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토모는 묘비 앞에 향을 내려놓고 합장을 했다. 타누키사키 치아키. 묘비에는 그런 이름이 적혀 있었다. 회색 화강암으로 된 직육면체 모양의 묘비는 각이 날카롭게 서있었다. 누군가가 관리를 해주는 것인지, 묘비에는 이끼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아오야마 영원은 숲으로 둘러쌓여있었다. 아니, 그 자체가 하나의 숲이 되어있었다. 오래된 나무들은 여기저기 나있었고 몇몇 무덤은 나무들과 이끼에 반쯤 먹혀 누구의 무덤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기도 했다.

 주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무덤에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어느 무덤은 방문객 없이 방치되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잊어버린 죽음. 그보다 쓸쓸한 것은 없겠지. 다행히 타누키사키 치아키라는 자는 그런 죽음은 아닌 모양이었다.

 묘비의 뒤에는 몇개의 나무 팻말이 꼽혀있었다. 마츠시타가 알지 못할 사람들이 놓은 것이었다. 고인을 기리며 이런 저런 말이 적혀있었고 그 아래에는 누가 놓은 것인지 그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것들을 보던 마츠시타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이름을 발견했다.

 타누키사키 요시히로. 타누키사키 치아키의 아버지이자 타누키 공업의 회장이기도 했다. 이 무덤을 관리한 것은 그의 몫이었겠지. 이제 가족이 남지 않은 그에게는 가족의 묘가 유일한 위안이 되어줄 테니까.

 치아키의 묘의 옆에는 다른 묘비가 서있었다. 타누키사키 하루코. 분명 요시히로의 아내일 것이었다. 그녀의 묘비의 뒤에도 비슷한 나무 팻말이 있었다. 역시나 타누키사키 요시히로를 제외하면 마츠시타가 모를 사람들이었다.

 마츠시타는 토모와 같이 향을 올리며 합장하지 않았다. 이 묘에 방문한 것은 토모였고 마츠시타는 치아키라는 남자를 알지 못했으니까. 그녀는 치아키를 참배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뒤에서 참배하는 토모를 지켜볼 뿐이었다.

 이곳에서 마츠시타는 담배를 입에 물 수 없었다. 물지 않았다. 나무가 많은 곳이기에 불이 날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향과 나무냄새로 가득한 곳에 담배연기로 공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뒤에 서서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은 죽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의 공기는 도쿄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았기도 했으니까. 나무로 둘러쌓인 곳이어서 그런지, 혹은 고층빌딩이 주변에서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도쿄 한가운데라고는 믿을 수 없을 공기였다.

 토모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치아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마츠시타는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것은 토모의 마음속에 간직할 이야기였다. 토모와 치아키의 관계에서 마츠시타는 부외자였다.

 “다 끝났어?”

 마츠시타는 들고있던 꽃다발을 토모에게 건네주었다. 흰색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중의 수국이었다. 토모는 꽃장수의 말을 듣지 않고 이 꽃이 좋다며 골랐다. 마츠시타로부터 꽃다발을 받아든 그녀는 묘비의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아직.”

 토모는 마츠시타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했다.

 “마츠시타,”

 자리에서 일어나 마츠시타를 돌아본 토모가 말했다.

 “나는 치아키를 지키지 못했어. 나는 내가 살기 위해 치아키를 죽게 만들었어. 나는 경호용 바이오로이드야. 나는 내 목숨을 바쳐 치아키를 살려야 했어. 그 과도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마츠시타. 치아키는 지키지 못했지만 마츠시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줄 거야.”

 이미 충분해. 지나칠 정도로 말야.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구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아직은 손으로 셀 수 있는 숫자였지만 보통 사람은 목숨을 걸 일을 셀 일조차 없었다. 토모는 마츠시타를 수도 없이 구해주었다. 이미 충분했다. 마츠시타는 토모가 자신을 구해줌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토모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 없어. 토모는 토모야. 누구를 위해서 살고 누구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토모는 토모를 위해 살아야해. 토모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건 토모는 하나의 인격체야. 토모가 어떻게 살 지는 토모가 정하는 거야. 이미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

 “...”

 토모는 토모답지 않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듯, 입술을 물었다. 마츠시타는 아무래도 토모에게 어려운 문제를 던진 것 같았다. 하지만 토모를 위해 필요한 말이었다.

 “그러고보니 타누키사키 치아키를 죽인 범인은 밝혀졌어?”

 마츠시타는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을 하며 물었다. 그녀가 아는 한 이 사건은 제대로 기사화조차 되지 않은 듯 했다.

 “아니. 경찰에서도 미제로 남았어. 범인 중 일부가 살아서 체포되었지만 전부 죽었대. 막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야.”

 막부가 아니라 막후였겠지만. 인터넷도 쓸모 없네. 마츠시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 순간이었다. 물통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토모와 마츠시타는 놀라며 반사적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서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한손에는 향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물통을 들고 있었을 테지만 그 물통을 떨어트려 이도저도 아닌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는 토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이라도 본 양. 물론 토모는 죽지도 않았고, 사람도 아니었지만.

 “맙소사, 토모, 정말로 너냐?”

 토모의 이름을 부른 남자는 떨리는 다리로 천천히 토모에게 걸어왔다. 그를 본 토모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요시히로님, 오랜만입니다.”

 토모답지 않은 겸손한 인사였다. 자신의 주인을 만난 배틀메이드 마냥 격식을 차린 인사였다. 마츠시타는 갑작스러운 전개에 따라갈 수 없었다. 요시히로. 그 이름은 들어보았다. 타누키사키 치아키의 아버지이자 타누키 공업의 회장이었다.

 “전화가 왔을 때만 해도 장난전화인줄 알았어. 아니면 누군가가 네 이름을 대며 나를 유인하려는 속셈인가 싶기도 했고. 네가 나를 다시 찾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어. 맙소사, 토모,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둘은 기쁨의 포옹을 하지도 않았고 악수를 나누지도 않았다. 일절의 스킨쉽은 없었다. 타누키사키 요시히로는 묘비의 앞으로 걸어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의 묘에 향을 올리고는 합장을 했다. 몇초간의 합장이 끝나고 그는 다시 일어났다.

 “물은 다시 떠와야겠군.”

 그제야 그는 진정했다는 듯 말을 했다.

 “역시 묘비를 관리한 건 요시히로님인가요?”

 “그래. 가족이 남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가족을 찾아오는 것 뿐이니까. 내가 죽으면 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겠지만.”

 “그럼 제가 찾아오면 되죠. 치아키는 제게도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토모의 눈가가 젖으며 햇빛을 반사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요시히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토모를 볼 수 없다는 듯, 토모와 눈을 마주칠 수 없다는 듯, 그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신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서 이분은 누구지?”

 “마츠시타 쥰. 저와 함께 하고 있는 기자에요.”

 “월간 치바의 마츠시타 쥰입니다.”

 토모의 소개에 마츠시타는 몇번이나 했을지 모르는 자기소개를 했다.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타누키 요시히로에게 건네주자 요시히로 역시 자신의 명함을 토모에게 건네주었다.

 “타누키 공업의 회장, 타누키사키 요시히로입니다. 토모를 처음 구입했던 사람이죠.”

 “그냥 토모가 아니라 즐거운 토모에요!”

 즐거운 토모. 마츠시타는 토모에 대한 수식어로 썼을 뿐인데 토모는 자신의 호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고 다른 토모와 구별되고 싶었던 것이겠지.

 “즐거운 토모?”

 요시히로는 놀란 얼굴로 토모를 바라보았다. 토모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마츠시타가 그랬어요. 내가 즐거운 토모라고요. 저는 즐거운 토모에요. 언제나 즐거우라고요.”

 “즐겁다라. 언제 그런 기분을 맛보았는지도 모르겠군. 만일 네가 아직도 치아키와 함께했다면 치아키도 나도 즐거웠을지도 모르겠군.”

 치아키. 그 이름이 나오자 토모는 흠짓 놀랬다.

 “치아키의 일은 죄송해요.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었어요. 저는 폐기되어 마땅한 존재였어요. 요시히로님 앞에 나타나서는 안되었던 거죠?”

 토모는 요시히로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죄책감을 토해내고 있었다. 요시히로는 그녀를 보고 머뭇거리더니 겨우 입을 떼었다.

 “아니야. 미안한 건 오히려 내 몫이야. 내가 감정적이었어.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야. 치아키의 죽음을 무언가에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던 것이었어. 그래서는 안되었지만 그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던 거지. 너를 보내고 얼마나 오래 후회했는지를 몰라. 치아키를 잃은 일도 일어나서는 안되었고 너를 잃은 일도 일어나서는 안되었어. 토모, 미안하다.”

 요시히로는 토모의 앞에 도게자를 했다. 고개를 숙여 토모의 용서를 구했다. 땅바닥이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의 옷에 흙이 묻든 말든 상관없이, 오직 토모의 용서만을 구하고 있었다.

 “요, 요시히로님? 엣? 에에? 잠깐만!”

 토모는 당황하며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사과해야 할 입장이라 생각했던 토모였다. 그런데 오히려 사과를 받은 것은 그녀였다. 심지어 인간인 요시히로가 바이오로이드인 토모에게 머리를 박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너를 폐기시켰어도 안되었고 너를 덴세츠 사이언스에 팔아서도 안되었다. 나는 네게 몹쓸 짓을 했어. 네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편해질 줄 알았어. 속이 시원할 줄 알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후회가 되었어. 아무리 네가 바이오로이드라 해도 할 짓이 아니었어. 전부 내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어.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다음이었어. 네게 사죄할 기회따윈 없을 줄 알았어. 그런데 내게 기회가 주어졌어. 사과를 할 기회가. 그러니 부디, 이 사과를 받아주게.”

 토모는 요시히로의 말을 들으며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아뇨, 아뇨. 사과는 제 몫이에요. 제가 치아키를 잘 지키기만 했어도, 아니에요, 제가 치아키와 친해지지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전부 제 탓이라고요. 요시히로님이 사과하실 이유는 없어요! 저는 필요없는 존재에요!”

 토모가 외쳤다. 마츠시타는 그 외침을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츠시타는 조용히 토모의 옆으로 가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토모의 귀에 말했다.

 “너는 필요없는 존재가 아니잖아. 내게 있어서 토모는 필요한 존재잖아. 토모, 타누키사키씨도, 네게도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 기회를 전부 의미없는 것이라 말할 거야?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나도, 토모도, 타누키사키씨도 말이야. 그러니 토모. 너무 자책하지마. 토모가 왜 이자리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할복하고 끝낼 건 아니잖아. 그렇다면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서로 악수를 하는 거야. 서로의 과거의 잘못을 모두 말하고 서로를 용서해주는 거야. 알겠어?”

 토모는 자신의 어깨에 올린 마츠시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웃었다. 즐거운 웃음까지는 아니었지만 안도의 웃음, 미소였다. 토모는 천천히 일어났고 마츠시타 역시 토모를 따라 일어났다. 요시히로 역시 일어났다.

 물론 악수는 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고보니 토모가 연락을 했다고요?”

 “왜? 나도 전화가 있어. 게다가 요시히로님의 전화번호는 이미 외우고 있었다고.”

 1년 넘게 과거의 기억을 잊고 지내던 토모의 말이었다. 그녀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기억을 되찾고 그런 사소한 것까지 떠올리다니.

 “그리고 요시히로님, 내 전화를 받고 와줘서 고마워요.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어요.”

 “오지 않을 리가 있겠나. 만일 전화가 아닌 꿈에 나왔다 하더라도 나는 이곳에 왔을 걸세.”

 요시히로는 천천히 걸어가더니 묘비 근처에 있는 나무 옆에 섰다.

 “그리고 나도 토모에게 전해줄 것이 있네. 마츠시타씨, 기자인 당신에게도 필요한 정보겠지. 내 아들의 죽음에 대한 정보네. 토모가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더니 당신과 같은 사람이 올 줄은 정말로 몰랐지만 이것도 치아키가 만들어준 인연일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