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오드리를 만난 다음날, 최지는 그녀에게서 새롭게 맞춰진 양복 두벌을 받았다.


"하나는 지금 입고, 다른 하나는 예비용으로 놔둬요. 미스터의 다른 옷들은 짬짬이 만들어서 보내줄게요."


최지는 오드리가 만드는 옷들에 대한 약간의 불신이 있었으므로, 부디 옷감을 최소화해서 만든 옷이 아니기를 바랐다.


"파격적인 시도만 안했으면 좋겠네요."


최지의 말에, 오드리는 그의 말이 조금 불만인듯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파격적인 시도라. 미스터, 은근히 보수적인가봐요?"


하지만 최지는 보수적이진 않았고, 그거 과도할 수준의 진취적 의상을 싫어할 뿐이었다.


"아뇨, 그냥 단정한 옷차림이 좋아서 그럴뿐이죠."


오드리도 최지가 그정도로 보수적인 인물이 아닌것은 알고 있었기에, 그저 그가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그럴뿐이라 생각했다.


"오케이. 알았어요. 미스터는 비서라고 했으니, 비서다운 정갈한 옷차림 위주로 만들게요. 그럼 되나요?"


"네."


"그리고…미스 소완의 옷은 나중에 보내줄게요. 옷감은 다 있지만 장식물이 없으니, 조금 기다려야할것같네요."


"고마워요, 오드리."


최지는 오드리에게 감사인사를 했고, 떠나려던 오드리는 그런 그의 감사인사가 살짝 의외였다.


"…뜻밖이네요."


"네?"


"저한테 존대를 하거나 잘 대우해주는 인간들은 많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는 인간들은 몇 만나보지 못했거든요."


"해야할건 해야죠."


최지의 대답에, 오드리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아, 새 정장이다. 이거 빨리 입어서 오메가눈나 앞에 자랑하러 가야지.'


그는 지금 새 옷을 입고 오메가의 앞으로 갈 생각밖에 없었고, 유미나 소완처럼 일부를 제외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한테 거짓말을 딱히 할 필요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스터는 미스 소완을 대할때도 그렇고, 참 신비하고 재밌는 인물이네요. 후후후. 옷을 만들 보람이 하나 생긴것같아요."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오드리는 최지가 마음에 들었고, 그에게 웃어보이며 천천히 그의 방 앞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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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오메가의 집무실.


오드리가 옷이 든 상자를 들고 집무실을 찾았다.


똑똑똑.


"들어와."


오메가의 허락이 떨어지자, 오드리는 안으로 들어서며 상자를 들어보였다.


"미스 오메가? 당신의 옷이 완성됐어요."



오드리가 최지의 옷을 만드는데 20분밖에 안걸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에 가져다 준 이유는, 오메가의 의상도 만들어야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 남자…아니. 최 비서한테는 제대로 만들어줬겠지?"


"오브 코스. 당연하죠. 참으로 좋은 남자였어요."


오드리는 그 말을 하며 웃어보였고, 옷을 살펴보던 오메가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잠시 옷을 살펴보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라고?'


"옷을 만들 영감이 솟아나는 인간이었죠. 아아, 제 소울이 정말 열정적으로 타올랐어요. 하지만 본인이 요청하지를 않으니…안타깝네요."


잠시 당황하여 움직임을 멈췄던 오메가였지만, 오드리의 이어지는 말을 들은 뒤 마음을 놓고 다시 옷을 살펴보았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었네. 하긴 몸은 상당히 좋았었지…'


오메가는 어제 봤던 최지의 셔츠차림을 떠올리던 도중, 문득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고는 황급히 생각을 고쳤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수고했어. 나가봐. 이전의 오드리가 쓰던 방을 치워뒀으니, 앞으로는 거기서 생활하고."


"그러죠."


오드리는 어제 옷을 만들면서 이곳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었고, 오메가산업소속의 오드리가 쓰던 방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만들러가고 싶었기에, 1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메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내가 부르면 작업을 중단하고 오는것 잊지말고."


"연락을 받을 수 있을때라면 그러도록 하죠."


오드리는 오메가의 말에 조건을 붙이며 수락했고, 그것은 오메가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오드리보다 더 개체수가 적고, 중요도가 높은 닥터의 진심어린 조언도 말대답이라며 화냈던 오메가.


그녀는 아직 다른 유전자씨앗이 있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처분할 수 있는 오드리가 자신의 명령에 토를 달자 짜증이 밀려왔다.


근래에 최지덕분에 다소 누그러진 감이 있었지만, 그녀는 본래 폭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조건 붙이지 말고, 아무 말 없이 오라고."


오메가는 단호한 어조로 그녀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여기서 한번만 더 말대답이 들어온다면, 오메가는 AGS들을 불러 오드리를 델타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저는 작업 도중에 방해받는걸 싫어하는데…미스터의 옷을 만들다가 방해받고 싶지는 않은걸요?"


하지만 오드리의 대답은 오메가의 마음에 망설임을 주었고, 오메가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고민하다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른 충동을 따르기로 했다.


"…바로 못올것 같으면 연락을 해. 그 이외에는 바로 와. 알겠어?"


"알겠어요. 그럼 전 이제 가봐도 될까요? 미스터가 부탁한 물건을 만들어야해서요."


오메가는 최지가 오드리에게 부탁한 물건이라는 말에 떠나려던 오드리를 멈춰세웠다.


"잠깐…부탁한 물건?"


"네, 미스터가 본인의 옷을 거절하고 옆에 있는 미스 소완의 옷을 부탁했거든요. 얼마나 젠틀한지. 마음같아서는 미스터에게 옷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본인의 요청이니 어쩔 수 없었죠."


"……"


오드리는 오메가의 물음에 있는 그대로 답해주었기에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고, 오메가는 집무실의 의자에 앉아 가만히 옷 상자를 노려보고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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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출근시간.


오메가눈나의 얼굴을 보러가는 신나는 시간이지.


새 옷도 입었고, 안에 셔츠랑 바지랑 전부 다 오드리가 직접 맞춰준거라 몸에 딱맞다.


그렇게 기분좋게 출근하던 도중에 회장실…집무실 앞에서 유미가 날 발견하고 곧바로 걸어왔다.


"최지…씨? 지난번에 얘기했던 안건말인데…"


본인이 비서실장이면서 나랑 얘기를 하려는걸 보면, 아마 오르카 관련이겠지.


일단 그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지금은 오메가눈나 얼굴 봐야돼.


나는 집무실 문을 열면서 유미의 말에 대충 대답해줬다.


"그건 나중에 처리하죠. 비서실이나 제 방에서 얘기하는걸로."


"아, 네."


자! 오늘도 오메가눈나의 얼굴을 봐야지!


"……"


어? 뭔가 망했다.


감이 온다. 이건 뭔지 몰라도 뭔가가 망했다는 것의 감이 온다.


뭐지? 오늘 기분이 안좋으신데? 오늘 식사가 맛이 없었나? 아니면 뭔 문제가 터졌나?


또 델타랑 감마인가?!


아니, 감마는 아니겠지.


델타가 또?


좋아, 이제 비서 L의 능력을 보여줄때가 됐군.


감마의 본거지 취약점을 알아내서 오르카에 뿌려버린다음에 알아서 망해버리게…


"…이제 왔네? 아주 여유로운가봐? 아니면 정장 잊는법을 잊어서 늦은건가?"


오메가눈나가 입을 여셨다. 일단 사과부터 하자.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나이의 사과 2단계. 허리숙여 사과하기.


나는 곧바로 미끄러지듯 책상으로 다가가며 허리를 100도 각도로 숙여 사과했다.


어떻습니까, 오메가눈ㄴ-아니. 저건 오메가님 모드다. 까칠해져있지.


어떻습니까, 오메가님! 지금까지 제가 허리를 숙였을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죄송할 필요는 없어. 이제서야 내가 비서들을 너무 풀어줬다고 생각한 참이니까."


있구나. 과연 오메가님이야.


그렇다면 단계를 올린다.


"제가 오늘 일찍 출근하지 못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3단계. 엎드린다.


시야확보가 안되지만 일단은 사과하는게 먼저다!


"……"


말이 없으시다.


바닥만 보고있기도 뻘쭘한데.


"그렇게 사과한다고되는게 아니야. 그리고, 단순히 숙이기만 하는거라면 누가 못해?"


더 올린다.


4단계. 그랜절로 간다.


엎드린 자세에서 그대로 팔에 힘을 주고 하반신을 들어올린다! 강화된 나의 육체야! 버텨다오!


나는 그랜절을 시전하며 다시 소리쳤다.


"그렇다면 좀 더 숙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오메가님은 내 행동에 조금 당황하신것같았다.


"자꾸 이상한짓을 하는데, 이런다고 내가 물러나줄거라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지. 5단계로 간다.


나는 그대로 일어선 뒤 집무실의 구석으로 달려가 호박색 액체가 든 병을 들고왔다.


뚜껑을 땄을 때, 위스키 특유의 숙성된 향과 알코올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알코올 냄새가 조금 더 강하한걸 보니, 방치한지 좀 됐거나 싸구려겠지.


그래도 회장 본인이 마시던 물건은 아니겠지. 그런거라면 다른데다 보존을 했을테니까.


"지금 뭐하는…"


나는 머리부터 그 술을 부은 뒤에, 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라이터가 왜 있는가하겠지만, 펜이랑 아미나이프, 열차단 필름, 노트, 비상용 C4 50g이랑 뇌관, 리모컨까지 갖고있다.


오른쪽에는 간단 식품류랑 손수건같은게 있지만 일단 이정도는 갖춰다녀야 특급 비서지.


"불판은 없지만…보여드리겠습니다."


"무, 무슨…!"


유미도 내가 하려는 짓을 보고 놀란것같긴 하다.


하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짓은 아니지.


알코올이 제대로 소독의 역할을 하는데에는 40도의 도수가 필요하다.


불이 붙는데에는 어느정도의 도수가 필요할까?


정확히는 몰라도, 지금 내 몸에 있는 위스키는 불이 붙기에 딱 적합하겠지.


간다. 필살의 5단계. 불판도게자.


나도 이걸 계산없이 하는건 아니다. 알코올이 금방 타서 사라지니까, 타죽진 않겠지.


그래도…화상정도는 남겠지? 상관없다.


사죄에는…『진심』이 필요한 법이니까.


팅-차악!


라이터를 꺼내 뚜껑을 열고 불을 붙였다.


"이게 제 진심입니다."


그리고 그 불을 그대로 몸에 갖다대는 순간.


"안돼요, 주인님!"


콘스탄챠가 달려들어 그대로 내 라이터를 뺏었다.


하긴, 유미랑 다르게 너는 나를 주인으로 제대로 섬기고 있긴 했지.


물론 비서업무 도중에만 그런거고, 내 방에는 못들어오게 했지만.


근데, 그렇다고 몸에 불이 안붙은건 아니다.


콘스탄챠가 조금이라도 빨리 빼앗았으면 모를까, 내 손에는 불이 붙어있던 상태였다.


손에 있는 불을 몸에 붙이기는 쉬웠고, 나는 몸에 불이 붙는걸 확인하고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너, 너! 미친거야?!"


"소화기!"


"주인님!"


나의 불판없는 불판 도게자는 결국 오메가님을 자리에서 일어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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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소란이 있은 후, 집무실.


오메가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최지를 노려보았다.


"…너,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고있어?"


최지는 오메가의 말에, 무덤덤하게 자신이 한 일을 털어놓았다.


"사과를 했습니다."


담백하다못해 성의가 없어보일정도의 대답.


그의 정장은 겉부분이 그슬려있었고, 안에 입은 셔츠도 백색이었지만 위스키에 물들어 약간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그것도 몸에 불을 붙이고 말이지. 금방 타올라 사라지는 알코올인데다 옷의 재질이 천연소재라 늦게 타서 망정이지, 그대로 타죽을뻔했다고. 알아?"


최지는 오메가의 말에 본인이 쉽게 죽을일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사과하려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목숨을 건 상황에서도 사과를 할 수 있어야, 진정 상대에게 사과하는 법이니까요."


"이 미치광이야! 그렇게 사과가 중요해?!"


오메가는 참다못해 최지에게 소리를 질렀고, 최지는 그런 그녀의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네."


"……!"


그가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고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오메가는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러고보니 지하에서 만났을때도 이렇게 눈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그의 광기넘치는 행동을 떠올리고, 오늘의 일까지 더해지자 오메가는 그의 원동력이 궁금해졌다.


"…너, 대체 왜 그러는거야? 이제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 대체 뭐가 널 그런 짓까지 할 수 있게 만드는거야?"


"당신입니다, 오메가님. 저는 언제나 오메가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오메가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죠."


최지는 오메가의 물음에 당당하게 답했고, 이는 그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진심은 오메가에게 전해졌을지 아닐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오메가가 침묵한 채로 의자를 뒤로 돌렸기 때문이다.


"……"


잠깐의 정적이 있은 후, 오메가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가."


"네?"


"나가라고."


오메가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나가라 명령했지만, 최지는 나갈 마음이 없었다.


"제 사과를 받아주실때까지…"


최지는 망부석못지않은 굳건함을 보이며 버티고 있었고, 오메가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소리질렀다.


"받아줄게! 책임도 묻지 않을테니까 나가!"


사과가 받아들여지자 최지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가는 대신 그녀에게 오늘 업무에 대해 물어왔다.


"오늘의 업무는…"


"안해! 미뤄! 나가! 그냥 나가!"


오메가는 1초라도 빨리 그를 쫓아내고 싶은듯 계속해서 소리쳤고, 최지는 고개숙여 인사를 올린 뒤 집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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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최지가 오늘 집무실에서 미친짓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평소처럼 업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마음속에 계속 오드리가 꺼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미스터가 미스 소완의 옷을 부탁했거든요.


본인의 옷 대신, 그 반항기 넘치던 소완의 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


어째서?


그런 쓸모없는 소완의 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본인의 옷 대신?


설마…그 소완을 마음에 담아두는건가?


아니, 아니겠지.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한테도 옷을 입히니까.


단순한 변덕이었겠지.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나중에 내 집무실로 들어왔을때.


처음에는 몸에 딱맞게 재단된 옷을 보고 만족스러웠다.


나도 옷을 새로 주문한 보람이 있게, 그 남자도 새로운 옷을 입은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의 옆에 서려면 저정도는 갖춰야한다고 생각했고, 옷을 제대로 차려입으니 전보다 더 좋아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남자는 유미와 나중에 처리하며 비서실이나 자신의 방에 오니뭐니 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업무를, 방까지 찾아간다고? 왜?


그 유미가? 일밖에 못하는 유미가 그 남자의 방으로?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그 남자에게 갑작스럽게 실망했다.


지금껏 살아오며 이정도로 실망한적이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을 보기도 싫었고…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


글자만 본다면 그저 평범한 업무대화일텐데. 대체 왜 나는 그런 마음을?


그래서…나는 유미와 그에게 약간의 분노를 표출하려했다.


비서를 너무 풀어줬다고 말하며, 당분간 야근을 시키려 했지만…그가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허리를 숙여왔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허리따위, 얼마든지 숙일 수 있고 옛 인류들도 그정도야 얼마든지 했으니까.


그래서 비서를 너무 풀어줬다고 얘기했고, 본론을 꺼내려던 순간 그가 엎드려왔다.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그정도도 얼마든지 봐왔다.


내 발 앞에 엎드려 발이라도 핥으면 모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다리를 들었다.


그걸 보자, 잠시 사고가 멈췄지만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일어나, 그런 추한꼴 보이지말라고.


네가 그런 모습을 유미나 다른 녀석들의 앞에서 보이면…내가 뭐가 되겠어.


그러니까 네 평판을 깎아먹을짓을 하지말라고…!


"자꾸 이상한짓을 하는데, 이런다고 내가 물러나줄거라고 여긴다면…"


더이상 이상한 짓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려 했을때, 내 마음이 통한건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냥 조금만 감내해줘.


내가 너를 해칠일은 없을테니까, 그냥 나에게 조금만 더 충성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그걸로 됐어.


하지만…나는 그가 포기한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말았다.


그는 이내 집무실의 구석에 있던 40년산 싱글몰트 위스키를 꺼내와 머리에 부었다.


대체 무슨 짓을?


그렇게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그는 곧바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설마.


아니, 그라면 가능할지도.


그는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상을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몸에 불을 붙이려했던것이다.


다행히도 도중에 콘스탄챠가 라이터를 빼앗기는 했지만, 그는 손에 붙은 불을 몸에 옮겨붙이고 곧바로 엎드렸다.


미쳤어…정말로 미쳤다고…


다행히 유미가 소화기를 가져오기도 전에 그의 몸에 붙은 불은 꺼졌고, 여기저기 조금 그슬리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어보였다.


그가 대체 왜 그런 미친짓을 한건진 몰라도, 일단 그에게 소리쳤다.


"…너,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고있어?"


그는 내 말에도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 그 사과가 대체 뭐라고!


대체 그 사과가 얼마나 중요해서 몸에 불이나 지르냐고, 멍청하기는…!


"그것도 몸에 불을 붙이고 말이지. 금방 타올라 사라지는 알코올인데다 옷의 재질이 천연소재라 늦게 타서 망정이지, 그대로 타죽을뻔했다고. 알아?"


그걸 다 계산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몸에 아무 주저없이 불을 지르는건 보통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인데. 왜 그런거야? 어째서?


나의 짜증과 투정섞인 물음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똑바로 말했다.


"목숨을 건 상황에서도 사과를 할 수 있어야, 진정 상대에게 사과하는 법이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 미치광이야! 그렇게 사과가 중요해?!"


다른 사람은 신경도 안쓰고, 너 혼자 사과하면 장땡이야?


하지만 그는 계속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네."


그리고 그 때, 나는 그를 지하에서 만났을때를 떠올렸다.


대체 뭐가 널 그렇게 만드는거야…설마…아니, 혹시 몰라. 그래도 물어보자.


"…너, 대체 왜 그러는거야? 이제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 대체 뭐가 널 그런 짓까지 할 수 있게 만드는거야?"


"당신입니다, 오메가님. 저는 언제나 오메가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오메가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죠."


그는…최지는,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너, 설마…아니.


아니야…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것을 느끼고는 곧바로 의자를 뒤로 돌렸다.


그 이후로는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를 쫓아내려고한것은 확실했다.


아무도 집무실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창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나에게 보여줄수는 없었다.


틈만 나면 주위로 돌아가는 눈동자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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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는 집무실의 의자에서 고개를 숙인 채, 그날 밤이 될때까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그 남자를…아니, 아니야…나는…회장님들을…그래도, 어떻게해야…"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간간이 시선을 새로운 옷이 든 상자로 옮기는 등의 행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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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의 방.


최지는 오드리에게 받아온 옷을 소완에게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소완도 그의 선물을 거절했지만, 두번정도 권하자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내 옷을 갈아입고 최지의 앞에 섰고, 최지는 옷을 갈아입은 그녀를 보자 흡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주인, 소첩에게 이런 선물은 너무나 과분하옵니다…"


"괜찮잖아? 이정도는. 그리고, 네가 요리사가 아니라 집사로 있는게 더 낫지않을까? 물론 집사로서의 일을 잘 하진 못할것같긴 하지만."


"주인…소첩을 그만큼 믿어주시다니, 기뻐서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지금 소첩은 연미복을 조금 개량한듯한 집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시사철 긴팔로 있더라도 용납되는 옷인 동시에, 그녀의 손목에 있는 결점을 가려줄 수 있는 옷.


'스킨중에 긴팔이 이거밖에 없어서 급하게 생각한건데, 오드리가 잘 만들어줘서 다행이다.'


최지는 확실히 소완에게 옷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새로운 옷을 입은게 내심 흡족했다.


"확실히, 어울려."


"주인…소첩은…아니,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너무 감사하오나, 이 옷은 귀한 날이 있을때만 입도록 하겠사옵니다. 이런 소중한 옷을 입고 요리를 할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흠, 그것도 맞긴 하네. 그보다…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소완."


"예, 주인. 소첩의 모든것을 바쳐 주인을 모시겠나이다."


소완은 고개를 숙인 뒤, 최지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소첩은 주인께 따르겠사옵니다. 오메가의 목숨을 이 손안에 쥐더라도, 주인께서 살리라 하면 살리도록 하지요…!'


그녀는 이제, 최지가 뭐라하든 그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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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도 1만자 안에 끊었습니다. 점점 분량조절이 되어가고 있으니 만족스럽네요)


(사실 오메가와의 진도를 천천히 뺄려고 했는데 조금 땡겨봤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고 싶더라고요.)


(자~ 오늘의 여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메가 옷 원하는거 있으면 댓으로. 괜찮으면 넣음.)


(다음화에는 오르카를 등장시켜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