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눈을 뜬 마츠시타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천장을 보았다. 이 천장을 보게 된 것이 얼마만이란 말인가. 거의 잊어버린 천장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침대도, 그녀의 책상도 없는 방이었지만 오래전 마츠시타가 쓰던 방이었다.

 일어난 마츠시타는 자신의 옆에서 여전히 토모가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운지 이불을 내팽겨친 그녀는 배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토모의 옷을 당겨 배를 가리게 해주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잊어버릴 정도로 오래된 기억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원래라면 책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장롱이 들어서 있었고 그녀의 옷장이었던 곳에는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모를 박스가 쌓여있었다.

 이 집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해지고 있었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집이었던 곳의 방문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곳을 자신의 집이라 부르는 것이 점점 어색해져가고 이윽고 그곳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고민하는 시점에 도착하게 된다.

 “하아...”

 생각이 많아진 마츠시타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의미없는 생각이었다.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츠시타는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탓일까. 아니면 꿈에 덜 빠져든 것인가.

 꿈과 생시를 구별하기 위해선 자신의 뺨을 때리곤 한다. 그렇게 현실 감각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의 마츠시타는 그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다리가 조금씩 가려워졌던 것이었다. 다리만이 아니었다. 허리, 팔까지 점점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마츠시타는 손톱을 세워 가려운 곳을 긁기 시작했다. 전날 밤, 밖에 나가서 분위기를 탄 것은 좋았지만 정말로 좋았던 것은 한없이 사람을 물 기회를 얻는 모기들이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온 마츠시타는 한참을 몸을 긁어야 했다.

 어째서 바이오로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모기로 인해 가려운 것을 없애는 약은 나오지 못한 것일까. 여름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어버린 마츠시타는 뒤늦게 한여름밤에 밖으로 나선 것을 후회했고 토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으... 간지러워...”

 토모는 반쯤 잠꼬대를 하며 자신의 배를 긁었고 기껏 마츠시타가 가린 배를 활짝 보이게 되었다. 그것을 본 마츠시타는 손으로 토모를 툭툭 쳤다.

 “어이, 토모. 일어나. 낮이야.”

 그렇게 말한 마츠시타는 시계를 확인했다. 낮은 아니었다. 아마 낮까지 방에서 자고 있었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와서 그녀와 토모를 깨웠겠지.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아침이었다. 하지만 뱃사람의 아침은 언제나 빠른 법이었고 거실이 있는 아래층에서는 TV의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낮이면 이미 늦었으니까 더 잘 거야.”

 토모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다시 잠에 청하려는 듯, 마츠시타에게서 몸을 돌렸다. 마츠시타는 토모를 다시 깨울 생각을 하지 않고 방을 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다녀오면 일어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쥰쨩, 일찍 일어났네? 맨날 늦잠만 자더니.”

 가볍게 씻고 거실로 내려온 마츠시타를 본 키코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식탁에 이런저런 반찬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토모쨩은?”

 “자고 있어.”

 키코가 토모를 바로 찾는 것을 보니 어제 어지간히도 토모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손자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마츠시타는 자신을 깨우느라 수고한 그녀의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일어났어! 안자고 있어!”

 라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토모의 말이 들려왔다. 자던 옷 그대로 입고 머리는 헝클어진 그대로인 토모는 계단을 내려와 식탁 앞에 앉았다.

 “어머나. 토모쨩은 그런 모습인데도 누구와는 다르게 귀엽네.”

 “네. 어머니를 닯아서 그렇습니다. 단정한 모습으로 와도 토모보단 안귀엽죠.”

 “쥰쨩은 안귀엽다라는 말도 안어울릴 정도로 귀여움과는 거리가 있어. 다들 귀여울 어릴 때도 안귀여웠는 걸.”

 “그럼 마츠시타는 어릴 때 어땠어?”

 “여기.”

 키코는 대답 대신 토모에게 휴대전화로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 속도. 분명 토모의 질문을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와! 어린 마츠시타, 지금의 마츠시타와 똑같아! 전혀 안귀여워!”

 “그래, 칭찬 고맙다.”

 “이 마츠시타도 그렇게 말했을 거 같아!”

 “정말로 그랬단다. 그래서 다들 귀엽다고 안하고 착하게 생겼네. 예의바르네. 이런 식으로 말했었어.”

 “아아, 다들 그만해. 엄마는 왜 자꾸 토모에게 그런걸 보여주는 건데. 나도 조용히 넘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고.”

 “그리고 그 과거는 우리나이 되면 언제나 들추고 싶어지는 거란다. 너도 나이 먹으면 알 거야.”

 “알고 싶지 않아.”

 마츠시타는 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미소시루를 저으며 말했다. 투명한 빛이었던 국은 섞이기 시작하면 뿌옇게 변했다.

 “뭐야, 다들 벌써 밥 먹을 준비 끝낸 거야? 쥰, 이제 안깨워도 일어나는 거야?”

 “애가 아니라니까요. 아빠도 나이 들면 잠 줄어든다며.”

 “어머, 애아빠는 너 없으면 맨날 낮까지 자서 나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야.”

 “키코.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왁자지껄한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토모는 세사람의 식사를 보며 무엇이 즐거운지 그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토모가 이렇게 웃음을 보이는 건 얼마만이란 말인가.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마츠시타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될 일들.

 복잡한 생각은 식탁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그만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밥을 절반 정도 먹었을까, 마츠시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벌써 다 먹은 거야?”

 “창고 가보려고. 아침이잖아. 불을 안켜도 밝겠지.”

 “마츠시타, 밥을 먹어야 가슴이 커지지, 키는 안 커져도 가슴은 커질 수 있어.”

 “최소한 너보단 키가 크니까 걱정은 마.”

 토모의 머리에 꿀밤을 먹은 마츠시타는 문을 열고 나섰다. 토모는 순식간에 남은 밥을 다 먹은 뒤, 마츠시타는 따랐다.

 “급하게 따라올 필욘 없었는데.”

 창고의 앞에 선 마츠시타는 열쇠로 문에 걸린 자물쇠를 풀며 말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리고 문이 열렸다. 오랜 세월 문을 열지 않았는지, 문에서는 녹이 슨 듯,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여기가... 케헥, 케헥!”

 창고안의 공기에는 먼지가 많았던 것일까, 토모는 말을 하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반면 마츠시타는 추억에 가득찬 눈빛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 여기에 있었네.”

 창고에 들어간 마츠시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창고에는 수많은 골판지 박스가 쌓여있었다. 박스의 겉에는 이런저런 글씨들이 쓰여 있었지만 몇몇 글씨들은 펜으로 그어져 있기도 했고 어느 글자는 알아볼 수 없는 모양으로 쓰여도 있었다.

 “이게 다 뭐야?”

 “할아버지의 유품. 전부 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야. 할아버지는 이런 걸 좋아하셨어. 남들은 잡동사니라고 불렀겠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이게 다 보물이었어.”

 마츠시타는 아무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적당히 큰 골판지 박스 안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정육면체 모양의 투명한 상자가 들어있었다.

 “마츠시타, 그게 뭐야? 수정구야?”

 “설마. 그냥 무드등이야. 할아버지 방에 있던 거야. 이걸 전원에 연결하면 불이 들어와.”

 “그리고?”

 “그게 끝이야.”

 시시했다.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무드등에 그 이상의 기능이 필요한가? 디자인이 이쁘고 불만 잘 들어오면 충분한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미소를 지으며 무드등을 다시 상자에 넣고 상자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재미없어.”

 “할아버지는 이런 걸 좋아했어. 오래된 것. 그리고 토모는 재미없다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재밌는 거라고 말하는 것들. 아, 이것도 있네. 토모, 이건 어때?”

 마츠시타는 상자에서 모자를 하나 꺼냈다. 고양이귀가 달린 모자였다. 마츠시타는 그 모자를 토모의 머리에 씌웠다.

 “아, 먼지!”

 토모의 말대로 당연하게도 먼지가 날렸다. 얼마나 오래 이 자리에 있었을까. 하지만 고양이귀가 달린 모자를 쓴 토모는 귀엽게 보였다. 마츠시타와는 달리. 그녀의 할아버지는 마츠시타에게 씌워주려 했지만 마츠시타는 그 때마다 극구 반대하며 도망치곤 했다. 지친 그는 자신이 직접 썼고 매번 마츠시타는 징그럽다고 모자를 벗기곤 했다.

 전부 추억이었고 과거의 일이었다.

 “토모쨩, 귀엽네. 아버지 모자를 쓴 거냐.”

 전등을 손에 든 요시토는 토모를 보며 웃었다.

 “그래서 쥰. 찾는게 뭔데?”

 “할아버지가 쓰던 컴퓨터. 어디있는지 알아?”

 “정리를 한 건 나와 네 엄마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나도 네 엄마도 위치를 아는 건 자기 물건 뿐일 거야. 내 낚시대는 문 옆에 있고 그게 다지만.”

 요시토는 그렇게 말하며 마침 선반에 기대져 있던 사다리를 가져와 창고 가운데 세웠다.

 “마츠시타, 컴퓨터 찾는 거야? 이런 거?”

 토모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그것을 본 마츠시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휴대전화잖아. 컴퓨터는 바닥에 두고 쓰는 거 말하는 거야. 키보드랑 마우스 달린 거. 할아버지는 그걸 컴퓨터라 부르는 걸 싫어했지만.”

 “그 컴퓨터? 이제와서 쓰기에는 너무 오래된 컴퓨터 아냐? 작동이나 될지 의문인데. 대체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그 컴퓨터를 팔지도 않고 돌아가실 때까지 가지고 계셨던 건지. 더 좋은 컴퓨터도 많으면서 왜 그 컴퓨터에 집착하셨는지 모르겠다니까.”

 요시토가 그렇게 말하며 전구를 바꾸고는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스위치를 올리자 전구는 밝게 빛나며 창고 안에 얼마나 많은 먼지가 있는지 한눈에 보여주었다.

 “그럼 쥰, 수고해. 아빠는 여기 오래 있다가는 폐암 걸릴 거 같으니 일찍 나갈게. 담배 피는 너는 괜찮겠지?”

 “아빠!”

 쥰의 외침을 들은 요시토는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손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건 그렇고 진짜로 짐 엄청 많네. 이걸 언제 다 찾는담.”

 마츠시타는 창고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품하면 보통 박스 하나에 담긴 무언가를 떠오르지만 마츠시타의 할아버지는 그런 박스로 창고를 가득 채울 만큼의 유품을 남겼다. 그녀의 부모님이 처리를 곤란해할 정도의 양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물이라 불렀으니 이곳을 보물창고라 불러야겠지만 마츠시타가 원하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마츠시타! 이거 맞지!”

 한참을 상자를 뒤지던 토모가 무언가를 들며 외쳤다. 책 크기의 얇은 검은색 판이었다. 토모는 양면을 보여준다는 듯, 판을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건 아이패드야. 컴퓨터가 아니라고. 아마 그거 여러개 나올 거야. 할아버지 그거 엄청 모았었거든.”

 컴퓨터라 볼 수는 있지만 마츠시타가 찾는 것이 아니었다. 마츠시타가 찾는 그것은 좀 더 고전적인 컴퓨터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거는?”

 조금 뒤 토모는 무언가를 보여주며 다시 외쳤다. 검은 화면외에는 전부 민트색인 오래된 스마트폰이었다.

 “그건 엑스페리아. 스마트폰이라 불렀던 거야.”

 토모의 2연속 헛발질에 마츠시타는 한숨을 쉬며 토모의 발치를 보았다. 토모가 엑스페리아를 꺼냈던 상자에 언뜻 청록색의 투명한 플라스틱이 보였던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바로 달려가 상자를 열었다.

 “그래, 이거야! 아이맥 G3!”

 그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독특한 모습이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낯설고 신기한 모습이었다. 어느 시대나 처음 본 사람은 이것이 컴퓨터가 맞냐고 반문할 애플사에 길이 남을 디자인이었다. 일반적인 컴퓨터와 달리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찾을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누가 속이 전부 보이는 컴퓨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흰색과 청록색의 두 색으로 나뉘어진 컴퓨터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건 PC가 아니잖아.”

 “그래, PC가 아니라 아이맥. 맥킨토시라고. 이걸 다실 볼 줄은 진짜로 몰랐어...”

 마츠시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낑낑거리며 아이맥을 상자에서 꺼냈다. 두꺼운 브라운관으로 만들어진 아이맥은 그것으로 컴퓨터 본체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어떻게든 이뤄내려 노력한 개발진의 피와 땀이 담긴 컴퓨터를 마츠시타는 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정도로 크면 슈퍼맨 컴퓨터겠네.”

 토모는 마츠시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설마. 네가 든 휴대전화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성능이야. 무려 60년전 컴퓨터라고. 가동이 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지.”

 상자에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함께 들어있었다. 그 두개를 집어든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건네주고 자신이 무거운 아이맥을 집어들었다.

 “마츠시타, 무거우면 내가 들게.”

 꽤나 끌리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건 떨어트리면 큰일 나는 거야. 문제 생기는 거면 내가 만드는게 낫지.”

 라며 마츠시타는 앞장서서 창고를 나섰다.



 “이 컴퓨터의 실행법은 간단해. 첫번째는 전원을 연결하는 거야.”

 마츠시타는 자신의 방이었던 방으로 돌아가 벽의 콘센트에 아이맥의 전원을 연결하며 말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인터넷 연결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필요없는 것이겠네. 하하하.”

 마츠시타는 아이맥 G3의 광고를 패러디하며 말했지만 토모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유머였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살아서 이 자리에 있었다면 자지러졌겠지만.

 “그래서 마츠시타. 이 컴퓨터가 왜 필요했던 거야?”

 토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굳이 마츠시타의 고향까지 고생해서 와 60년이 넘은 컴퓨터를 찾을 이유는 없어보였다.

 “이거 때문이지.”

 마츠시타는 품에서 작은 USB 드라이브를 꺼냈다. 타누키사키 요시히로가 죽기전에 마츠시타에게 건네준 물건이었다.

 “타누키사키가 말했잖아. 이 안에 들어있는 정보는 컴퓨터에 접속하는 즉시 덴세츠 사이언스에 신호를 보낸다고. 심지어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도라고. 그러면 반대로 생각하자고. 그런 기술이 언제 만들어졌겠어. 최소한 이전 세기에 만들어진, 1990년대 만들어진 컴퓨터라면 그런 기능따윈 없을 거 아냐. 이 맥킨토시에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으면 이 안에 들어있는 파일을 아무리 읽어도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을 거야. 이 컴퓨터는 덴세츠 사이언스가 존재하기 전에나 쓰던 물건이야. 아무리 덴세츠 사이언스가 컴퓨터에 몰래 칩을 심어두었다 해도 이 컴퓨터에도 심었을 리가 없지.”

 마츠시타는 기대에 가득찬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전원 버튼에 가져갔다.

 “할아버지, 부탁할게요. 제발 작동하게 해주세요.”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가벼운 부팅음이 들렸다.

 “작동 안되는데?”

 검은색 화면이 이어지자 토모가 말했다. 말이 씨라도 된다는 듯, 토모가 말하자마자 화면이 흰색으로 전환되며 회색의 사과로고가 떠올랐다.

 “된다!”

 마츠시타는 신나하는 얼굴을 했지만 그 화면은 여전히 쭈욱 이어졌다. 마츠시타와 토모의 침묵이 이어졌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마츠시타가 설마 고장난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할 때 즈음, 화면이 전환되었다.

 Mac OS X. 그 화면이 나오고 로딩 바가 등장하고 나서야 마츠시타는 안심할 수 있었다. 토모는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질 구려. 픽업이 다 보이잖아.”

 “옛날 컴퓨터니까. 게다가 브라운관이야. 요즘 디스플레이와는 비교할 게 못되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컴퓨터에는 옛날 USB A단자가 존재한다는 거야.”

 이제는 쓰지 않는 단자가 달려있는 컴퓨터에 마츠시타는 메모리 드라이브를 연결했다. 그사이 부팅이 완전히 끝나고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이제는 이미 시대에 뒤쳐진 메인 화면이 표시되었다.

 “어디보자. 이렇게 열면 되는 거겠지?”

 마츠시타는 조금 헤메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능숙하게 파일을 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호환되지 않는 파일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단순한 JPG 확장자인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파일을 열자 둘은 작은 화면에 머리를 가져다대었다. 낮은 화질의 모니터와 작은 크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봐야 했다.

 “어디보자. 이건 덴세츠 사이언스가 타누키사키 치아키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서야. 아니, 실행 뒤에 정리한 건가. 실행자들에게 사망이라는 태그와 체포됨이라는 태그가 붙어있어.”

 “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치아키는...”

 토모가 이를 악물며 말하자 마츠시타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렇게 둘은 드라이브에 담긴 여러 문서를 보았다. 전부가 그림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다. 보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마츠시타의 속에서는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어째서 전부 그림파일인 것인가. 원문은 분명 다를 것이었다. 이건 재가공된 데이터였다. 내용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원본 파일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리고 이 양, 전체 내용의 일부에 불과했다. 어딘가 원본 파일이 존재할 것이었다. 이 파일을 얻은 탐정만이 알만한 곳.

 “마츠시타. 코카사하라가 어디야?”

 “그건 갑자기 왜?”

 “여기 이거 봐. 코카사하라 연구소.”

 “이건 오가사와라 라고 읽는 거야.”

 문서의 매 페이지의 아래, 페이지가 매겨진 부분 바로 옆, 문서를 작성한 곳이 어디인가 적힌 란이 있었다. 오가사와라 연구소.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마츠시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츠시타, 이제 오가사와라 연구소로 가면 되는 거지? 그게 어디에 있는데?”

 “도쿄도야. 일단은.”

 “뭐야. 그러면 근처네. 얼른 가자고.”

 토모는 마츠시타의 마음을 몰라준 모양이었다. 도쿄도 오가사와라무라. 도쿄도는 맞았다. 행정구역상은. 그곳이 마츠시타와 토모의 다음 목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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