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사람은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돈을 보고 눈이 돌아간 사람과 아직 돈을 보지 못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타누키사키 치아키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다. 자신의 아버지인 타누키사키 요시히로. 일본 굴지의 AGS 기업의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부를 원하고 있었고 그에게 더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지만 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있었다. 돈. 치아키에게는 단 한번도 부족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이 무엇이라고. 돈이 많은 것이 무엇이 좋은 것이라고. 머리가 자신들의 허리에도 닿지 못할 치아키의 앞에서 그들은 요시히로의 험담을 하였다. 그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려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물론 치아키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달려가 그들이 한 말을 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들은 치아키는 그 말들을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치아키의 한마디면 그들은 회사에서 쫓겨났을 테지만 치아키가 원한 건 그들이 벌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염세적으로 살게될 이유. 그것만이 그가 원한 것이었다.

 어린 치아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의 가족이 가진 부를 부러워하고 있다고. 나이를 아직 양손에 셀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세지도 못할 치아키에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에게 아부를 했다. 그의 생일때면 이름도 얼굴도 모를 사람들이 선물과 축하를 보내왔고 그를 보고는 그를 치켜세우며 이런저런 아부를 했다.

 어린 치아키는 알고 있었다. 전부 거짓이라는 것을. 아무도 자신을 축하해주지 않는다고. 아무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그들이 축하하고 싶은 것은 그가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그들이 치켜세운 것은 요시히로였다. 그들에게 치아키는 그저 타누키사키 요시히로 대표의 아들일 뿐이었다.

 가족만은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치아키도 한때 그렇게 믿었다. 셋뿐이었지만 그의 부모만은 믿을 수 있다고. 낙관과 기대는 치아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어머니 타누키사키 하루코가 죽은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죽음이 치아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였던 그녀가 자궁암으로 사망한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치아키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녀가 죽기 전의 일이었다.

 ‘그 돈은 내 돈이 되었어야 했어.’

 타누키사키 하루코의 말이었다.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던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치아키에게 그렇게 기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만 아니었다면 네 아버지의 돈의 반은 내것이었을 거야. 내 돈을 다 가져가니 기분이 어때. 내가 얼른 죽었으면 좋겠지? 네 아버지의 유산을 나와 나눠가질 일이 없을 테니까. 너같은 자식을 낳지 않는게 나았어. 이런 자궁따윈 처음부터 없는게 나았어. 그러면 그 유산을 놔두고 내가 먼저 죽을 일도, 너같은 원치 않던 아이와 돈을 나눠가질 일도 없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치아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코가 죽는 순간까지 치아키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죽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의 아버지의 부를 탐하는 말만 했다고?

 무슨 말을 듣겠는가. 어미가 죽었는데 어미의 욕을 하는 패륜아로 남으라고? 치아키는 그 충격을 여전히 자신의 마음속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치아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치아키는 더 이상 충격을 받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인간과의 관계를 끊었다.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누구와도 눈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똑같았다. 자신에게서 보는 것은 돈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의 부를 보고 오는 사람들 뿐이었다.

 진정한 선의나 사랑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는 치아키 앞에서는 소설만도 못한 허구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었다. 요시히로가 가진 부를 보고도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바이오로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코가 죽은 후 요시히로는 바이오로이드를 사기 시작했다. 막 일본에 바이오로이드가 팔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젊고 아름다운 바이오로이드였다. 그것은 요시히로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랐다. 왜 그러겠는가. 요시히로에게는 자신을 살 부가 있었으니까. 그것들이 보는 것 역시 타누키사키 요시히로의 부였고 그들의 충성의 대상은 사람이 아닌 돈이었다.

 학교에서조차 그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두 그의 부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치아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새 학년 며칠만 그렇게 보내면 그와 대화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였다. 그게 편했다. 그게 옳았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면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친구따위 필요없었다. 연인따위 필요없었다. 성적은... 어느정도 필요했지만 치아키가 물려받을 부를 생각한다면 성적 역시 의미를 잃을 것이었다.

 그 삶은 몇년을 이어갔고 치아키는 그런 삶에 익숙해져갔다. 치아키의 주변도 익숙해져갔다. 치아키는 혼자였다. 치아키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만의 삶을 살고 있던 치아키의 앞에 그것이 나타나버렸다.

 ‘걱정마세요, 타누키사키님.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타누키사키님을 지켜드릴 거에요!’

 토모. 그 바이오로이드가 나타난 것이었다. 치아키는 속지 않았다. 이 바이오로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과 바이오로이드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이 충성하는 것은 그것을 산 요시히로였지, 자신이 아니었다. 어릴 적 그에게 왔던 수많은 어른들과 마찬가지였다. 치아키를 좋아하는 척, 요시히로에게 잘보이려는 것이었다.

 치아키는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어라? 타누키사키님은 아직 안돌아온 거야?”

 집에 돌아온 토모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거실에서 청소중인 에이븐에게 물었다. 그녀는 토모의 말에 이상하다는 듯, 청소를 멈추고 곰곰히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작은 주인님께서 오늘 늦으신다는 말은 없으셨는데요. 한번 연락해볼까요?”

 에이븐은 다시 생각하더니,

 “작은 주인님께서 받으실 리가 없겠죠. 아직 저녁시간은 되지 않았어요. 너무 늦어지신다면 그때 생각해보죠.”

 라고 말하고는 다시 청소를 이어갔다. 토모는 불안함도 들었지만 신발을 마저 벗어 신발장에 정리하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도쿄 한복판에서 치아키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연락이 온 게 아닌 이상 그저 어딘가를 들렸다 늦게 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토모, 손에 든 그건 뭐죠?”

 에이븐의 말에 토모는 미술시간에 그렸던 그림을 보여주었다.

 “와. 추상화인가요. 역시 현대 미술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어떤 걸 표현한 거죠?”

 그녀는 놀라며 말했지만 토모에게는 전혀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못그렸으면 못그렸다고 하는 것이 토모에게는 마음이 놓이는 평가겠지.

 “몰라.”

 토모는 보여주었던 종이를 다시 말아 가방에 꽂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방으로 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렸다. 토모가 돌아보자 현관으로 들어오는 치아키를 볼 수 있었다.

 “작은 주인님 오셨습니까?”

 치아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토모는 그에게 인삿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을 알았고 그가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았으니까. 그런 미련따윈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토모는 신발을 벗은 치아키가 성큼성큼 걸어와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까지 아무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 이거 받아.”

 자신을 지나치며 계단을 오르던 치아키의 말이었다. 그는 토모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말려있는 도화지였다. 그것을 받아든 토모는 도화지를 열어 치아키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사람. 토모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정도에 불과했다. 치아키가 그린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토모는 경호를 위해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는 것이 특기였지만 이 그림은 토모가 자신에게 그런 특기가 있다고 해도 되는가 회의마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토모는 곧 그 그림이 누구를 그린 것인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토모는 떠올린 것이었다. 오늘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의 주제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을 그리고 그 사람에게 그 그림을 선물하는 것. 토모는 치아키의 행위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아무리 토모가 바보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치아키는 토모에게 그림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야할 선물을 주었다. 그 말인즉슨 토모는 치아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토모의 삼단 농법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치아키는 말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우와앙!”

 토모는 자리에 서서 울고 말았다. 눈물이 흐르건 침이 튀기건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하염없이 울었다. 치아키는 자신을 생각해주고 있었다. 치아키는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을 믿고 있었다. 치아키는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 생각해주고 있었다. 치아키의 인정은 토모의 모든 정신적 고통을 일소해버렸다. 토모의 울음은 슬픔이 아닌 기쁨이었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토모, 괜찮아요?”

 에이븐이 토모에게 달려왔고 치아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토모를 바라봤다. 이거 좀 버려. 이렇게 말하려던 치아키였다. 그러나 그가 다음 말을 말하기도 전에 토모가 울어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그라도 지금 상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치아키는 토모가 왜 우는지, 서러워서 우는 것인지, 더이상 못하겠다고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에이븐이 오기도 하고 토모의 처리는 그녀에게 맡기면 되겠지. 치아키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가려는 찰나, 토모는 자신의 그림을 치아키에게 보여주며 건넸다.

 받아서는 안돼. 그냥 무시해. 널 속이려는 거야. 치아키의 내면은 그렇게 말했다. 울음을 핑계로 자신의 마음을 약하게 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일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거야. 치아키는 그렇게 다짐했다. 더 이상 남들에게 속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남들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함에도 그는 토모가 건넨 그림을 받았다.

 치아키는 그림을 보았다. 문과 사과와 쟁반, 그리고 파르페. 치아키는 토모가 그린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의 의미 역시 알고 있었다. 토모는 눈물로 가득한 눈으로 치아키를 바라보았다. 그는 토모가 자신에게 그림을 준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토모에게 그림을 준 것을 토모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알았다. 토모는 말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언어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명확한 의미가 담겨있는 행동이었다.

 ‘사랑해.’

 다시는 들을 것이라고 생각도 안했던 말이었다. 설혹 듣는다 해도 거절할 것이라 다짐했던 그 말이었다. 거절해야해. 평소처럼. 아무것도 듣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해. 세상에는 믿을 사람도 믿을 바이오로이드도 없어. 사람이란 믿었다가는 배신당하고 실망만 하는 법이야.

 치아키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의 경험은 말했다. 그의 기억은 말했다. 그의 트라우마가 말했다. 거절하라고. 아니, 대답조차 하지 말라고. 치아키는 매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정하라고. 그게 그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니까.

 “치아키.”

 토모의 목소리였다. 토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치아키를 불렀다. 그녀가 단 한번도 부르지 않은 타누키사키 치아키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눈물이 흐르는 결단에 찬 얼굴로 말했다.

 “사랑해.”

 치아키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런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건 그 말을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이 바이오로이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치아키만을 보고 있다고. 남들처럼 요시히로를 보고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고. 마지막 단 한번 누군가를 믿어보라고.

 토모는 미소를 지었다. 웃었다. 자신에게 웃음을 보였다. 속에 감춘 것이 하나도 없는 순수한 웃음이었다. 가면이 아니었다. 페르소나따윈 없었다. 표리일체였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바이오로이드는 치아키에게 말했다. 사랑한다고. 그 외의 다른 말은 없었다. 다른 의미는 없었다. 오직 그 뿐이었다. 사랑이라는 개념의 갓 알게 된 순수한 바이오로이드의 말이었다.

 치아키는 계단을 내려와 토모와 같은 칸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토모를 안아주었다.

 “우와아앙!”

 토모는 다시 울었다. 자신은 얼마나 운이 좋은 존재란 말인가.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얼마나 되겠는가. 토모는 그 중 하나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치아키를 사랑했고 치아키는 그런 토모를 받아주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토모가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억눌렀던 말인가. 그녀는 모든 감정을 토해냈다. 모든 사랑의 말을 했다. 치아키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토모를 안아줄 뿐이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할 지 몰랐으니까. 너무 오래 남들과 대화하지 않은 탓에 뭐라 대답할 지 몰랐으니까. 대신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어찌 이 작고 귀여운 바이오로이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치아키는 조용히 토모의 귀에 속삭였다. 한켠에서 매일같이 부정하던 자신의 진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던 자신의 진짜 마음을.

 “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