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편

2편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 알렉산드르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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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오르카호의 앵거 오브 호드 지휘관 숙소. 그래 내 방이다.


저항군의 부대 지휘관들에게는 방 하나가 통째로 주어진 덕분에 이 방은 개인실이다. 하지만 우리 대원들은 꽤 자유롭게 방문하곤 한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탈론페더처럼 말이지.


"대장님 대장님."


"무슨 일이지 페더?"


"저희 다음 상륙 전에 짐 정리하라고 공문이 내려왔었잖아요? 폐기할 물건, 서류, 미리 다 준비해놓으라고."


"그래. 페더 네게 맡겼잖나. 다 했나?"


"거~의 다요. 서류는 다 했고요. 집무실 청소하는 김에 대장님 물건들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이런걸 찾아서요."


페더가 뒷짐지고 있던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두 손으로 넉넉히 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고 낡은 코팅이 거의 다 벗겨진 철제 케이스였다. 


"열어봐도 되나요?"


" 아, 이거 말이군. 열어봐라."


페더가 삐걱거리는 뚜껑을 힘주어 열어 내용물을 꺼내자, 손에 들린 것은 반듯하게 접혀있는 붉은 천이었다. 한 쪽 모서리만을 잡고 놓아버리자, 접혀있던 천이 떨어지며 좌르륵 펼쳐졌다.


"깃발이네요? 러시아어?"


"그렇지. 내 물건이 맞다."


"헤에. 약탈하신거에요?"


"아니. 주인에게 허락을 받았지."


"에에... 대장님 이미지엔 죽이고 약탈하는게 맞는데."


"내가 야만인도 아니고 아무나 약탈하고 죽이진 않는다만."


"민간인 물건이에요?"


"따지고보면 군기이긴 한데..."


"그럼 역시 전리품이죠?"


"아니야. 멸망 전쟁때 주인 잃은 물건을 얻어왔을 뿐이다."


"음... 뭔가 깊은 사연이 있어보이네요."


"사연은 있다만 얘기하자면 매우 길지."


"그래요? 일단 저는 대장님이 시키신 일부터 마저 해야하니까 이건 일단 대장님 숙소에 두고 갈게요. 괜찮죠?"


"그럼. 끝나는 대로 연락하도록."


"네네. 있다가 연락 드릴게요. 그 사연 얘기는 휴일에 시간 나면 들려주세요."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닐텐데."


"뭐... 대장님 마음대로 해주세요. 갈게요."


페더는 내 책상 위에 깃발을 올려둔 채 들어올 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버렸다.



사연... 사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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