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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신승리와 그냥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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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 밖에서 복도를 지나자 눈물이 그치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서투르고 무드도 없는 고백이었던 것 같았다.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 얼굴과 다른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백을 했을 때 수줍게 그를 바라보던 내 얼굴과 달리

나를 보지 않고 마치 그 너머를 보는 듯한눈을 하던 그는 그냥 바이오 로이드를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적인 욕구도 느끼고 자제심도 가지지만 근본적으로 자신과는 다르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말할 수는 있더라도 사랑받을 수는 없는 이상적인 주인과 도구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쟁이..."

그의 방에 들어서기 전까지 꽉 차 있던 머리가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비어지는 것을 느끼며 이성적인 생각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가 내게 친구라고 한 말도 거짓말일 것이다. 친구에게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으니까....

그 생각이 들자 목이 막히면서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넌... 슬퍼하기는 할까...?"

분명 슬퍼하기는 할 거다 그는 우리를 소중히 한다고 했으니까..  자기를 덮치려 해도, 죽을 뻔하게 하고

트라우마를 안겨 주어도 그는 대화를 먼저 청했다. 위해를 가하거나 고통을 주지 않고 자신과 상관이 없어도

자기 아픔을 드러내면서 까지 일단 상황을 중재하려고 노력 했다.

"이러면... 미워할 수도 없잖아..."

그는 분명 훌륭한 사령관의 자질이 있다 그 두려움이 바이오 로이드를 잃을 까 봐 에서인지, 혹은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바이오 로이드를 도구로 보기에 잃어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사명을 다 할 것이다.

자신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최선을 다하며 소중히 여기기에 계속 슬퍼하겠지만 그래야 결코 사령관으로써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어른이네..."

세상을 바꿀 순 없기에 아픔을 나누기보다는 자신을 망각하고 세상의 자신을 맞추려 하는 외롭고 슬픈 어른

하지만 아프다는 자신을 바꿀 순  없다.

그는 분명 계속 아파할 거다 이런 일로 저런 일로 변명하지만 사실은 속인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니까.....

다정한 사람이니까...어쩌면 어두워 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보다 우수하고 정보가 많은 내가 보아도

사실 내가 그에게 고백하는 판단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었으니까 누가 언제 죽을지 몰랐으니까...  
만약 전투에 나가게 되었을 때, 내가 사망한다면
그때 만약 그가 나와 연인이었고,
나의 시체를 거두고 화장까지 치르며 울면서  슬퍼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멸망의 메이가 그 앞에 서 있게 된다면 다른 바이오 로이드는 몰라도
그는 버틸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전시에 필요로 한 것이었어도
인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나도 사실 그걸 받아들이고 싶진 않았다.

상상하기도 싫은데 그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쩌면 그가 광기의 휩싸일 지도 모른다

내 사랑이 다른 바이오 로이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다분했다 그래서 거절 당하는 게 맞았다...

감성적 우선 판단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아도 모두와 거리를 벌리고

내 고백을 거절한 다정한 사령관이 나와 연인이 되어서

내가 우연히 죽자 화장터에서 또 다른 나의 손을 잡고 지켜보는 사령관의 모습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바이오 로이드도 받아들이기 힘든 걸 인간이 어떻게..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숨을 내쉬곤 나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이트 앤젤에게 연락을 걸었다.

"대장 복귀가 늦으시는군요. 식사는 드셨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날 걱정해 주는 부관에게 말했다.

"B-11 나이트 앤젤 현재 탐색중인 교전지 상황은 어떻지?"

진지한 상황에서만 부르는 그녀의 이름을 말하며 상황을 물어본다 아무리 이게 최선이라 지만 슬픈 것까지는 바꿀 수 없었기에

"모든 적을 탐색했고, 현재 변수계산 중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둠브링어 지휘관으로써의 책임을 다해야 했기에 자신 만만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가 해결한다.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강하게 나서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다시 내 역할을 맡아 수행하기 위해 둠브링어의 기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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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찾아왔다.... 내리쬐는 햇빛은 회색빛 사령관 실을 비추고 난 주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아.... 식당에 가면 메이랑 만나려나...."

사실 어제 한 끼도 안 먹어서 배고파서 깬 건 두 시간 전이었다.. 어쩌면 아파서 깬 건가....

"오늘 지휘관 회의도 있는데...."

내 몸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 제대로 걸을 수는 있으려나...."

그저 포경수술 끝난 것처럼 어기적 거리는 걸음걸이로 제대로 화징실도 못 가는 내가....

바이오 로이드 들이 지나다니는 긴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가서, 모두가 두려워하며 지켜보는 곳에서

아픈 몸으로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외롭게... 떨리는 손으로 음식을 먹을 거로 생각하니 서러워졌다.

"흑......흑흑,....."

거기서 밥 먹다가 메이의 얼굴이 보이자 밥을 먹는지 눈치를 보는지 급하게 먹다가 체하기라도 한다면

아니 다른 건 다 제외하고 어제 나한테 고백한 애한테 포경 수술한 것처럼 어기적 거리는 걸음걸이를 보여 줄 거로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진 않아도 자동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일어나자....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으니까..."

몇십 년은 늙은 듯 덜덜 떨리는 몸과 후들 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야위다 못해 살이 빠진 얼굴과 이내 포기한 죽은 눈을 한 체로 어기적 어기적 대면서 천천히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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