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661060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666740

3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675115

4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786284

5편 https://arca.live/b/lastorigin/34850025


--------------------------------------------------------------------------------------------------------------------------------------------------------------------------------------------------------------------------------------------------------------------------------------------------------


어지러웠다


흔들거리는 초점과 마구잡이로 굴러다니는 기억들을 애써 정리하려고 노력한다. 둔탁한 충격이 겨우 정리해놓은 기억들을 흐트러트린다. 다시 어지러움을 참고 기억들을 차근차근 주워담는다. 이번에는 날카로운 차가움이 전신을 강타했다. 숨막히는 고통이 무의식에 잠겨있던 그를 거칠게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미인도 아니신데 너무 잠이 많으시네."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사슬에 매달려 있는 사령관에게 말하였다. 사령관은 밀려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속을 게워내었다. 사령관의 몸을 채웠던 물들이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나왔다. 오메가는 그런 사령관의 모습을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리를 꼬았다. 사령관은 그런 오메가를 노려보더니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몸을 감은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 같은 꼴이었다. 바닥에는 깊이를 알수 없을 정도로 깊은 수조에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사령관은 발버둥 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철두철미한 오메가에게 있어서 무의미한 행동일 테니까.


"알 수 가 없단 말이지."


오메가가 턱을 괴며 말하였다.


"분명 멍청하지는 않았을 텐데 뭘 믿고 이런 바보같은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어."


오메가가 패널 하나를 사령관의 앞에 띄웠다.


"당신도 알고 있었을텐데, 당신과 나의 싸움은 어느 한쪽의 머리를 치기만 해도 순식간에 끝나는 싸움이란거. 그런데 왜 이렇게 바보 같이 자기를 노출시킨걸까?"


사령관은 대꾸하지 않았다. 사령관에게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떨어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침묵이 흐르자 오메가가 다시 한번 손짓했고 사령관은 순식간에 수조 속으로 추락했다. 오메가는 속으로 15초 정도를 세고는 다시 사슬을 위로 올리라 손짓하였다. 사령관은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와는 달리 그저 가만히 매달린 채 오메가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메가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한번 맞춰볼까? '사령관'? 당신은 앞서 말했듯이 왕을 끌어내기 위해서 스스로 앞으로 나선거야. 그 누구도 거절 할 수 없는 미끼를 내놓은거지. 안 그래? 옛날에 그 약해빠진 연결체를 꾀어낼때 처럼 말이야."


사령관은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다시 한번 물에 담궈버릴까 고민했던 오메가였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흥미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메가는 이제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 위치를 특정할수도 없었을거고 장기 소모전으로 끌고가면 당연히 오르카호가 불리해지지, 게다가 철충과 별의아이들이 언제고 조용할지도 모르는 와중이니까 당신은 빨리 끝내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스스로 잡힌거지."


"의외로 말이 많은 편이네."


사령관이 입을 열자 가면 아래로 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령관은 재밌다는 듯이 킥킥 거리더니 입에 고인 물을 마저 뱉어냈다.


"같이 말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건가 응? 간만에 떠들 상대가 생겨서 신난거 같아."


사령관이 웃음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오메가에게 비아냥 거렸다. 물론 오메가는 이런 저급한 비아냥에 반응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령관의 말을 무시하고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왜 그랬을까? 뭐 암살 같은걸 노렸다면 이렇게 직접 잡히는 것 보다는 당신의 잘난 '가족' 같은 년들을 보내는게 그나마 더 낫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때 비맞으며 질질 짰을 때 처럼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고 싶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오메가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뭐 나랑 1대1로 마주하면 승산이라도 있을 줄 알았던 건가?"


사령관의 눈앞에 띄워진 패널에 정보가 띄워지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잠자코 그것들을 읽었다.


"제법 거창한 시술들을 했더군, 오리진 더스트 추가 주입, 신체 개조. 이건 뭐 사람도 바이오로이드도 아니고 거의 AGS급으로 몸을 뜯어고쳤던데 용케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네."


레모네이드가 하나 하나 읊어 내리며 사령관을 흘긋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다시 침묵하고 있었다. 오메가는 살짝 열이 올랐다. 이 남자는 어째서 저렇게 무덤덤 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회심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것이 아닌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저 짜증 나는 가면이라도 벗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행여나 무슨 속셈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있는 그녀였다. 오메가는 그를 더 자극해보기로 했다. 이대로는 재미가 없었다.


"좌우좌 라고 불렀던가 너희들은?"


LRL의 별명을 부르자 사령관은 눈에 띄게 동요하며 움찔거렸고 그를 옭아 맨 사슬이 쩔그렁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대로 건드렸다. 오메가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가 널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젠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몸뚱아리로 바꿔 가면서 까지 복수해주려고 했는데 벌레 마냥 묶여 있는 모습을 보면."


"복수?"


사령관이 오메가에게 되물었다. 그러고는 혼자 킥킥 거리더니 이내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 광기 어린 웃음에 오메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서야 사령관은 마른 기침을 내뱉으며 웃음을 멈추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클클 거리며 오메가를 노려보았다.


"진짜 멍청한 년이네 이거. 복수? LRL이 복수 같은걸 바랄 거 같아?"


사령관의 기세에 질려버린 오메가는 입술을 깨물며 침묵하였다.


"넌 이게 복수로 보이냐? 아니야...이건 그냥 내가 화나서 벌이는 개짓거리야...넌 재수없게 정신 나간 미친놈을 건드려서 뒤질 예정인거고...그 여리고 착하고 순수한 애가 너같은 쓰레기 걸레 년한테 복수하기를 바랄까? 아니 그럴리가 없지, 만약 살아 있었다면 내 앞에서 개처럼 기어다닐 너를 보면서 이제 그만하자고 울면서 말렸을 걸?"


분에 못이긴 듯 사령관의 온몸이 덜덜 떨리자 그에 맞춰 사슬도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잘 들어...어차피 그럴 수 도 없을 테지만, 다시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더 좆같아지니까."


사령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오메가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이 남자는 여기서 죽여야 한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방법으로.


--------------------------------------------------------------------------------------------------------------------------------------------------------------------------------------------------------------------------------------------------------------------------------------------------


오르카호는 당연히 파란이 일었다. 그동안의 질서 정연하고 체계 잡혔던 모습은 신기루 였던 것 처럼 모든 인원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무적의 용은 사령관의 위치도 파악되지 않았지만 전 함대를 이끌고 출격하겠다고 날뛰었다. 스카이나이츠들은 이미 날아가버려 가타부타 떠들 여유도 없었다. 메이는 모든 핵 미사일을 때려박아서 초토화 시키면 어디선가 나오지 않겠냐는,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뱉었다. 레오나와 칸은 마지막으로 사령관의 곁에 있었던 로크를 닦달하다가 아직 아머드 메이든이 귀환하지 않았단 것을 깨달았다. 마리는 침묵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라비아타 역시 침묵 한 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롭게 들어온 통신은 따로 없는 건가?"


마리가 침묵을 깨고 유미에게 질문하였다. 쉴 틈 없이 타자를 두드리며 무언가 하고 있던 유미는 마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상시보다 퀭해 보이는 그녀의 눈가는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워질 정도였다. 마리는 고개를 돌려 침묵을 지키는 라비아타를 바라보았다.


"통령께서는 무언가 알고 계시겠지요."


마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라비아타를 향하였다. 라비아타는 마리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만...사령관께서는..."


라비아타의 말을 끊고 날카로운 전파음이 오르카호를 가득 채웠다. 한참을 시끄럽게 울린 그 소리가 채 머리에서 떠나기도 전에 오르카호의 모든 화면에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오르카호의 모든 인원들은 좋든 싫든 화면에 송출되는 영상에 시선이 고정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녕하신가요 오르카호 제군 여러분."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상쾌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의 '사령관' 이라는 작자를 잡고 있고 곧 처형할 예정입니다."


레모네이드가 생글거리는 미소를 유지하며 손으로 뒤쪽을 가리키자 카메라는 오메가의 손짓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마도 힘줄이 끊어 진 듯 양팔과 양다리가 피를 흘리며 늘어진 사령관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얼핏 봐도 열개는 넘어보이는 총구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오르카호가 분노하기도 전에 오메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끈질기게 저항하는 버러지 분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제대로 보여드리는게 나을 것 같아서 수고를 무릎쓰고 생중계를 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어딘가에는 인간이 있을거라는 헛된 믿음으로 계속 싸워온 당신들의 저급한 끈질김을 감안해서 말이죠. 이 '사령관' 의 머리통이 날아가는걸 제대로 보지 않는 이상 당신들이 믿을 것 같지가 않더라구요."


오메가가 사령관에게 다가가자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르카호의 인원들의 머릿속은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이건 가짜다, 가짜임이 분명하다. 오메가가 거친 손길로 우악스럽게 사령관의 가면을 벗기자 오르카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식하였다. 성한 곳이 없는 피투성이의 얼굴은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노예 년들에게 할말이라도?"


오메가가 사령관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말하였다. 카메라가 사령관의 피투성이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오메가는 기대에 찬 얼굴로 사령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사령관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오르카호의 전 인원들에게 알린다."


사령관은 잠시 말을 끊고는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몇번의 마른 기침이 뒤따라 오고 나서야 사령관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현 위치의 좌표를 오르카호에 송신하겠다."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지금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좌표를 보내? 무슨 재주로?


"사안이 촉박하니 제군들은 잘 숙지해주기를 바란다. 좌표 송신 후의 지휘는 본인 '사령관'의 귀환 전까지 알바트로스와 라비아타에게 일임한다.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해주기를 바라며 항상 내가 말했던 걸 잘 지켜주길 바란다."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는거야..."


사령관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말자구."


오메가는 사령관에게 크게 실망했다. 마지막에 와서 이렇게 실성해버릴 줄이야. 죽음 앞에서 초연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추잡한 꼴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오메가는 혀를 차며 손을 까딱였고 사령관을 겨누고 있던 총들이 불을 뿜었다. 수천개의 총탄이 사령관의 육신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주인님, 하마터면 나쁜 리리스가 나올 뻔했어요."


"리리스 마음대로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 나는."



--------------------------------------------------------------------------------------------------------------------------------------------------------------------------------------------------------------------------------------------------------------------------------------------------


장화 2부 스토리가 실망이라 진이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