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43650148?category=%EC%B0%BD%EC%9E%91%EB%AC%BC&p=1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43656535?category=%EC%B0%BD%EC%9E%91%EB%AC%BC&p=1



3편-https://arca.live/b/lastorigin/43656680


4편-https://arca.live/b/lastorigin/43710164


그가 한참 머리를 굴리던 중, 복도 모퉁이에서 파란 양갈래머리의 소녀가 튀어나왔다.


“후후, 짐은 진조의 프린세스!


새로운 인간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친히 왔노라. 인간이여! 너를 두 번째 권속으로 삼아줄 테니 짐에게 복종하거라!”


왼쪽 눈에 안대를 끼고 어째 기묘한 자세를 한 소녀를 보며 리마토르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하나 혼란에 빠졌으나, 바닐라가 그를 대신하여 말문을 열었다.


“LRL, 지금 리마토르님께서는 오르카호를 돌아다니는 중이십니다. 방해하지 말아주시죠.”


자신만만했던 소녀였으나, 기대한 답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자 곧 울상이 되어 말을 더듬었다.


“하, 하지만 진조의 프린세스가...”


“안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


LRL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 바닐라가 냉정하게 끊어말하자 괜시리 옆에서 지켜보던 그가 미안한 감정이 차오르는 걸 주체하지 못했다. 바닐라가 딱 잘라 거절했음에도 그는 소녀에게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네, 프린세스께서 저를 어이하여 찾으신 겁니까.”


그의 말에 풀이 죽었던 LRL은 다시 환하게 웃었다. 바닐라가 지금 뭐하는 거냐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으나 리마토르는 이 정도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역시 저 녹색 메이드와는 달리 말이 통하는구나!


짐은 인간을 두 번째 권속으로 삼기 위해 행차...? 하였다!


그러니 순순히 나의 권속이 되는 영광을 맛 보거라!”


어딘가 조잡한 대사들의 짜깁기와 어려운 단어에서 말끝을 흐리는 LRL의 모습에 리마토르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아빠 미소’라는 게 이런건가 속으로 생각하던 그는 감정선을 다듬더니 그녀의 말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무얼 하면 될까요?”


“어흠... 궈, 권속이여! 짐과 같이 하수인들의 모임에 가자꾸나!”


“말씀 받들겠습니다.”


리마토르가 제안을 받아준 것이 그렇게도 기쁜지, LRL은 방금 전까지 중2병 넘치는 대사를 한 것과 반대로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웃음을 지으며 방방 뛰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그의 손을 잡고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끌고 가자 리마토르는 슬쩍 바닐라의 눈치를 봤으나, 바닐라는 ‘그러길래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죠?’라는 눈으로 그를 짜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알록달록한 어린이들의 공간에 리마토르가 입성하자, 그를 처음 보는 아이들은 사령관이 아닌 인간의 존재에 일순간 얼어붙었다.


“이... 인간? 분명 인간은 사령관님 밖에...”


“시, 싫어. 광산으로 다시 가기 싫어!!!”


일순간 공포로 가득 차 비명을 지르는 더치걸로 인해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울음을 터뜨리자 LRL이 앞으로 나서더니 외쳤다.


“모두들 겁먹지 마라! 하수인들이여, 이 자는 사령관이 새로 발견한 인간이자 이 몸의 강대한 힘에 무릎 꿇은 권속이니라!”


“어... 반가워요. 이번에 연구원으로 승선한 리마토르라고 합니다.”


LRL의 자신감 넘치는 말과 악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순박한 미소를 흘리며 인사하는 리마토르의 모습에 아이들은 조금씩 울음을 멈췄다.


“진짜야...?”


“진조의 프린세스는 거짓말따위 하지 않는다!”


엘리가 조심스럽게 묻고, LRL이 다시 한 번 당당하게 대답하자 그제야 알비스가 그의 품에 뛰어들어 물었다.


“인간님! 알비스 백작의 하인할래?‘


“아, 알비스! 인간은 이미 짐의 권속이니라!”


그제야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리마토르의 곁에 다가왔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앉아 다들 그에게 질문을 쏟자 잠시 괜히 끌려왔나 생각하며 땀을 닦는 그였으나, 오히려 속내를 읽고 계산할 필요가 적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 마음을 놓고 그도 아이들을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인간님은 뭐하시던 분이셨나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기억나는 건 철학 연구를 했다는 거 밖에 없네.”


“철학? 철광석을 연구하셨나요?”


“그건 아니야. 철학은 어떤 사상이라든가, 생각하는 방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란다.”


“그거 어렵구나... 짐은 철학과는 안 맞나 보구나.”


“그건 모르지. 한 번 생각해볼까?


바이오로이들에게 영혼은 있을까 없을까?”


그의 질문에 아이들은 다들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눈을 감고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걸 본 리마토르는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게 철학이란다.”


“우으... 초코바 훔치는 작전 짤 때보다 더 힘들어...”


“알비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죠?”


“히익! 안드바리, 그게 아니라... 이게 다 LRL이...”


“이 배신자! 나까지 밝히면 어쩌자는 것이냐!”


“후후... 다들 저랑 대화 좀 할까요?”


알비스와 LRL이 안드바리에게 쫓겨서 도망치자 처음 보는 광경에 리마토르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도망치는 아이들을 보고서도 일상이라는 듯 다시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에게 답해주는 데 집중을 돌린 그를 사령관은 화면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르망, 네가 보기에는 어때?”


“폐하, 제 예측 결과 저 자가 오르카호를 분란을 조정할 거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어렵습니다. 정보의 추가가 필요합니다.”


“리리스, 네가 보기에는 어때?”


“인간은 주인님 한 명으로 충분해요.”


아직 지켜보자는 아르망과 신속히 제거해야한다는 리리스. 대치되는 두 입장을 들으면서도 사령관은 그가 구 인류와 같은 악인이라는 생각에 동조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점이 그렇게 보이지만, 식당에서부터 그가 보였던 묘하게 굳어 있는 얼굴이 그를 완전한 안전 인물로 분류하는데 적극적인 이의를 제기했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리리스, 내 호위는 너 혼자만 남고 나머지 컴패니언들은 리마토르 감시하는데 붙여. 네 뛰어난 실력을 믿는다.”


“네, 이 리리스를 믿어주세요!”


“아르망, 넌 리마토르와 접촉하지 마. 자신의 행동이 분석되어 예측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리마토르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몰라.”


“알겠습니다, 폐하.”


둘에게 지시한 뒤, 사령관은 콘스탄챠로부터 온 보고를 확인하고자 패드를 들었다.


‘주인님께. 제게 지시하신 ’오리지널 포‘에 대해 조사해보라는 말씀을 이행한 결과, 다음의 상황이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하 첨부파일을 보내드립니다.’


“첨부파일까지? 대체 무슨 내용인거야?”


콘스탄챠가 보낸 파일을 연 사령관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Original Position? 기본 위치? 무슨 뜻이야 이거.


그리고 같이 보낸 건 A Theory of Justice. 정의의 이론?”


오래된 구시대의 논문이 대체 리마토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접점을 찾던 그는 마리가 보낸 그의 신상 정보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의 신상명세서에도 같은 논문이 나와있지는 않았으나, 그가 발견된 곳을 수색한 결과 참치캔이 든 상자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노랗게 삭은 종이 논문도 하나 찾았다는 부분을 읽자 사령관은 마리에게 연락을 걸었다.


“어, 마리. 두 번째 인간 리마토르에 관한 건 때문에 말인데, 거기서 발견된 논문 들고 내 방으로 와줘. 안드바리한테는 내가 연락취해 놓을게.


뭐...? 브라우니들이 소각하는데 갖고 갔다고?


망할... 최대한 빨리 회수해. 두 번째 인간과 관련된 중대사안이야.”


연락을 끊은 그는 몰려오는 두통에 인상을 찌푸리고 관자놀이를 쥐었다. 자신의 자세가 수복실에서 정신을 차린 리마토르가 취했던 자세와 똑같음을 깨달은 그는, 리마토르가 사태파악을 위해 고민한 게 아니라 단순히 두통 때문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곧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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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가 무거울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가벼움을 주로 살짝살짝 무게를 주려고 해. 가벼운 부분은 최대한 편하게 갈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