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울려퍼졌다. 총알이 가녀린 몸을 관통해 폭발을 일으키고 바닥에 박힌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들의 귓전에 그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 붙은 채, 그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경악하며 두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아파..."


한입 정도 먹다 남은 참치캔이 바닥에 떨어지고 뒤따라 왈칵 피가 흩뿌려졌다. 에이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앞에 서있던 사람들을 제치고 달려가 바닥에 쓰러지려는 LRL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빠르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혈제와 틀어 막을 천을 찾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유사시의 응급 처치가 학습되어 있었고 피는 질리도록 봐온 것이었다.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쉴새 없이 떨리고 시야는 어째서인지 자꾸만 뿌얘졌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줘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자? 바로 수복실에 가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에이미는 애써 미소지으며 LRL을 안심시켰다.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살면서 겪었던 그 어떤 상황보다 두려운 지금, 냉철하고 이지적인 암살자의 사고는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그런 에이미의 말에도 불구하고 LRL은 힘겹게 미소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였다. 에이미는 이빨로 지혈제의 봉투를 찢고 LRL의 상처에 그 하얀 가루들을 쏟아 부었다. 에이미가 지혈제를 뿌리고 상처에 천을 쑤셔박을 동안까지 얼어붙어 있던 인원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소 혼란한 감이 있었지만 잘 훈련된 인원들 답게 처리하는 과정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빨리 처 뛰어!"


드물게 욕설까지 섞어가며 브라우니를 닦달하는 레프리콘이었지만 욕을 듣는 브라우니도, 레프리콘도 감정 따위는 상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비행중이었던 슬레이프니르가 무전을 듣고 초고속으로 선회해 LRL을 넘겨받고 오르카호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에이미는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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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속이여 기억하느냐?"


"...."


LRL의 말에 사령관은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의 작디 작은 손을 두손으로 꽉 잡고 있을 뿐이었다. 사령관이 대답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자 LRL은 나이 답지 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재차 사령관을 불렀다.


"사령관..."


"응..."


"난 사령관이 진짜 좋아."


사령관은 무어라 말하려다가 목이 메이는지 두꺼비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힘껏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LRL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100년을 기다리고서야 만난 인간님이 사령관이라서 정말...다행이라고 생각했어...사실 무서웠어...내가 봐왔던 인간님들이랑 비슷할까봐..."


"LRL...말을 그만하고 일단 안정을 취하자..."


사령관의 제지에도 LRL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사령관이랑 같이 다니고...철충들이랑 싸우는건 무서웠지만...그래도 사령관이 있어서...너무 좋았어..."


LRL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본 사령관은 질겁하며 LRL을 멈추게 하려고 했지만 그가 잡고 있는 조그마한 손이, 그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억센 힘이 사령관을 잡아 끌었다. 사령관은 LRL의 눈을 마주보았다. 커다랗고, 티없이 그 맑은 눈을 보고 있자니 무엇인가 꿰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사령관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래서...사령관이 슬프지 않게 노력할게..."


LRL은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으며 사령관과 마주잡은 손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사령관은 그 어느때보다 슬프게 울면서 미소 지었다. 알겠노라고, 그럼 나도 LRL을 믿고 네가 힘들지 않게 울음을 참겠노라고 엉엉 울며 말하였다. 사령관은 LRL이 잠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LRL의 손을 놓고 수복실을 떠났다. 수복실 밖에서 울면서 기다리다 지쳐 잠든 에이미에게 자신의 겉옷을 덮어주고 떠나려는 순간.


"사령관."


사령관은 자신을 불러세우는 닥터의 목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오빠라고 부르던 평소와는 달리, 결연한 얼굴과 사령관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사령관은 가슴에 납덩이가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사령관은 한걸음 한걸음 닥터에게 걸어갔다. 그 어느때보다도 무거운 발걸음에 고작 다섯걸음 정도였지만 사령관은 비오듯이 땀을 쏟고 있었다.


"일단 LRL의 상태는 괜찮아, 안정기에 들어갔어. 총탄도 제거했고."


닥터가 사령관에게 손가락 한마디 만한 총알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지금은 브라우니들도 쓰지도 않는 구식의 총탄이었다. 사령관은 총알을 건네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주의사항과 사령관은 오르카호의 최고 위치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말하려던 닥터는 당황하며 몸을 숙였다. 닥터의 무릎에 머리를 댄 사령관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닥터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듯 허둥 거리다가 체념한 듯한 한숨을 내쉬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그대로 사령관에게 무릎 베개를 해주었다. 항상 듬직하고 거대해 보였던 사령관이었지만 땀과 눈물에 절어 쓰러진 사령관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쓸어 넘겨주면서 닥터도 눈물을 흘렸다. 두려웠던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큼직한 보호경 안쪽으로 눈물들이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져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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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L은 그날 새벽 사망하였다.

사인은 저격한 총기나 총탄의 기술에 의한 2차 충격과 중독에 의한 쇼크사로 추정되었다. 사령관의 눈앞에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사령관에게 미소지으려 노력하였다.


그날 오르카호는


침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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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급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있었기에 더더욱 진행되야 하는 회의였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고 30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누구하나 말 한마디 내뱉는 이가 없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무거운 침묵이 자리잡은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침묵을 깨트린 자는 사령관이었다.


"금일 오전 04시 34분경...사망한...."


사령관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멈추고 이를 악물었다. 치아에 금이 가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고요한 회의실에 선명히 들려왔고 사령관이 주먹을 쥐자 근육과 핏줄들이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들까지 들려왔다.


"씨발!"


사령관은 지휘관 회의를 한 이래 처음으로, 더 나아가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르카호의 인원들 앞에서 욕을 내뱉으며 거세게 분노하였다. 분에 못이겨 테이블을 내려치자 테이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저 앉으며 부러져버렸다. 누구도 사령관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의 분노가 그의 슬픔이 곧 그들의 분노이자 슬픔이었으니까. 사령관은 자신의 양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지휘관실에 모인 인원들 모두 사령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