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여기서 고블린에게 박혀보고 싶은 사람 있어?”

 걸즈토크란 어느 곳으로 향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법이었다. 인지를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연산력을 가져 100년 뒤 어디서 태풍이 발생할 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슈퍼 컴퓨터라 하더라도 여고생들의 대화가 어디로 갈 지는 바로 다음 문장조차 예측할 수 없을 것이었다.

 “고블린? 만화에 나오는 괴물들 말하는 거야? 으엑. 유미 그런 취향이었어?”

 고블린에 관한 설화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당연히 유즈루가 말한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물론 고블린에 대한 판타지를 가진 여성이 소설이나 만화속의 여기사들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런 여성보다 고블린을 보는게 빠를지도 모르겠지.

 “그 고블린 말고. 바이오로이드 있잖아. 어쩌다가 봤는데 진짜 잘 생겼더라고. 게다가 근육도 말야, 그렇게 만져보고 싶은 근육은 처음이었어. 팔 들어올릴때 봤어? 난 전거근이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봤어.”

 유즈루는 황홀한 황혼이라도 보았다는 듯,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유카는 기겁했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바이오로이드? 공장에서 만들어진 거잖아. 그런 거랑 섹스하고 싶다는 거야? 유즈루, 너 어떻게 된 거 아냐? 고블린보다 더 우웩이야 그거. 설마 바이오로이드랑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부류인건 아니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내가 남자가 없어서 고픈 여자도 아니고 그런 바이오로이드에 꼴릴 일은 없을 거라고 말야. 근데 전에 아오야마에 놀러갔을 때 경호원으로 왔는지 식당에 서있었던 걸 본 거야. 나는 처음에는 별 감정이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서 그 경호원이 웃통을 벗은 거야. 알고보니 옷에 뭐 묻어서 그 주인이 벗으라 한 건데 뭐 그건 상관 없고, 진짜 중요한 건 그 근육이야. 복근은 기본이고 별의별 근육이 다 제대로 각이 잡혀있었다니까? 내가 아이돌 진짜 오래 판건 다들 알잖아. 근데 그 근육은 내가 팠던 어떤 아이돌보다 쩔었어. 아니, 너희도 직접 봐야해. 나도 넋놓고 봤다니까? 남들 눈치보고 정신 안차렸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이불깔고 누웠을 거야.”

 유즈루의 열변에 다른 여고생들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빛이었고 이제는 포기했다는 눈빛을 짓기도 했다. 토모는 그 대화를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녀는 바이오로이드였으니까. 남들이 바이오로이드를 그렇게 보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바이오로이드임을 알면 그들은 같은 반응을 보일까. 이상적으로 생긴 혐오스러운 존재라고.

 치아키가 그녀를 생각하는 것 역시 그럴지도 몰랐다. 치아키는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로 자신을 미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지. 치아키는 모두를 미워했다. 특히 토모를 미워할 뿐.

 “그래서, 어쩌다 이 이야기까지 흘러온 거지?”

 무의식적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간 이야기의 종점은 이야기의 근원을 찾는 행동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 근원을 찾을 수 없거나 몇시간 뒤, 혹은 며칠 뒤에서야 갑작스레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다행히 지금의 경우에는 유이가 해답을 바로 떠올렸다.

 “토모가 누굴 좋아하냐는 이야기였잖아.”

 “아 그런 이야기였지. 사랑이란 뭔가! 여기서는 이 유미가 간단하게 설명해주지!”

 유미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팡 치며 외쳤다.

 “사랑이란 달을 아름답다고 하는 겁니다! Feat. 다자이 오사무 선생님!”

 “전혀 대답이 안되잖아. 게다가 오사무가 아니라 소세키. 수업시간때 졸았네.”

 즈루는 며칠전 들었던 문학 수업에서 나온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유즈쨩이 말해봐. 바이오로이드 좋아하니 사랑이 뭔지도 알겠지.”

 유미는 토라진 얼굴로 이미 녹아 액체가 된 파르페를 저으며 말했다. 유즈루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곳 진지한 얼굴을 했다.

 “사랑이란, 언제 어디서나 그 사람만을 생각하는 것 아닐까? 훗.”

 훗. 유즈루는 어이없는 추임새로 말을 마쳤다.

 “그래서 즈루쨩은 평소에도 고블린에 꼴려있다, 이건가요?”

 “시끄러워!”

 여고생들이 떠드는 사이, 토모는 유즈루의 말을 곱씹었다. 그 사람만을 생각하는 것. 그 사람만이 생각나는 것. 그 사람. 그가 누구인지 토모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을 토모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어느 순간도 토모는 그 사람을 생각했다.

 타누키사키 치아키. 토모는 그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다. 그 사람만이 토모의 존재이유였다. 사랑. 토모는 자신의 모든 감정에 대한 설명을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사랑. 토모가 하고 있는 것, 토모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랑.

 “토모쨩, 사랑해!”

 토모는 자신앞에서 종이봉투를 내밀며 고개를 숙인 남학생을 보았다. 토모는 그 남자를 보았다. 자신을 카와스미 코우라 소개한 그.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말했다. 토모는 그 남자를 본 적도 안적도 신경을 쓴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토모를 생각하느라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고.

 그가 내민 것은 러브레터였다. 그가 한 긴 말도 그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정성이 가득담긴 편지를 토모는 불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토모는 고민했다. 그러나 하염없이 고민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정의 유예가 아닌 거절의 또다른 표현이었으니까. 그가 허리가 아파 더이상 그 자세를 유지하게 될 수 없을 때가 되면 토모의 눈앞의 남자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 것이었다.

 “미안해. 그 편지를 받을 수 없어.”

 토모는 어째서 그런 대답을 해야 했을까. 연애를 하면서 치아키를 지킬 수 없으니까? 자신이 바이오로이드라는 것이 들통날 것을 걱정해서? 아니면 그녀가 좋아하는 그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토모는 그 어떤 것도 자신할 수 없었다. 한 남학생의 용기있는 고백의 대한 답은 그런 이유에서 나왔다.

 자신이 이 남자와 사귀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그녀가 고를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치아키와 함께하는 것보다 카와스미 코우라는 남자와 함께하는 것이 더 즐거울 수도 있었다. 치아키와는 달리 이 남자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자신을 혐오하고 보는 것조차 싫어하는 그 남자에 비하면 이 작고 귀여운 남학생은 토모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안겨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앎에도 토모는 그의 고백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토모에게는 치아키 뿐이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토모에게는 치아키 뿐이었다.

 “치아키. 좋아해.”

 토모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손에는 토끼모양으로 잘린 사과로 가득한 쟁반이 들려있었고 그녀의 다른 손은 문을 두들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려 치아키를 부르기 전, 토모는 혼자 조용히 그렇게 되뇌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그녀에게 용기란 치아키가 보지 않는 곳에서, 치아키가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그렇게 아무도 듣지 못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이는 것 뿐이었다. 치아키가 듣기를 바랬지만 치아키가 듣게 할 수 없었다. 치아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치아키에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토모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문을 두드리려 했다. 치아키는 자신의 주인이었다. 지켜야할 대상이었다. 감정을 그 안에 실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감정을 죽여야 했다.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바이오로이드였으니까. 그녀는 그저 도구...

 “뭐야.”

 갑자기 문이 열리고 치아키가 나타났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나타난 치아키의 모습에 토모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어? 아, 저, 그, 에? 치, 아, 그러니까. 그게, 음.”

 토모는 문장으로 성립되지 않을 여러 말을 했다. 그녀의 높은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치아키는 그런 토모를 노려보았다. 불만이라는 듯, 더 뒤로 물러나 자신을 막지 말라는 듯.

 “그, 사과? 사과에요. 사과. 에이븐이 타누키사키님에데 드리라고 가져왔어? 요.?”

 “필요없어. 그냥 버려. 그리고 비켜. 화장실 갔다 올 거니까.”

 치아키는 토모를 손으로 거칠게 밀었고 그 바람에 토모가 들고 있던 쟁반에서 사과 몇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치아키는 그것을 본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갈길을 갈 뿐이었다. 뒤에서 화장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토모는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주웠다.

 “사랑은 무슨...”

 토모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못하는,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치아키에 대한 생각밖에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미웠다. 치아키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치아키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찰 뿐이었다.

 사과를 주운 토모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이 천대받고 하대받는 그녀의 삶이었다. 바이오로이드로서 당연한 삶이었다. 그렇게 믿었는데, 그렇게 합리화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이런 감정이 다시 자신을 덮쳐온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이란 알아서는 안되는 거였어. 나같은 존재에게 사랑이란 거추장스러운 것, 고통스러운 것 뿐이야. 토모는 일어섰다. 그 힘을 내기 위해서는 그녀는 합리화해야 했다. 자신의 위치를 다시 깨달아야 했다. 자신의 감정은 자신의 오만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으니까.

 어두운 자신의 방위 침대에 쭈그려 앉은 그녀는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치아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언제라도 혹여나 치아키의 얼굴을 깜빡할 것을 대비한 것이었다. 치아키와 함께하지 않을때도 치아키를 본다면 치아키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거야. 그런 논리였다.

 평소라면 집중해서 그 얼굴을 보았지만 지금의 토모는 그 사진을 마주할 수 없었다. 치아키를 본다면 조금전 그녀를 괴롭혔던 감정들이 다시 솟아날 것 같았으니까. 웃고있는 그 표정이 자신을 쓰레기 보듯 바라보던 그 표정처럼 느껴졌으니까.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으니까.

 토모는 백지를 바라보았다. 흰색 도화지에는 선하나 그려지지 않았다. 토모의 손에는 연필이 들려있었다. 토모는 팔을 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연필로 무언가를 그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마음이 이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기를 바라며 멍하니 도화지를 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 그림을 선물하세요.”

 미술 선생인 요시다의 말이었다. 학생들은 술렁였다. 몇몇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몇몇은 잡담을 하며 귀를 속삭였다. 몇몇은 불만을 이야기했고 몇몇은 그저 웃을 뿐이었고 바로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그림을 그린 사람도 있었다.

 토모는 몇몇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랬지만 자신을 그리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치아키. 토모는 조용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치아키는 창가에 놓인 이젤 옆에 앉아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창가에 기대고 있었고 그의 손은 적당히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났다. 잡담은 줄어들고 연필이 도화지위를 지나며 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토모는 단 한줄도 도화지 위에 그을 수 없었다.

 “토모양? 그림이 잘 안그려지나요?”

 미술 선생, 요시다가 토모의 뒤에 서며 말했다. 아마 혼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토모를 걱정한 것이겠지. 토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할지 몰랐으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아직 무엇을 그릴지, 누구에게 그릴지 결론을 못내린 건가요?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토모양이 원하는 걸 그리면 되어요. 무엇이 되었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을 하나하나 그리면 되는 거에요. 그러다보면 토모양의 마음이 정리가 되고 토모양이 마음속에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되는지 알 수 있게 되겠죠. 그럼 한번 그려볼까요?”

 토모는 요시다의 말을 따라 손을 들어올렸다. 도화지에 연필을 대었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되었지만 토모는 투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자신이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을.

 물론 그 감정이 토모의 그림을 본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토모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니까. 현대미술과 유치원생의 장난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그림을 토모는 그렸다. 사실 그림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대 미술도 마찬가지로 그림이 아닌 그림에 담긴 뜻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뜻은 토모에게 전해지면 충분한 것이었다.

 문과 사과와 쟁반, 그리고 파르페를 그린 토모는 뿌듯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걸작을 바라보았다. 요시다가 그 그림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아, 문어랑 오징어를 그린 건가요? 토모양은 해물 좋아하세요?”

 토모는 그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 중요한 건 남들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