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계에 온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정말이지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모바일 게임 내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라스트오리진을 플레이하며 별의 아이의 존재를 포함한 수많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던 나는 어찌어찌 좋은 흐름을 타는데 성공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 지구에는 철충도, 별의 아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한 나는 평화로워진 지구의 패권을 인간이 아닌 바이오로이드에게 넘기기로 마음먹었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바이오로이드의 제약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나 스스로도 2세를 만들 일이 없도록 몸에 조치를 취하고 지금은 새롭게 재건되는 바이오로이드의 세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숫자가 좀 많지만 서약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영원히 함께하기로 맹세한 나의 아내들과 함께 오르카를 타고 지구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바이오로이드 세력과 동맹을 맺고 가끔 지상에 올라가야 할 때 서로간의 불가침 및 지원을 약속받은 뒤, 새로운 세상에 방해가 될만한 위험요소의 제거를 위한 탐험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지만 사실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 이 여행은 나와 수많은 내 아내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이어질 끝없는 신혼여행이라는 것을.


솔직히 여행은 즐거웠다. 물자도 풍족할 뿐더러, 이미 수많은 대전을 겪고 베테랑이 된 아내들은 가끔씩 과거의 감을 잊지 않기 위한 전투훈련만을 할 뿐, 전에 비해서 극도로 쾌적한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밥도 맛있고, 다양한 매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아내들이 항상 살갑게 나를 맞이해주고, 가끔 작은 다툼은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모두가 친하게 지내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하렘 생활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닥쳐왔다. 처음에는 꿈이나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가 내 눈 앞에 나타났음에도 잠자리를 함께하던 아내들 중 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것은 나에게 지속적으로 속삭여왔다. 10년 전, 이 세계에 내가 왔을 때. 나는 완벽한 나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일부만이 나누어진 채로 사령관이 되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나를 이루던 나머지들, 이 세계로 오기 전의 내가 버리고 싶어하던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지만 그것의 말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이전 삶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았으니까, 라스트오리진이라는 세계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지만 그 외의 기억들은 마치 일부러 제어당한 것처럼 뿌옇게 흐려져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나의 흔들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천천히 속삭여왔다. 과거 이 몸이 되기 전의 자신은 약해빠지고 자기혐오가 심했기에 굳이 자신을 여러 개로 나누었지만, 오르카의 지배자나 마찬가지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더라도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솔직히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과거의 내가 어떤 인간이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이제와서 음습한 자신의 일부를 받아들이다고 하더라도 10년간 전장에서 별의 별 일을 겪으며 강해진 내게 큰 문제가 될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제시한 것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자신에게는 인간이나 바이오로이드가 가지지 못한 초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오르카의 생활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약간 단조로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일상에 커다란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 굉장히 마음이 끌렸다. 유일한 걱정은 그것의 설득에 내가 넘어갔을 때 나 자신이 그것에게 잡아먹혀버릴 수도 있는 가능성. 아내들에게는 크게 티내지 않고 고민하던 시간이 이어진 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자극을 위해 도박에 몸을 던지기로. 


나의 결정을 들은 그것은 지극히 즐거운 느낌의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었고, 그날 밤. 가끔씩 있는 혼자 잠드는 날에 나와 그것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나의 몸 속으로 스며들고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혼란스러운 느낌이 이어졌다. 마치 내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된 것 같은 느낌. 여러 기억들이 섞여서 무엇이 진실인지 어그러지는 느낌이 들었고, 하나의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른 두 가지 감정이 발생하는 등, 마치 혼돈으로 이루어진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 같은 밤이었다. 하지만 10년 정도 떨어져있었을 뿐 원래부터 하나였던 정신. 두 개의 정신은 두 개의 물방울이 섞여나가듯이 어느 새 하나가 된 채 안정화되었고, 그렇게 나는 오늘 아침에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합일되기 전에 기대했던 과거의 기억 따위는 이제와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10년간 사령관으로 살아왔던 기억과 자아, 그리고 10년간 어둠속에서 스스로를 계속 부풀렸던 자아. 두 개의 자아가 합쳐졌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오르카의 주인이었고, 사랑하는 나의 아내들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내가 혐오했던 이상성욕에 가까운 특이한 욕구들과 기이한 초능력을 가진 특이한 인간이기도 했다. 자아가 확립된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분명히 아내들이 사랑하는 나와는 조금 달랐으니까.


아마 합일 전의 나였다면 나 스스로를 고쳐서 아내들의 취향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어렵게 확립된 지금의 자아 그 자체로서 그녀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게다가 나에게는 그녀들이 아직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그 음습한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쾌락과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전제 조건이 이것저것 필요하기는 해도 그녀들을 변화시키고 그녀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나에게 예속시킬 수 있는 초능력. 솔직히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사랑에 빠져서 서로 마음을 교환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반지를 끼워주던 그 때처럼, 나의 사랑하는 아내들을 지금까지보다 더욱 더 깊은, 그리고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랑의 늪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선택은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지금부터 천천히...계획을 세워봐야겠다. 맛있는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도 절호의 기회를 노리는 포식자의 기분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 때 오르카 전체에게 희망과 승리를 주기 위해 쏟았던 나의 전력을 이번에는 내 욕망을 위해 그녀들을 나의 포로로 만들고 그녀들의 마음을 더욱 나에게 빠져들게 만드는 데 사용해 볼 것이다. 이것은...꽤 재미있는 유희가 될 것 같다.





우와. 이렇게 써놓고 보니 씹덕 중2병 느낌이 슬슬 풍겨오기는 하는데 애초에 그런 이야기가 될테니 어쩔 수 없지. 

제목에도 썼듯이 본편 들어가기 전에 간 좀 보려고 올리기도 했고, 1편을 쓰는데 이게 들어가면 좀 사족같아서 먼저 써봤음. 대충 이거 반응 or 1화 반응 보고 쓸지 말지 정하려고.


본편은 좀 정줄 놓게 만드는 소설이 될 것 같고, 키워드로 정리해보면 스캇, 세뇌, 최면, 초능력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음. 스캇 치고는 되게 약한 편이긴 할건데 당연히 본편은 제목이랑 본문 앞에 경고표시 다 넣어서 쓸거고. 과연 이런 미치광이 소설을 볼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