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아무리 더럽고 냄새나도 가야만 합니다."



 뻗어버린 시젠은 아침이 되자 다시 일어났지만 그 누구도 다시 삼안 연구 시설에 들어가자는 소리를 꺼내지 못했다. 


시젠처럼 뻗어버리지 않았을 뿐 연구 시설 안에 가득한 끔찍한 악취는 다른 이들에게도 참기 어려운 것이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다시 들어가 봐야 또 다시 시젠이나 누군가가 기절할 것이 뻔했다.


 닥터를 비롯한 기술자들과 기술에 나름대로 조예가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떻게 하면 악취를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했고 원래는 이쪽에 별다른 지식도 관심도 없는 레이라미아와 유갈리안티들마저도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동참했다. 


 가장 먼저 나온 의견은 방독면이었고 레이라미아가 형성하는 방어막의 구조를 바꿈으로서 시젠이나 일행을 악취로부터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 각 바이오로이드들이 가진 방어막 생성 장치를 사용해서 악취를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저 끔찍한 악취를 어떻게 막지 못하면 시설 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 안에 사는 괴물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려울 것이니만큼 이 문제는 최대한 빨리 풀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의견들을 정리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삼안 산업 연구시설의 문이 크게 울리고, 두터운 금속제 출입문이 마구 찌그러졌다. 벌어진 출입문의 틈새로 튀어나온 손들이 찌그러진 출입문을 꽉 붙잡고는 아예 뜯어 버렸다.


 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문 밖으로 몰려나왔다. 


 괴물들의 몸에 잔뜩 달린 얼굴들이 주변을 둘러보다 시젠이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시선을 던졌다.


 시젠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다 지쳐서 연구시설 바깥으로 나온 괴물들의 행차가 일행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출입구가 파괴된 연구시설 안쪽과 괴물들의 몸에서 끔찍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시젠이 또다시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자 그녀를 안아든 티타니아와 에키드나가 괴물들에게 물러나라며 위협했다. 시젠의 상태가 왜 안 좋아졌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그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괴물들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세 유갈리안티와 레이라미아가 괴물들을 협공하기에 좋은 위치를 잡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은 시젠이 힘없이 뀨뀨거렸다.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 괴물들이 다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서로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기도 하고,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기도 했지만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시체 썩는 냄새가 가득 찬 곳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히 자기 몸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지 어떤지 알 리가 없었고, 자기들끼리만 살아왔으니 그 악취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 턱 또한 없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저 가공할 악취가 괴물들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안 라비아타와 아자젤은 코가 썩어버릴 것 같은 악취를 견디면서 괴물들에게 씻을 것을 권유했고, 에바는 두 레모네이드들에게 괴물들을 씻길 시설들과 이에 필요한 장비들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쪽으로 이 정도 덩치의 괴물들을 씻길 만한 장비들을 좀 보내줘야겠는데, 그것도 최대한 빨리."


 [.......시젠 아가씨, 혹시 유갈리안티-225 님을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저기 계신 분들을 씻기기 위해서는 유갈리안티 님들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뀨......]


 레모네이드들의 말을 들은 시젠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이는 움직임으로 [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어보였다. 너무나 쉽게 중요한 전력을 레모네이드들에게 빌려주는 시젠의 모습을 보며 탄식하는 에바와는 반대로 레모네이드들의 입꼬리는 위로 올라갔다.


 시젠의 말을 들은 유갈리안티들과 레이라미아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넷으로도 괴물들을 제압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셋으로는 더 힘들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동료들과 짤막하게 의논한 유갈리안티-225가 시젠에게 인삿말을 남기고는 녹색의 빛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녀오겠습니다, 시젠 아가씨.] 


 그 동안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색색의 방어막들을 펼쳐 일행을 감쌌다. 그러자 악취가 좀 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후각이 마비되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정말로 여러 겹의 방어막이 악취를 막는 데 효과가 있는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괴물들을 씻기기 위한 장비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방어막 안에서 시젠은 괴물들을 향해서 열심히 뀨뀨거렸고 라비아타와 아자젤도 목욕의 필요성이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괴물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신들과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냄새라는 것이 난다는 것과 그것이 자신들 말고 다른 이들에게는 매우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은 어찌어찌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 깨끗하게 씻어도 저 안에 들어가면 도로 냄새나지 않나? 그리고 우리도 저 안에 들어가서 볼 일 봐야 하지 않아?"


 "......아."


 라비아타와 아자젤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 사실을 지적한 티타니아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투덜거렸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희가 잊어버리면 뭐 어쩌자는 거야."


 ".......어차피 필요할 준비를 미리 했다고 생각하자꾸나."


 태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에바의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같이 뻔뻔하다는 감상을 떠올렸다. 


 다른 이들이 자기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안 쓰는 에바는 레모네이드들과 타이거샤크에 방호복과 방독면을 가져다줄 것을 요구했고 만일 시젠의 체형에 맞는 화생방 장비가 있다면 그것도 가져다줄 것을 요구했다.


 방금 전까지 자기들한테 씻어야 하네 뭐가 어쩌네 하던 일행이 다시 연구시설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갖추자 괴물들이 혼란스러워 하다가 라비아타의 설명을 듣고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들조차도 어이없어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타이거샤크를 지키고 있던 유갈리안티-163이 화생방 장비가 들어있는 박스와 함께 공간이동으로 나타났다가 돌아가고, 몇 분 뒤에는 유갈리안티-225가 군견용 화생방 보호복과 여분의 화생방 장비, 그리고 대형 샤워 시설들과 오수 처리 장비들을 가져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아직 유갈리안티-225가 가져와야 할 장비들은 잔뜩 남아 있었다.


 짐승이 쓰도록 만들어진 장비를 시젠에게 씌워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일행이 시젠의 의견을 구했다. 그녀가 괜찮다고 했음에도 주저하던 일행이 마지못해 군견용 장비를 시젠에게 착용시켰다. 


 원래 장비를 사용할 예정이었던 군견보다 시젠의 체격이 작아서 장비를 착용하는 것 자체는 가능했지만, 군견과는 달리 팔이 네 개인데다 훨씬 긴 꼬리와 날개가 달려있는 시젠이 화생방 장비를 착용하니 무척이나 불편했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갑갑함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젠을 달랜 라비아타가 이번 일이 끝나는대로 시젠 전용의 방호복을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행 전원이 화생방 장비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라비아타가 괴물들에게 시설의 안내를 부탁했다.


 괴물들은 한참동안 이상한 옷차림을 한 바이오로이드들과 시젠을 쳐다보았다. 


 그녀들이 입은 화생방 보호복이 왠지 괴물들에게는 굉장히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언젠가 저런 옷차림을 한 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언제였는지, 누가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지, 왜 저게 기분 나쁜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거린 괴물들이 그녀들이 나왔던 연구시설을 향해 육중한 몸을 돌렸고, 잠깐 머뭇거린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녀들의 뒤를 따라 연구시설로 다시 진입했다. 


 티타니아의 품에 안긴 시젠의 몸이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그 끔찍한 악취를 떠올린 시젠이 보호막을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그 보호막이 제대로 작동을 해 주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시젠이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 라비아타가 레이라미아에게 진단을 부탁했다.


 레이라미아는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시설 내에 너무 오래 머무를 경우에는 시젠에게 무리가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쩌면 삼안 연구 시설에 여러 차례 들락날락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일행이 한숨을 쉬면서 괴물들의 뒤를 따라갔다.

 

 여전히 시설 안에는 기분 나쁜 시꺼먼 것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방독면에다 다중의 방어막, 여기에 시젠이 만들어낸 방어막까지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악취가 코와 뇌를 후벼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괴물들이 손을 휘두르자 한가득 쌓여있던 시꺼먼 물질들이 양옆으로 쫙 갈라지면서 길을 내 주었다. 시꺼먼 물질들 사이에서 사람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모양 같은 게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마치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뻗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본 바이오로이드들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는 것을 다시 억지로 삼키면서 괴물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이 장소가 워낙에 불쾌한 탓인지 일행에게는 이 연구시설이 엄청나게 거대해서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구 시설 안쪽에는 아직 자라지 않은 괴물들이 들어있는 바이오로이드 제작 장비들과 지난번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괴물들이 가득했다. 


 괴물들이 일행들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면서도 경계가 가득한 눈빛들을 쏘아보냈다. 라비아타 일행이 이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 또한 라비아타 일행을 신뢰하지 않았다.


 요동치는 검은 물질들이 아직 형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괴물들이 든 캡슐들을 둘러쌌다. 


 배양액 대신에 캡슐을 채운 시뻘건 액체 속에서 자라나는 괴물들의 모습을 본 닥터들이 징그러워하는 동시에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린 '자매들'에게 접근했다가는 알아서 하라는 듯한 괴물들의 시선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한 닥터들이 다른 기계들이나 데이터베이스에 남은 정보들,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온갖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네."


 모조리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린 유전자 씨앗들을 살펴본 에바가 한숨을 쉬었다.


 시설 내에 보관되어 있던 오리진 더스트들도 모조리 변질된 것을 확인한 라비아타 역시도 탄식을 내뱉었다. 


 괴물들이 시설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면서 안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의 유전자 씨앗과 오리진 더스트들이 모조리 변질된 것이 분명했다.


 변질된 것은 생물학적인 것들뿐만이 아니었다. 시설 내의 장비들도 전부 이상 작동하고 있었고, 시설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정보들도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의 나열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서 무엇을 연구하려 했었는지, 어떤 실험이 자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이것을 해석해주실 수 있나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비아타가 괴물들에게 부탁했지만 돌아온 것은 갸우뚱거리는 괴물들의 반응 말고는 없었다. 


 "어떻게 하겠니? 변질된 데이터라도 복사해서 가져가겠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그냥 가도록 하죠."


 변질된 데이터를 어떻게든 복구할 수만 있다면 일행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저 변질된 데이터가 대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판단한 라비아타가 삼안 산업 연구 시설의 데이터들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변이된 오리진 더스트들과 유전자 씨앗은 괴물들에게 필요했다. 일행이 유전자 씨앗과 오리진 더스트를 가져가는 것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괴물들과의 짧은 협상 끝에 연구용으로 아주 소량만 가져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자, 그러면 이제 한 가지 중대사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일행과 괴물들을 둘러본 에바가 중대사항이라는 단어에 약간 강세를 넣었다. 


 "괴물 여러분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해서는 뭐라 안 하겠지만 최소한 이 시체 썩는 냄새만큼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여러분의 의견을 좀 구하고 싶은데?"

 

 ".......이 안까지 어떻게 할 방법이 있을까요?"


 "레모네이드들한테 AGS든 인력이든 보내달라고 해서 어떻게 손을 써야겠지? 물론 지금 여기 거주하시는 분들이 허락해 줘야지 가능한 일이겠지만." 


 시설 안에 머물러있던 괴물들의 반응은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여긴...... 우리 집이야.......]


[우리는...... 아무렇지 않아....... 냄새가...... 우릴 지켜줄 거야......]

 

 괴물들 중에서는 외부인에 자신들의 집을 청소하고 어쩌고 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만일 자신들이나 집에서 나는 악취가 다른 이들이 견디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라면 오히려 자신들을 지켜줄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고 여기는 괴물들도 있었다. 


 아자젤이 처음 괴물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이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괴물들은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고통을 받았거나 무언가 한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외부인이 집에 들어와서 집을 치워라 마라, 좀 씻어라 어째라 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긴 하지만 이들은 이에 더해서 타인이 자신들에게 다가오거나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번에 일행이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들의 거주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시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지, 만일 시젠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허락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괴물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아자젤이었지만 괴물들에게 그냥 이대로 살라고 말하기도 그랬다. 최소한 이들이 거주지를 청소하지 않고 살 생각이라면, 적어도 자신들의 집 밖으로 나올 일이 있을 때만큼은 씻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웃는 얼굴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텐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삼안 연구 시설이 이들이 살기에는 너무 비좁아질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미칠 피해나 그로 인한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기 주변을 청결하게 해야 할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서 알려줘야 했다.


 '웃는 얼굴들'에게 불쾌함을 준 데 대해 사과하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아자젤이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변 환경을 청결하게 해야 할 필요성과 더불어 목욕과 샤워, 청소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자젤의 말에도 여전히 '웃는 얼굴들'은 그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몸에서 냄새가 나고 더러우면 시젠을 비롯해 이들이 좋아하는 이들이 있더라도 같이 있기 힘들다는 이야기만큼은 확실히 이해했고, 마지못해 그녀들의 거주지 밖으로 외출할 때만큼은 씻기로 했다. 


 어찌어찌 힘들게 합의를 본 일행과 '웃는 얼굴들' 중 일부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삼안 연구 시설 앞에는 '웃는 얼굴들'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샤워실은 물론 하수 처리 시설에다 간이 정화 시설 등등 이것저것 잔뜩 들어서 있었다. 


 시설을 세울 공간이 모자라자 레모네이드들과 유갈리안티들은 섬 주민들의 허락을 받아 근처의 나무들을 뽑아서 다른 자리에다 옮겨 심어가면서 공간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엘븐 시리즈들은 이를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나무들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옮겨 심는다는 말과 더불어 괴물들을 씻겼을 때 발생할 대량의 오수와 폐수를 처리하려면 이를 처리할 시설을 설치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허락했다.  


 괴물들에게 샤워하는 법을 가르쳐주려면 이들과 샤워실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라비아타와 아자젤, 에바가 각오를 굳혔다. 티타니아는 '웃는 얼굴들'이 시젠과 같이 샤워를 하겠다고 하기 전에 재빨리 시젠을 데리고 샤워실로 먼저 들어갔고 에키드나와 닥터들이 재빨리 그 뒤를 따라갔다. 아니나다를까 '웃는 얼굴들'이 이들의 뒤를 따라가려 하자 아자젤과 사라카엘, 레아들이 이들을 멈춰세웠다.


 먼저 들어간 이들이 샤워를 끝내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괴물들은 샤워실을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고,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런 괴물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들의 '머리'를 비롯해서 온몸에 달려있는 얼굴들, 그리고 몸 곳곳에 자리잡은 기계 장치들까지 굉장히 낯익은 부분들이 많았다. 일행이 예상하는 것처럼 이들이 죽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뭉쳐져서 되살아난 존재 또는 바이오로이드가 변이되어 만들어진 존재라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라비아타와 생김새가 굉장히 비슷한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든지, 모든 개체들이 공통적으로 팔이나 다리 부분에 라비아타의 플라즈마 제네레이터와 유사한 장치를, 등에는 레오나의 '여왕의 자비'와 매우 비슷한 장치를 달고 있다든지.


 레이라미아가 먼저 샤워실에 들어간 이들이 샤워를 끝마쳤음을 알리자 라비아타와 에바, 아자젤과 사라카엘이 앞장서서 괴물들을 데리고 샤워실로 향했다. 나머지 바이오로이드들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 샤워실로 들어갔다.


 방어막을 해제하고 방호복을 벗기가 무섭게 코가 썩어버릴 듯한 악취가 바이오로이드의 콧속으로 흘러들어가 뇌를 마구 헤집어댔다.


  레모네이드들이 설치한 환풍기들이 풀 파워로 가동되고 방향제가 샤워실 안으로 투입되었지만 크게 나아졌는지 어떤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일단은 가볍게 물로 한 번 씻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한 라비아타가 샤워기를 작동시키자 미지근한 물이 천장과 벽면의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냄새가 빠지려면 꽤나 오래 목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괴물들에게 씻는 법을 보여주려던 아자젤이 괴물들의 반응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방어막을 펼쳤다.


 샤워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이라미아도 뭔가가 일어날 징조를 느꼈다. 


 레이라미아가 즉시 괴물들 주변으로 방어막을 만들어내어 바이오로이드들과 괴물을 차단하고, 레이라미아에게서 경고를 받은 유갈리안티들은 여차하면 샤워실을 때려부수고 전투를 벌일 준비를 했다. 


 샤워실 바깥에서 라비아타와 바이오로이드들, '웃는 얼굴들'이 샤워를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리던 시젠은 불길한 예감이 들자 몸을 웅크렸고 레이라미아와 유갈리안티들, 시젠의 행동을 보고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낀 티타니아도 방어막을 전개했다. 에키드나가 액체금속으로 구체를 만들어 이들을 감싸는 것과 거의 동시에 끔찍한 비명소리가 주변을 흔들기 시작했다.


 다중의 방어막에도 불구하고 샤워실 안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정도로 끔찍한 비명이었다. 만일 방어막이 아니었으면 샤워실 안에 들어간 바이오로이드들의 몸은 갈가리 찢어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맞는 '웃는 얼굴들'의 몸에 달린 얼굴들이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면서 시꺼먼 눈물을 쏟아냈다. 몇몇은 샤워실을 때려 부수려는 것처럼 팔을 휘둘러댔고 몇몇은 물줄기가 몸에 닿으려는 것을 피하려는 듯이 구석으로 도망가면서 팔과 앞다리를 들어 몸을 가렸다. 


 아자젤과 레이라미아가 방어막을 한층 더 강화하자 몸을 움직일 여유가 생긴 라비아타가 샤워기를 껐고, 쏟아져 나오던 물줄기들이 멈췄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비명 지르는 것을 멈춘 괴물들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바이오로이드들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서로의 얼굴과 덜덜 떨고 있는 괴물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