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이전화-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다.


'살려...주십시오.... 레프리콘 상병님.... 이런건..... 싫습니다..'
'브라우니? 기다려요 구해줄 테니깐 조금만 제발 조금만 버텨주세요'

녹아내린 액체 속에서 레프리콘은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계속 파헤친다. 끈적이는 액체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지만 브라우니의 소리가 들린다. 분명 이건 브라우니 일 것이다.


'브라우니 미안해요 제발 제발 구해 줄테니 조금만 버텨줘요'

'죽고싶지....않단...말입니다.... 이런건 싫습니...'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액체들 사이에서 브라우니의 목소리가 끊겼다. 이렇게 돼선 안된다. 반드시 모두를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반드시 이번만큼은 구해야만 한다.

'안돼... 안돼 브라우니 기다려요!'

레프리콘은 곧바로 액체 속으로 머리를 접어넣고 깊은 곳.. 더 깊은 어딘가를 향해 계속 헤엄치며 내려간다. 끝도 없이 내려간다. 가라앉은 이 심연에는 무엇이 도사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 깊은 심연에서 못빠져나와도 좋다는 마음으로 내려간다.


'브라우니 잡았...'


브라우니의 팔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잡았을 때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말았다. 거대한 구(球)에게 사로잡힌... 아니 먹혀버린 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처참한 몰골을 보았다.


철충들,동물,식물 그리고 바이오로이드까지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삼켜버린 괴수를

그것들 모두 일부가 녹아내려 구와 하나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액체는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것이 아가리를 벌린다. 그러고는 빨아들인다. 자신의 것과 같은 액체들을... 더 많이 빨아들여 모든 것과 하나가 되려 한다.


어둡다... 이 끔찍한 짐승의 뱃속에서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는 건가... 내 몸과 주변의 것들에서 다시금 그 빛이... 그 색채가 일어난다.


점차 사그라들며 원래의 형태를 잃어간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런 건 싫다.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며 공포에 찬 비명을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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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 안돼..... 제발 이런 건 싫어!"

절규를 지르며 레프리콘이 깨어났다. 옆에 붙어있던 다프네는 그녀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레프리콘씨? 전정하세요! 리제 언니 최대한 빨리 주인님을 불러주세요! 제가 최대한 막아볼게요"


레프리콘은 공포에 떨며 소리를 지른다. 자기도 이성을 잃고 그것의 먹이들처럼 분해될까 봐 자기 또한 먹힐까 봐 통곡하며 절규한다!


"그것이 그것이 날 삼키고 있어! 안돼 난 그런 끔찍한 죽음은 싫어! 모두가 녹아내려 그것과 하나가 되고 말 거야!"
"진정하세요 여긴 안전해요 제발... 진정해 주세요.... "

의식을 잃었을 때는 희미하던 색채가 다시금 발광하며 요동친다. 무언가가 그녀를 조급하게 쪼아대듯 그녀는 그럴수록 더욱 울부짖는다.


"다프네 잠시 나와주겠니? 여긴 이제 나한테 맡겨줘"
"하지만 주인님 지금 레프리콘씨의 상태가 너무 불안정합니다."
"괜찮아 내가 해결해볼게 날 믿어줘..."

급박하게 뛰어온 사령관이 다프네를 밖으로 보낸다. 다프네는 마지못해 나가며 그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눈앞의 그녀가 색채를 띠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다.

"사령관님 그것이 괴물이 모두를.... 부디 제발... 저희를 구원해 주세요.... 그것이 모두를 삼키려 합니다 제발...."

뜨겁다. 미칠 것 같다. 그녀가 본 것 그녀가 아는 것 모든 것이 소리를 내며 빛을 발하고 나에게 소리친다. 처절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울부짖음, 그곳에서 다시금 목도한 공포의 기억들, 외계의 존재가 속삭이며 정신을 갉아먹는 경험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 들어온다.

"내가 반드시 도와줄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줘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게 그러니... 조금만... 더... 이 고통을 참아주렴.. 미안하다."


다프네에게 받은 진정제를 꽂아 넣었다. 이윽고 그녀는 다시 쓰러졌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색채도 다시금 사그라들고 공포만을 남긴 침묵이 돌아왔다.


"미안해 다프네 생각보다 잘 해결이 안 된거 같네..."
"아니에요... 제가 망설여서... 주인님이 직접 하시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미안하지만 뒷일을 좀 부탁해도 될까? 닥터에게 맡긴 일이 다 끝난 거 같아서 말이야"
"네 여긴 저한테 맡겨주세요. 주인님"


그곳을 뒤로하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생각한다.


이 일이 진행될수록 공포에 떠는 이들이 많아져만 간다. 나는 그녀들이 이 끔찍한 일을 계속 마주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지켜만 봐야 한다. 나 자신이 한탄스럽고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나는 그녀들에게 사령관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이런 나는 그녀들에게 주인님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생각을 하며 걸은 탓일까? 어느새인가 닥터의 실험실 앞까지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닥터가 의자를 뒤로 돌리고 걸어온다.


"오빠...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표정이 어둡다. 닥터 또한 이 진실들을 알게 됐을 것이다.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철충. 액체에서 나온 성분들이 각각의 대상과 정확하게 일치해. 마치 그것들을 그대로 녹인 것처럼.."


"그리고 아마 모두가 들었을 거야... 방금 수복실에서 한 이야기와 그날 구출 때 있었던 상황까지..."


"오빠... 우린 오빠를 믿어 항상 옳은 선택을 해왔고 항상 우리를 잘 이끌어줬으니깐"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린 항상 오빠 편이야. 설령 도망치더라도..."


"아니야.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거야."

날 믿는 이들이 있다.


"오빠?"

"미안한데 5명 분량의 약 좀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날 믿는 이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어...?어! 어떤 효과로 하면 될까?"

그 얼마나 보잘것 없고 절박하든,


"각성 효과로 넣어줘 전투 중에 소모품으로 쓸 수 있게"

언제나 가슴 속에 품을 만한 것이다.

"응! 알겠어 나만 믿으라구"

"고마워 그러면 완성될때 받으러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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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에 현재 인원들에게 전파한다."

"내일 추락 지점으로 들어갈 인원을 모집한다."

"그곳은 위험이 도사리고 실종된 인원까지 있다."

"최악의 경우는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난 그곳을 가야만 한다."

"남겨진 이들을 위해, 남은 이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함께할 이들은 사령관 실로 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