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이전편- 지옥 속으로


모두가 정비를 마친 걸 확인한 후 문을 열고 나아간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총탄이 빗발친다. 지상에는 하얀 옷을 입은 보병들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우고 있고 공중에는 기동장비를 착용한 병사들이 무자비하게 폭격을 내리며 총알을 퍼붓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교전지는 우리 쪽이 아닌 외각 지역이고 마치 적들도 미처 끝나지 못한 전쟁을 시간도 공간도 뒤틀려 버린 이곳에서 계속 이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들 최대한 숙여서 이동하자. 이번에는 최대한 교전을 피해서 고지대로 이동할 거야"

"주인님 이번에는 안 싸우는 거야?"

"아무래도 저들은 서로 싸우느라 저희한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군요. 주인님 말씀대로 최대한 숙인 채 엄폐를 유지해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보기만 해도 참혹한 전쟁이다. 도대체 무엇의 기억을 뜯어봤길래 이런 잔혹한 멸망 전 전쟁을 구현하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저것들은 우리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죽어라 싸우는 것일까. 만약 이곳을 다루는 존재의 능력이 덜 발현됐다면 그래서 우리를 불완전하게 구현된 곳으로 날려 보낸 것이라면...


생각도 잠시 쉬익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이쪽으로 날아와 나무에 박혔다.


"다들 나무나 돌 뒤에 숨어 아무래도 우리를 눈치챈 것 같다."


분명 교전지와 이곳까지의 거리는 상당하다. 그런데 이렇게 먼 거리를 저격할 정도로 시력이 좋다는 건...


"다들 괜찮아? 맞은 사람은 없는 거지?"

"네 아무래도 방금 한발이 마지막인 것 같아요."


바이오로이드를 투입시킨 전쟁 시기... 처음에는 인간과 기계만 투입돼서 어느정도 완벽하게 구현됐다면 이 시기는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둘의 혼합된 생명체를 구현하느라 우리를 적으로 지정하는데 착오를 했다. 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가능성이 있다. 능력을 사용하는데 익숙치 않은 상태라면 우리가 물리칠 승산이 생긴다.


총알 한 발을 제외하면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고 어느덧 고지대에 도착했다. 그러자 다시 울림이 들려온다.


'예상 밖이구나. 허점을 찾아내다니 하지만 네놈들은 이미 내 손바닥 안이다. 얌전히 진실을 깨닫고 나에게로 오너라'


다시 색채의 파도가 우리의 영역을 좁혀오며 덮쳐온다.


'허나 이번엔 쉽지 않을 터 너희가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구나'


이번에는 동굴 속에서 눈을 떴다. 깜깜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지금 괜찮지?"


먼저 말을 꺼내자 다들 차례대로 말을 꺼낸다.


"네 저는 멀쩡해요 그런데 앞이 안 보여요..."

"너무 어둡네요. 주인님은 괜찮으신가요?"

"다들 가까이 붙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분명 그것이 말하길 쉽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정말 기분 나쁜 곳이야 빨리 나가고 싶어"


갑자기 푸른색의 불꽃이 동굴을 밝힌다.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진 탓일까... 어지럽고 넋을 잃을 것만 같다.


"으음... 주인님 나 이상해 꼭 멍해져서 저거 따라만 갈 거 같아...."


펜리르의 말대로 불꽃이 움직이며 어디론가 움직인다. 나는 넋이 나간 듯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밝은 빛...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하며 길잡이를 자처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동굴 밖으로 나와 처음의 그 황무지로 나왔다. 잠깐의 꿈의 빠진듯한 어지러움이 채 가시기 전 난 내 눈을 의심한다. 분명 저건 실종됐다던....


"주인님 위험해요!"


하치코가 재빠르게 막아서고 다들 진형을 갖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다. 분명 저건 실종됐다던 브라우니와 노움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릴 공격한 거지


"아무래도 무언가에 홀린듯 제 정신이 아닌것같군요. 구원자님 어떻게 하면되겠습니까?"

"진짜 브라우니 일병이랑 노움 병장이 맞지? 왜 어째서 우릴"


말이 끝나기 전에 총알이 날아온다. 최악의 상황이 온 것 같다.


"주인님... 아무래도 공격 명령을...."


브라우니와 노움의 형상을 한 것들은 몸에서 액체 같은 것들을 떼어내고 그것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변한 채 그녀들의 앞을 막고 있었다.


"다들 공격해 저건 우리가 알던 그녀들이 아니다."


곧바로 펜리르와 베로니카가 달려들어 그녀들을 베어내고 터뜨렸으나 그녀들 앞에 그것이 보호하고 터져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마치... 그녀들의 원래 남았던 인격이 공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는 것 처럼 아파하며 울부짖는다. 고통스럽고 살려달라는 듯 말이다.


적들은 우리를 항해 계속 쏜다. 그녀들을 방패 삼아 막고 우리는 살기 위해 계속해서 그녀들을 터뜨리고 꿰뚫고 비명을 듣는다.


구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계속 그녀들을 향해 쏘고 터뜨리고 무너져간다. 


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우리는 구해야 한다. 세상을, 우린 구할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해낼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세상을... 지킨다. 그녀들은... 희생당한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우릴 규탄한단 말인가 우린 종말을 막기 위해 정당한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린 옳다.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망설이지 않고 적을 향해 쏘던 하치코는 이젠 두려워한다. 그녀들의 비명을 듣고 싶지 않기에 그저 방패로 지키기만을 하고있다.


목표를 향해 서슴없이 정확하게 베어내던 펜리르는 점차 정확도가 떨어져 간다. 아까보다 더 강하게 터뜨리지만 어째서 인가 공격은 점차 올바르게 나가지 않는다.


총으로는 먹히지 않고 직접 베어내는 것만이 답이라는 걸 알아낸 베로니카는 자신을 계속 혹사하며까지 무리하게 공격을 이어나간다.  분명 믿음 없는 죄인을 수확하는 것이 즐거웠던 베로니카였지만 점차 자신을 혹사하며 느껴지는 고통이 엄습해 오는 것을 직감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그녀들을 터뜨려가며 공격을 하던 이터니티는 멈추지 않는 비명과 고통에 찬 절규 속에서 생각한다. 어째서 다른 이들이 공격을 점차 멈추어 가는 건가 설마 다른 이들도 점차 색채에 먹혀서 타락한 것인가 다들 의지를 잃은 것인가 하며 의심해간다. 안된다. 무슨일이 있어도 혼자만이라도 반드시 주인님을 지켜드리고 영원히 함께해야한다.


그렇게 몇 번이고 터지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다 베로니카의 마지막  일격에 노움과 브라우니의 형상을 한 무언가는 쓰러져가며 색을 발하는 단검만을 흘린 채 이 저주받은 대지에 스며들었다.


"주인님... 끝났어요... 하치코는 해냈어요...."

"뭐야 어디 간 거야 왜 벌써 사라진 거야 아직이야... 아직이라고"

"저는...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빛도 저의 수고를 인정하실 겁니다... 그러니 잠시 쉬고 싶습니다 구원자님..."

"다들 주인님에게서 떨어지세요. 분명 누군가는 광기에 물드신 겁니다. 누군가 공격을 멈추셨습니다."


색채가 발하는 신기한 단검이다. 어째서 이게 그녀들의 몸에서 나온 것일까... 마치 의식용 단검 같다. 꼭 제물을 받칠 때 쓰는 것처럼.... 


'중요한 물건이지... 너가 필요로 하게 될 물건'


방금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중요한 물건이라니 그게 무슨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너의 선택이 모든 것을....'


속삭임은 더 들리지 않는다.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라니 도대체....


"주인님 제가 주인님을 다른 분들로부터 지켜드리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환청에 정신이 팔렸던 탓에 내부분열을 이제 눈치챘다. 이대로 가면 큰일이다. 처음 생각했던 대처 방법대로 가야 한다.


"다들 진정하고 모여서 처음 받았던 보급품 풀어서 사용하고 쉬고 있어."

"상황이 상황이니깐 힘들었던 것 알아 시간은 넉넉하게 줄테니깐 다들 쉬면서 정신 좀 차리고 있어"


다들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처음 받았던 보급품을 풀고 사용하며 조금씩 정신을 차려간다.


나도 살짝 정신을 차리려고 보급품을 꺼낼때 무언가 내 머리를 스친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구나 하지만 이곳에서 이성이란 네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는 것일 뿐이다. 색채에 눈을 맡기고 광기에 귀를 기울여라!'


아까 전 이성을 끈을 놓았을 때 속삭임이 들렸었다. 만약 누군가 속삭임을 들어야 한다면 그것으로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무모한 도박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계속 이렇게 이곳을 방황하면 분열만 일어나다 이곳을 해매게 될 뿐이다. 그래... 한번 해보자.


보급품에서 각성제를 꺼내고 내용물을 모두 쏟아낸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부디 그 속삭임이 정답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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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이 개판이라 보호무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베로니카랑 이터니티 둘 다 보호무시 있었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