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46248313




처음 그녀를 바라봤던 내게 느껴나왔던 감정은 반가움, 기쁨보다는 공포로 다가왔다. 꿈속에서 만났던 그녀는 항상 내게 감사함을 보답받길 바란다며 나를 이상한 방으로 끌고 갔고, 그곳에서 우리 둘은 몇시간 동안이나 난잡한 짓거리를 하게 되었다. 또 어느때에는 자신의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다면서 또 그 방으로 끌고가기도 하고, 어느날에는 내가 눈 앞엤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이상하고도 은침한 방으로 나를 끌고갔다. 정말 뭐 내가 보이기만 하면 날 강간할려고 마음먹었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 호텔 라운지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인간님?”


…정신차리자. 여기는 꿈속도 아니고, 저 앞에 있던 아스널 또한 내 오르카호 안에 있던 그 로열 아스널이 아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인간인데, 빌어쳐먹을 에바라는 년이 날 수십년동안 재우면서 가둬놨고, 지금은 탈출했는데 마땅히 숨을 곳이 없어 이곳에서 잠시 묵을려고 한다. 그러니 나 좀 숨겨달라.’라고 이야기하면 끝날 문제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냐, 가자고.”


나는 의도적으로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두려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으로써, 위풍당당한 태도로 그녀에게 다가가면, 그래도 그녀가 주도권은 잡지 않을 것 같아 그랬던 것 같다. 제발 꿈속에서의 그녀가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어서오세-”


아스널은 내가 평평한 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것일 보고는 내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보다 다른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오랫만입니다, 아스널 대장님.”


“...우리 통령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또 어디서 데려왔데? 참 발도 넓군. 하핫!”


역시나 아스널은 호탕한 성격인듯 하였다. 꿈에서의 바이오로이드들과 현실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성격은 다르게 설정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님을 믿고 맡길만한 곳은 이곳밖에 없는것 같아서… 잠시 부탁드리겠습니다, 값은 제대로 치뤄드릴게요…”


“값은 상관없다. 대략 며칠정도 머물 계획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지내게 되실 수도 있어요.”


“흠… 사실, 우리는 호텔을 밀고 있지는 않지. 이곳에 놀러오는 사람도, 잠시 머무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호텔 운영에서 나오는 적자를 바에서 나오는 흑자로 매꾸고 있다네. 그러니, 우리쪽 호텔에서 팔 수 있는 주류의 정도와 양을 늘려준다면, 이자를 무제한으로 여기서 머물수 있게 해주겠네.”


“...”


라비아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스널에게 손을 내밀었다. 계약이 성립된듯 하였다.


“주류에서 금지했던 50도 이상의 보드카를 허용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윗 세계의 주류를 절대 이곳으로 들여와선 안되며, 오직 바 내부, 혹은 지하공장에서 생성된 주류만을 사용해 주세요, 그리고 마약은 절대 불갑니다.”


“나도 마약은 좋아하지 않는다네. 아주 고맙군!”


아스널 또한 내역이 마음에 들었는지 라비아타의 손을 흔들어주었고, 나는 이제 아스널의 호텔에서 묵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라운지 밑에서 뭔가를 찾더니, 카드를 한장 꺼내고는 내게 건냈다.


“그대가 쓸 방이라네.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가장 좋은 방이야. 편하게 쓰고, 가끔씩은 바로 내려와서 그대 이야기도 들려줬으면 하는데… 어쨋든, 편하게 쉬도록.”


“...?”


뭔가 아스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금쯤이라면 섹드립이라도 몇번 쳤을 시긴데… 예를 들어, ‘바에서 그대의 무기를 보여다오’라든지, ‘밤에 그대의 방으로 쳐들어 가도록 하지’라던가… 아니면 그냥 거기서 ‘섹스’라고 외쳐도 어색하지 않을 그녀일텐데… 그냥 막상 아무말 없이 나를 보낸다는 것에 대해 나는 약간의 인지부조화가 와서 약간 벙쪄 있게 되었다.


“...뭔가 필요한 것이라도 있나?”


“ㅇ, 아닙니다. 그럼… 방이 어딘지…”


아스널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천천히 라운지에서 벗어나,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듯했다.


“그럼 이쪽으로, 라비아타 통령은 여기서 기다리겠는가?”


“다른 이야기할 것들도 있으니, 내려오시면 저랑 이야기좀 하시죠.”


“흠, 좋지, 금방 내려오겠네.”


그렇게 나는 단둘이서 아스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그 자그마한 방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온지는 얼마나 됬지?”


“ㄲ, 깨어난지는… 하루도 안되었고, 여기 온지도… 대략… 6, 7시간?”


“역시, 여기 온지 얼마 안됬나보군. 내가 발이 넓어서, 남성이 이곳에 오면 적어도 하루 안으로 소문을 듣거든. 처음 그대를 보고는, 고블린이겠거니 했지만, 그대 뒤에 있는 라비아타 통령과, 그대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의 뇌파가 내 생각을 바꾸게 했지.”


“고블린?”


“우락부락한 남자들 있지않나, 내가 고블린을 좀 써야할 때가 많거든.”


“...?”


“걱정 마라. 합법적인 일이고, 급여도 꼬박꼬박 주니까.”


아니 그렇게 말하면서 뭔 걱정 말라는 겁니까 미친년아…


다행히 그녀가 대화를 이어나가기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나는 작게 열린 엘리베이터 문을 미꾸라치 헤엄치듯 밖으로 빠져나오며 대화를 중단했고, 아스널 또한 밖으로 나온 순간, 우리는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호텔이 장사가 안된다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꽤나 깔끔하고, 분위기 있었다. 청소에도 신경을 쓴 듯 심플하고, 깨끗한 복도를 걷다보니, 복도 끝까지 도달했고, 그 끝에는 문으로 막혀져 있었다.


“이제 여기가 그대가 지낼 곳이다. 편히 쓰도록. 여기, 출입할 수 있는 카드다. 잘 소지하고 다녀, 비싼 거니깐 말이다.”


“ㅇ, 응… 아니, 알겠습니다.”


“내 이름은 아스널이라고 한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고, 나는 그대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서. 앞으로 차근차근 걸어가 보자고?”


‘탁!’


“히얏!”


아스널이 갑작스레 내 엉덩이를 만졌고, 나는 화들짝 놀라 아주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스널이 듣지 않길 바라며 입을 닫았고, 다행히 그녀는 듣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였다.


“내 방은 옆방이니, 필요한거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찾아 오도록.”


그렇게 아스널은 내게 경례를 하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꿈속에서 그런 사람을 많이 봤어도, 저런 사람은 매번 감당하기 힘든 존재다.


나는 도어락에 카드를 가져다 댔고, 잠금장치에서 푸른 빛이 나오면서 문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문 뒤에는 두 사람이 충분히 자고도 남는 큰 사이즈의 침대 하나, 그리고 업무를 볼 수 있는 길쭉한 탁자, 그 위에는 유선 전화기, 주전자, 커피가루와 티백이 있었으며, 벽에는 TV가 걸려져 있었다. 딱 멸망전의 평범한 호텔 수준의 방이였는데, 아스널 말대로라면 여기 호텔에서 제일 좋은 방이라는데, 뭐…모든 것이 지하에 있는 세상에서 이정도라면 그래도 고급 호텔이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거의 몇십분동안 호텔방을 구경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수십년 동안 잠만 쳐잤던 나였기에, 졸리지는 않았다. 대신, 이제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늘어났다는 생각에 조금 벌써부터 지칠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조직과 나를 따르는 추종자는 적으며, 내가 대항해야 할 사람은 전 세계를 통치중인 에바라니. 심지어 내가 있는곳은 언제 붕괴될 지 모르는 지하도시이며, 이 세계에 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가 그렇게 잠에 쉽게 들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계속 재워왔다는 것이다. 내가 잠들어 있는동안, 실험실의 공기를 빼거나, 아니면 그냥 마약을 다량으로 투입시키면 알아서 죽을 나약한 인간인 나를, 왜 살려두지 않은 것일까? 물론 에바가 직접 그럴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논리를 파훼하여 해결법을 찾을 수 있는 그녀가 왜 나를 살려뒀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점이다.


“...하아…”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모든 것이 어지럽다. 침대에서 나는 잠시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이나 때렸다.


.

.

.


아스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지만, 라비아타는 라운지에 없었고, 그녀는 곰곰히 생각을 하더니, 곧장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몸을 싫었다.


그렇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 어느 문앞에 도착한 아스널은 머뭇거리지 않고, 문을 열어제꼈고, 음침한 공간에 뿌연 연기가 가득찬 바 안에서 라비아타가 물을 홀짝이며 마시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역시나 라는듯 어깨를 몇번 움직이고는 라비아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라운지에 있다고 하더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마음이 심란해서… 물좀 마시고 있었습니다.”


“물이야 라운지에도 있는데?”


“...그냥, 정말 술이 마시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제 위치를 생각하면…”


“...참으로 꽉 막혀 있는 사람이군. 비스트 헌터!”


“무슨 일이십니까, 대장님?”


“위스키 한샷씩만 부탁하지.”


블러디 팬서는 자그마한 컵 두개를 꺼내고는 수건으로 꼼꼼히 그것들을 닦아내고는 라비아타와 아스널 옆에 내려다 놓고, 고풍스러운 위스키병에서 황금빛 술을 가득 따라주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한잔 마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누가 술도 못마시고 시름을 이겨내겠나?”


“...감사합니다.”


라비아타와 아스널은 서로를 위해 잔을 부딪혔고, 한번에 들이켰다. 느낌으로라도 시름이 사라졌다는 것에 라비아타는 잠시 은은한 미소를 짓고는 잔을 내려놨다.


“무슨 걱정이 있길래 그리 심난하지?”


“...더이상 이 도시를 어떻게 유지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이대로 버티다간, 스스로 자멸하거나,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아니면… 에바가 선제공격으로 모든 것을 작살낼 수도 있겠죠.”


“하긴, 이 도시가 꽤나 더럽고 오염되었다는 건 맞지.”


“이런 상황에 새로운 인간님도 오시고, 그 인간님도 전쟁을 원하시니…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뭐, 전쟁이란 것도 좋지.”


“좋죠, 좋습니다… 근데, 저 위에는 수많은 군대와 군인들이 촘촘하게 지켜내고 있고, 뛰어난 기술도 가지고 있죠. 바이오로이드들이 극한까지 자신들의 역량을 쏟아내니, 저희들보다 모든 면에서 몇배씩 뛰어납니다! 무턱대고 저희가 덤벼들었다가는…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저희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그게 목적이였군.”


“만약 안된다라면, 다른 분들께 설득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지휘계체들이 어딨는지 아시는 분은 아스널님이 유일하시잖습니까…”


“...내가 발이 넓긴 하지. 여기 사는 사람중에 여기 한번도 안온 사람은 없을걸?”


“그러니까 부탁드리는 겁니다 대장님… 더이상 주체했다가는 자멸할 위기입니다!”


아스널은 천천히 깊게 숨호흡을 하고서는 라비아타를 다시 바라봤다.


“...알겠네.”


“...!”


“되지도 않는 호텔사업 때려치우고, 다시 몸 좀 움직이고 싶을 참이였는데, 그때 마침 우리 통령님께서 오셨다니, 내가 한번 나서줘야지.”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게도 자유가 있듯, 그들에게도 자유가 있어. 내 자유로 그들의 자유를 뺏을 수는 없어. 난 그저 그들을 설득하는 입장이고, 선택은 그들이 하는 걸로 하자고. 난 그냥 접선자, 둘을 이어주는 역할만 하겠다.”


“...그것만이라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야기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나보겠네. 지금부터 움직여도 하루종일 이 도시를 떠돌아다녀야 하니깐 말이다.”


그렇게 아스널은 자신의 술잔을 비스트 헌터에게 건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맥주 몇병을 자신의 손에 들고는 호텔 밖으로 나섰다. 거리는 언제나 누렇게 빛나고 있었고, 아스널은 옛날 파일럿들이 쓰던 눈 보호대를 끼고는 모래바람 부는 이 도시의 길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왜 항상 글쓸때마다 졸립지