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져있던 사령관실 구석 탕비실에 다시금 조명이 밝아졌다. 본래라면 방주인은 대식당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연회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터이지만, 최후의 인류인 그가 그것을 마다하고 조그만 탕비실에서 진땀을 빼고 있는것은 자신의 그녀에게 작은 비밀 이벤트를 열어주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였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엇차... 재료랑 도구는 이쯤이면 됐겠지. ....처음 해보는건데 잘 되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령관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열시 20분쯤.. 약속까지 한시간도 안 남은 지금 멍하니 감상에 잠겨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가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뷔슈 드 노엘. 멸망 전 크리스마스에 특히 인기가 높았다던 장작모양 케이크. 불행인지 다행인지 탕비실에는 오븐이 없었고 결국 사령관은 카페에서 롤 케이크를 사 올수밖에 없었다. 전부 자기 손으로 만들어서 주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지만 지금 시간에 식당 인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걸 떠올리니....


 "거기서 초짜가 케이크 만들겠답시고 난리부리는 것도 민폐지. 쯧."


 잡생각을 털어내듯 머리를 저은 사령관이었다. 고요한 탕비실에 틱톡 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음을 다지고 도마와 칼로 초콜릿 덩어리를 썰며 사령관은 아쉬움을 삭혔다.



 "레시피에서 케이크 부분은 패스하고... 이미 있으니까아..... 가나슈 재료는 초콜릿과 생크림을 1대 1로 계량한ㄷ... 근데 이게 생크림인가? 그냥.... 좀 끈적한 우유같이 생겼는데..?"


 요리 문외한인 그에게 크림이란 몽글몽글 부드러운 면도크림 비슷한 것일 뿐, 이걸 휘저어야 흔히 보는 케이크 위의 생크림이 된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레시피가 휘핑을 요구하지 않는 점이 미지막 인류에겐 천운이었을 뿐이었다.


 "에..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여준다라.. 그래서 초콜릿을 잘게 다지라고 했구나. 별거 아닌거 같은데 손 많이 가네 이거."


 


 큰 냄비의 물이 끓고, 작은 냄비를 그 안에 넣어 간접적인 열을 이용하는 방법. 저번에 간식 한번 먹겠다고 초코바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가 사령관실에 탄내가 3일동안 빠지지 않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는 냄비 안의 내용물을 천천히 저어 줬다. 녹기는 빠르게 녹았지만 다질때 덜 잘라진 큰 덩이들이 아직 녹지 않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매끈하게 녹을 때 까지 공을 들여 줬다.


 "다음은, 계량한 크림을 녹은 초콜릿에 세번 나눠 넣고 잘 저어 준다. 괄호열고 세번 나눠 넣는것은 베이킹의 국룰! ...레시피에 단어선정이 왜 이렇게 싼티가 나지...."


 신뢰성에 약간 의문이 생겼지만 이제와서 어쩌랴. 시키는 대로 레시피가 띄워진 패널을 보며 생크림을 3분의 1 가량 넣고 저어 주는 사령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거 망한거 아냐?"



 잘 섞이지도 않을 뿐 더러 뭔가 비주얼이 엉망인 내용물을 본 사령관은 황급히 레시피를 확인했다. 처음엔 잘 섞이지 않지만 저어주면 모양이 나온다는 구절을 확인하고 나서도 미심쩍은 표정을 숨길수 없는 그였다. 그래도 계속 저어주니 모양이 슬슬 잡히는 가나슈를 보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탕비실 안에 가득 찼다. 신뢰를 회복한 레시피를 따라 나머지 크림도 넣어 섞어주자...



 "휴, 가장 어려운게 끝났네."


 매끈한 윤기를 자랑하는 가나슈가 겨우 완성됐다. 맛이나 한번 볼까 하고 스패츌러에 후 후 입김을 몇번 불고 찍어보자 손 끝에 부드러운 달콤함이 묻어나왔다. 맛을 보던 사령관은 어느 새 방 안에 달달한 냄새가 꽉 찬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남은 시간이 20분 남짓인 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올 시간이.


 


 "이렇게 비스듬하게 잘라서... 테두리를 좀 떼어내고 위에다가 붙이면... 별론데? 옆에가 낫겠구만. 가지 모양을 대충 만들고 위에 가나슈를 바른다. 오케이."


 스패츌러로 가나슈를 치덕치덕 바르고 헤라로 슥슥 펴면서 모양을 잡자 반질하게 겉면이 코팅된 케이크가 완성됐다. 이제 남은 것은 나무 모양을 내 주는 작업. 그가 손에 포크를 들고 아직 굳지 않은 초콜릿 위를 긁자 점차 나무같은 질감이 위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좀 그럴싸 하네. 디게 지저분해지긴 했는데 어차피 다른데 옮길거니까... 설거지만 나중에 하자. 나중에.."



 낑낑대며 회전판에 케이크를 올려놓고 추가로 무늬를 더 내고 나서야 사령관은 이마에 낀 땀을 조금이나마 닦아낼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화룡점정. 마지막 데코가 남아 있으니까. 비장한 표정의 그는 마지막 작업을 위해 손을 놀렸다. 




 장식품도 꽂고, 옆에 버섯모양 과자도 꽂고... 



마지막 슈거 파우더로 흩날린 눈까지. 결과물이 의외로 괜찮은걸 본 그는 완성된 뷔슈 드 노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뒤에서 그를 보고 있던 그녀를 보기 전 까지는.


 "어....  ΟΟΟ , 일찍 왔구나."


 걷어붙인 팔, 공기에 퍼져있는 달콤한 초콜릿 향내, 손에 군데군데 뭍어있는 흰 가루, 이마에서 조금 흘러 얼굴을 적시고 있는 땀방울까지. 누가 봐도 손수 케이크를 만들어 준 모양새의 반응은 웃음을 터트리려는건지 울음을 터트리려는지 모를 그녀의 표정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달려와 사령관을 덥석 껴안은 그녀는 필시 웃고 있었을 것이지만.


 두 연인이 여러가지로 달콤한 밤을 보내는 오르카 호 위로, 눈꽃 한 송이가 흩날렸다.


-fin-



ΟΟΟ 는 읽으시는 여러분의 최애캐를 넣어서 상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