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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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철컥...

 

“오빠? 괜찮아...? 갑자기 왜 말도 없이...”

 

“...”

 

철컥. 철컥... 쿵!

 

“으아아, 그거는 좀 뾰족한데...!”

 

“...”

 

쿵. 쿵. 쿵.

 

“오빠! 부탁이니까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익숙한 목소리. 아니, 익숙한 건 목소리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느껴지는 파장이었다.

내 의식을 뒤바꾸려 할 때마다 성가대가 내뿜어내던 그 파장. 어느새 몸이 기억해버린 그 파장과 소름 돋을 정도로 익숙한 파형이 고막을 때렸다.

 

허나 이 파장은 성가대와 달리 안정적이다. 의식을 바꾸긴커녕, 오히려 잠에 들만큼 편안하고 이질적이다.

그리고 지금 그 목소리가 나에게 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 이제 이 부분만 들쳐내면...’

 

쿵.

 

“... 오빠? 갑자기 왜 그래?”

 

“... 이거다.”

 

 

 

철충 내부에 작은 보관함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 틈을 매만지려 손을 뻗자 끼릭거리는 기계음이 들리며 안에 있는 내용물이 드러났다.

 

작은 USB처럼 생긴 기기. 누군가 철충 안에 테이프 같은 것으로 조잡하게 붙여놓았다.

아니, 버튼이 달려 있는 모양새를 보니 USB가 아니라 무슨 녹음기인 것 같다. 내가 그걸 때어내자 철충 잔해에서 들리던 신호음도 천천히 꺼져 갔다.

마치 이걸 내게 건네려고 그랬다는 것처럼.

 

 

 

“어라...? 모스 부호 신호가...”

 

“... 사라졌어.

당신, 지금 무슨 일을 한 거야? 우리가 끄려고 했을 땐 뭔 짓을 해도 안 꺼지는 신호였는데.”

 

“... ... 닥터, 잠깐만 와봐.”

 

 

 

내 손에 들린 녹음기를 닥터에게 건넸다.

멸망 전 인류, 그러니까 내게는 굉장히 익숙한 형태의 녹음기를 보고 닥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멸망 전의 유산이라고 봐도 될 만큼 오래된 물건, 하지만 녹 하나 슬어있지 않은 보관 상태.

게다가 내부에 있는 파일이 확인될 정도로 인터페이스마저 깔끔하다. 이 시간대에는 박물관에나 가있을 법한 물건이 지금 두 닥터의 손에 들려 있다.

평소 시니컬한 말투로 툭툭 쏘아붙이던 닥터도 이번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녹음기를 관찰했다.

 

 

 

“이건... 녹음기? 아니면 MP3 같은 건가?”

 

“아마도...? 여기 이 삼각형 버튼이 있는 걸 보면 뭔가를 재생하는 기기인 것은 틀림이 없는데...

... 대체 왜 철충 몸 속에서 이런 구시대적인 유물이 발견된 거지?

당신, 이건 어떻게 찾은 거야?”

 

 

 

어찌나 집중을 했는지 이젠 오빠라고 부를 노력조차 하지 않는 닥터가 내게 물었다.

 

 

 

“글쎄... 그냥 보였다고 해야 하나.”

 

“보여? 우리가 저 잔해를 얼마나 뒤지고 볶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 어휴, 됐어. 당신한테 그런 걸 묻는 내가 바보지. 이게 뭔지나 살펴보자고.”

 

 

 

두 명의 닥터가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자기 등 뒤에 달린 기계팔을 뻗어 녹음기를 붙잡았다.

기계팔의 손바닥에서 스파크가 튀는 뾰족한 가시가 빠져 나와 녹음기 겉을 천천히 훑었다.

 

단지 만지는 것만으로도 내부 해킹이 가능한 최신 기술. 구시대 유물인 녹음기가 이를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해킹 결과를 홀로그램 창으로 찬찬히 살펴보던 두 명의 닥터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건...”

 

“왜...? 혹시 뭐 엄청 위험한 물건이기라도 한 거야? 설마 폭탄?”

 

“아니, 그냥 평범한 녹음기야.

이 꼬맹이가 쓸데 없이 분위기만 잡은 거고.”

 

“... ...”

 

“아무튼 일단 위험한 건 아니란 걸 확인했으니까 그 다음 작업을 진행해야지.

내용물이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보자고. 안에 들어있는 파일도 하나 밖에 없더라.”

 

“... 혹시 그게 막 내 뇌파를 건들고 헤집거나 하는 그런 파일이면 어떻게 해?”

 

“우리가 어련히 다 체크했을까. 그냥 안심하고 듣기나 해.”

 

 

 

반짝이던 눈이 좀 사그라 들었나? 닥터는 무심하게 녹음기를 내게 건네며 귀를 쫑긋거렸다.

파일을 스캔하긴 했어도 여전히 내용물이 궁금하긴 한 모양이지.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는 삼각형 모양 버튼을 눌렀다.

잠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리더니, 이내 내 귀에 들리던 여자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내용은... 처음엔 잔뜩 긴장한 내게 조금 실망스러웠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와라. 사령관.

...

--- ---- -------- -- -- -- - ----”

 

치직----치지직-----------------

 

“으... 노이즈가... 

... 오빠! 그거 잠깐만 꺼봐! 음질이 너무 안 좋잖아!”

 

“어... 그래. 알았어.”

 

“어휴... 이제 좀 살겠네.

... 그나저나 사령관이라고? 혹시 다른 바이오로이드 세력이 오빠에게 보낸 메시지였을까?”

 

“글쎄... 아무리 이 인간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다 하더라도 철충 몸 속에 녹음기를 붙여 넣는 방법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지.

게다가 이 정도로 신중한 바이오로이드 세력이 있다면 이런 짓을 하기 전에 이 인간의 습성을 확인했을 테고, 그럼 굳이 이렇게 어렵게 안 해도 됐을 거란 걸 미리 깨닫지 않았겠어?

이 인간이 뭐 바이오로이드를 잡아먹는 귀신도 아닌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목소리가 철충 목소리는 아닌 걸? 완전 사람이나 바이오로이드 목소리잖아.”

 

“그것도 그렇지. 그것도 그렇긴 한데 무엇보다 이 녹음기가 마음에 걸려.

골동품 모으기로는 스틸라인쪽 언니들을 따라올 사람들이 없는데 그쪽에서도 이 정도로 깔끔하게 관리된 멸망 전 유산을 찾을 순 없었어.

하물며 이건 전자기기인데 백 년 동안 사람 손도 못 타고 썩었을 전자제품이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누군가 아예 처음부터 새로 만든 거라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 정도 제품을 만들 만한 공장도, 재료도, 프로그램도 이젠 남아 있지 않겠지.

설령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이 정도로 낭비를 할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을 거야. 이런 걸 새로 만드는 건 완전히 낭비라고. 낭비.

제품 설계도부터 구해야 할 텐데...”

 

“... 그럼 누가 보낸 거지?”

 

 

 

닥터의 말들은 전부 일리가 있었다. 

 

완전한 사람의 목소리. 조금 간드러지고 부드럽기까지한, 심지어 감미롭다 느껴질 만큼 평온한 사람 목소리를 철충이 낼 수 있을 거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목소리. 게임 속에 나오는 애들마다 죄다 서약을 하고 과몰입을 하던 나조차 이런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게임 속에 나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 자리 수의 바이오로이드가 출시되었었는데, 거기에 겹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될까?

 

녹음기는 또 어떻고? 새로 만들어진 것이란 닥터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골동품이라기 보단 광택이 나는 새 제품처럼 보이긴 한다.

버튼을 누를 때도 약간 꺼끌꺼끌함이 느껴지는, 완연한 새 것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아니, 이건 확실히 새 제품이다.

 

혹시 멸망 전 제품들 중에 포장을 뜯지 않은 것들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게 백 년씩이나 계속된 전쟁통에서 이렇게나 멀쩡한 게 말이 돼?

 

결국 확실하게 하기 위해선 녹음기를 더 들어봐야 한다.

 

 

 

“일단은 계속 들어보자. 그리고 나서 판단하는 것도 늦지 않을 것 같아.”

 

“... 그래, 알았어. 그 전에 잠깐 귀 좀 막고.”

 

“나도... 크흠.

...

당신도 준비됐으면 빨리 틀어봐.”

 

 

 

닥터들이 한쪽 귀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나머지 귀는 기계팔로 꾸욱 막으며 나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평소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럴 때만큼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완전 어린 애들을 보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철의 교황이 그곳에서 어린 양을 발견했다.

우리는 너의 식견을 보고 싶구나.

그러니, 이곳으로 향하라. 좌표를 주겠노라.”

 

삐이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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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 이번엔 센스 좋았어. 시끄럽다 하려고 했는데 딱 타이밍 좋게 꺼줬네.”

 

“... ...”

 

“왜, 어디 불편해? 왜 표정이 벌레 씹은 표정이야?”

 

 

 

철의 교황. 별의 아이와 함께 내가 모르는 두 번째 미지의 존재.

그 단어를 내 입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철의 교황을 안다는 건 적어도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란 거다.

오르카 호에 쌓인 보고서들은 내가 전부 한 번씩은 읽어봤지만 철의 교황은커녕 연결체 이름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정보 수집 능력이 떨어지나? 아니, 그럴 리가.

알파가 오기 전에도 이미 어디에 어떤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을 지 지도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정보력이 뛰어났다.

적어도 한반도, 동아시아 일대의 실종 대원들 정보는 싸그리 다 파악하고 있던 게 우리 애들 정보력인데 정보력이 뒤떨어진다고? 말도 안 되는 얘기.

 

 

 

“그나저나 이건 진짜 누구 목소리지? 일단 가장 큰 용의자는 바이오로이드인데...

설마 사람은 아닐 거 아냐. 적어도 이 항성계에 남아 있는 인간은 오빠 한 사람뿐인 걸.”

 

“... 그거 확실한 정보야?”

 

“글쎄... 확실하지 않을까? 우리도 아시아 대륙 부근에서만큼은 여러 번 확인해봤잖아. 그럴 때마다 사람은커녕 사람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옛날 보고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는걸? 사람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

 

“야, 너도 뭐 한 마디 거들어봐~ 오빠가 오기 전 상황은 나보단 네가 더 잘 알잖아.”

 

“하아...”

 

 

 

옆에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어린 닥터 탓에 다른 닥터도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없는 게 확실해.

당신이 오기 전에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절박했고, 그래서 아시아 대륙뿐만이 아니라 유럽, 아메리카, 싹 다 이 잡듯이 찾아 봤었으니까.

...

...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살아 있는 인간은 없었어. 보고서로 기록되지 않았던 비밀 작전이 간혹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허탕으로 돌아갔었지.”

 

“그럼 두 번째 인간은...”

 

“아냐. 확실히 아냐.”

 

 

 

저렇게까지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다른 인간이 한 짓은 아닌 것 같다. 닥터가 이 정도로 말하는 건 진짜로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럼 대체 누구지? 바이오로이드인데 하물며 철의 교황의 존재를 아는 바이오로이드라. 

게임 속에서 이 단어가 처음 나왔던 건 스피커의 입에서였으니까 혹시 철충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철충을 해킹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 아자즈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 정보를 해킹 한 번에 얻을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양이라 부르는 것. 분명 철의 왕자다.

철의 교황에 이어 철의 왕자까지 알고 있는 존재... 내 머리 속에선 그게 누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후우... ...

... 닥터야. 일단 이 일은 보고서에 써놓기만 해줘. 부차적인 주석은 굳이 달지 말고.”

 

“음... 응? 주석 달지 말라고?

그래, 알았어. 어차피 달 주석도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닥터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연구 시설 밖으로 향했다. 

내 뒤에서 남은 철충 잔해를 유심히 관찰하던 시니컬한 닥터는 뭔가 불만족스러운 건지 뾰루퉁한 얼굴로 내 뒤를 따랐다.

 

 

 

“이봐, 당신. 혹시 방금 전에 새롭게 들렸던 모스 부호 기억해?

자동으로 기록되긴 했을 테지만 어째 소리가 조금...”

 

“아마 좌표일 거야. 알래스카 앵커리지 내부의 좌표.

그거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알려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거기로 가는 게 다음 일정이 될 것 같아서.”

 

“... 그래, 그랬지. 녹음기 마지막에 좌표를 준다고 했었으니까.

갑자기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 새로운 정보를 너무 많이 받아들여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지.”

 

 

 

볼을 양껏 부풀린 닥터가 은근슬쩍 내게 몸을 비벼온다.

키가 조금 컸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닥터는 강렬하게 내게 기대어 왔다. 아무래도 이것 저것 하느라 지친 나머지, 어리광을 부리는 방법을 배워버린 모양이다.

그러는 편이 귀엽긴 하지.

 

그나저나...

 

 

 

‘... 그래, 철의 교황이나 철의 왕자가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좋다 이거야. 나도 알고는 있으니까.

근데... 교황이 그 놈을 찾았다는 정보를 어떻게 안 거지? 그건 나도 모르는 내용이었는데?”

 

 

 

애초에 철의 왕자, 그 놈에 대한 정보도 내게는 부족하다. 게임 속에서는 주인공과 한창 싸우다가 패배하고 익스큐셔너를 닮은 이상한 철충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었으니까.

그 이후 이야기에 얘가 나왔었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건 철의 왕자를 끌고 갈 때 익스큐셔너를 닮은 그 철충이 했던 말 정도.

 

 

 

“멈추거라.”

“교황 성하의 뜻을 어지럽히는 행위는 더는 용서하지 않겠다.”

“교황 성하의 성언에 따라, 이 무지한 어린 양은 데려가겠다.”

 

“지금이 심연이 준동하는 때가 아닌 것에 감사하도록 하라.”

 

 

 

‘... 나도 진짜 변태 같이 플레이 하긴 했구나. 이런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

 

 

 

나 자신의 씹덕력에 감탄스러울 정도로 그 대사들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다만 그 뒤 내용은 좀 가물가물하긴 하다. 

바이오로이드 풀 컬렉을 하고 나서부터는 좀 권태기에 빠져 있었거든.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 몇 안 되는 정보들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이 녹음을 남긴 애는 이 익스큐셔너를 닮은 철충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철충에 대한 대응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주인공도 모르던 일. 

그러니 이 녹음을 남긴 존재는 바이오로이드든 아니든, 평범한 놈이 아닐 것이란 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이 존재가 나에 대해 제법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것.

말투란 게 있지 않은가. 그걸 가지고 생각해보면 이 말을 남긴 존재가 가지는 나에 대한 생각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애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네.

전쟁의 ㅈ 자도 모르는 일반인이 그나마 활약할 수 있는 게 게임 내용을 알고 환생한 것 덕분인데 지금 난 이 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잖아.’

 

 

 

두 명의 닥터는 앵커리지의 좌표를 뽑아내기 위해 연구 시설에 남았고, 나는 그 둘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시설에서 빠져 나왔다.

헤어짐에 조금 섭섭함을 표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 할 일은 늘 충실히 하는 애들이다. 믿음직스러운 애들이지.

 



그리고 어차피 안 그래도 급히 가봐야 한다.

닥터들한테 인사를 건넬 때부터 패널이 계속 띠링 띠링 울리고 있었거든.

 

 

 

‘배틀 메이드 애들이 자꾸 나를 부르네...

...

라비아타... 대체 뭐 얼마나 무서운 보고서를 들고 온 거냐.’

 

 

 

닥터가 아까 남긴 말을 자꾸 되새기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게임 속에서보다 훨씬 강력한 라비아타가 이 행성을 대체 얼마나 휩쓸고 다녔을 지 두려움이 앞선 까닭에 속도는 잘 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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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시네요. 주인님.”

 

“그래, 내가 좀 어려운 임무를 너에게 떠맡긴 탓에 일이 좀 꼬이긴 했네.”

 

“후후, 제가 주인님을 얼마나 뵙고 싶었는데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그렇게 말만 해줘도 고맙네.

근데 다른 애들은...”

 

 

 

라비아타가 나를 부른 곳은 오르카 호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휴게실.

해안가에 정박하고 있음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깊숙한 잠수한 내부에서 라비아타는 조용히 나 혼자만을 불렀다.

 

작은 케이크 조각과 향 좋은 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만 그걸 입에다가 손 댈 분위기는 아님을 직감했다.

오히려 그 옆에 놓인 작은 녹음기 비슷한 것과 보고서에 더 눈이 들어왔지.

 

 

 

“오늘따라 녹음기를 참 많이도 보는 구나.”

 

“네? 혹시 어디 다른 곳에서...”

 

“아, 이거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너무 그러지 마.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그게... 글쎄요. 저도 제가 잘 이해한 내용인지는 알 수가 없어서.”

 

 

 

라비아타는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흘렸다.

설령 임무에 실패하더라도 실패했음을 알리는 데에 주저함이 없던 아이였는데, 나도 이런 라비아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후우... 그래, 그럼 에바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다른 거 길게 물어보진 않을 게. 에바 찾았어? 혼내는 거 아니니까 편하게 얘기해줘.”

 

“...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찾는 것에는 실패했어요.

그녀의 시체를 찾는 것까지는 확인했지만 아시다시피 그녀도 바이오로이드인지라 다시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요.

그 시체가 복제본이었을 가능성도 있고.

최소한 생존 여부라도 확인하고 왔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아냐, 어차피 이 넓은 행성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어디 쉬운 일도 아니고, 그냥 좀 쉬엄쉬엄 하길 바라는 마음에 준 임무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괜히 너무 고생만 시켰던 것 같네.”

 

“... 그렇게 말씀 해주셔서 감사해요. 주인님.”

 

 

 

내 말을 들은 라비아타가 작게 한숨을 내셨다.

 

 

 

“흐음... 그럼 이제 얘기를 좀 들어볼까?.

닥터가 말하는 거로는 네가 알래스카까지 갔다고 얘기를 하던데, 맞아?”

 

“... 네, 맞아요. 에바를 찾으러 움직이다 보니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쪽에 좌표 하나가 있는 걸 봤거든요.

거기까지 가는 와중에 알래스카를 들르게 되었죠. 그런데 거기서 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어요.”

 

“이상한 광경?”

 

“...”

 

 

 

라비아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시 내 눈빛을 피했다.

 

 

 

“... 대규모 철충 부대가 움직이는 광경이었어요.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분명 연결체가 있었을 테였고, 실제로 연결체와 비슷한 개체들을 확인할 수 있었죠.”

 

“연결체? 어떤 개체?”

 

“전에 주인님께서 생체 재건 장치를 사용하시기 위해 들어갔던 장소에서 만난 개체와 닮아 있었어요.

다만 그 개체와 달리... 양 손에 사람의 손처럼 손가락이 달려 있었죠. 철충치고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였어요.

마치...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크기와 얼굴은 확실히 익스큐셔너라 부르셨던 그 개체와 닮아있었지만.”

 

“사람?”

 

 

 

익스큐셔너를 닮았다고 하기에 게임 속에서 철의 왕자를 데리고 간 그 녀석인가 했더니 그건 또 아닌가? 손가락이 달린 철충이라니. 악수맨도 아니고...


아무튼 그 정도로 이질적인 존재라면 연결체라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 그래, 아무튼 계속 해봐.”

 

“제가 달려가 놈들을 잡아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양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넓은 알래스카 전역을 한 번에 덮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철충 부대였죠.”

 

“그 놈들이 알래스카를...

... 대체 왜?”

 

“저도 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그들의 뒤를 밟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연구 시설에 닿을 수 있었죠. 철충 부대는 연구 시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설 내부를 조금 탐사하다가 금방 돌아갔어요. 

덕분에 그 내부를 탐사해볼 기회가 생겼죠. 철충이 전부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었으니까요.”

 

“... ...”

 

 

 

철의 교황이 철의 왕자를 찾았다고 하더니, 혹시 그 탐색 부대를 라비아타가 봤던 걸까? 

시기 상으로 생각하면 틀린 것은 아니다. 게임 속 시간 라인이긴 하지만 지금 나는 막 요정 마을을 끝냈고, 철의 왕자는 8지역 끝에서나 나올 놈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이걸 발견했어요.

원래는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무단으로 들고 올 생각은 없었지만 안에 내용을 읽어보니 사령관님께서도 아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보고서?”

 

 

 

난생 처음 보는 양식의 보고서. 조금 낡아보이기까지 하는 양식이 이게 오르카 호에서 만들어진 보고서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내가 그걸 손에 쥐고 내용을 읽고 있을 때, 라비타아가 녹음기를 켰다.

 

 

 

“그 내용은 이 녹음기 내부에 기록된 음성과 함께 들으시면 더욱 이해하기 쉬우실 거에요.

주인님께서 전부 보시고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겠죠. 시간은 충분하니까.”

 

 

 

비장함마저 묻어 나오는 라비아타의 목소리. 진중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내 시선을 보고서 맨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록: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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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사족 많이 안 붙여야지

나도 팬아트 받고 싶당


근데 다음 화는 지금까지 중에서 특히 이질적인 화가 될 거 같음. 그거 감안하고 봐주세요.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