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문학) 오르카 호 살인사건

늒내(124.50)



페로는 졸린 눈을 부빈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김에 순찰까지 하라니. 효율은 둘째 치고 자신에게만 치중된 임무량에 그녀는 서글플 따름이다.


- 전 주인님은 이러지 않았는데.


그녀는 자신이 한 말에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서글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보고싶어요 주인님. 닿을리 없는 의미를 가슴속으로 곱씹으며 그녀는 뺨을 툭툭 쳤다.


칠흑같이 어두운 오르카 호의 복도는 고요하기만 하다. 오히려 그녀의 발소리만이 들리는 것이 무서운 이유라면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졸린 나머지 손전등을 돌려볼 생각도 않고 걸어가다가 땅에 떨어진 바퀴를 발견했다.


- 닥터가 떨어트린 물건인가?


그녀는 바퀴를 집어들고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그러는 그녀를 멈춰세운 것은 촉감이었다. 기분나쁜 촉감.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 한.


페로는 전등으로 바퀴를 비췄다. 바퀴는 피에 절여져 있었다.


전등의 빛이 가까스로 위화감을 밝혀냈다. 그녀는 천천히 전등을 들었다. 고요함은 싹 가셨다. 그녀의 비명이 온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곳에서는 칸의 배가 뚫려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 ...업보가.. 온다..












- 닥터, 사망 추정시간은?


- 한 04시경인 것 같아.


마리는 얼굴을 짚었다. 다른 대장들도 표정이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마리는 선반 위에 올려진 사진을 보았다. 칸의 배는 칼같은 무언가로 관통당한 흔적이 있었다.


- 이런 무기를 들고다니는 바이오로이드가 있나?


- 당신, 지금 다른 아이들을 의심하는거야?


레오나의 면박에 마리는 소리쳤다.


- 그럼 오르카 호 안에 철충이라도 숨어들었다고 해석해야하나?


금방이라도 싸울듯 한 두 사람을 메이가 제지했다.


- 지금은 진정해. 싸움은 회의가 끝나고 하던가.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 닥터. 그래서 어떤 무기로 찌른거야? 오르카에 이런 무기를 들고다니는 녀석이 있나? 모모?


이야기를 죽 듣던 닥터는 고개를 저었다.


- 모모의 칼로 찔렀다면 이렇게 커다란 관통은 아니었을거야. 이정도 너비라면, 익스큐셔너의 칼끝이라던가...


리제. 그 이름을 들은 일동은 경련이라도 온 듯 움찔했다.


- 그 미친년은 자기 자식마저 데려가지 못해서 안달인거야?


- 메이, 죽은 이에게 할 법한 말은 아니다.


그녀들은 배 안에 더이상 리제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인지 그 오컬트풍의 분위기에 언짢음을 느꼈다.


- 누나들, 무슨일이야?


사령관의 목소리에 다급히 닥터는 흰 천으로 칸의 사체를 가렸다.


- 아무것도 아니야 사령관.


- 엄마 이야기가 들린 것 같아서...


열 살 남짓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을 비비며 들어오는 꼴을 보아하니 자다가 깬 듯 했다.


- 꼬맹이는 들어가 잘 시간이야.


- 맞습니다. 사령관. 몸도 안좋은데 늦은 시간까지 돌아디니시면 안됩니다.


마리가 그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사령관은 경멸스러운 것을 참는 듯한 눈으로 몸을 떨었다.


- 아, 죄송합니다 사령관.


- 아냐, 미안해 마리누나. 내가 이래서...


- 그럼, 먼저 들어가 주무십시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고 나갔다.


- 여성공포라...


- 자기 아빠를 똑 닮은거지 뭐. 그 숙맥 자식 답네. 이래서야 인류 재건이고 뭐고...


- 메이,


가시 돋친 레오나의 말에 메이는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 알아, 나도 안다고. 나도 그 자식이 미치도록 보고싶어. 그런데 어쩌겠어. 그녀석은 이미 죽었고, 남은 인류의 희망은 저 꼬마뿐인데.


그녀의 말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가까스로 입을 연 것은 레오나였다.


- 내일 내가 레아를 한번 찾아가볼게. 이 이야기는 그만하는게 어때? 오늘은 그래도 일단 칸을 추모하는게 맞지않을까?


다른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칸의 얼굴을 덮어놓은 천을 내리고 그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레아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크게 부담을 안고있었다. 리제가 죽은 것에 대해서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가 느끼는 슬픔은 다프네가 느끼는 슬픔에 비해서는 작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매 시간 틈틈이 다프네의 수발을 들었다.


- 다프네 자, 입 벌리렴.


다프네의 눈물은 문자 그대로 마르지 않았다. 그녀는 시시때때로 울었다. 그녀는 어떠한 표정도 없이 입만을 가볍게 열었다.

레아는 그녀의 입에 죽 한숟갈을 떠넘겼다.

다프네는 아직도 언니 생각을 한다. 그리고 사랑하던 사령관의 생각을 한다.

레아는 후우 하고 한숨을 한번 쉬고 구석에서 놀고있는 아쿠아를 불렀다.


- 아쿠아, 잠시 이리 와줄래?


작은 적치덩어리가 총총걸음으로 그녀의 앞에 섰다.


- 왜 불렀어 언니?


- 다프네 언니 밥좀 먹여줄래?


고개를 끄덕이는 아쿠아를 뒤로하고 그녀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이 마주치는 레오나를 보고 멈칫 한 그녀는, 자신이 인사를 깜빡했다는 사실에 눈인사를 건넸다.


- 잠시 시간 괜찮을까 레아?







호전적이다 라는 단어와는 연관성이 적은 레아도 단숨에 불쾌함을 표했다. 그녀의 성격상 대놓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화가 났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용건이 그거에요? 죽은 리제가 나타나서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는 거?


- 리제인지는 모르겠어. 흉기가 리제의 가위로 추정된다는 거지.


- 당신은, 때를 잘 못 골랐어요. 동생을 잃고 다른 동생마저 앓아누워있는 제게 위로는 못할망정 할 말이 그것인가요?


- 미안해 레아, 하지만 때를 기다릴 수 없다는 걸 알아줘. 이미 칸은 죽었고, 다음은 누가 죽어나갈 지 몰라. 그게 나일수도, 메이일수도 어쩌면... 사령관일수도.


- 그만하세요. 리제는 죽었어요. 제 입으로라도 다시 듣고싶으셨나요? 리제는 사령관과 함께 죽었고, 그녀의 유품으로는 가위는 커녕 옷자락하나 못건졌어요. 이제 속이 시원하세요?


레오나는 시선을 축 떨어트렸다. 울듯 성을 내는 그녀에게 더이상의 추문은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도 불가했다.


- 미안해. 레아. 다프네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


레아는 고개를 돌렸다. 울고있을지도 몰랐다.


- 범인도 빨리 잡혔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동생의 방을 향했다.








레오나는 미안함을 잠시 잊고 범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석의 목적은 뭐지? 칸 하나인가? 아니면 다른 대장들인가? 아니면 사령관?

그녀는 팔짱을 꼭 꼈다. 몸이 으슬거리는 듯 했다. 추워서인지 어깨에 걸친 제복을 껴입으려는데, 옷깃이 스치는 소리 사이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침착했다. 겁이 날 가능성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그녀를 흔들지는 못한다. 그녀는 정면을 주시했다.


- ... 사령관?


조그마한 형체를 그녀는 정의했다. LRL이나 더치걸정도의 크기. 하지만 제복모자같은 실루엣. 그 어두운 실루엣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 레오나 누나야?


그제서야 레오나는 진정된 듯 한껏 모아놓았던 어깨를 떨어트렸다. 그녀는 여성공포가 있는 사령관에게 최대한 닿지 않게 노력하면서 그의 곁에 쭈그려 앉았다.


-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몸도 안좋으면서.


- 응. 엄마랑 잠깐 이야기하고왔어.


엄마?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올랐다.


- 리제...?


- 응. 오늘은 여기까지만 놀고 다음번에 데리러 온다고 하고 갔어. 바쁜 일이 있다고 하면서.


데리러 온다는 말에 레오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 리제 그 년이... 사령관. 일단 들어가서 자. 마리누나 불러서 오늘은 옆에 있어달라고 해.


- 왜?


그녀는 더이상의 대답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복도를 쭉 달렸다. 그러던 그녀를 멈춰세운건, 돌부리같은 무언가였다. 다리가 걸려 넘어질 뻔 한 레오나는 뒤를 돌았다. 어두운 복도라 눈치채지 못할 뻔 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걸고 넘어진 작은 다리를 보았다.

그곳에는 핏물이 엉겨붙어 굳은 배를 움켜쥐고 식어버린 메이가 있었다.





닥터는 자기 운수에도 없는 염습을 두번째 하고있었다.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리와 아직 진정이 덜 된 듯 숨을 가파르게 쉬는 레오나는 정보를 빠르게 교환했다.


- 정말 각하가 엄마를 보았다고 했다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는 닥터를 돌아보았다.


- 닥터, 그날 cctv 기록이 남아있나?


닥터는 응. 이라는 말과 함께 전 사령관이 출동하던 날의 영상 기록을 스크린에 띄웠다. 먼 거리에서 지휘를 하기 위해 사령관은 오르카의 바깥으로 나갔다. 호위를 위해 따라나간 리제와 사령관은 먼 곳에서 날아온 맘모스의 곡사포에 갈갈이 찢겨나갔다.

그녀들은 그부분을 확대해서 보았다. 사령관이 죽는 모습을 다시 보는 것은 그녀들에게도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애써 정신을 집중했다.


- 여기, 타버린 시체는 두 구야.


마리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 그럼 유령이라도 나타났다 이런 말인가?


레오나도 언짢은 듯 시선을 떨궜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한 듯 메이의 복부를 쳐다보았다. 네모난 도형 안의 자그마한 원. 그리고 웃는얼굴이 피로 그려져있었다.


- 이건...


마리도 확인한 듯 어딘가로 급히 달려나갔다.

레오나도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 좋지 않아...


- 이게 뭐야?


닥터가 물었다.


- 그냥, 지휘관끼리의 암호야. 램파트의 얼굴부분. 램파트의 머리지. 쉐이드는 공격. 스파르탄은 산개. 램파트는 엄호. 에이다는 결집.

팔은 적의 화력병력. 다리는 기동병력. 가슴은 방어병력. 머리는 우두머리.


즉, 우두머리를 보호. 사령관을 지키라는 뜻이야.







  다프네. 사령관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그래서 그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언니, 지금 날 놀리는거야?


  아냐. 후후.






마리는 다음날 사령관을 다시 찾아갔다. 사령관실 안에는 포츈도 그와 함께 있었다.


- 사령관, 이제 슬슬 수술해야하거든? 그렇지 않으니까 계속 아픈거야.


사령관은 베개를 끌어안았다. 싫은듯 한 눈으로 포츈을 쳐다보았다.


- 포츈, 그 이야기는 좀있다 나랑하지.


그렇게 말하고는 마리가 사령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 각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제 만나신게 정말로 리제가 맞습니까? 다프네와 착각하신 것은 아니십니까?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 이모가 아니야. 엄마야.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유령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그녀는 혀를 한번 찼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포츈을 쳐다보았다.


- 잠시 이야기좀 할까 포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사령관은 강화인간수술을 해야해. 안그러면 언제 죽을지 모르거든.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기적이야. 설득하는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 아니, 그건 됐어. 것보다 포츈. 심령현상을 믿나?


사령관의 사활이 걸리는 문제를 노파심으로 일축하는 듯 한 태도에 포츈은 짜증이 확 올랐으나, 그녀는 일단은 대답한다.


- 언니는 과학자거든? 그런걸 믿으면 안되지.


- 그렇다면 칸과 메이의 시체를 한번만 더 조사해줘. 어떤 녀석이 한 짓인지 알아내야겠어.


포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더 덧붙이려는 포츈보다 마리의 뒷말이 먼저 이어졌다.


- 사령관의 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리는 돌아섰다. 포츈은 따지고 들려다가,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태도에 의구심을 삭혔다.






주인님 이거 보세요. 주인님의 아이에요.


그래, 그리고 네 아이기도 하지.


혹시라도 주인님의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어떡할까 걱정했어요.


괜한 걱정이야 리제. 고마워, 사랑해 리제. 그리고....







포츈은 그로테스크한 것에 대해 면역이 없었다. 차마 시신을 부검한다던다 하는 일은 하지 못했기에 그녀들의 외상을 눈으로 훑을 뿐이었다. 온 몸을 훑으며 아름답기까지 한 그 몸에 흉물스레 뚫린 구멍을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눈치챘다. 다른 외상을 찾던 그녀였기에.

관통상은 너무나 거대한데 비해, 몸이 비정상적으로 깨끗했음을.


- 마리, 마리대장. 들려?


그녀는 직통 무전기를 들고 신호를 계속 보냈다. 계속 응답없는 무전기를 들고있기도 무안한듯 그녀는 레오나에게 무전을 보냈다.


- 레오나, 들려?


- 응. 아주 잘 들려.


- 시체들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거든? 이렇게 큰 상처에 비해서 몸싸움을 한 흔적이나 이런게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 아, 그럴만도 하지. 나도 지금 당하고 있는 중인데, 몸이 움직여지질 않네.


- 레오나? 지금 뭐라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에서 노이즈음이 들렸다. 반대쪽 무전기가 부숴진것이 분명했다. 포츈은 레오나의 방을 향해 달렸다.



- 너무 뻔한 전개라 상상도 못했네. 삼류 소설에나 나올법한 촌극이야.


레오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 뭐 마지막인데 나한테 해줄 말도 없는거야?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머리 옆에 놓여있던 칼이 들어올려지는 것. 그것만이 시야 끄트머리에 걸쳐 겨우 식별될 뿐이었다.

가위가 가리는 그림자가 서서히 커졌다. 레오나는 포기한 듯 살짝 웃었다.


- 마리! 샘!


그녀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다급한 괴한이 놀라 목을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복도 안에 레오나의 유언이 울려퍼졌다.

포츈이 도착했을때는 레오나의 시신은 두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리제는 조그마한 핏덩이를 안아들었다. 눈을 감은채 손톱보다 작은 손가락을 느리게 움직이는 아기를 보고 활짝 웃었다.


- 주인님 이거 보세요. 주인님의 아이에요.


사령관도 웃으며 리제에게 다가섰다.


- 그래, 그리고 네 아이기도 하지.


그는 아이의 앞머리를 만져보았다. 조금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는 그의 아이가 마냥 사랑스러웠다.


- 혹시라도 주인님의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어떡할까 걱정했어요.


그녀는 눈물이라도 흘릴듯이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녀를 사령관이 껴안으며 말했다.


- 괜한 걱정이야. 고마워, 사랑해 리제. 그리고... 사랑해.

우리 딸.





메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르카 호 내에서 사령관의 죽음을 가감없이 본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 거짓말이지...?


기침과 함께 그녀에게서 숨이 터져나왔다. 날숨 한번, 허억거리는 소리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메이는 되뇌였다.


- 메이.


마리가 그녀를 불렀다. 간신히 눈물을 참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 정신 차려 메이!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 그럼 어쩔 때인데?


메이는 풀린 눈으로 마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물때문에 흐려진 시야를 가다듬을 생각도 않으며 말을 이었다.


- 사령관은 죽었어. 그녀석이 남긴 유일한 인류는 여자아이고. 이제 더이상 우리는 전쟁을 계속할수도 없고, 계속할 이유도 없어.

다 끝났어.


메이는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애석하게도, 마리도 그 말에 대해서 반박할 수 없었다.


- ... 김지석.


가만히 듣고만 있던 레오나가 말문을 텄다.


- 뭐?


놀란듯 되묻는 칸의 말에 레오나가 첨언했다.


- 사령관의 몸을 만들었던거 기억나?


- 사령관의 아이를 남자로 만들자 그건가?


메이는 혐오스럽다는 듯 레오나를 쏘아보았다.


- 달리 방법이 있어? 이대로 멸망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럼 그러도록 해. 나도 더이상은 강요할 생각 없으니까.

레오나의 말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 제안을 평가한 것은 마리였다.


- 바이오로이드도 사후세계에 간다면...

우리 넷은 지옥행이겠군.







마리는 울 틈도 없었다. 우선순위는 레오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부술 듯 문을 두드렸다.


- 나다. 마리. 문 열어.


레아는 얼굴을 언짢은 표정으로 문을 살짝 열었다.


- 무슨 일이죠?


- 다프네는 어디있지?


- 그건 왜 물으시죠?


마리는 근엄한 얼굴로 레아에게 말했다.


- 칸과 메이가 죽었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 그래서 다프네를 의심하는건가요?


- 몇시간 전에. 레오나도 죽었다.


- ...


레아는 그녀에게 쏘아붙일 수 없었다.


- 레오나가 죽으면서 한 말이 있다. 뭔지 아나?


- 샘. 이라고 했죠.


마리는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 그 녀석은 그런 말장난을 좋아해. 샘이라. 우리 군인들한테 샘이라는건 다른 뜻이 없어.

엉클 샘. 가장 강성한 인류의 국가, 미국의 상징이었지.


- 그래서요?


- 엉클이라. 여자밖에 없는 이런 곳에 삼촌이 어디있겠어? 오르카 호의 경우에는 이모겠지. 그럼 너나 다프네나 아쿠아 뿐이지. 그렇지?


- 그럼 제가 범인일수도 있겠네요.


- 포츈에게 시신을 확인해달라고 하니까, 그러더군. 상처 크기 치고는 너무 깔끔하다고. 짓이겨진 살더미나 뼈나 근육을 따라 관통되면서 빗겨나갈법도 한데말야. 힘이 아주 강하다면야 그럴 수 없는것도 아니지만, 레오나를 죽일 때는 다급했나 그런게 아니었나봐.


부식이겠지. 그렇다면. 그럼 자연스레 넌 아니게 되는거고. 저 조그만 꼬마가 가위를 들고 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프네가 한 일이겠지.


레아는 고개를 돌렸다. 가슴아픈 듯 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어깨에 마리가 손을 얹었다.


- 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레아. 하지만, 너도 나를 이해해줬으면 해. 여태 같이 사선을 넘던 동료가 셋이나 죽었다. 나는...


- 다프네는... 방 안에 없어요.


마리의 말을 끊고 레아가 방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 어제 나가선 뒤로 안돌아왔어요.


마리는 그런가... 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야심한 밤에 마리는 술을 마셨다. 그녀가 전시에 술을 입에 대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편한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매일 읽던 전술교본마저도 오늘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


그녀의 방에 작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왔나 다프네?


또각 또각. 작게 구두소리가 들린다.


- 딱히 함정은 없으니 안심해도 돼. 뭐, 나나 칸도 메이도 레오나도 곱게 죽을 생각은 한적 없으니까말이야.


다프네는 커다란 가위를 들어올렸다.


- 한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왜 너는 우리를 죽이려고까지 한거지?


그녀는 대답치 않았다. 마리도 사유를 들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그저 받아들이고 눈을 감는다.

그녀는 잠시 숨을 참았고, 극렬한 고통을 견뎌낸 후에 이윽고 편안해졌다.





다프네. 주인님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그래서 그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언니, 지금 날 놀리는거야?


  아냐. 후후. 하지만 만약에라도 그런거라면 난 사령관과 아이를 가지지 않을거야.


만약 그렇다면 다프네, 네가 대신 주인님의 아이를 낳아줘.


그게 무슨소리야 언니?


다른 그 누구한테도 주인님은 양보할 수 없어. 하지만, 너라면. 그래, 너니까 맡기는거야. 주인님과 동침할 때, 그때 잠시만 나인 척을 해줘.


그래도 괜찮겠어?


언니는 다프네 너도 주인님 다음으로 사랑하니까.







다프네는 가위를 버렸다. 구석구석 피 튄 옷을 벗어던지고 그녀는 복도를 따라 쭉 걸었다.


- 엄마...?


다프네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사령관이 있었다. 그는 다프네에게 안겼다.


- 오늘도 놀아주러 온거야?


다프네는 살짝 웃어보이며 그를 꼭 안았다.



이렇게 만들때까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미안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