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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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건물 잔해들과 여전히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털며 밖으로 나간 곳엔 수많은 눈이 사령관을 반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마리가 허리를 펴라며 등을 지긋이 밀었기에 올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헤어졌던 부대원들을 살아서 다시 만나 서로를 얼싸안은 이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다는 듯이 아직도 멍한 표정인 이들, 신나게 자신의 무용담을 풀어놓는 이들까지. 한껏 들뜬 목소리들이 실험실 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가 접어들기 시작했다.

 

“모두들, 고생 많았습니다.”

 

사령관의 목소리가 전원이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는 공터를 울렸다. 하늘을 온통 뒤덮은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려왔다.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사령관에게 내려앉은 햇빛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날개 없는 구원자의 모습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특히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직접 전해들은 지휘관들의 경우, 신을 영접한 것 마냥 홀린 듯이 그들만의 구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인류 재건이라는 거대한 목표아래, 서로의 등과 어깨를 지지대 삼아 지난날들을 버텨왔습니다.”

 

긴장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듣기 편안하고도 진중한 사령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레프리콘의 걱정과 다르게, 평소 산만한 브라우니조차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땅 속에는 전대 인류의 위대한 영혼들이 묻혀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 ‘번영’이라는 목표아래 이 땅을 이루었고, 그들의 피와 땀, 시신으로 만든 기반위에서 ‘승리’라는 값진 영광을 얻었습니다.”

 

사령관은 자신의 위치가 짊어지는 무게에 대해 매일 밤 생각했다. 자신을 피하는 이들로부터 익숙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난생 들어본 적 없는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쑥스러운 고백을 받기도 하고, 바뀐 미래에 휘말려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현재 우리는 인류의 존속을 내건 전대미문의 위대한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업적을, 위대한 싸움을, 영광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만이 오늘의 힘찬 발돋움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인류’로서 지금 이 자리의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대업을 잇게 할 의무가 제겐 있습니다.”

 

사령관을 가득 채운 감정들이 몸 안에서 휘몰아쳤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든 세상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사령관의 몸과 정신을 좀먹던 부정적 감정을 이들이 덜어주었고, 비록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령관은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꿈을 이루지 못할 세계에서 죽은 채로 살아가기보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누군가의 꿈을 이뤄가며 죽어가기로.

 

“선언합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비록 작은 한 걸음일지라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빼앗았던 광활한 영토 위에 꽂을 저항군의 자유의 깃발을, 후대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잠시 후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서로 옆에 있는 이들을 감싸 안고 울고 웃었다. 브라우니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레프리콘도, 드디어 맏언니를 만난 페로도, 사령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토모도 마찬가지였다.

 

이 날, 대규모 전투를 치렀음에도 오르카호의 사상자수는 단 ‘0명’이었다.

 

*

 

“다들 즐기는 분위기에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각하, 오히려 각하와 함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정말, 정말 괜찮나요, 주인님?”

 

콘스탄챠가 괜찮은지 묻는 말과는 다르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오르카호는 전투 승리 후 사령관의 주도 아래 만찬과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승리의 주역이 빠져서 되겠냐는 의미였다.

 

연설 후에 안드바리가 울먹이며 자원이 다 떨어졌다고 보고할 때, 사령관의 옷을 잡아 끈 LRL이 예비용 언더와쳐가 있던 곳에서 발견한 자원 상자를 내보였다. 꽤 많은 양이었기에, 오히려 전투로 잃은 자원보다 늘어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오르카호에서 파티가 열린 것이다.

 

파티의 주최자이자, 승리의 주역인 사령관은 그곳을 몰래 빠져나와 소수의 인원들을 데리고 다시금 전투를 치렀던 연구소 앞으로 돌아왔다.

 

“난 왜 가야되는데! 이유라도 알자고!”

 

파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그리폰이 툴툴거리며 사령관의 옆에서 속도를 맞춰 따라왔다. 말은 이렇게 해도 속은 참 깊은 그리폰이기에, 사령관은 안심하고 그녀를 데려올 수 있었다.

 

“라비아타를 찾으러 가는 거야. 모두가 가족 같은 부대원들을 다시 만났는데, 콘스탄챠만 못 만났잖아.”

“아…, 음, 어.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하라고! 나만 쓰레기 된 것 같잖아!”

“걱정 마, 여기 있는 사람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너도 곧 슬레이프니르를 만날 거고.”

“인간이 어떻게 우리 전대장을 알아?”

 

애덤 존스의 연구소 근처, 별장 뒤에 은신처가 숨어있다는 얘기를 콘스탄챠에게 넌지시 건넨 사령관은 그녀를 데리고 라비아타 구조대를 결성했다. 마리 휘하의 스틸라인 인원들이 참가했고, 만찬 중에 끌려나온 브라우니가 볼멘소리를 꺼내려던 걸 레프리콘이 살을 꼬집어 짧은 이등병의 비명소리와 함께 불만을 묻었다.

 

“원래라면 철충이 라비아타의 퇴각로를 점거하고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다 잡아버렸으니…….”

 

사령관이 그리폰을 데려 온 이유는 간단했다. 메인스토리를 읽었을 때, 항상 비서처럼 옆에 있던 콘스탄챠와 부대를 통솔하는 마리, 이 둘 만큼 중요한 ‘정찰’역할을 했던 그리폰이 라비아타를 찾는데 유효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엇.”

“인간! 괜찮아?”

“작전 짜느라 피곤했나, 몸이 왜 이러지.”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사령관을 그리폰이 재빨리 일으켰다. 눈 밑에 길게 늘어진 사령관의 다크서클이 그간의 노고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폰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수시로 수면욕이 밀려드는 사령관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라비아타의 은신처를 찾아 이동했다.

 

“인간, 어쩔래. 돌아가서 쉴래?”

“각하, 제가 보기에도 많이 피곤해보이시는데 휴식을 취하심이…….”

 

콘스탄챠는 사령관에게 휴식을 권하는 그리폰과 마리를 보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령관의 현재 상태는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생각할 만큼 정상은 아니었다. 오르카호의 모든 것을 내건 무모한 작전,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각 부대의 지휘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공적으로 끝마친 이번 작전은 필시 심적으로 그에게 무리가 되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당장 그를 쉬게 해야 한다는 이성과 라비아타를 만나고 싶다는 본심이 콘스탄챠의 마음속에서 저울질하고 있었다.

 

“눈앞에 가족을 두고 어떻게 그냥 돌아가겠어.”

 

콘스탄챠는 속으로 헛숨을 삼켰다. 그가 대신 자신의 추악한 본심까지 안고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리폰은 한숨을 내쉬며 마리에게 사령관을 넘기고 정찰을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라비아타를 찾고 인간을 쉬게 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인간! 찾았어! 근처에서 신호가 잡혀!”

 

그리폰의 들뜬 목소리와 밝아진 콘스탄챠의 표정,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의 마리까지 각기 다른 반응과 함께 사령관은 은신처로 향했다.

 

*

 

라비아타는 폭발음과 함께 아미나의 유산, ‘마지막 금고’의 데이터를 내려 받고 삭제시켰다. 인간의 뇌파와 비슷한 철충이 서버에 접속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오르카호와 통신을 시도하려 할 때마다 폭발음이 들리더니 철충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라비아타는 은신처로 몸을 숨겼다.

 

“콘스탄챠는 인간님과 잘 지낼까.”

 

인간을 찾았다는 콘스탄챠와의 통신 이후, 다시 통신을 시도하려 할 때마다 철충의 습격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 고의로 그녀의 통신을 방해하려는 듯이. 인간의 좌표를 알려 준 에바를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항군 활동을 하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꼭 필요했으니까.

 

“음? 이건, 그리폰의…….”

 

라비아타는 그리폰의 신호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신호를 내보냈다. 급히 물건들을 챙기고 은신처를 나간 곳엔 마리와 스틸라인의 병사 몇 명, 그토록 보고 싶었던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있었다.

 

“다들, 살아있었구나!”

 

콘스탄챠가 라비아타의 품에 안겼다. 저항군 활동 중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한창 불안해했던 그녀였기에, 또 그런 심성이 고운 그녀를 잘 아는 라비아타였기에 그저 콘스탄챠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라비아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남자였다. 100년을 찾아다닌 인류, 콘스탄챠가 사령관이라고 소개하는 남자. 안색이 좋지 않고 어째서인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라비아타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재회의 기쁨을 뒤로하고 라비아타는 자신의 대검, 트롤스버드를 꺼내들고 사령관에게 겨누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사령관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해 겨누는 대검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는데, 다른 방식으로의 위기를 맞이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잘 관리된 대검에 사령관 자신의 모습을 비춰 봐도 영락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철충에 감염된 것도 아닌, 멀쩡한 인간의 모습으로 라비아타에게 칼을 겨누어졌다. 그리고 그가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라비아타를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왜, 어째서… 인간이잖아. 너희가 찾던…….”

“에바는 제게 자기는 인간을 구출한 적이 없다고 했죠. 그런 그녀가 당신이 있는 곳의 좌표를 알려줬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할까요.”

 

사령관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말려보라는 듯 콘스탄챠와 그리폰, 마리를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모두 시선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당신은 순수한 인간이에요. 멸망 전의 개체인 저는 인간의 모습을 잘 압니다. 그렇기에 문제가 되죠. 인간이 멸종한지 100년입니다. 철충이 문을 열기 위해 데려간 VIP도 노인이었어요. ‘이모탈 프로젝트’를 위한 실험체였단 말입니다. 그 말은 그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젊은 모습으로 있을 수가 있죠?”

 

사령관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라비아타의 말은 정론이었다. 이들에게는 사령관은 생각해보면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자살이나 다름없는 작전을 적의 행동을 그대로 예측해서 받아치는 모습에서 이를 느낀 자들이 있었다. 마치 확정된 미래라는 것 마냥 작전을 짜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그리폰과 콘스탄챠였다.

 

“주인님, 죄송해요. 라비아타 언니의 말이 맞아요.”

 

콘스탄챠는 사령관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리폰도 마찬가지였다. 마리는 굳은 얼굴로 말릴 생각도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애꿎은 브라우니와 레프리콘만이 무슨 일인가 싶어 마리의 뒤에 숨어 벌벌 떨고만 있었다.

 

“너무나 이상해요.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청년의 몸을 가졌다고 해도,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본 적 없는 미래를 얘기하진 않아요. 라비아타 언니의 은신처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저는 그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인간. 우리 전대장을 어떻게 아는 거야? 마치 스카이 나이츠의 관계를 모두 아는 것처럼 말했어. 정말 우리의 적이 아닌 거지? 이대로 모두를 끌어 모아 한 번에 처리하려는 심산은 아니지? 내가 확대해석하는 거 맞지? 제발…뭐라고 말 좀 해봐, 응?”

 

위기를 극복하고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화가 아닌 또 다른 위기였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는, 정상궤도에 오른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운명이라는 열차는 여전히 어긋난 선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령관은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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