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찍이 떨어져 다른 대원들의 축하연을 바라보던 마키나가 내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홀로 동떨어져 다른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키나의 표정은 온화하게 웃고 있었지만, 내게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서글프게 느껴졌다.


"신비한 힘이라.. 글쎄, 난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야."


스스로를 대단하다 여기지 않는다. 그나마 특이한 점을 뽑자면 눈을 떠보니 그저 이 세상에 남겨진 마지막 인간이라는 것. 그것 말고는 그 어느 부분도 나는 특출나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기도 했고.


"후훗, 겸손하네요.. 당신이란 사람은."

"겸손이고 뭐고, 솔직한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마키나에게 슬며시 웃어 보이며 그녀의 곁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의 온화한 표정이 곁에 있는 것을 허가한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곁에 앉자, 온화한 봄의 기운이 섞인 바람이 우리들을 감싸 안았다.


"아무리 봄바람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계속 쐬면 감기 걸린다?"


얇은 정복 코트를 벗어 마키나의 어깨에 둘러주자, 그녀는 코트를 덮어주는 내 손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내 손의 온기를 느끼듯 쓰다듬으며 다시금 멀리 떨어져 파티를 즐기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따뜻하네요."

"그러게."


먼 발치에 보이는 화사하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 말일까, 아니면 아직도 붙잡고 있는 내 손의 온기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마키나는 그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전 여전히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특별한 인간 님 이구나.' 라고.."


뭐라고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것인지 마키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듯 초연한 것이었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그녀가 품고 있는 생각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당신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당신은 주변에 있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제가 과거에 했었던 그 일들도 결국 다른 아이들을 고통에서 해방하고 그저 행복하기를 바랬던 것이지만.. 전 틀렸죠."

"마키나.."

"알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제 방식은 틀린 것이라고. 아무리 도망쳐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요."


여전히 과거의 일은 마키나의 곁을 맴돌며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모든 이들을 불행으로 내몰았다는 결말은 그 정도로 잔혹하고 감당하기 힘든 진실일 것이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 뿐이었어요. 만들어진 인위적인 환상으로 모두를 구속하고, 모두를 속이면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니.. 처음부터 어긋난 일이었죠."


이미 그녀의 마음을 갉아먹는 죄책감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녀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를 불행한 악몽으로 밀어 넣은 제가, 오늘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그게 궁금했어요."

"마키나,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그것을 홀로 짊어지고 나아갈 필요는 없어."

"후훗, 아까 제가 말했죠? 당신은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고..."


내 대답에 부드럽게 웃으며 마키나가 살며시 내게 머리를 기대왔다. 웃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울고 있는 이 여자에게, 나는 무엇으로 위로를 해야 할까.


"당신의 짧은 말 몇 마디에, 전 행복해져요. 마치 구원을 받은 것 같아서... 하지만 그렇게 행복해질 때 마다, 계속해서 의문도 생긴답니다."

"의문이 생긴다고?"

"전 당신으로 인해서 구원 받았지만, 제가 파멸 시킨 그 가여운 영혼 들은 어디에서 안식을 얻어야 하는지 말이에요."


죄책감, 그리고 통렬한 자기 혐오. 그것이 마키나를 갉아먹고 있는 마음 속 암세포였다. 나는 그녀가 그 모든 것들을 홀로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 또한 미력하고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고통을 나누고 싶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너와 내가 함께 짊어지는 거야."

"네..?"

"마키나가 갖고 있는 그 슬픔들을 내가 함께 나누고 싶어. 내 신비한 힘으로 팍팍! 해결해줄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오늘 그녀에게 반지를 준 것이다.


"내가 왜 너에게 반지를 준 것 같아?"

"그건..."

"물론 널 사랑하기 때문이지만, 널 사랑하기에 네가 홀로 짊어지고 있었을 그 아픔을 내가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야."

"당신..."


마키나와 대화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그녀가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마음도 함께 웃고 있었다.


"이제야 보기 좋게 웃는구나."

"후훗, 고마워요. 언제나 당신에게 의지만 하게 되네요."


어느새 단단히 붙잡고 있는 서로의 손. 나는 이 손을 절대 놓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함께하자. 이 세상의 끝까지."

"네, 함께 하겠어요. 이 세상이 끝날 때 까지."


마키나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반짝이며 밤 하늘의 별빛을 반사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별처럼 미소 짓는 마키나의 행복을 이제부터 내가 지켜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죄책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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