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오렌지에이드 서약 대사를 각색함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흠, 너무 늦게 오신 거 아니에요? 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구요..."


피곤한 듯 가라앉은 눈동자가 내게 향하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계속되는 바쁜 업무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삐 움직이다 보니, 이렇게 한 두 곳은 종종 지각하곤 했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미안! 나름 서두른다고 서두른 건데..."


저 말에 한치 의 거짓도 없다는 것은 당장이라도 맹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변명보단 빠른 사과가 더 확실할 것이다.

어쨌든 늦은 건 사실이고,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남자란 멋있는 부류는 전혀 아니겠지.


"후훗.. 괜찮아요. 어서 와요~ 보고 싶었어요."


살며시 품에 안겨 들며 얼굴을 부비며 아양을 떠는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웃음이 나왔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의

활달한 매력은 매일 이렇게 얼굴을 보며 함께 일하는 내게 큰 힘이 되었고, 그렇기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정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매일 바쁜 업무에.. 정신없는 일정까지 더하면.. 어휴~"


앞으로 해야 할 업무들의 일정을 생각하면 다시 소름이 돋았다. 지금 품에 안겨있는 그녀가 없었다면 누가 내 편을

들어 주겠는가. 사령관이란 직책은 고되고 외로운 길이란 생각이 다시금 내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자원이 터지면 보급계 인원들에게 잔소리를 듣고, 전투가 지지부진하면 지휘관들에게 치인다. 그뿐이랴, 매일같이

달려드는 그녀들을 만족 시키기 위해선 몸이 두 개, 아니. 10개는 있어야 할 것이다.


"저도 사령관 님을 처음 봤을 땐,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응? 무슨 소리야?"


오렌지에이드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내게 들려온 의외의 말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솔직히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령관 님의 곁에는 매력적인 분들이 잔뜩 계시는데, 제가 눈에 찰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거든요~"


살며시 혀를 살짝 내밀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 유쾌하게 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안도하고

큰 짐을 덜어 놓은 듯, 외롭게 느껴졌다.


"저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사령관 님이 없으면 안돼요."


"이야~ 그건 반칙인데..."


앞으로 그녀에게 건넬 임무를 생각한다면, 그녀의 저 표정은 충분히 반칙이라 생각되었다. 강아지 같이 똘망똘망한

시선으로 내게 애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은 치명적인 귀여움이 내포되어 내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네? 반칙이라뇨? 서, 설마!"


서둘러 내 품에서 벗어나 사태 파악에 나서는 그녀에게 여지를 주면 위험하다. 만약 틈을 허용한다면 또다시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려 버릴 것이니 서둘러 결말을 내야 했다.


"자! 외근 명령서 입니다!"


"아아아앗~!"


불쑥 건네진 외근 명령서에 오렌지에이드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나 또한 사랑하는 그녀를 잠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심히 가슴이 아프고, 마음 한켠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찔려왔지만, 그녀보다 더 적합한 인재는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명령서를 건네주었다.


"우으~! 외근 좀 줄여줘요~ 이러다 사령관 님 와이프 쓰러진다구요~"


"하하하.. 과연 쓰러지는 건 좀..."


과연 쓰러질 정도로 업무를 맡길 정도로 악독하지는 못했고,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그녀의 엄살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신혼 부부에게 출장과 외근이란, 사형 선고와 비슷하니.


"아! 이참에 전업주부로 전직해 버릴까요? 아침마다 제가 출근하는 사령관 님에게 넥타이를 매드리는거죠!

꺄아~! 어떻게 해! 정말! 미쳤어! 미쳤어!"


벌써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빠져들어 토끼 같은 자식들을 품에 안고 출근하는 남편의 넥타이를 고쳐주는

신혼 새댁으로 빙의한 오렌지에이드의 모습을 보자, 껄껄 웃음이 나왔지만 언제 까지고 그녀를 환상속에

빠져있도록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잔혹한 현실을 그녀에게 통보해야 했다.


"그치만.. 오렌지에이드 너, 집안일 잘 못하잖아."


"네...? 지, 집안일..?"


"그래, 집안일. 신혼 새댁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비기라 할 수 있지. 집안일을 잘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어. 오렌지에이드! 넌 집안일을 잘 하나?"


내 질문에 패닉 상태가 된 오렌지에이드. 그녀는 잠시 충격에 잠겨 무릎을 털썩 꿇고, 좌절감에 몸서리치다가

이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며 불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 사령관 님... 혹시 집안일 잘하세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내게 집안일을 떠넘기려는 것이었나.


잠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만, 현실은 냉혹한 법. 나는 그녀에게 외근 명령서를 쥐어주며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미안하지만 나 역시 주부력은 형편 없이 낮단다. 메이드들이 없었다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어."


"그, 그런..!"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잔뜩 늘어뜨린 그녀의 모습에 결국 마음이 약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녀만 내게 푹 빠진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녀에게 푹 빠졌기 때문이려나.


"미안해, 오렌지에이드.. 대신..."


"꺄앗!"


가볍게 그녀를 안아 올려 침실로 향하자 그녀는 토라진 상태가 풀리지 않았는지 내게 눈을 흘기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내일도 출근해야 하잖아요.... 맨날 밤새 안 놔주셔서 이제 휴가 하나도 안 남았는데~"


"그 휴가를 명령할 수 있는 게 누구인지 몰라서 그래? 그리고 걱정 마! 이번엔... 조금만 할게!"


이렇게 귀여운 그녀의 모습을 참을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적당히 한다면야.. 문제 없겠지.

적당히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진짜 조금만 할 거에요? 진짜로?"


과연 그녀가 믿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매일 수십 회는 기본이었으니. 그러나 아마도, 정말 잘 참는다면

적당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흐음~ 그럼.. 이번에는 제가 안 놔드릴 건데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를 상대한다면, 아마 오늘도 참기는 틀린 것 같지만, 그건 내일의 내가 고민할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