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말 없이 한 건물 앞에 서있다.


여인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금속제 슬라이딩 게이트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는듯, 그것을 쥐고 하염없이 흔들었다.


철컹, 철컹.


그런 그녀가 잡고 흔드는 슬라이딩게이트, 그것도 단순 판형이 아닌 자바라형인 게이트는 입체적이었기에 그녀가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벽과도 같이 느껴졌다.


마치 여인과 눈앞의 공간이 따로 격리된 공간이라는것처럼, 그녀가 손을 뻗어도 게이트의 안쪽 공간에는 손의 끝부분만이 겨우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에 가려진 슬라이딩 게이트에는 이런 글이 적힌 팻말이 설치되어있었다.


[폐쇄 안내]


철컹, 철컹.


여인이 계속하여 게이트를 잡고 흔들 때, 어두운 주변을 밝히는 빛이 나타나 그녀와 게이트를 비추었다.


빵, 빵-!


자동차 경적소리와 함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자동차에 탄 한 남자가 창문을 열고 자신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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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아침을 알리는 소리에, 홍연은 눈을 떴다.


"으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바로 옆에서 함께 있어야 할 누군가를 더듬어 찾았지만, 그녀의 옆에 있어야할 그녀의 남편은 없었다.


'...먼저 간건가?'


약간의 실망과 약간의 미안함, 그리고 그것들보다 조금 더 많은 아쉬움과 함께 홍연은 곧바로 바깥으로 나와 식사를 준비하려 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는지 잘때 입는 파자마 위에 간단한 가디건을 걸치고 나오며 아침식사와 오늘 아이들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용이는 오늘 연습 없댔으니까 프로틴은 없어도 될거고, 미호랑 도빈이는...어머."


홍연이 침실 밖으로 나와 부엌으로 향했을 때, 그녀는 상당히 놀라운 광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일어났을때 자리에 없던 그녀의 남편, 사영이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네요? 조금 더 잤어도 됐는데."


그는 고개를 돌려 홍연을 바라보면서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계란말이를 완벽하게 뒤집었다.


그 이외에도 식탁에 올려진 된장찌개와 각종 요리들이 눈에 들어오자, 홍연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그만 아무 말이나 내뱉어버렸다.


"아니, 그게...알람이 있으니까요."


그런 그녀의 대답에도, 사영은 웃어주었다.


"하긴, 깰수밖에 없긴 하네요. 저도 눈이 일찍 떠져서."


"그보다, 제가 하면 되는데 어째서...?"


"아뇨, 일찍 눈 뜬 김에 뭐라도 하려고요. 그리고...이런거라도 해주면, 애들이 절 조금이라도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 해서."


사영은 어느새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한 계란말이를 접시위에 놓고 썰었고, 완벽하게 각이 잡히고 먹음직스러운 계란말이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저는 출근준비를 해야해서 이만 먼저 실례할게요. 식사 맛있게 해요."


사영은 앞치마를 벗고 곧바로 다시 침실로 들어가러 했지만, 홍연이 그의 파자마 자락을 붙잡았다.


둘 모두 똑같이, 홍연의 머리색인 붉은색으로 통일한 파자마였다.


"앗, 저기 잠깐..."


홍연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눈을 피하며 잠시 망설였다.


"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사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아주 살짝 입을 맞춘 뒤,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고마, 워요...여보."


"고맙긴요."


사영은 그녀의 감사인사에 웃어주며 침실로 돌아갔고, 홍연은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딸들을 깨우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얘들아, 일어나야지."


장녀 선용과 3녀 별의 방.


"우웅...엄마, 5분만 로스타임...아니 5시간만..."


학교나 친구들에게 철용이라 불리는 선용은 더 자고싶은듯 몸을 비틀며 추가시간을 요청했다.


하지만 홍연은 단호했고, 이내 그녀의 이불을 벗기기까지 했다.


펄럭.


"안돼, 용아. 너 오늘 연습 없다며. 이럴때만큼은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들어야지."


"히잉.."


용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을 때, 그 옆에서 함께자던 별은 이미 일어나서 이불까지 전부 정리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자매들에게 뚱이라고 불리지만 싫다고 말한적이 한번도 없는 삼녀 최별.


별은 제때에 일어났음에도 옆에 있는 철용을 깨우지 못한게 잘못이라도 되는듯 사과해왔다.


"엄마, 미안해요. 저도 늦게 일어나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깨워보려고는 했는데 언니가..."


밖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지 20분째.


평소라면 7시에 식사를 준비했기때문에 별은 지금 언니인 선용이 늦잠을 잤다고 여기고 있었다.


별의 사과에, 홍연은 웃으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안늦었어."


"네...?"


"아직 7시도 안됐어. 그냥 밥 따뜻할때 먹으라고 깨운거야."


홍연의 말에 별은 방안에 있는 작은 탁상시계를 쳐다보았고, 지금 시계가 7시를 향해가고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네...6시 57분이야..."


"어? 그럼 나 3분만 더 자야지!"


선용은 별의 말에 곧바로 다시 침대에 누웠고, 별은 그런 자신의 언니를 다시 깨우기 위해 달려들었다.


"자, 자지마!"


별은 또다시 잠들려하는 선용을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홍연은 그런 번거로운 방법 없이도 그녀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을...정확히는 그 소재를 알고 있었다.


"흐음, 오늘 아침은 계란말이인데. 여기서 또 자면 우리 용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미호랑 도빈이가 다 먹어버릴걸?"


아까 만들어진 계란말이를 언급하자, 침대에 드러누웠던 선용이 용수철처럼 몸을 튕기며 일어난 뒤 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 계란말이? 그러고보니, 계란말이 냄새야!"


우당탕탕탕.


"......내가 흔들땐 죽어도 안 일어나더니."


"용이는 몸 쓰는게 특기잖니. 말로 하는게 더 잘 먹혀."


"일어나라고 말한건 흔든거의 두배는 된다고요..."


첫째와 셋째를 깨웠으니, 홍연은 둘째와 넷째를 깨우기 위해 방을 나섰다.


"아-침, 아-침, 계란말이!"


바깥에서는 이미 선용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자매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녀가 얼마나 신이났고 기대하고 있는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후후."


홍연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지은 뒤, 옆에 있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아침 먹어~"


둘째와 막내, 미호와 도빈이 지내는 방이었다.


"네, 네. 이미 깼어요."


"이미 철용언니가 난리치고 있어서 진작에 깼어요..."


둘은 선용이 방 밖으로 나가며 일으킨 소음과 진동탓에 진작에 깨어난 상태였지만, 그래도 피곤함을 감출수는 없는지 느릿느릿하게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식탁 앞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식탁에 차려진 아침을 보고 감탄했다.


"와, 오늘 밥 되게 맛있겠다!"


"오늘은 기합이 팍 들어갔네...맛있겠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애들 생일은 아닐텐데. 뭐 좋은 일 있어? 승진? 아니면 보너스?"


모두가 화려한 아침메뉴에 감탄하고 있을 때, 혼자 먼저 식탁에 앉아있던 선용이 모두를 재촉했다.


"빨리 와서 앉아, 이 맛있는 밥이랑 계란말이가 다 식잖아!"


"알았어, 알았어."


"평소에는 남들 뭐 기다리느니 혼자 먼저 다 하면서 이럴때는 되게 잘 기다리더라."


"머리는 몸에 비해 조금 모자라도, 가족에 대한 마음은 넘치잖아. 솔직히, 언니 몸을 따라갈 머리가 있기나 할까?"


선용을 놀리는듯한 미호의 말에, 홍연이 놀라 그녀에게 야단치듯 소리쳤다.


"미호! 언니한테 그게 무슨...!"


그러나 그런 그녀의 말이 전부 끝나기도 전에, 당사자인 선용이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좀 육체 천재님이시긴 하지! 선생님도 내 몸을 따라올 머리는 없댔어!"


"좀 너무 천재라서 문제일 뿐이지..."


"힛, 저 몸이랑 걸맞는 뇌를 구하려면 아인슈타인 머리라도 떼와야할텐데."


미호의 말이 농담으로 넘어갈것 같은데다 당사자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에, 홍연은 이것을 혼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아무리 네 소녀들을 딸처럼 보살피고 아껴온 그녀였지만, 정말로 그녀들을 아기때부터 하나하나 챙겨가며 키워온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네 소녀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 식사를 시작하려 했다.


"아무튼, 잘먹겠습니다!"


식사를 시작하자, 소녀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맛있어!"


"언니야 뭐 늘 맛있다고...와, 되게 잘됐네."


"엄마, 신경 엄청썼나보다."


"엄마, 이거 엄마가 한거야? 예전보다 훨씬 맛있는데? 재료 바꿨어? 아니면 요리 영상이라도 본거야?"


네 딸들이 일사불란하게 손을 움직여 열심히 아침을 먹는것을 본 홍연은 반응이 좋자 사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아침을 차린건 내가 아니라..."


"어, 사온거야? 어쩐지 평소랑 간이 좀 다르더라. 그래도 맛있는데?"


미호는 홍연이 만든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자, 반찬가게 같은곳에서 사온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일이 바쁘던 시기에는, 홍연이 반찬을 전부 차려줄 수 없어 그렇게 식사를 해결했던적이 있었으니까.


그 말에 다른 딸들도 엄마가 만든게 아니라며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 되게 맛있긴 하다. 우리 매일 여기서 사먹자!"


"철용언니, 그건 조금 낭비야...하루 한개면 모를까."


"앗, 방금 그거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헹, 내가 더 빨랐지~"


네 딸들이 모두 개의치 않는 모습에, 홍연은 용기를 얻어 곧바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오늘 아침은 너희 아빠...가 만든거야."


홍연의 말에, 식사를 하던 넷이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


그리고 네 딸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건 미호였다.


"맛없어. 나 아침 안먹을래."


"미, 미호야?"


"나, 나는...어어...나도 안먹을래."


미호와 그녀를 가장 잘 따르는 도빈이 방으로 들어갔고, 홍연은 그녀들의 방 문을 쳐다보는것밖에 할 수 없었다.


"도빈아..."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에서, 묵묵히 식사를 이어가는 둘.


"......"


"와, 맛있다."


천진난만한 첫째와 소심한 셋째는 새로운 아빠...즉 홍연의 결혼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얘들이...아직도..."


하지만 방금 자리에서 일어난 둘.


식사를 도중에 멈추고 방으로 들어간 둘은 결혼에 극성으로 반대했고, 그것을 홍연이 강경하게 밀어붙어 결혼한것에 가까웠으니 그녀들을 나무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때, 방에서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한 사영이 걸어나왔다.


"하아, 어제랑 같네. 그냥 나랑 관련된 모든게 싫은건가...?"


"아무래도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지는 일주일 밖에 안됐으니, 애들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실제로 홍연과 사영의 결혼은 1개월째지만, 둘은 이런저런일로 바빴던데다 이사의 문제가 있어 네 딸들과 함께 살게된지는 1주일밖에 안됐다.


거꾸로 말하면 7일째 저 모습을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영은 한숨을 쉬며 밥을 남기고 뛰쳐나간 미호와 도빈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맛있게 먹던 도중이었던걸까, 각자의 밥그릇에 빼앗길 수 없다는듯이 보존된 반찬들이 놓여있었다.


사영은 그런 두 밥그릇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슬프지만은 않았다.


"...맛있었어요."


"와, 맛있었어! 아저씨, 요리 엄청 잘하는구나!"


첫째와 셋째만큼은, 그가 만든 식사를 잘 먹어주었으니까.


사영은 식사를 마친 둘이 밥그릇을 정리하고...다시 착석하는 모습을 보았다.


"....?"


"미호가 안먹으니까 이 밥은 내거!"


선용...철용이의 행동은 대충 예상범주 내였다.


늘 배고프단 말을 입에 달고사는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별이는 깨끗이 비운 자신의 자리에 다시 착석했고, 가영과 홍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밥은, 같이 먹는거라고 배워서."


"어머, 별아..."


홍연은 자신의 셋째 땰이 자랑스러운지 그녀를 기특하게 바라보았고, 이내 사영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도중, 사영은 뭔가 떠올랐다는듯 말을 꺼냈다.


"반찬가게라...처음 만났던 장소도 거기 아닌가요?"


"네?"


"...어머, 그러고보니. 그랬네요."


"어? 엄마, 아저씨 반찬가게에서 만났었어? 직장에서 만난거 아니야?"


"사실...처음에는 반찬가게에서 우연히 봤었어."


홍연의 대답에, 선용은 관심이 가는듯 식탁 위로 몸을 기울였다



"우와, 그 얘기 좀 해줘!"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고, 건너편의 별이도 말은 없지만 흥미가 있는지 힐끗힐끗 홍연을 쳐다보았다.


"......."


그리고 그 상황에, 홍연은 둘을 다급히 학교로 보내려 했다.


"느, 늦지 않았니? 학교 가야지?"


아무리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저런 일을 다 겪은 홍연이라도, 연애 초기의 일을 얘기해주기에는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숙한 엄마였지만, 아직 초보 신부였다.


"뭐 어때요? 잠깐 얘기해주는건데. 자, 잘 들어. 우리 둘이 어떻게 만났냐면은..."


사영은 홍연과의 첫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고, 홍연의 딸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재밌겠다, 엄마의 사랑이야기...'


'엄마랑 아저씨...새 아빠가 만난 이야기...대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연애한걸까?'


식탁에서 이야기를 듣는 둘과 달리, 방에서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있었다.


'저 남자가 엄마를 빼앗아간 이야기...엄마는, 안뺏겨...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엄마를 빼앗아간 남자니까 뭔가 이상한 술수를 썼을거야...믿을건, 우리 몽구스 고아원의 가족들과 엄마뿐이야...'


연애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에 뭔가 약점이 될게 없을까 싶어 엿듣는 미호.


'저 아저씨가 정말 미호언니 말 만큼 나쁜 사람일까...? 아냐, 미호언니가 맞겠지. 엄마는 바쁜데다 우리를 보살펴야해서 곤란한게 많다고 했어.'


그리고 미호가 하는 행동을 곧바로 따라하고 있지만, 자신의 행동에 약간 의심을 하기 시작한 도빈.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네 딸들이 듣는 와중에, 사영은 자신과 홍연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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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오늘 하루에 몇개를 쓰는거지 대체...)


(분량을 줄이고 공급 시리즈를 늘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