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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4편


어느 날의 저녁.

사령관이 직접 저녁점호를 진행하며 특이사항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환자나 특이사항은 바로 함장실로 보고하고, 모두들 잘자라~."




"편안한 밤 되십시오!"




그렇게 점호를 마치고 함장실로 돌아가는 사령관.

각 숙소마다 취침준비를 하기 시작하고, 발할라 숙소 역시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티비 연등 각인가요?"




님프가 베라에게 작게 속삭이고, 베라는 발키리와 레오나, 샌드걸의 눈치를 살피며 답한다.




"허락받아야하지 않을까요?"




"일단 발키리 님은 무조건 허락해줄테고... 샌드걸 님이랑 대장님은 모르겠네..."





그렇게 둘이 속닥이던 중, 그렘린은 이미 진작에 텔레비전을 틀어서 영화를 고르고 있었고, 알비스는 과자를 한가득 가져오고 있었다.




"자, 잠깐! 허락 받으셨나요?"




"에이~, 괜찮아! 발키리 님도 허락해주셨다고~."




"그야 발키리 님은 뭐든지 다 들어주시니까..."




그렇게 분위기를 타며 영화 시청 준비를 하는 발할라 대원들. 그 때, 샌드걸이 다가와 말하기를.




"흐음... 티비 연등인가요? 허락은 받으셨나요?"




"네, 발키리 님이 허락해주셨어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발키리가 나타난다.




"정말로 허락해주신 건가요?"





"아, 그... 네."





"으음... 그럼 대장님께도 허락을 구하셨나요?"




그러자 우물쭈물하며 보노보노처럼 진땀을 흘리는 발키리. 그녀는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변명하기 시작한다.





"그, 자매 분들 모두 평소에 열심히 하시니까... 가끔씩은 이렇게 영화라도 보는게..."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대장님은 어디 가셨죠?"





"아, 지금 치카치카 하고 계세요."





그 때, 둘의 뒤에서 나타나는 레오나. 그녀는 한 손에 칫솔을 든 채 볼을 부풀리며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 허락도 안받고 티비 연등이라니... 혼나고 싶어!?"




"앗, 대장님... 치카치카는 다 하셨나요?"





"치카치카라고 하지마! 난 어린애 아니라구! 그리고 발키리, 내 허락도 없이 티비 연등을 허락하다니... 군기가 많이 빠졌구나!"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다른 대원들 역시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대장님..."





"...그래서 무슨 영화 볼건데?"





"고, 공포영화에요..."





레오나의 물음에 그렘린이 조심스레 답한다.

그러자 레오나는 칫솔을 갖다놓은 뒤, 아장아장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흥, 이번만이야. 다음에는 없어!"





레오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대원들. 발키리는 레오나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대장님, 공포영화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성인이셨을 때에도 못보시던걸..."





"웃기지마! 난 긍지높은 발할라의 대장이야. 무서워하는게 있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난 원래 몸일 때에도 공포영화 엄~청 잘봤거든?"





발키리는 레오나가 성인이었을 적, 공포영화를 보고난 뒤, 부하의 안전을 위한거라는 핑계로 다른 대원들과 같이 잤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갈 때에도 자신을 깨워서...





"발키리, 이상한 생각하는거 아니지?"





"그럴리가요..."





그렇게 복도의 불빛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그렘린이 영화를 틀었고, 대원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영화를 시청한다.



레오나는 양반다리로 앉아있는 발키리의 다리 위에 앉아서 과자를 오독오독 씹었다.




"대장님, 무서우시면 말씀하세요."





"하나도 안무서워. 난 별의 아이랑도 전투를 치뤘다고."





그래, 귀신 따위가 대수랴. 그 무시무시한 별의 아이랑 전투를 치뤘던 그녀에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리라. 물론 별의 아이와 처음 조우했을 때에는 나름 겁을 먹긴 했지만.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고, 모두가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한창 영화에 열중하던 중, 무서운 장면이 나오자 님프와 베라가 흠칫 놀라고, 알비스는 재밌다며 더욱 열중하기 시작한다.



샌드걸과 그렘린도 나름 재밌게 보고있었고, 발키리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레오나는 꽤나 겁먹은 듯 발키리의 품에서 벌벌 떨고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화면에서 시선을 때지않았으며, 떨리는 고사리손으로 과자를 뽀시라뽀시락 집어들어 입에 넣고있었다.




"대장님, 무서우시면 먼저 주무셔도 괜찮습니다."




"흥... 안무서워...! 북방의 암사자인 내가 이런걸로 겁먹을리가 없잖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벌벌 떠는 레오나를 꼬옥 안아주는 발키리. 레오나는 발키리의 온기를 느끼며 겨우 진정한 듯 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시계바늘은 어느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가 길게 하품을 하며 잠자리로 돌아갔고, 발키리 역시 레오나를 침대에 눕히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무서우시면 저랑 같이 자도 좋습니다."





"너, 날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난 그런걸로 겁먹지 않아."





"알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그래, 잘자."






깊은 밤, 모두가 잠들고 레오나도 눈을 감는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 속에서 멤도는 무서운 장면들.

레오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잡념을 떨쳐내려 했으나, 무시무시한 귀신들은 그녀를 괴롭히는게 재미있는 듯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으..."





레오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평소 잘 때 껴안던 커다란 토끼인형을 꽉 껴안았다.



어떻게든 잠에 들려는 레오나. 하지만 무서운 장면을 의식할수록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 없었고, 급기야 신경이 예민해지기에 이른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움찔하며 반응하는 레오나. 그녀는 조용히 이불을 걷어서 토끼인형을 품에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드르렁~. 쿠울... 드르렁~. 쿠울..."





발키리의 침대로 향했으나, 엄청난 코골이에 가로막혀 걸음을 멈추는 레오나.





"우와... 얘 의외로 코골이 심하구나..."





레오나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서 밖으로 향했다.

공포가 온몸을 지배한 지금, 그녀가 떠올린 사람은 하나. 바로 사령관이었다.



어려지기 이전부터 커다란 덩치로 꼬옥 안아주었던 사령관. 레오나는 그를 찾아가기 위해 모험의 길을 나선다.




밖으로 나가자 그녀를 반겨주는 짙은 어둠.

어둠 속에서 고요히 들려오는 웅장한 기계음이 음산함을 더해주었다.




"흐윽... 달링..."





레오나는 토끼인형을 껴안은 채 조심히 한발짝씩 나아간다.

혹여나 길을 잃을까 벽면을 짚으며 나아가던 그녀는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다.




"흐익...!"





잔뜩 겁에 질려 토끼인형을 부둥켜 안는 레오나.

이내 그림자가 바짝 다가오고, 레오나는 두눈을 질끈 감는다.





"레오나 대장님이십니까?"





들려오는 목소리. 레오나는 조심스레 눈을 떠본다.

그러자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브라우니였다.





"뭐, 뭐야... 스틸라인 아이잖아..."






"레오나 대장님,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흠, 별 거 아니야. 그냥 달링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 근무 도중에 특이사항은 없었겠지?"






"네, 근무 중 이상없습니다. 제가 함장실까지 데려다드립니까?"






"됐어.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그럼 수고하도록."






그렇게 브라우니가 경례하며 레오나를 떠나보내고, 레오나는 다시 벽을 짚으며 조심히 함장실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아가다 그녀의 발목을 잡는 냄새.

이것은 분명 라면 냄새였다.




레오나는 그 냄새에 이끌려 방향을 틀었다.

마침 복도 끝자락에서 세어나오는 빛줄기. 레오나는 그곳을 향해 도도도도 달려갔다.




그곳은 다름아닌 지휘통제실.

레오나는 지통실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조심히 들어갔다.




그곳에는 상황병인 레프리콘과 통신병인 브라우니, 당직부관인 이프리트 하사와 당직사령인 블러디팬서가 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다.




레오나가 조용히 들어와서 얼굴을 비추자 일동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렸고, 레오나는 가볍게 맞경례를 했다.





"레오나 소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달링에게 볼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잠시 들렸어. 그런데, 근무 중에 라면 취식이라니..."





레오나가 라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식겁하여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프리트는 이제는 될대로 되라는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블러디팬서는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저희도 엄연히 생물인지라 힘을 내려면 뭐든지 먹어야하지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소장님께서도 한입 하시지 말입니다?"





"...흥, 이번만 넘어가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쫄래쫄래 블러디팬서에게로 다가가는 레오나. 블러디팬서는 그녀를 번쩍 들어서 무릎 위에 앉힌 뒤 젓가락을 쥐어주었다.





"뜨거우니 조심하시지 말입니다."





레오나가 라면을 후룩 빨아들이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우물우물 꼭꼭 씹기 시작했다.

천천히 음미하던 레오나는 라면이 꽤 매웠는지 혀를 삐죽 내밀고 발을 동동 굴렀다.





"헤엑... 매, 매워..."





"어이쿠, 소장님 입맛에는 좀 맵나봅니다. 상황병, 우유있나?"





"그, 쿨피스 있습니다."





"그래, 그거라도 갖고와줘."





레오나는 쿨피스를 받자마자 벌컥 들이키고는 블러디팬서의 무릎에서 내려온다.





"후우... 너무 매워... 이런걸 어떻게 먹는거야!?"





"하하하, 제가 태생이 한국놈이라 매운걸 좋아하지 말입니다. 사과의 뜻입니다. 가져가시지 말입니다."





블러디팬서가 과자 한 봉지를 그녀에게 쥐어주었고, 레오나는 흡족한 듯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레오나는 지통실을 빠쟈나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함장실에 가까워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져갔고, 레오나는 토끼인형을 부둥켜 안은 채 숨을 죽였다.





그 때,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

쿵, 쿵, 쿵... 둔중한 걸음소리가 바닥을 울리고, 레오나는 잔뜩 겁에 질려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흐윽... 달링..."





레오나는 토끼인형을 꼭 껴안은 채 몸을 웅크렸고, 둔중한 걸음은 점차 가까워져갔다.





그리고 걸음이 레오나의 앞에서 우뚝 멈춰섰고, 거대한 그림자가 쪼그려 앉아 레오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흐으윽.... 달링..."






"레오나, 나야."






익숙한 목소리. 이에 레오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보였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그림자의 정체. 그는 사령관이었다.



사령관과 만나자마자 그대로 몸을 일으켜 품에 안기는 레오나. 사령관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려줬다.





"레오나, 왜 여기있어? 코 자야지."






"으응~, 나 달링이랑 잘거야..."





사령관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떨어질 생각을 않는 레오나.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안은 채 함장실로 향했다.





"레오나, 나랑 잘려고 혼자 복도를 돌아다닌거야?"





"......"





"혹시 무서워서 그래?"





아무런 대답도 없는 레오나. 사령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둥부둥해주었다.





"어휴, 뭐가 무섭다고 여기가지 찾아오고 그래~. 발키리 있잖아?"






"발키리는 코골이가 심해..."





"...그건 좀 의외네. 그런데 내 침대는 불편해서 자기 힘들텐데?"





"...그래도 달링이랑 잘거야."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랑 같이 자자."






그렇게 함장실로 들어오는 둘.

아직 불이 켜져있는 함장실. 이에 레오나는 의아해하며 사령관에게 물었다.





"달링, 일 안끝났어?"





"이제 막 끝났어. 마지막으로 순찰돌던 중이었지. 근무자들이 자는지 안자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피곤하겠다..."





"딱히. 너희들에 비하면 고생하는 것도 아니지."





사령관은 레오나를 잠시 내려놓은 뒤 뒷정리를 하고는 다시 레오나를 번쩍 들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 다다른 사령관은 레오나를 먼저 침대에 눕힌 뒤, 잠옷으로 환복하고 레오나 옆에 누웠다.


사령관이 도톰한 이불을 덮어주고, 레오나는 토끼인형을 껴안은 채 사령관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달링, 내 옆에 꼭 붙어있어줘."





"응, 알았어. 그럼 잘자."





사령관이 레오나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고, 둘은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




철컥.





이른 아침.

사령관의 손목에는 은색 팔찌가 채워진다.





"얘들아, 오해야..."





"왓슨, 변명은 가서 하자고. 설마 이른 아침부터 출동하게 만들 줄은 몰랐는걸~."





"난 억울해! 난 그냥 레오나가 무섭다길레 같이 자준 것 뿐이라고!"





사령관은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시티가드는 아랑곳 않고 그를 연행해갔다.




하필이면 레오나는 아직도 꿈나라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고, 사령관은 아침부터 리앤과 함께 물의 신비함을 몸소 깨우치게 되었다.




다행히 레오나가 깨어나면서 오해는 풀렸으나, 그 뒤로 레오나는 사령관과 같이 잘 수 없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