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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리마토르와 신나게 놀았던 아이들이지만, 낮잠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마리아와 아이들이 다 자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혹시 바닐라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릴까 싶어 놀이방 문을 나섰지만, 바닐라는 이미 그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방까지 돌아가는 건 혼자 해야겠는 걸. 시간을 너무 오래 썼나?”


그래도 역시 아이들과 노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리마토르는 오면서 외워뒀던 오르카호 내부의 길을 따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처음처럼 침대에 뛰어들 생각을 한 그였으나, 고양이귀를 한 하얀 옷의 오드아이 소녀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 생각은 고이 접어 날릴 수밖에 없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무슨 일이신ㅈ...”


“안녕하세요, 리마토르님. 페로라고 해요. 사령관님께서 저희 컴패니언 자매들을 모두 리마토르님의 경호에 투입하라고 명령하신 관계로 이 방에서 머무르게 되었어요.”


리마토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페로가 이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말을 마치자마자 다른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들도 인사를 건넸다.


“저는 하치코라고 해요!”


“난 펜리르. 경호서면 고기 줄 거지?”


“스노우 페더에요. 잘 부탁드려요.”


“냐앙~ 당신이 포이의 새로운 주인님♪”


“어... 모두 반가워요. 이번에 연구원 신분으로 오르카호에 승선한 리마토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개성 넘치는 인사를 한 몸에 받은 리마토르는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자신도 인사하며 재빠르게 상황 분석을 시작했다.


‘인간의 명령권이 중요하기에 경호원을 잔뜩 붙인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바이오로이들만이 있는 이 오르카호 내부에서 구태여 경호원을 붙이면서까지 인간을 삼엄하게 지킬 필요는 없지.


답은 하나. 사령관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정말 철저하군. 여기서 수상한 행동이 하나라도 포착되는 순간 나를 제거할 명분이라도 세우고 있는 걸 거야. 내가 오르카호에 합류한 날짜는 바로 오늘. 아이들이 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직 내 존재가 오르카호 내부에 공식적으로 공표된 건 아닐 거야.


그렇다는 건 적당히 제거한 뒤에 날 목격한 이들의 입을 닫게 만들면 끝이라는 것. 아주 무서운 인물이군. 그 정도의 철혈 통치는 할 수 있어야 인류 최후의 저항군 수장이라는 건가.


이해는 충분히 가. 절대적 명령권이 쪼개지는 것만큼 권력에 불안을 일으키는 건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권력욕도 없는 나까지 이렇게 감시하다니, 여기서 내가 살 유일한 방법은 내가 무해한 연구원이라는 걸 강조하는 거야.


일명 <쏘지 마세요 난 연구원입니다> 작전이다.’


“자, 그럼 편하게들 계세요. 이렇게 서 계시면 제가 다 불편하니까요. 차라도 한 잔씩 하시겠어요?”


“무슨 차인가요? 미트파이랑 같이 먹으면 좋은 차에요?”


“미트파이 말고 고기는 없어?”


“포이는 고기 중에서도 소시지가 좋답니다~”


“페에엥!!!”


차 한 잔 마시겠냐는 의례적인 말을 했을 뿐인데, 하치코를 필두로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오자 리마토르는 사령관이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해볼 목적으로도 컴패니언을 보낸 게 아닌가 잠시 고민했다.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꺼내 책상에 올려져 있는 전기포트로 데운 뒤, 오르카호에서 직접 재배해 만든 믹스커피를 타서 그녀들에게 건네준 그는 자연스럽게 믹스커피 봉투를 말아 커피를 휘휘 저었다.


“리마토르님, 티스푼은 책상에 들어있어요.”


“아,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 모습이 영 낯설었는지 페로가 티스푼의 위치를 가르쳐줬으나 그는 이미 몸에 밴 버릇인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아 펜을 들었다.


컴패니언 일원들과 일상적인 대화라도 나눌 줄 알았건만, 그녀들을 앞에 두고 등을 돌린 채 펜을 쥔 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페로는 그의 행동을 물었다.


“리마토르님?”


“네?”


“지금 뭘 쓰시는 건가요?”


“아무 것도 안 썼는데요?”


그의 말과는 달리, 종이에는 무언가 휘갈겨 쓰여 있었다. 그걸 본 페로는 어이없다는 투로 그에게 다가가 그가 쓴 종이를 보여주었다.


“뭐라고 쓰셨잖아요. 이게 뭔가요? Original Position?”


“잠깐, 뭐라고요?”


그녀가 종이에 쓰인 말을 읽은 순간, 리마토르의 얼굴은 급격히 굳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낀 페로는 다른 컴패니언들에게 경계 태세를 갖추라는 사인을 등 뒤에 숨긴 손으로 보여준 뒤, 그가 요청한 바를 이행했다.


“오리지널 포지션이요. Original position.”


그 말을 듣자, 리마토르의 머리 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순간에 전부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자, 그는 잃어버린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느꼈다.


“생각났어... 내가 뭘 연구했는지...”


“...리마토르님?”


머리를 붙잡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를 본 페로가 경계 태세를 갖추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그는 지금 그녀들이 자신을 감시하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투로 매우 단호히 말했다.


“페로, 오르카호에서 고전 문헌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줘. 지금 당장.”


“네? 하지만 그런 곳이라고 해봤자...”


“도서관이든 창고든 상관없어. 지금 당장 가야만 해.”


존댓말에서 반말로 갑자기 바뀐 그의 태도에 페로는 어떻게 말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하치코가 천진난만하게 그에게 말했다.


“하치코가 알아요! 물자 창고에 발견된 문헌들을 쌓아놔요.”


그 말을 들은 리마토르는 눈을 빛내며 하치코에게 물었다.


“그래? 하치코, 그럼 나를 그 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겠니?”


“그건 힘들어요...”


“왜 그러니?”


“창고를 관리하는 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의 안드바리인데, 안드바리는 리마토르님을 모를 거에요. 사령관님의 명령이 있어야 할 건데...”


“안드바리하고는 이미 면식이 있어. 그러니 날 창고로 안내해주지 않으련?”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페로는 발톱을 꺼내 겨누며 말문을 열었다.


“리마토르님, 안드바리는 오르카호의 보급관으로 창고는 그녀의 관할입니다. 그런 어쭙잖은 거짓말로 중요시설에 침투할 생각하지 마십시오.”


“침투가 아니야. 난 그 곳에 있는 자료를 찾아야 해.”


“허튼 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저희 컴패니언의 최우선 경호대상은 주인님으로, 주인님의 안전을 침해하는 순간 당신을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페로는 발톱을 그에게 가까이 들이밀며 위협했으나, 오히려 그 말을 들은 리마토르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사령관이 날 경호하러 보냈다는 게 아니라 감시하러 보냈다는 게 확실하구만.


잘 됐어, 지금 사령관을 만나야겠어. 난 사령관실로 간다.”


그가 발걸음을 떼는 순간, 그녀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를 에워쌌다.


“이게 무슨 짓이지?”


“주인님께는 갈 수 없습니다.”


“연구원이 자료 열람 권한 요청을 위해 최고 통수권자의 결재를 맡는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지?”


“당신이 주인님을 해치고 그 자리에 앉으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알았습니까?”


페로의 말에 그는 기가 차듯이 한 번 웃더니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너희는 날 반란분자로 보는 모양인데, 난 사령관 자리에는 관심 없어.


난 연구만 완성시키면 돼.”


“그 말을 어떻게 믿죠?”


“처음부터 내가 욕망이 있었으면 지휘권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리를 주겠다고 했을 때 받았겠지. 하지만, 난 군관의 적성은 없어서 말이야.”


“웃기지 마세요. 당신이 천천히 오르카호를 집어삼키려는 그 얄팍한 속셈을 모를 줄 알았습니까?”


말이 이유를 대는 거지, 사실상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말을 끼워 맞추는데 불과한 페로의 화법을 본 리마토르는 논리적인 반박을 한 번 더 날렸다.


“미안하지만 그게 가능할리 없어. 사령관은 항상 경호실장을 대동하고 있는데, 최고 통수권자를 단 한 명이 경호한다는 건 그 경호원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날 때만 가능한 일이지.


아무리 안전한 본거지라고 해도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경호는 삼엄할 수밖에 없어. 그걸 단 한 명이 오롯이 해낼 수 있다는 건, 경호실장이 컴패니언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무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어.


지금 당장 너희조차도 무력으로 어찌 못하는 내가, 여기 있는 너희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강한 경호실장을 뚫고 사령관을 공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의 공격이 가진 효과가 컸는지 페로는 더 말을 못하고 움찔거릴 뿐이었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난 사령관이라는 자리를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고, 바라서도 안 돼.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바로 나야. 그러니 그런 걱정은 처음부터 쓸모없는 거지.


더 할 말 없으면 날 사령관실로 보내.”


“......”


한참동안 이어지는 침묵과 대치. 팽팽한 기싸움에서 먼저 백기를 든 건 페로였다.


“좋아요, 대신 저희 컴패니언이 동행합니다.”


“그렇게 해.‘


페로의 결정 하에 리마토르는 리리스를 제외한 컴패니언 전원의 경호를 동시에 받는다는, 오르카호 최고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사령관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건만, 그는 행복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지금 떠오른 기억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