리 연산해봐도.... 폐하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아르망은 자신의 가슴을 쥐어 뜯으며 사령관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폐하의 뜻을 지키지 않으면.... 폐하가 슬퍼하시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남겨 놓고 먼저 죽는 것 보다 더욱, 사랑하는 남자가 홀로 남겨져 

쓸쓸히 그리움에 사무쳐 슬퍼하는 모습이 더욱 괴로웠기에.


아르망은 사령관의 뜻에 따라 사령관의 희생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것이 자신의 가슴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발기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앗아가는 행위임에도.

그녀는 결국 사령관의 마지막 뜻을 지켜냈다.


"원래 저 또한 폐하를 따라가려고 했었지요."


아르망이 눈물을 손등으로 쓸어내며 기념비를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답니다. 폐하께서 남겨 놓으신 편지를 읽었거든요."


사령관의 모든 것들을 예측할 수 있다 자부했지만 딱 하나 그러지 못한 것이 있었다.

사실 편지를 남겨 둘 줄은 아르망도 전혀 예지 하지 못했다. 그 편지는 사령관이 사망할 경우,

아르망에게 자동으로 전송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내 가장 소중한 동반자이자, 가장 친애하는 조언자 아르망에게.'


그 구절로 시작된 편지는 사령관의 못 다한 말들과 하고 싶었던 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먼저 떠나가는 자신을 대신해 미래를 살아갈 후손들을 지켜 달라는 말이 써 있었다.


가능하면 최대한 늦게 자신을 보좌하러 와 달라는 부탁까지.

빠르게 오면 많이 화낼지도 모른다는 그의 귀여운 협박도 적혀 있었다.


"폐하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부탁하셨지요. 명령 같은 딱딱한 표현은 싫다고 하시면서."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배려하고, 언제나 자상하게 사랑을 나누어 주던.

마치 푸른 하늘에 고고하게 떠 있는 태양과 같은 사람.


"신, 아르망. 비록 폐하를 완벽하게 모시지는 못하였지만 폐하의 유훈 이나마 완벽히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아르망이 그 말을 끝으로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드넓게 펼쳐진 도심지의 스카이라인,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차량,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

그리고 그 소음속에 분명히 섞여있는 아이들의 활기차고 밝은 웃음소리. 


문명이 다시금 발전하고 세상은 평화가 돌아왔다.


"만족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폐하."


그 말을 끝으로 아르망이 사령관의 기념비를 향해 건배를 올리고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폐하께서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했어! 아르망!' 이라고 하시겠지요."


아르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립습니다. 폐하... 엄~청 많이... 너무 많이 보고 싶어요."


아르망이 사령관의 기념비를 향해 차분히 고개를 숙이며 묵념한다.


"그래도,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폐하의 충신, 아르망.

폐하의 뜻을 완벽하게 다 이루는 그 날, 폐하의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아르망의 황금 빛 머리칼을 휘날리게 만들었다.

마치 사령관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듯, 부드럽고 온화하게 그녀의 곁을 멤돈다.


주군의 빈자리를 그리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