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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당은 바이오로이드들로 빽빽하게 가득 찼다. 평소라면 식사를 거르고 PX에 갔을 이프리트들도 식당에 모이게 할 정도로 오르카 호 바이오로이드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단연 ‘두 번째 인간의 존재’였다.


점심시간에 그를 식당에서 본 일부 스틸라인 바이오로이드들로부터 그의 존재가 알음알음 퍼지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그의 존재가 공개되자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앵거 오브 호드, 스카이 나이츠, 몽구스 팀, AA 캐노니어, 둠 브링어, 호라이즌, 시티 가드 등등 모든 부대의 관심사가 한 군데에 쏠리게 되었다.


“이뱀! 아까 점심 때 본 그 인간님이지 말임다!”


“브라우니! 목소리 좀 낮춰요.”


“으으, 하지만 아까 마리 대장님이 쓰레기 소각하던 절 찾아오신 것도 저 인간님 때문이었지 말임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인간님께 감정이 없겠슴까?”


“그 감정은 그 감정이 아니에요!”


“네? 무슨 말씀임까?”


어느 브라우니가 자신을 보고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은 리마토르는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체감했다. 자신 때문에 스틸라인의 지휘관인 마리 소장이 일개 병사한테까지 찾아갈 정도라니, 그는 이 곳에서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갖는 파급력을 생각해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무해한 연구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페로의 속을 떠본 결과, 사령관이 지시한 감시는 날 제거하는 것까지 선택지에 두고 있음이 확실해졌어. 사령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페로가 아까 겪은 일로 받은 충격이 상당히 큼을 고려해보면 이는 분명 사령관에게 보고가 올라가겠지. 나를 향한 경계는 더욱 올라갈 거고. 그 다음에도 이런 짓이 반복되다가 날 숙청할 거야.


일단 저녁을 먹고 사령관에게 찾아가 완벽한 혼자만의 연구를 허가해달라고 협상을 해야겠어. CCTV 감시와 언제 날 죽일 수 있을지 모를 컴패니언 일원들을 바로 옆에 두고 연구하는 건 내 장기적 생존에 큰 차이를 만들 거야.’


속으로 그렇게 계산하던 그는 배식을 위한 식판을 들고 길게 늘어진 줄의 맨 끝에 섰다. 그런 그를 본 콘스탄챠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리마토르님, 주인님께서 만찬을 준비해놓으셨다고 합니다. 같이 이동하시죠.”


“만찬이요? 이거 과분한 대우군요.”


사령관을 만나려고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그는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연구 안전 보장을 해달라는 말을 꺼내야겠다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콘스탄챠의 안내를 따랐다.


식당 한 가운데에 위치한 원탁의 한 쪽에는 사령관이 앉아있었다. 만찬이라기에 만한전석처럼 길게 늘어진 음식의 향연을 생각했으나, 지금이 전시 상황임을 상기한 리마토르는 오히려 이렇게 작은 원탁에 음식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만찬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고쳤다.


“그래요 리마토르 씨. 아직 음식이 나오기 전이니 편히 앉아서 기다리시죠.”


“만찬까지 초대해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령관님.”


표정은 똑같이 웃고 있으나, 두 남자의 교차하는 뜻은 달랐다.


‘리마토르라면 내가 바라던 연구를 완벽하게 성공시켜 줄 거야. 어떻게든 그가 오르카호에 남아 있도록 해야 해.’


‘사령관은 내가 자신의 통치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의심을 불식시키고 내가 무해한 연구원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난 살아남을 수 없어.’


호의가 돌아온 악의, 악의가 돌아온 호의라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둘의 기묘한 관계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흔들리며 굳어지고 있었다.


“아까 말하고 갔던 <정의론> 내용 말인데요,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전 그 내용이 오르카 호에 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령관님의 통찰력은 굉장히 탁월하시군요.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안 그래도 저희가 리마토르 씨께 의뢰 드리려는 내용이 정의론의 내용과 부합합니다.”


“이거 신기하군요. 마침 저도 정의론의 내용에 기반하여 연구를 하나 진행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합류한 첫날부터 연구 계획을 세우신 건가요? 대단하시군요. 적응 기간을 좀 갖고 연구를 하셔도 되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연구원 신분으로 승선하게 된 이상 저도 한 사람 분량은 해야죠. 그러니, 사령관님께서 지원을 해주실 수 있는가 여쭙고 싶습니다.”


리마토르의 직설적인 말에 사령관은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령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자신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려는 리마토르의 말문이 열리려는 순간, 소완이 그 날의 만찬을 갖고 왔다.


“실례하겠사옵니다. 오늘 사령관님께서 드실 푸아그라와 소비뇽 블랑, 카나페 5종이옵니다.”


요리의 1류답게 화려한 요리들이 식탁을 수놓자 리마토르는 감탄하였다. 동시에 사령관도 만찬을 준비해달라고 했더니 아끼고 아껴둔 푸아그라용 거위 간에 와인까지 꺼내온 소완에게 놀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훌륭하군. 고생 많았어 소완.”


“후훗, 별 거 아니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간님을 위한 만찬 메뉴인-”


소완이 하얀 천이 내려진 카트 아래 칸에 손을 집어넣자 리마토르도 사령관도 어떤 메뉴가 나올까 내심 기대했다. 분명 뛰어난 요리가 나와 마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컵밥이옵니다.”


그렇게 큰 기대가 한 번에 터지는 소리가 실제로 들린다면 아마 멸망의 메이가 운용하는 전술핵의 폭발음에 가히 맞먹을 정도였을 터였다. 사령관의 만찬 메뉴에 비하면 굉장히 조촐한 리마토르의 컵밥에 사령관은 소완에게 따져물었다.


“소완, 이게 무슨 짓이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언제부터 만찬 메뉴에 컵밥이 있었지?”


“드시는 분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요리이옵니다. 맛있게 드셔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뻔뻔할 정도로 능청스럽게 말하는 소완에게서 리마토르를 향한 모욕을 읽어낸 사령관은 자신도 표정을 싹 굳히고 그녀에게 차갑게 말을 꺼냈다.


“소완, 너-”


“괜찮습니다. 드시죠.”


그를 제지한 건 당사자인 리마토르였다. 그 역시 소완이 자신을 향해 건넨 굴욕이 달가운 것은 아니었으나, 오르카 호의 일원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합류 첫날부터 반찬 투정을 하는 꼴이라도 보여주는 순간 자신의 생존에 대한 여론이 증발할 것이었으니 한 발 물러서기를 고른 것이었다.


“식겠습니다. 수저 드시죠.”


그리 말하고 리마토르는 사령관이 불편하지 않게 자신이 먼저 수저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도 소완에게 더 말하지 않고, 그에게 미안하고 말한 뒤 나이프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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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그라+소비뇽 블랑 와인+카나페 vs 컵밥


이건 아무리 소완제 식사라고 해도 너무 심한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