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반년째 의식불명이던 사령관이 깨어난 이야기 2


* 앤젤 자매 관련 창작물도 써보고 싶었고 마침 소재도 마음에 들어서 약간 사이드 스토리? 같은 느낌으로 써봤음. 허락은 맡았스빈다

* 여기도 캐붕 있을 듯하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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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새벽녘. 사령관이 의식을 잃은 후부터 웬걸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숙소 개인실 안에 멍하니 서서는 창문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게 일상이 되었다. 그게 이제 반년이 되가던가? 당초 닥터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어느 날 닥터가 울상을 지으며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졌다며 모두에게 알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 날 이후로 오르카 호의 풍경은 꽤 많은 것이 바꼈었지.


"... 들어가도 될까?"


"어, 나앤이구나? 들어와."


지금 들어오는 이 아이는 나이트 앤젤. 비록 같은 배에서 태어나 같은 피를 가진 혈육은 아니지만, 엄연히 나의 자매고 여동생이다. 더욱이, 사령관이 의식을 잃고 모두가 위태로운 지금은 더더욱 하나 뿐인 내 혈육이고.


"대장님은 괜찮아?"


"응. 다행히도 오늘은 발작이 없었어. 지금 자고 계셔."


"다행이네... 빨리 나아지셨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하아..."


현재의 오르카 호를 여러 단어로 표현하자면... 분노라던지, 광기라던지, 증오나 복수 등등. 꽤 많은 단어들이 생각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중 도무지 긍정적인 단어는 떠오르지가 않는다. 당연하지. 상관이자, 하나 뿐인 가족이 적들에 의해 의식을 잃었으니 나와 저 아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느끼는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잠깐 커피라도 타줄까?"


"응, 부탁해..."


사실 말은 거창하게 해도, 그냥 숙소 주방에 있는 믹스 커피 정도 밖에 탈줄 모르지만... 그래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생각나는 건 이만한 것도 없다. 나는 내 동생만큼 그렇게 유능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건 오로지 저 아이만이 알고 있지만.


"자, 여기."


"응, 항상 고마워."


"아니 뭐... 나야말로 매번 신세 지고 있으니까, 항상 고맙고 미안하지..."


"..."


약간의 정적이 오가는 사이, 들고 있는 커피만 그저 홀짝이는 우리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건지 우리 둘 다 알고 있지만 행여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그저 눈치만 보는 것에 가깝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뭐...


"... 오늘 아침에도, 꿨어?"


"...... 응. 언니도?"


"응... 아마 그 꿈을 꾸지 않는 애들은 없을걸."


언제부턴가 나이트 앤젤이 꾼다는 꿈. 마찬가지로 나를 포함한 오르카 호의 많은 이들이 꾼다는 그 꿈. 꿈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 괴로운 꿈은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사령관이 있고, 사령관이 있던 시절의 평범한 일상이 쭉 이어지는 꿈이지만, 사령관의 부재가 더더욱 길어지고 점점 기약이 없어지는 지금은 그야말로 희망 고문에 가까워진지 오래다. 이 희망 고문이 생각보다 상당히 잔인해서, 이 때문에 미쳐버린 바이오로이드들도 수두룩하니.


"후... 차라리 그 때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게 아마도 네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볼 때마다 너무 가슴 아프긴 하지."


"언제쯤 멀쩡해질지 모르겠어. 대장님이든, 사령관님이든,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든..."


많은 부대들의 일상이 그 날 이후로 모조리 박살나고 뒤틀리고, 뒤바뀌어버렸다. 스틸라인은 마약에 취해버린 마리 대장을 대신해 레드후드가 통제권을 잡았고, 레드후드부터 말단 브라우니까지 모두가 분노에 휩싸여 1분 1초까지 할애하면서 전투와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는 이프리트들마저도. 몽구스 팀은 가족을 잃어 다시 한 번 복수심에 가득 찬 장화를 필두로 모두가 그 분위기에 융화되어 매일매일 적들에게 어떤 공포를 안겨다줄지만을 고민하고 있으며, 코헤이 교단은 평정심을 잃어버린 베로니카와 아자젤이 이단 심문을 방자하여 반군들을 철저하게 짓밟고 있다.


우리 소속 부대인 둠 브링어도 마찬가지. 원래 우리 부대의 지휘관은 메이 대장이지만, 현재는 모든 통제권을 나이트 앤젤이 쥐고 있다. 그 이유는 참담하기 짝이 없는데... 대장이 유아퇴행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조울증이나 우울증 정도겠거니, 하고 관망하고 최대한 케어를 해주고 있었다만. 대장은 점차 말이 짧아지고 말투도 어린아이처럼 변해가는 등 이상증세를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완전히 자포자기해버린 나이트 앤젤이 어린아이를 혼내듯이 대장을 대했더니, 그 때부터 나이트 앤젤을 아예 엄마로 인식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이트 앤젤의 잘못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 않았는가. 이미 이전부터 기미가 보였다고. 허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비록 연애에서 우유부단한 면이 있었을지 언정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던 대장마저 사령관의 부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것. 그것에 나이트 앤젤과 나, 다른 부대원들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던 것 뿐이다. 그 날 이후 부대원들 모두, 하루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 언니, 나 무서워..."


"... 그렇지, 그래. 나도 이해해, 나도..."


사실, 나이트 앤젤은 생각보다 나를 언니라고 부른 적이 많지 않다. 대충 이름으로 부르던지, 밖에서는 대충 그 여자 같은 느낌으로 불렀었으니까. 물론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 때도 그렇게까지 마냥 서먹하기만 한 사이는 아니였다만, 사령관이 의식을 잃은 그 날 이후로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나를 언니라고 불러주고 있다. 기쁘지만서도, 착잡하다. 이 모습을 사령관이 볼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사령관이 이대로 죽으면 어떡해...? 그래서 대장이 영영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해...? 아직도 너무 불안해, 무서워..."


"..."


항상 인정하고 있었던 것은, 나이트 앤젤은 나보다 훨씬 유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비록 비관적일지 언정 어느 순간이던지 나보다 훨씬 강직하기도 하다. 그런 그녀조차도 사령관의 빈자리가 점점 길어지니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렇듯, 사령관이 의식을 잃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니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인했던 이들도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했으니까. 평생 의존이라곤 하지 않을 것 같던 나이트 앤젤이 거의 매일 나를 찾아오고, 내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다. 나는 너보다 그렇게 우월한게 없는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참 복잡하네.


"나는... 자신 없어. 나는 언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하루를 넘기는 것도 너무 무섭고 힘들어. 이대로 아무 의미도 없이 다 끝나버릴까봐 아직도 너무 무서워..."


"...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마.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부대원들도 너를 믿고 있어. 나도 그렇고, 실피드도 지니야도, 밴시, 레이스, 다이카 모두. 사령관이 의식을 잃고, 대장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도 그 중심을 지켜준건 너였잖아."


"그래도, 그래도..."


"난 항상 너한테 빚만 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항상 고맙지만, 너무 미안해. 나야말로..."


"... 뭐가 미안한거야. 나도 언니 덕분에 어떻게든 버티는건데..."


"나도 알아. 그래서 더 미안한거지... 너무 자책하진 마. 네가 생각하는거보다 너는 훨씬 더 잘하고 있어."


항상 유능하고 강인한 면모가 돋보이는 나이트 앤젤의 비관적이고 유약한 면모. 부대원들에게도 최대한 숨기는 이 유약한 면은 오로지 나만이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란 것도 이 아이한테 그저 미안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뭐 하나 너보다 나은게 없는 난데. 그래도 자매라고 인정해주는걸까.


"... 언니..."


"...... 안기고 싶어?"


"응, 오늘도 부탁해... 그리고 항상 미안해..."


"괜찮아, 나는 언제든지. 그냥, 지금은 이대로 있자..."


단 둘이서 조용히 나누는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내 품에 안겨 흐느끼다 지쳐 잠드는 나이트 앤젤의 모습을 보는 것. 이번에도 나이트 앤젤은 몇분을 오열하다 점차 잦아들며 잠에 들었고, 나는 그렇게 잠든 나이트 앤젤을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옮겨주면서 잠에 들기 전의 새벽을 마무리한다.


'사령관님. 저는 언니로서도, 둠 브링어의 부대원으로서도 성장하고 싶어요. 지금은 좀 더 성장했을까요...?'


항상 사령관에게 묻고 싶은 이 질문. 하염없이 공백만 길어지면서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이 질문. 오늘도 이 질문을 내 머릿 속에만 간직한 채, 베개를 눈물로 적시다 잠들면서 힘겹게 하루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