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고있는 한밤중의 어느 해안가. 티타니아는 그곳에 가만히 서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해변에서 처량하게 서있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고 있다.

   

   

“......”

   

   

“모든게 고통스럽고, 모든게 증오스러워. 나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누가 알고있으면 대답해봐. 여왕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말이야.”

   

   

티타니아는 바다를 향해 질문을 구해봤지만, 드넓은 바다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허망하게 바다만 바라보던 티타니아는 씁쓸한듯이 냉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네. 역시 여왕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이것뿐이려나?”

   

   

티타니아는 모든걸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바다를 향해 한걸음씩 걸어갔다. 곧 차가운 바닷물이 티타니아의 발목을 적셨다.

   

 

  

“티타니아. 여기서 뭐해?”

   

   

“누구야! 설마 레아는 아니겠지?”

   

   

티타니아는 싸늘한 시선을 한 채 뒤 돌아서 자신에게 말을 건 이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건 아랑곳하지도 않은채 계속해서 티타니아에게 말을 붙였다.

   

   

“오, 티타니아 지금 바다에는 왜 들어가려는거야? 혹시 너도 네리처럼 수영하러 온거야?”

   

   

“엥? 너는...”

   

   

티타니아에게 말을 건 인물은 뜻밖에도 네레이드였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티타니아는 적잖이 당황한 듯 하다.

   

   

“음... 수영복을 안 입고있는거 보니까 티타니아는 수영하러 여기에 온건 아닌가보네. 그럼 낚시라도 하고있는거야?”

   

   

“수영같은 바보스러운 소리나 하고 앉아있네. 애초에 이런 추운날에 바다로 수영하러 올 바보는 아무도 없다고.”

   

   

“여기 있는데? 이런 추운날에 바다로 수영하러 온 사람은 바로 나야!”

   

   

“뭐? 너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야? 지금이 여름도 아닌데, 저렇게 추운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한다고?”

   

   

“응! 수영 하려고 여름까지 기다리는거는 너무 시간손해야. 여름이든 겨울이든 수영만 할 수 있으면 상관없잖아?”

   

   

“뭔 이런 바보같은...”

   

   

티타니아가 황당함을 느끼고 있는 사이에 네레이드는 순식간에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티타니아는 그런 네레이드를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바다에서 빠져나와 다시 해변쪽으로 돌아갔다.

   

   

“티타니아도 혹시 네리랑 같이 수영할래?”

   

   

“아니. 여왕은 네놈의 바보짓에 어울려줄 생각 없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준비운동은 모두 마쳤으니, 네리의 겨울 수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네레이드는 바다를 향해 달려간 뒤 물속으로 풍덩 입수했다. 잠시후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네레이드는 상쾌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키야~ 진짜 시원하다! 역시 여름에는 느낄 수 없는 겨울바다의 묘미가 있다니까!”

   

   

네레이드는 자유형, 평영, 접영등 온갖 수영솜씨를 뽐내면서 물만난 물고기마냥 아주 신나게 바다 수영을 즐겼다. 말없이 해변에 서있는 티타니아는 열심히 수영을 하는 네레이드를 계속 바라봤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방해해버린 네레이드가 짜증나고 거슬렸지만, 해맑은 표정으로 수영을 즐기는 네레이드를 볼수록 그런 마음은 사라져갔다. 

그렇게 한참동안 수영을 하던 네레이드는 바다에서 나와 티타니아의 곁으로 터벅터벅 왔다.

   

   

“뭐야. 왜 여왕한테 오는거야? 얼른 바보짓이나 계속 하시지?”

   

   

“그냥 쉬고싶어서. 계속해서 수영만 하면 힘들잖아?” 

   

   

“그럼 여왕의 눈에 안 띄는곳에서 쉬던가. 괜히 여왕을 귀찮게 하지말고.”

   

   

“싫어. 혼자있는건 외롭단말이야.”

   

   

네레이드는 티타니아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뒤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내기 시작했다. 티타니아도 한숨을 푸욱 내쉰 뒤 네레이드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둘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참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야. 너한테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 궁금한건 뭐든지 물어봐!”

   

   

“넌... 삶이 행복해?”

   

   

“물론이지! 싸우고 싶을 때 마음껏 싸울수있고, 놀고 싶을때 마음껏 놀 수 있고, 수영하고 싶을때 마음껏 수영할수있으니까!”

   

 

“진짜 바보같은 대답이네. 뭔가 그럴싸한 답이 나오길 기대하고 물어본 여왕이 바보였지.”

   

   

“그럼 티타니아는? 혹시 지금 삶이 안 행복해?”

   

   

“...어.”

   

   

“왜? 세상에 즐거운게 얼마나 많은데 행복하지 않은거야?”

   

   

“너같은 바보는 알리가 없지. 여왕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말이야. 나를 항상 옥죄어오는 고통스럽고 지겨운 아픔들 때문에 여왕은 행복이란걸 느낄 틈이 없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계속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차라리 낫겠어.”

   

   

“...”

   

   

“하아... 쓸모도 없는 말을 해서 괜히 힘만 버렸네. 애초에 너같은 바보가 여왕의 말을 이해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아니야. 네리는 전부 이해했어.”

   

   

네레이드는 갑작스레 벌떡 일어나서 티타니아의 손을 덥석 붙잡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앗, 너 지금 뭐하는거야?!”

   

   

“같이 수영하자! 그러면 안좋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질거야.”

   

   

“수영?! 여왕은 수영 못한다고!”

   

   

“괜찮아. 네리가 계속 잡아줄테니까 문제 없을거야! 여차하면 이번기회에 수영 배우면 되지.”

   

   

“난 그럴 생각 없어! 어서 이거 놔!”

   

   

티타니아는 자신을 끌고가는 네레이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연약한 티타니아의 근력으로는 오랜 해군생활로 단련된 네레이드의 강인한 손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바다로 끌려가던 티타니아의 발목에 바닷물이 닿았다. 

   

   

“티타니아. 준비됐어?”

   

   

“아니. 대체 뭘 하려는건데?!”

   

   

“곧 바다에 뛰어들거야. 어서 숨 참아!”

   

   

“뛰어든다고?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가자! 바다를 향해 돌진!!”

   

   

네레이드는 티타니아를 번쩍 들어안은 뒤 바다를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티타니아를 들고있는 그대로 바닷속에 뛰어들었다. 

   

   

풍덩!!!

   

   

   

‘..........’

   

   

   

‘여긴...’

   

   

눈을 꼭 감고있던 티타니아는 슬며시 눈을 떴다. 깨끗한 바닷물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는게 딱 하나있다. 자신을 꽉 붙잡은채 티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헤엄을 치고 있는 주황머리의 여자아이. 그런 네레이드를 보자 티타니아는 퍽 안심이 되었다. 이 드넓은 바다에서 자신이 혼자 남겨진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한참동안 수영을 해서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도착한 네레이드는 티타니아와 함께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장시간 숨을 참는 것이 익숙치 않던 티타니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네레이드를 째려봤다.

   

   

“허억허억, 너 이자식. 하마터면, 후우우... 숨 못쉬어서 죽을뻔 했잖아! 콜록콜록.”

   

   

“아, 미안해. 이정도로 힘들어할줄은 몰랐어.”

   

   

“그보다 여긴 어디야? 바닥에 발도 안닿잖아. 여왕을 물에 빠뜨려서 죽일 셈이야?”

   

   

“괜찮아. 티타니아가 네리를 지금처럼만 꽉 붙잡고있으면 절대로 물에 빠질일은 없을거야.”

   

   

“하, 진짜 바보같은... 어라?”

   

   

힘겹게 숨을 고르던 티타니아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살면서 한번도 별을 제대로 본적 없던 티타니아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향연을 보며 넋을 잃고 말았다.    

티타니아는 다시 고개를 내려 주변의 바다를 둘러보았다. 바람한점 없이 고요한 바다의 표면에는 하늘의 별들이 거울처럼 비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가득히 빛나는 별들에 의해 티타니아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바다에 있는게 아니라 우주 한가운데에 있는 것같다는 착각을 했다.

   

   

“예쁘다... 별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았던거지?”

   

   

“무슨소리야. 저 별은 우리가 아까 있었던 해변에서부터 쭉 있었던거였잖아. 설마 그동안 못 봤던거야?”

   

   

“어. 여지껏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지고 못봤어...”

   

   

“이제부턴 땅만 보면서 걷지마. 앞으로는 하늘도 자주 보면서 살라고. 안그러면 이렇게나 예쁜 밤하늘을 자주 놓치게 될거야.”

   

   

티타니아가 하늘의 별에 정신이 팔린 사이, 두사람의 바로 근처에서 거대한 고래가 수면위로 높게 솟구쳐 올랐다. 곧 그 고래는 다시 바다에 뛰어들면 굉장한 물보라를 일으켰고, 지켜보던 둘의 머리 위로는 엄청난 물이 쏟아졌다.

   

   

“허억!! 저건 또 뭐야!!”

   

   

“우와! 혹등고래의 브리칭이야! 나도 살면서 단 한번을 본적이 없었는데 티타니아랑 저걸 보다니, 엄청 운이 좋았네!”

   

   

“저, 저게 고래?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엄청나게 크잖아! 저렇게 커다란 놈이 어떻게 방금처럼 높게 점프하는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궁금하면 고래한테 직접 물어보던가. 앗, 저거봐. 고래가 우리쪽으로 다가오고있어.”

   

   

네레이드의 말대로 고래는 천천히 수면위로 떠오른 뒤, 둘을 향해서 느긋하게 헤엄쳐왔다. 그걸 본 티타니아는 살짝 겁을 먹어버렸지만 네레이드는 두려움없이 고래를 향해 헤엄쳤다.

   

   

“티타니아. 내가 너를 꽉 잡고있어줄테니까, 저 고래 한번 만져봐.”

   

   

“만져보라고? ...손을 물지는 않을까?”

   

   

“괜찮아! 혹등고래는 바다의 천사라 불리는 존재라고. 절대 우리를 해치거나 하지 않을테니까 겁먹지 말고 한번 만져봐.”

   

   

티타니아를 데리고 천천히 헤엄을 치던 네레이드는 거대한 혹등고래의 옆에 멈춰섰다. 곧 티타니아는 손을 내밀어 고래의 몸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고래는 티타니아의 손길이 나쁘지 않는지 신묘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때? 고래를 만져본 소감이 말이야.”

   

   

“...기분이 이상해. 이게 설마 꿈은 아니겠지? 별빛이 가득한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는 꿈.”

   

   

“글쎄. 내가 한번 확인시켜줄까?”

   

   

“아야, 내 볼! 감히 여왕의 볼을 꼬집다니...”

   

   

“아파? 그러면 꿈은 아닌가보네. 앗, 티타니아 저기좀 봐. 고래가 가고있어.”

   

   

“뭐? 벌써?”

   

   

티타니아가 네레이드에게 따지는 사이, 느긋한 속도로 계속 헤엄치던 고래는 두사람의 곁을 떠나갔다. 고래는 티타니아와 네레이드에게 인사하는 듯이 지느러미를 한번 흔들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고래야 잘가~ 우리를 찾아와줘서 고마워~”

   

   

“...잘가.”

   

   

“히히. 고래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면 운디네랑 테티스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얼른 자랑하러 가고싶다! 티타니아, 그럼 우리 다시 돌아갈까?”

   

   

“응. 빨리 데리고 가. 여왕은 빨리 바닥에 발을 붙였으면 좋겠어.”

   

   

“알겠어. 그럼 아까처럼 다시 헤엄쳐갈테니까, 숨 못쉬겠을때마다 말해줘!”

   

   

네레이드는 티타니아와 함께 다시한번 물속에 잠수해서 그들이 왔었던 해안가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곧 티타니아는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뛰어든 한겨울의 차가운 바닷물이 이상하리만큼 포근하고 아늑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을 헤엄친 끝에 둘은 뭍으로 돌아왔다.

   

   

“으으... 추워. 차가운 바닷물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몸이 진짜로 얼어버릴것만같아...”

   

   

“여왕이 처음에 말했잖아. 애초에 이런 바다에 들어가는건 바보짓이라고.”

   

   

“그래도 괜찮아. 내가 이럴줄 알고 따뜻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왔거든!”

   

   

네레이드는 자신이 벗어두었던 옷 뭉치 사이에서 보온병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뚜껑을 연 뒤 티타니아에게 건네주었다.

   

   

“티타니아. 여기 따뜻한 커피마셔. 이거 마시면 몸이 좀 녹을거야.”

   

   

“왜 너가 안먹어? 아까 춥다고 얘기해놓고서.”

   

   

“괜찮아! 슈퍼네리는 이정도 추위따윈 잠깐은 견딜 수 있다고. 그보다 얼른 마셔. 힘들게 뎁혀온 커피가 다 식겠다.”

   

   

“그래...”

   

   

티타니아는 보온병을 받아들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따뜻한 커피가 몸에 들어오자 추운 바다에 들어가서 차가워졌던 몸이 점점 녹기 시작했다.

   

   

“따뜻해...”

   

   

“역시 따뜻하지? 커피 맛은 어땠어?”

   

   

“...그냥 괜찮은 맛이네. 나쁘지는 않은 정도.”

   

   

“티타니아가 맛있어 해주니까 다행이네~ 참고로 그거 네리가 직접 만든 커피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너가 만들었다고?”

   

   

“응. 그건 우리 카페 호라이즌에서 직접만든 특제커피! 맛있게 만드느라고 꽤나 고생이 많았었어. 티타니아, 말 나온김에 내일 우리 카페에 놀러와볼래? 맛있는 메뉴들을 공짜로 나눠줄테니까 말이야.”

   

   

“카페? ...특별히 허락해줄게. 고래를 만나는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줬으니까. 여기 커피 마셔.”

   

   

“고마워!”

   

   

보온병을 돌려받은 네레이드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벌컥벌컥 커피를 마셨다. 그런 네레이드를 보며 티타니아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커피를 다 마신 네레이드는 보온병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아, 맛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까 네리는 너무 행복해!”

   

   

“행복? 고작 커피를 마시는 일에 너는 행복한거야?”

   

   

“그럼. 행복은 대단한게 아니야. 그냥 기분만 좋으면 행복해지는거지. 티타니아는 어때? 지금 행복해?”

   

   

“...”

   

   

“어.” 

   

   

“티타니아가 행복해졌다니까 나도 좋다. 그럼 얼른 오르카호로 돌아가자! 얼른 침대에 들어가서 전기장판 키고 잠들고싶어. 겨울에는 그거만한 행복이 없잖아. 안그래?”

   

   

“그럴지도. 얼른 움직이기나 해. 여왕도 따뜻한 침대에서 쉬고싶으니까.”


"좋아. 얼른 오르카호로 돌아가자!"

   

   

커피를 마시고 힘을 충전한 네레이드는 티타니아의 손을 잡은채 기운 넘치는 걸음으로 오르카호를 향했다.  네레이드를 따라가던 티타니아는 다시한번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수많은 별들이 그녀를 비추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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