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비극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게 비겁함과 나약함의 표명이든, 명백한 운명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든 맞서려 하는 인간 의지의 표명이든 간에요."


   

 식사 시간이 되자 메이플라워가 요리를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나눠주었다. 


 요리를 할 때마다 메이플라워는 그녀가 요리에다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이오로이드들이 보는 앞에서 요리를 준비했고, 음식을 나눠주기 전에 꼭 시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메이플라워가 인간이나 바이오로이드와는 전혀 딴판으로 생긴 생물이니만큼 그렇게 하더라도 의심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은 별다른 의심이나 주저 없이 그녀가 나눠준 음식을 먹었다. 


 지금껏 짐승이 먹는 사료들, 그것도 온갖 이물질들과 더러운 것들이 마구 뒤섞인 것을 먹으면서 죽지 못해 연명해왔던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흐느끼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치료를 늦게 받은 탓에 이번에 처음으로 메이플라워가 만든 식사를 먹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메이플라워가 만든 식사를 여러 차례 먹었던 이들조차도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람 먹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찬 나머지 우는 이들이 꽤 되었다.


 특히 눈이 뽑히고, 혀와 팔다리가 잘렸던 지휘관급과 배틀 메이드 출신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는 울지 않는 이들이 단 하나도 없었다.  


 다른 상황 같았으면 이들이 우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뭐라고 빈정거렸을 바이오로이드들조차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식사에만 전념했다. 몇 번을 죽고 다시 되살아나더라도 영원히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대로 만들어진 사람 먹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꼴도 보기 싫은 이들이 울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쓰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의 그녀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두 마리를 세로로 매달아놓고 물엿과 술, 향신료를 잔뜩 끼얹어서 굽던 메이플라워가 병에 조금 남은 술을 들이켰다. 음식을 조금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다가온 아우로라와 포티아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거나 말거나 메이플라워는 빈 술병에다 다시 술을 채우고는 물고기에다가 뿌리고, 술이 병에 조금 남으면 들이키기를 반복했다.


 잘 구워진 생선들을 적당하다 싶은 크기로 토막을 친 메이플라워가 아우로라와 포티아를 시작으로 바이오로이드들의 접시 위에 생선 토막들을 올려놓았다. 만일 더 먹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도록 테이블 위의 쟁반에다 남은 생선 토막들을 올려놓은 그녀가 생선 대가리를 여러 조각으로 쪼갠 다음 그녀가 애용하는 무기 위에 하나씩 올려놓고, 나머지 한 조각을 통으로 씹어먹었다. 


 그녀의 무기들도 눈에서 빛을 발하더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마냥 입을 쩍 벌려서 위에 올려진 생선 대가리 조각들을 씹어삼키거나 그 안에 있는 영양분을 빨아먹었다. 입이 달려있는 무기들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않은 무기들 위에 놓여진 생선 대가리 조각은 말라 비틀어지다가 마른 나무 껍데기처럼 바스러졌다. 


 식사가 끝나고, 식기를 빈 쟁반 위에 쌓아놓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부분 같은 소속, 혹은 분류에 들어가는 바이오로이드들끼리 뭉쳤고, 그 중에서는 커다란 무리를 이룬 바이오로이드들도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그룹은 블랙 리리스를 중심으로 뭉친 컴패니언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과 하급 보병들이 모여서 큰 그룹을 이룬 스틸 라인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각 부대의 지휘관 또는 맏언니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들이 원래 속했던 그룹의 바이오로이드들과는 떨어져서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다. 한때 그녀들의 큰언니 또는 지휘관이었던 바이오로이드들을 보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에는 멸시와 경멸, 원망이 가득했다. 

 

 메이플라워가 감지한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의 불쾌한 분위기는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심화되고 있었다. 조만간 이것이 좋지 않은 형태로 구체화될 것임은 자명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불만이나 원망이 폭발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메이플라워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깐 다른 데 신경을 쓰고 있을 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메이플라워는 바이오로이드들끼리의 불상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일단 안전장치가 발동된다면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들의 옛 대장이나 큰 언니들 뿐 아니라 메이플라워에게도 불만을 가지게 되겠지만, 그녀로서는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할 수도 없었고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능력도 없었다.

  

 오늘 사냥에는 어떤 무기를 들고 나가는 것이 좋을까, 무엇을 사냥하는 것이 좋을까를 잠시 생각한 메이플라워가 눈을 감고, 서 있는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사람이 빙글빙글 돈다기보다는 마치 세워놓은 동전이 돌아가는 것을 연상케 할 정도로 회전하던 메이플라워가 멈춰서면서 손을 뻗어 무기를 거머쥐었다. 


 오늘의 무기는 눈과 살점이 잔뜩 달려있는 기괴한 대낫이었다. 네 손으로 대낫의 자루를 빙글빙글 돌린 메이플라워가 그녀가 펼쳐놓은 방어막 바깥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의 무기들이 시선을 바이오로이드들에게로 돌렸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을 감시하려는 것처럼.


 메이플라워가 방어막 바깥으로 간단하게 도약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쳐다본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과 스카이 나이츠 바이오로이드들이 지금 그녀들의 처지에 대해 탄식하거나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녀들도 저런 식으로 장벽을 넘나들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사냥감을 찾아 적극적으로 사냥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지금 그녀들에게 남은 거라고는 피폐해지고 연약해진 몸뚱아리뿐이었다. 


 메이플라워를 도와서 사냥을 하고 싶어도, 혹은 메이플라워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먹고 살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쓸만한 장비도 무기도 없고, 그렇다고 맨몸으로 사냥을 할 수도 없는 지금의 이들에게는 메이플라워에게 빌붙어 사는 것만이 연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소완과 포티아, 아우로라는 아까 전과는 다른 이유로 울고 있었다.


 오늘 메이플라워가 요리를 만들 때 그녀들도 도와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로부터 요리 도구를 건네받아서 쥐는 순간,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요리를 만들 수 있는지는 물론 어떻게 식칼을 쥐고 어떻게 재료를 썰어야 하는지조차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녀들은 무엇을 만들기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물러났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각자 자신들의 처지와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결국 이들의 불만이 향한 곳에는 자신들의 지휘관이었던 이들, 자신들이 한때 큰언니라고 여겼던 이들, 그리고 배틀 메이드들과 배틀 메이드들의 수장이며 한때 가장 강한 바이오로이드였던 이'들'이 있었다.


 서로 비슷한 외모를 하고, 비슷한 기억과 비슷한 후회를 끌어안은 이들이.


 "저딴 것들을 큰 언니라고 따랐어."


 "저딴 것들이 무슨 최강의 바이오로이드고 무슨 통령이야......"


 "저딴 것들이 우리 지휘관이어서......."

 

 누구도 자신들의 옛 부하들이나 옛 자매들, 옛 동료들의 멸시어린 수군거림에 항변할 수 없었다. 


 그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옛 주인의 편에 섰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답게 주인이 어떤 사람이든 얼마나 유능하고 무능하든 간에 끝까지 그 편에 섰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녀들이 저지른 짓에 대해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힘없이 앉아있던 몇몇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곧이어 몇몇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비슷한 외모를 한 바이오로이드들이 흐느껴 우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위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우는 바이오로이드들을 경멸하는 시선을 쳐다보거나 뭘 잘했다고 우냐, 우는 것도 생긴 꼴만큼이나, 하는 짓만큼이나 보기 추하기 그지없다면서 들으라는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매도했다.




 메이플라워의 예상대로 어제 그녀가 살려보낸 놈들은 오늘 복수하기 위해서 패거리를 잔뜩 데리고 몰려왔다.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벨로시랩터와 비슷하지만 더 크고, 더 사나운 외형을 한 생물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메이플라워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메이플라워가 임의로 페럴헌터(Feralhunter)라고 이름붙인 이 공룡을 닮은 생물체들은 공격적이고, 집요하고, 꽤 강한 생물들이었지만 메이플라워의 상대가 될 만한 생물은 아니었다. 메이플라워가 사냥이나 산책을 나갈 때마다 꼭 마주치는 것이 이 놈들이었고, 그 때마다 몇 마리씩 썰어버렸는데도 계속해서 그녀 앞에 나타나거나 불쑥 튀어나와 기습을 거는 것도 이 놈들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난 페럴헌터들 중 다섯 마리를 낫으로 베어버리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낫을 휘두르면서 일어난 하얀색의 섬광이 채 사라지기 전에 나머지 페럴헌터들에게 돌진한 메이플라워가 무자비하게 낫을 휘둘러댔다. 


 하얀색의 섬광과 붉은색의 궤적이 그녀의 낫의 움직임을 따라서 공중에 뿌려지고, 그 때마다 몸이 두 동강 내지는 세 동강이 난 페럴 헌터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거나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메이플라워가 동족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상황에서 어제 살아남았던 페럴헌터들이 보이는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동족들이 아무리 죽어도,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메이플라워를 죽이기 위해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다가 휘둘러지는 낫에 두 동강이 나는 것.


 또는 저 멀리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소리만 질러대면서 내뺄 준비를 하는 것.


 지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종족들이라면 꼭 저렇게 행동하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은 메이플라워에게 있어서 씁쓸한 이야기였다. 남을 선동해서 사지로 몰아넣고 정작 자기는 구경하듯 상황을 재다가 유리해보이면 그 때 숟가락을 얹고, 불리해보이면 내빼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은. 

 

 메이플라워도 지금은 강자의 입장이니 씁쓸해할 수 있는 것이지, 만일 메이플라워가 약자의 입장이었다면 저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더욱 씁쓸했다.


 어지간한 대형 생물들에게도 위협적일 규모로 몰려온 페럴헌터들의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도륙당하자, 살아남은 페럴헌터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과연 저것은 본능에 따른 움직임인지, 아니면 저것들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른 행동인지, 그리고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인지에 대해서 실없는 고민을 한 메이플라워가 낫을 공중에 몇 번 휘두르자, 잠시 움찔하던 페럴헌터들이 몇 번 더 소리를 지르다가 몸을 돌려 도망쳤다.


 살아남은 페럴헌터들이 모두 사라지자 메이플라워가 두동강낸 페럴헌터들의 머리에 한 번씩 낫을 휘둘러서 확인사살을 한 다음 거처로 옮길 준비를 했다. 페럴헌터 고기는 질기고, 손질을 많이 해야 하는 편이었지만 못 먹을 정도로 질기거나 맛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오늘 사냥은 이걸로 마무리지어도 될 것 같았다.


 페럴헌터 시체들을 한쪽에 쌓아놓은 메이플라워가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 수풀을 뚫고 커다란 무언가가 그녀를 덮쳐왔다.


 옆으로 몸을 피한 메이플라워가 낫을 휘둘러 반격하자 공격해온 생물의 가슴께가 쩍 갈라졌지만 치명상이라 할 만한 상처를 주진 못했다. 


 맛있는 고기 냄새가 풍겨서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목표로 잡은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 자기에게 상처까지 입히자 더 흥분한 공격자가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땅과 나무가 흔들리고, 메이플라워도 순간적으로 자세가 흐트러질 정도로 우렁찬 고함이었다.


 공격해온 생물은 페럴헌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덩치가 크고, 척 보기에도 훨씬 위험해 보였다. 메이플라워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그 생물을 바이오로이드들이 보았다면 알로사우루스를 떠올렸을 것이다. 

 

 혹시 페럴헌터들이 물러난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이 놈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메이플라워가 낫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고쳐잡았다. 눈 앞의 상대가 무엇이든 그리고 얼마나 강력한 생물이든 간에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아무 근거 없는 직감이자 자신감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못 이길 상대는 아니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번 그 커다란 생물이 메이플라워에게 고함을 지르자, 메이플라워도 그것을 향해서 마력을 담아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그 커다란 생물이 달려들기 전에 메이플라워가 부식성의 액체를 마치 광선처럼 괴물의 얼굴에다 발사했고, 이를 얼굴에 맞은 공격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메이플라워에게는 눈 앞의 상대에게 공격할 기회를 줄 생각도, 상대와 굳이 힘싸움을 벌여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강자와의 싸움 같은 걸 즐기는 성격이 아닌데다 시간이 아까운 메이플라워에게 싸움은 그저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특히나 지면 끝장이고, 이겨도 얻는 것은 고깃덩어리 말고는 없는 싸움이라면 더더욱.


 부식성 액체를 뿌려 빈틈을 만든 메이플라워의 그 다음 공격은 날카로운 마법 칼날의 소나기였다. 면도날보다도 날카로운 역장 칼날이 쏟아지자 난도질을 당한 공격자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얼굴이 완전히 넝마처럼 변해버린 공격자가 울부짖는 동안 그것의 등 위로 올라간 메이플라워가 낫을 무자비하게 휘둘러댔다. 


 흰 섬광이 번쩍거리고, 붉은색의 궤적이 허공에 그려질 때마다 공격자의 머리가 갈라지고, 목 부분이 마치 잘 잘려진 스테이크처럼 여러 조각이 나서 잘려나갔다. 메이플라워가 땅 위에 착지하자 목 없는 시체가 된 공격자의 몸뚱아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지축을 울렸다.

 

 쓰러진 공격자의 시체에서 날고기를 한 점 베어낸 메이플라워가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씹다가 표정을 흐렸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맛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고기는 고기였고, 가죽하고 뼈는 제법 쓸만해보이니 가져가보기로 마음먹은 메이플라워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방금 전의 소동으로 인해서 그녀가 쌓아놓은 페럴헌터들의 시체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짜증 섞인 한숨을 쉰 그녀가 흩어진 고깃덩어리들과 방금 죽인 사냥감의 시체를 한 군데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