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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골 때리는군.”


브라우니들이 소각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구출한 논문을 읽던 사령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의 흰색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잘못 쥐면 바스라질 것 같은 노란색 종이들의 묶음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걸 담고 있었다.


“아르망, 이 논문은 대체 언제 쓰인 거지?”


“1971년입니다.”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없어. 이런 생각이 200여 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니.”


“그 이론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관계로 제가 뭐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제가 갖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폐하께서 지금 읽고 계신 논문은 멸망 이전 당시에도 굉장히 선구적인 이론으로 제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럴 거 같아. 닥터라면 뭔가 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사령관이 그 논문을 닥터에게도 보여줄 요량으로 자리를 일어난 순간, 페로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주인님,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어, 들어와.”


문이 열리자 페로를 필두로 리마토르를 에워싼 컴패니언이 사령관의 눈에 들어왔다. 혹시 그가 구 인류와 같은 짓을 저지른 건 아닌가 짐짓 우려했던 그는 페로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페로, 리마토르 씨가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니?”


“그건 아닙니다. 리마토르님께서 사령관님을 만나야한다고 주장하여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리마토르가 자신을 만나러 올 이유를 머릿속에서 하나씩 찾던 사령관은 그가 승선한지 하루 만에 권력욕을 드러내는 건가 의심하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사령관의 시선이 어떻든, 리마토르는 신경 쓰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사령관님, 제 과거의 기억이 하나 더 떠올랐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철학 주제 말인데, 그건 ‘바이오로이드의 정의’였습니다.


Definition이 아니라 Justice 말입니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논문을 작성하던 중 철충의 침공으로 블랙리버 군사기지로 대피했고, 그 곳에서도 연구를 계속하다가 동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 제가 참고 문헌으로 썼던 논문이 하나 있을 터인데, 혹시 제가 있었던 곳을 수색하다가 발견하신 것이 있다면 물자 창고에서 자료를 확인해보고 열람해도 괜찮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사령관은 기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바란 대로, ‘바이오로이드의 인간다움’을 이 사람이라면 연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사령관은 지체 없이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노란 논문을 들어올렸다.


“혹시 이걸 말하는 건가요?”


“아! 사령관님께서 갖고 계셨군요. 제가 찾던 게 맞습니다, <정의론>.”


“읽어보니 무척이나 흥미롭더군요.”


사령관이 논문을 건네며 말을 덧붙이자, 리마토르는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도 자신 외에 이 분야에 관심 갖는 이를 만났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그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읽어보셨나요?”


“앞의 110쪽 정도만 읽었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어렵더군요.”


“이 논문의 저자인 롤스 교수가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려서 말이죠. 그래서 읽기에는 꽤 불친절합니다.”


“내용은 흥미로웠습니다. 정의라는 게 무엇인지 말하고 있던데,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 정의의 정의를 이렇게 딱 말해주니 재밌더군요.”


“사령관님께서는 이 분야에도 조예가 깊으셨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대화를 길게 나눌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억과 함께 연구 내용도 떠올라서요.”


리마토르가 돌아가자 페로와 다른 컴패니언들도 그의 뒤를 쫓았다. 그가 사령관실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시점에야, 사령관은 아르망과 리리스에게 말했다.


“아르망, 리리스. 너희 의견이 어떤지는 이해한다.


너희의 조언과 리마토르를 관찰한 결과, 난 저 자를 신뢰할 수 있는 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오늘 저녁 두 번째 인간이 발견되었음을 오르카 전체에 공개한다.”


“주인님, 그건... 많이 찜찜한데요.”


“폐하, 전체 공개는 썩 좋은 선택지 같지 않습니다.”


리리스와 아르망 모두 전체 공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으나 사령관의 뜻은 확고했다.


“모든 통수권은 내가 쥐고 있어. 리마토르를 추종해 나를 대체하려고 해도 병력을 움직일 권한이 없는 그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없다.


오히려 리마토르는 권력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군. 그가 연구만 하는 연구자임을 천명함으로써 괜한 반란의 씨앗이 심기는 거 자체를 막을 생각이다.”


말을 마친 사령관은 차갑게 웃으면서 읊조렸다.


“완벽해. 아주 완벽한 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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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이 읽은 건 정의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이라는 논문인데, 현재 정의철학자로 운명한 마이클 샌델도 저 논문을 비판한 걸로 유명해질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철학서야.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소재지만, 굉장히 가볍게 다루고 넘어갈 거니까 철학서 나온다고 걱정 안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