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74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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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선... 먼저 술부터 받고 이야기 해볼까요?"


"네? 괜찮으실까요...?"


"저는 상관 없으니까요- 우선 한 잔 받아요."


다른 때와 다름 없이 우선 술부터 건네주는 유미씨. 물론 악몽을 꾸지 않으려고 견디려다보니 술이 안들어가는 날이 없긴 했지만, 왠지 지금은 살짝 꺼려진다. 그야, 과음 때문에 이렇게 몸 가누기도 힘든 것을. 내 스스로 구해서 마시는 술이면 몰라도 남이 건네주는 술은 뭔가 그다지 마시고 싶지 않다. 그래도 아예 마시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유미씨를 따라 가볍게 한 모금 홀짝이고는 다시 유미씨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음, 유미씨가 오메가에게서 벗어난지가 얼마나 됐었죠?"


"그게... 아마 이제 한달이 다 되가는 것 같은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확실한건 사령관의 발견 초기부터 함께 지내왔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 비하면 턱 없이 짧은 시간이다. 더욱이, 나 혼자 짊어질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을만큼 친해지기에도 많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찌저찌 터놓고 무언가 이야기 해볼만한 수준까진 친해진 것 같기도하고? 뭐, 내가 노력한 것보다는 다른 분들이 내게 과분할 정도로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이 더 크지만.


"그럼, 으음... 오르카 호에 계시는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확실히, 다들 친절하세요..."


나 같은게 받을 호의가 아닌 것이라고 느낄 정도로, 확실히 사령관을 포함한 오르카 호의 다른 인원들은 나를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


"뭐, 그러고보면 유미씨가 합류하고 제대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한달보다는 조금 짧았네요?"


"아, 그...러게요..."


나는 오메가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안다. 아니, 모를리가 없다. 그래서 오메가 세력의 추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비로소 변절에 성공했음에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볼 자신이 없었기에, 오르카호에 합류하고 나서도 알파씨와 오렌지에이드씨, 그리고 사령관의 도움을 받으며 최대한 조용히 숨어지내고는 했다. 과호흡 증후군도 있고, 합류할 무렵에도 정신적으로 크게 피폐해져 잠시 시간이 필요해보이는 판단하에였던가. 그렇지만 사령관의 설득에 따라 며칠이 지난 후 공식적으로 오메가의 부관이 합류했다는 소식을 사령관이 공표함과 동시에 나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얼굴을 보이게 되었다.


"그 때,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지. 아마 그 때도 부담스럽다고 느끼셨겠지만, 여러 말들이 오갔었죠-"


"아, 그, 그랬었...죠?"


"뭐... 저도 레모네이드 세력에 있을 때부터 유미씨를 보고 같은 기종인데도 꾸민거만으로 인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피식 웃기도 했지만요."


"그으...건, 아무래도..."


솔직히 내심, 나는 지금의 유미씨가 입은 복장이 더 마음에 들고 부럽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번씩 하곤 하지만 말이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그 년... 아니, 푸흡, 죄, 죄송, 합니다..."


"아, 아뇨... 그럴만도 하죠..."


떨어진지 시간이 살짝 지나 잊고 있었지만, 내 앞에 있는 유미씨도 레모네이드 알파의 부하다. 당연히 오메가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리는 없다. 그래도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마냥 분위기 무거운 것보단 낫지.


"후... 아무튼, 오메가의 부관이라는 점 때문에 처음에 내심 불안해하는 것치고도 많이 여리셔서, 거기서 놀란 분들도 많았다곤 해요."


"으음, 별로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물론 그럼에도 오메가와 비교되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적대 세력의 중간관리직이 어떤가까지 상식적으로 줄줄이 꿰고 있을리는 없으니.


"... 참 신기해요. 오메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분들은 전부 알고 있었을텐데. 그 오메가 밑에서 일해 온 제게 손찌검 하나 보내지 않으시니..."


"그거라면... 물론. 사람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어서 탐탁치 않아하는 의견들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결국은 모두가 그렇게 입을 모았더라고요. 일개 중간관리직이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냐고요. 여러 갑론을박은 당연히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덮어두기로 했죠."


왜 그렇게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은 마음 한 구석에서 살짝 끄집어내자마자, 입 밖으로 내밀지도 않았건만 기가 막히게도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게... 저희들이 본 유미씨의 첫인상은 너무 피폐해보였으니까요. 그리고, 마냥 책임을 묻기엔 너무 힘들어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고는 했으니..."


"..."


아마도 오렌지에이드씨가 말하고 다녔으려나. 그저 나 혼자만 알고 나 혼자만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것만큼은 떠벌리지 않으셨으면 했는네. 뭐, 그녀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었겠지.


"... 지금도, 많이 힘드신가요?"


"... 그건..."


어떻게 힘들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어떻게 내가 괴롭다고 쉽게 말해버릴 수가 있나. 그들이 모두 덮어두고 나를 친절하게 대해줘도, 나는 배신자고 가해자인데. 그 이전에, 어째서 내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는건지, 아직도 그저 혼란스럽다.


"... 말해도 괜찮아요. 여기에 온 이상, 모두 동료고 가족이니까."


"..."


정말, 나 같은걸 그렇게 취급해줘도 괜찮은건가? 정말로? 그렇게 반문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떼어지지는 않는다. 왜일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계속 반문해보는 것이 몇 초에서 수십초 정도가 흘렀고, 결국 어째서인가라는 답변을 스스로 찾지는 못한 채로 나를 계속 응시해주는 유미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 아직도, 저는 보여요."


"네..?"


"제 실수로 죽어나간 난민 분들의 흔적이, 저 때문에 고통받았던 오메가 휘하의 난민 분들의 몸부림이... 오메가의 계략 때문에 고통 받았을 많은 분들의 흔적들이 전부, 밤이 되고 잠에 들면 계속 제 앞에 나타나요..."


"... 유미씨..."


"누구한테도 말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다 제탓이잖아요. 전부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전부 제가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제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맡기는 것이 될 것 같았어요..."


"... 허어..."


"전부 다 짊어지겠다면서도, 저는 그 꿈을 하루도 빠짐 없이.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로 하루도 빠짐 없이 꾸고 있었어요. 그래서 잠을 자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서 계속 버티고 싶었어요..."


"..."


"저는 지금, 제가 이렇게까지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더 길어질수록 제 개인적인 일인 것을 괜히 떠넘기고 착잡하게 만드는게 될까봐... 그래서..."


"... 흐끅, 흑... 그래서..."


막상 어렵게 입을 떼고나니 쌓아둔게 한번에 터지듯 술술 풀리는 이야기. 결국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여기서 울면 안되는데, 내가 뭘 잘했다고...


"... 잠시만요, 유미씨..."


"흑... 으,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렸을 때, 왠지 혼자 있을 때랑 하는 말이 별로 다른게 없다고 느꼈다. 이대로라면 결국 했던 말만 주구장창 하게 되는건 아닌가, 그럼 결국 민폐를 끼치게 될거라고 판단이 섰다.


"으, 전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전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


"... 가셔야겠다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조금이라도 털어놔주셔서 감사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 아뇨... 저야말로 오늘 감사했어요... 다음에 또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럼... 먼저 들어가보셔요- 저는 남은 술이라도 마시고 들어가야겠네요."


"아... 네. 유미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소 형식적이지만 그냥 겉치레인지 진심인지 모를 안부인사를 끝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그렇게 다시 아침을 맞이했다. 다만, 이번엔 어떻게든 결국 잠에 빠지지는 않게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던 유미씨의 바램이 무색해질만큼 상황이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유미씨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 때 그것을 다 팽겨치고 다시 도망쳐버린 것은 나니까. 한 번 잠을 버티기 시작한 이후로는 계속 과격한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밤을 지새우게 됐었고, 결국 하루를 지새운 것이 며칠째가 되어가자 누가봐도 위태로워보인다 싶을 정도로 나아지기는 커녕 뭔가 더 잘못되기만하고 있었다. 그 때 도망치지 말걸 그랬나 싶지만서도 내가 너무 주제넘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그냥 이렇게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더 억지로 버티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자포자기나 될대로 되라라는 심정에 더 가까웠던 같지만.


그리고 결국, 밤을 지새운지 일주일 직전이 되어갈 때 우려했던 일이 터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